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누르시아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 2월 10일)는 그의 쌍둥이 누이동생이다. 그는 청소년기에 로마(Roma)에서 수학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분열과 갈등을 겪는 교회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도시 생활의 윤리적 타락과 유혹에 환멸을 느껴 고향 근처의 고요한 광야를 찾아갔다. 그는 500년경 로마 동쪽 내륙의 엔피데(Enfide)라는 작은 산골 마을로 가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준비 없는 독수 생활이 영성 생활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동방교회의 사막 은수자들처럼 살기 위해 장소를 찾다가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수비아코(Subiaco)의 한 동굴에 정착하게 되었다.
성 베네딕토는 3년 동안 그 동굴에서 살았는데, 자신을 그곳으로 인도한 성 로마노(Romanus, 5월 22일)라는 은수자가 가끔 밧줄에 매달아 내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고독 속에서 철저한 금욕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온갖 육신의 유혹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그는 온전히 독수자가 되어 기도와 성경 말씀으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의 성덕과 엄격한 생활이 주위에 널리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이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비코바로(Vicovaro)에 있는 한 수도공동체에 알려져 그들로부터 원장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성 베네딕토의 엄격한 규칙에 반대해 마침내 그를 독살하려고까지 하자 다시 수비아코의 동굴로 되돌아왔다.
그 후에도 수많은 제자가 그를 찾아 몰려왔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원장의 지도하에 있는 12개의 수도원을 조직하고 일과표의 하나로 육체노동을 실천하도록 했다. 수비아코는 곧 영성과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자 인근 본당의 사제인 플로렌티우스(Florentius)가 그의 활동을 시기해 죽이려고 하자, 그는 다른 수도자들의 안전을 위해 몇몇 제자들과 함께 수비아코를 떠나 529년경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이주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폴로 신에게 헌정된 이교도의 신전을 파괴하고 우상 숭배에 물든 인근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서방교회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인근 피우마롤라(Piumarola)에 여자 수도원을 설립하고 자기를 뒤따라 수도 생활을 시작한 쌍둥이 여동생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초대 원장의 직분을 맡겼다. 그의 성덕과 지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명성이 계속 퍼져나가면서 또다시 많은 제자가 몰려왔다.
그는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 흐트러진 수도 생활을 바로잡고 서방교회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을 단일 수도원 공동체로 조직하고, 상식을 존중하면서 올바른 금욕생활 속에서 기도와 독서(Lectio Divina) 그리고 노동을 실천하도록 하며, 한 명의 수도원장 아래 있는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규칙서를 썼다. 이렇게 해서 성 베네딕토의 수도 생활 정신을 온전히 담아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기초가 된 “수도 규칙”(Regula Monachorum)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가 만든 “수도 규칙”은 순종과 정주 그리고 신심을 강조했는데, 이후 서방교회에 새로 설립되는 수많은 수도원의 규칙에 적용되면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수도 생활의 모토를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로 정해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기도와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수도자들을 지도하고 교황의 고문을 담당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도 힘썼다. 또한 동고트족 토틸라(Totila) 왕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롬바르디아(Lombardia)를 재건하는 데 정열을 쏟았다. 한번은 그의 명성을 듣고 토틸라 왕이 그를 찾아와 먼저 신하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들여보냈지만 단번에 그가 가짜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성 베네딕토는 토틸라 왕에게 전쟁을 멈추도록 강력히 요청하였다.
그는 547년 3월 21일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에서 선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선종하고 얼마 후에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는 6일 전에 미리 무덤의 문을 열어놓도록 했다. 그리고 선종 당일 마지막 성체를 영한 후 두 수도승의 팔에 의지해 양팔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선 채로 선종하였다. 그의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21일이 사순시기와 겹치는 관계로 이미 8세기 말부터 여러 지방에서 7월 11일로 옮겨 축일을 기념해 왔다. 그리고 1969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7월 11일로 확정되었다. 동방정교회는 3월 14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성 베네딕투스는 1964년 10월 24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베네딕토가 선종한 날로 추정되는 3월 21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정신에 따라 3월 21일 목록에서 7월 11일에 축일을 기념하는 성 베네딕토의 죽음을 몬테카시노 수도원에서 기념한다고 짧게 언급하고, 7월 11일 목록에서 그가 서방교회 수도 생활에 끼친 업적과 생애에 대해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수도 규칙서나 그를 독살하려 했던 일을 상징하는 뱀이 들어 있는 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그리고 독이 든 빵을 물고 있거나 물고서 날아가는 까마귀와 마귀를 물리치는 십자가도 자주 그와 함께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