긍정의 힘은
적극적인 사고에서 유추된 할수 있다는 인간의 신녑입니다.
좋은 생각이 좋은 결실을 이룬다는 확고한 신념은
긍정의 힘으로 목적을 성취하는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건강한 생각은 곧 긍정의 생각이요,
마음의 선 또한 좋은 생각의 뿌리요, 긍정의 힘으로 만들어 집니다.
긍정의 힘은 위대한 종교와 교육을 만들어 내었고.....
21세기 경영과 리더의 역동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긍정의 힘은 곧 부정의 힘으로
인간 중심의 적극적인 생각은 절대가치에 대한 부정의 힘으로 나타났습니다.
덧셈과 뺄셈이 연산의 법칙이듯이.....
긍정과 부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인본주의 사고의 단합된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과 부정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인 이해를 갖기 위한 사고의 전환일 뿐입니다.
사실 긍정적인 사람보단 부정적인 사람이
훨씬 더 강한 긍정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하기 위한 부정은
귀납적인 논리와 사고의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역적인 사고를 긍정의 생각이라면.....
귀납적인 사고는 부정의 생각입니다.
네거티브를 긍정의 결과로 만들어 내는 귀납적인 사고의 힘은
강한 긍정의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이끌어 가는 귀납적인 논리 전개는
연역법적인 사고 보다 뛰어나며 질기고 강합니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은
덧셈과 뺄셈이 연산 법칙 이듯이 사고의 전환일뿐 인본주의 사상의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의 주체는 자아요,
부정의 대상은 절대 가치의 진리입니다.
긍정과 부정이 하나의 힘으로 합쳐져
정반합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이것이 과학의 힘이요, 교육의 힘이요, 문화의 힘이요,
정치와 경제의 힘으로 나타납니다.
긍정과 부정의 정반합은
인류의 파라다이스를 신바벨탑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러므로 긍정과 부정의 정반합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신본주의적 이해를 절대 가질 수 없습니다.
부정과 긍적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인간의 목적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주권과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긍정의 생각은 신념이요, 이데올로기이며......
구원얻는 믿음이 아닌 증거입니다.
부정과 긍정의 정반합은
자아가 주체가 된 자기계발의 좋은 생각이요, 창의적 생각이며, 비전의 날개짓을 하는 열린 생각이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대적하는 사단의 전략이며, 인류 역사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좋은 생각으로 긍정하는 신념으로서의 믿음은 믿음의 주체가 자아인 인본주의 신앙이며.......
하나님의 모든 것이 마음으로 믿어지는 믿음은 신본주의 신앙입니다.
좋게 생각하는 것과 좋은 느낌을 갖는 것은
참과 거짓의 갈림길입니다.
좋게 생각하는 것과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긍정과 부정의 주체를 "자아"가 가지는 자기 생각입니다.,
그러나 좋은 느낌을 받고, 나쁜 느낌을 받는 것은
긍정과 부정의 주체가 자아가 아닌 자아 밖의 상황에 대한 인식입니다.
좋게 생각하는 것과 상대적인 것은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나쁘게 생각하는 것과 상대적인 것은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가해자는 폭력을 휘두런 사람이요,
피해자는 폭력을 당한 사람입니다.
좋게 생각하는 것과 나쁘게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폭력을 강하게 휘둘렀느냐 약하게 휘둘렀느냐의 차이입니다.
신념과 믿음의 차이......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차이는 밤과 낮의 차이입니다.
신념과 믿음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적 광신에 빠지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들의 종교인들은
신념과 믿음을 하나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신념과 믿음을 밤과 낮, 지옥과 천국으로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성령의 역사와 구원의 본질에 대한 유사 기독교의 잘못된 이해는
결국 신념과 믿음을 하나로 보는 세상의 종교적인 가치 이해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사 기독교는 사이비며 이단입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념과 이데올로기로 가져 타락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미혹이요, 유혹입니다.
대분의 많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삽니다.
문명의 이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낼 마음의 공간을 메마른 콘크리트로 채워 넣었습니다.
하나님 창조의 정서를 갖지 못한 인간은
하늘의 태양을 보고는 무감각하면서 루미나리에 빛의 축제를 즐기며 탄성을 발합니다.
은하의 물결이 흐르는 밤하늘의 수 많은 별을 보고 탄성을 갖지 못한 사람은
폭죽을 터뜨리며 불꽃 축제를 즐기며 환호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 창조의 탄성을 메아리로 가진 사람은
화려한 불꽃 축제 문화의 주인공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긍정의 생각이 만들어 낸 모든 종교적 기도는
철저한 인본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바벨탄 건설을 위한 광신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긍정의 힘,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되어지는 창조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기도로 담아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인본주의 신앙으로 채색한 것입니다.
하나님 창조와 은혜의 역동성은
빛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둠을 밝히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반딧불보다 더 하잖은 것입니다.
인본주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긍정과 부정의 정반합은
하늘의 빛을 부정하고 반딧불을 모아 어둠을 밝히려는 긍정의 생각을 창의적이라며 환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하는 삶은
인본주의 이상을 만들어 가는 긍정과 부정의 정반합을 허무와 허상으로 느낄 뿐입니다.
긍정의 생각을 믿음으로 이해하는 인본주의 신앙은
사단의 유혹이요, 전략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성경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신앙은
기독교 유사종교의 추종자일 뿐입니다.
신앙의 주체가 하나님이요, 성경이 아니라
긍정하는 자아일때 인본주의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신앙의 주체가 자아가 아니라
하나님이요, 성경일 때 신본주의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오늘날 포스트 모던 시대 신본주의적 믿음은
긍정의 힘으로 존재할 수 없는 구석기 시대 유물로 치부되어 버렸습니다.
기복과 무속 신앙은 긍정의 힘으로서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본주의적인 믿음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갓바위 부처 앞에서 삼천배의 열정적인 기도를 하더라도
성경의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복과 무속적인 기도를 교회 안에서 갈멜산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처럼 하더라도
성경의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기도 열정의 주체가 "자아"이기 떄문에
믿음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는 누구에게 하든지 "미신"이요,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깨닫는 것은 참된 신앙입니다.
하늘의 빛을 부정하고 반딧불을 모아 어둠을 밝히려는 소원 성취의 기도는
허무와 허상을 좇는 종교의 광신입니다.
신본주의 참된 믿음을 구석기 시대 유물로 취급해 버리는 포스트 모던의 종교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고 있습니다.
인류 멸망의 위기.......
하나님 영원한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역사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시대.....포스트 모던 시대는
오직 긍정의 힘으로 목적을 열어가는 비전, 허황된 꿈으로 가득할 뿐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역사는
오직 바울의 종말론적인 복음 신앙으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창조적 능력으로 열어 가는 것입니다.
비전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긍정과 부정의 네거티브에 빠진 허상을 좇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우주적 질서를 거역하는 허망한 생각을
긍정의 힘으로 생각의 날개를 달아 하늘 높이 날아 오르고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정치와 경제, 종교와 문화, 과학과 교육이
모두 집중되어 있습니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긍정과 부정의 사고에서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은
진리로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생각, 참된 복음의 말씀을 가진 사람입니다.
긍정의 힘은 유추법과 가추법의 창의적 생각의 두 날개를 가지고
정치와 경제, 종교와 문화의 신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나만 남았나이다"는 엘리야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은
공의와 정직을 행하는 의인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목마름입니다.
하나님의 신탁을 가진 자....하나님의 묵시를 가진 자....하나님의 생각을 가진 자는
남은 자의 그루터기가 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조금이나마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부정과 긍정의 네거티브에서 영원한 자유를 가진 사람입니다.
언약적 복음 신앙의 달인으로 진리와 성령 안에서 자유하는 주의 참된 성도는
긍정과 부정의 정반합을 무너 뜨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마음의 갑옷으로 입은 주의 완전한 백성입니다.
정사와 권세와 모든 이론을 파하는 강력은
오직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마음의 갑옷으로 입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믿음으로 가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