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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창 24:28-40
28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에 알렸더니
29 리브가에게 오라버니가 있어 그의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러
30 그의 누이의 코걸이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또 그의 누이 리브가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이같이 말하더라 함을 듣고 그 사람에게로 나아감이라 그 때에 그가 우물가 낙타 곁에 서 있더라
31 라반이 이르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서 있나이까 내가 방과 낙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
32 그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가매 라반이 낙타의 짐을 부리고 짚과 사료를 낙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의 동행자들의 발 씻을 물을 주고
33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34 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35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36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37 나의 주인이 나에게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너는 내 아들을 위하여 내가 사는 땅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38 내 아버지의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하시기로
39 내가 내 주인에게 여쭈되 혹 여자가 나를 따르지 아니하면 어찌하리이까 한즉
40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버지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창 24:28-40 / [리브가에게 청혼하다] 그러는 동안 리브가는 집으로 달려가서 우물가에서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식구들에게 말하였다. 29) 리브가에게는 라반이라는 오빠가 있었다. 그가 집 밖으로 달려 나가 아브라함의 종이 있던 우물가로 갔다. 30) 누이동생 리브가가 우물가에서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코에는 값비싼 금코고리와 팔에도 값비싼 금팔찌를 끼고 있는 것을 보고는 급하게 우물가로 달려온 것이다. 정말 아브라함의 종이 우물가에 낙타와 함께 서 있었다. 31) 라반은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하였다. `자, 이렇게 여기에 서 계시지만 마시고 우리 집으로 가시지요. 어르신은 여호와께 복받으신 분이시로군요. 우리 집에 어르신이 묵으실 방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또 낙타가 쉴 외양간도 마련해 두었으니 어서 함께 가시지요' 32) 그가 집으로 들어가자 라반이 낙타의 짐을 부리고 낙타에게 먹일 겨와 여물을 주었다. 또한 아브라함의 종과 그 일행에게 발 씻을 물을 갖다 주었다. 33) 음식상이 차려 나오자 그가 말하였다.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을 다 말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 음식에 입을 대지 않겠습니다' `그러시다면 하실 말씀을 하시지요' 하고 라반이 대답하였다. 34) 그가 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35) 여호와께서 우리 주인님에게 큰 복을 내려 주셔서 큰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인님은 양떼와 소떼, 은과 금, 남종과 여종, 그리고 낙타와 나귀 등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36) 우리 주인님 아브라함의 부인이신 사라 늘그막에 아들을 낳으셨지요. 그리고 우리 주인님께서 그 아들에게 그 많은 재산을 모두 물려주셨습니다. 37) 주인님께서는 나에게 당신이 명령하신 대로 꼭 하겠다는 맹세를 하라고 하시더군요. 곧 `네 아들과 혼인할 처녀를 하나 고르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가나안에서는 그 어떤 처녀라도 골라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38) 그러시면서 `내 집안 사람들과 또 친척들이 살고 있는 고향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 아들과 혼인할 처녀를 골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9) 그래서 내가 이렇게 주인님께 말씀드렸지요. `도련님과 혼인하기로 하여 고른 그 처녀가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말입니다. 40) 그랬더니 주인님께서는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 심부름꾼을 너와 함께 보내셔서 네 앞길을 잘 열어 주실 것이니 아무 걱정 말고 집안 사람과 친척들이 살고 있는 내 고향 땅으로 가서 내 아이와 혼인할 처녀를 고르라'고 하셨지요.
엘리에셀을 만난 리브가가 우물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말하자, 라반이 우물가로 달려와 그 일행들을 만납니다.
엘리에셀과 라반의 만남(28-30) 리브가가 엘리에셀의 부탁에 온전히 순종하고 낙타의 물까지 챙기는 세심함을 보인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보여줍니다. 리브가는 방금 일어난 일을 아비 집이 아닌 어미 집에 고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여자들이 남자들의 장막과는 따로 구분된 장막에서 생활했음을 보여줍니다(18:10). 라반의 이름의 뜻은 하얀, 백색이지만 그는 표리부동하며(29:26) 물욕이 많은 자였습니다(31:6-7). 그래서 리반이 엘리에셀을 환대한 것은 리브가가 보여준 금 고리와 팔찌에 매료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던 그의 친절한 대우로 인해서 리브가를 아브라함의 집으로 인도하려는 엘레에셀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라반의 집을 방문하는 엘리에셀(31-33) 라반은 우상 숭배자입니다(31:30). 그러나 자신의 집을 방문한 엘리에셀에게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라고 인사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에셀을 향한 예우입니다. 엘리에셀과 그의 일행들에게까지 음식과 발 씻을 물을 제공하고 가축에게 먹이를 주며 쉬게 하는 것은 당시 유목민들의 일상적인 손님접대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라반은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서 대접합니다. 엘리에셀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33)라는 말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방문 목적을 설명하는 엘리에셀(34-40) 엘리에셀은 자신을 아브라함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아브라함 집안의 전반적인 경제력과 이삭의 위치를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언약 자손(17:21)으로서 아브라함의 혈통(15:4)과 기업(21:10)을 이어받을 유일한 상속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목적이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는데 있으며, 이 모든 여행이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가운데 이루어졌음을 고백합니다. 이야기 할 때마다 자신을 주인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 아브라함의 종임을 강조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의 일꾼인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고전 1:31; 15:10).
적용: 아브라함의 종인 엘리에셀의 우선순위는 사명 감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며 백성인 우리 신앙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세상은 자격과 조건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우대에 대한 차별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의 외적 자격과 조건으로 판단하지 말고 진실로 타인을 대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무엇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지 자격과 조건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세상과 얼마나 구별된 모습을 보이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 설 교 >
엘리에셀을 통해 주시는 교훈
창세기 24:26-27
길가에서 계란을 몇 판 놓고 팔아도 귀하게 보이는 부인이 있습니다. 엄청난 백화점을 경영하는 경영주라도 초라하게 보이는 인물이 있습니다. 가정부로 살아도 고귀하게 보이는 보배로운 여인이 있는가 하면 가정부를 거느리는 부인이라도 돼지 코에 금 고리같은 형편없는 여인도 있습니다. 경비실에 근무하지만 귀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만 명 사원을 거느리는 경영주라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항해사가 파도를 탓하고, 어리석은 일꾼이 도구나 연장을 탓하고, 어리석은 코치가 선수들을 탓하고, 어리석은 학생들이 시험 문제를 잘못 냈다고 선생님을 탓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탓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상황에서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되는 것이 없습니다.
강단에 아름다운 꽃들이 장식되어 있는 것은 우리 한순복 권사님을 비롯한 꽃꽂이 팀 네 분, 하나님의 딸들이 밤 12시까지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꽃도 귀하고 한순복 권사님도 귀해 보이고 그 팀이 다 귀해 보이는 것입니다.
물건 값은 사람이 매기지만 사람 값은 자기 자신이 매기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일했는데 억울하다. 회사가 나를 몰라주는구나.’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내가 15년간 이 회사를 위해서 이렇게 일했는데 해고시키다니 두고 보자.’ 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에 필요한 보배라면 왜 해고시키겠습니까? 회사에 득이 안 되는 인물이니 해고시키는 것입니다.
인생은 밭입니다. 우리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종입니다. 당시의 종은 인권도, 자유도 없는, 재산 품목 중 하나입니다. 그런 종이지만 엘리에셀은 주인에게 아들처럼 사랑받고, 모든 종들에게 주인처럼 존경받고, 밖에 나가면 이웃 사람들에게 귀족처럼 대접을 받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전 재산과 종들을 다 맡깁니다. 심지어 하나뿐인 외아들의 배필을 고르는 일도 “자네가 가서 선택해 오게.” 하고 그에게 맡깁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어디에 처해 있든지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귀하게 살면 귀한 대접을 받는 복 있는 사람들이 될 줄 믿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가문을 이어갈, 왕보다 더 귀한 가문의 도련님인 이삭의 아내감을 정하러 갑니다.
그가 메소포타미아 땅 나홀의 성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 얼마나 막막한 일입니까? 그 성의 많은 처녀들 중에 이삭의 부인감이 누구인 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것을 실감나게 설명해 봅시다. 여러분 아들의 며느릿감을 찾으러 대전에 갔다 합시다. 대전에 살아도 며느릿감을 찾기가 어려운데 대전에 가서 하루 이틀 사이에 어디에서 어떻게 며느릿감을 찾겠습니까? 막막한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30년을 함께 살아도 알 수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의 마음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도 그 마음을 모르는데 이 처녀를 이삭의 아내로 정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낯설고 물선 타향에서 어떻게 자기 주인의 며느릿감을 찾겠습니까?
엘리에셀은 나홀 성 앞의 우물가에 이르러 아기처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여, 제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이제 성 사람들의 딸들이 물을 길러 나올 텐데 제가 어느 아가씨에게 ‘아가씨, 물 좀 마시게 해 주세요.’라고 하겠습니다. 그때 ‘예, 마시소서. 어르신네, 당신의 약대들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아가씨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삭의 아내감인 줄 알겠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집에 은혜 주신 줄을 알겠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니 벌써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아가씨가 우물가로 오는 것입니다. 주목해서 보니 물을 긷는 모습이 품위가 있습니다. 물을 다 길어 집으로 가는 아가씨에게 엘리에셀이 말합니다.
“아가씨, 나는 먼 길을 온 나그네라 몹시 목이 마르오. 미안하지만, 내게 물을 줄 수 있겠소?”
“어르신네, 어서 마시소서. 어르신네의 약대들에게도 물을 먹이겠습니다.”
그리고는 아가씨가 뛰어다니며 열 마리의 약대에게 물을 먹입니다. 뛰어다니면서 땀 흘려 일하는 아가씨를 보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되기에 넉넉합니다. 아름답고, 부지런하고, 기품 있고,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가씨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이삭의 아내감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집안사람들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4장 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그러니 아무리 아리땁고 부지런하고 예절 바르고 모든 것을 다 갖춘 아가씨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집안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에셀이 떨리는 마음으로 묻습니다.
“아가씨는 뉘 댁의 딸이오?”
“예, 저는 미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입니다.”
나홀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동생입니다.
제가 지난주까지는 이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다가 어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때 엘리에셀이 “야!”라고 외칠 정도로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 아가씨가 아브라함의 친척이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면 소용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두근두근한 가슴으로 “뉘 댁의 딸이오?”라고 물었는데 “저는 미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입니다.”라고 하니, 세상에! 껑충껑충 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야! 하나님께서 나를 내 주인의 동생 집으로 인도하셨도다.” 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고개 숙여 경배하고 찬송합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고 나를 내 주인의 동생 집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일생 붙잡고 살 보배로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따라 합시다.
“아무리 앞길이 막막하여도, 캄캄하여도 기도하면 형통하게 된다.”
놀랍습니다. 엘리에셀의 재주로는 나홀 성에서 이삭의 부인감을 정할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살리시기 위해 바로 공주에게 근질근질한 마음을 일으키시어 목욕하러 나오게 하신 것처럼, 이삭의 아내를 찾게 하시려고 엘리에셀의 기도대로 그 성에서 이삭에게 가장 적합한 딸의 마음에 ‘지금 물 길러 가자.’라는 생각을 주시고 물 길러 가게 하시어 엘리에셀을 만나게 하신 줄 믿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아브라함 링컨의 자서전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때때로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 어려움 앞에 나는 아무런 아이디어도, 지혜도 없다. 하지만 그 때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게 지혜를 떠오르게 하신다.” 할렐루야!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기도하나 찾으시고 기도하는 자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 3절에 말씀하십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50편 15절에도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직장 때문에, 아들딸의 교육 때문에, 부부생활의 갈등으로, 사업의 어려움으로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친구와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 캄캄하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하나님께서는 답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뒤에는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가 있고, 앞은 홍해가 가로막고, 양 옆에는 험한 바위산이 있어 사방으로 에워싸인 이스라엘 백성이 공포의 도가니에서 아우성을 쳤지만 모세는 그 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조용히 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방에 길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길이 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네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니 바다가 열려 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과 저의 앞길을 가로막는 홍해를 열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그 길이다.(I am the way.)’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가는 길뿐 아니라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지용수의 길, 여러분의 길, 우리 교회의 길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답이 있습니다. 열쇠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근심하다 망하지 말고, 근심 중에서도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 모든 괴롬 아니진 자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제가 찬송가 가사를 섞어서 불러 보았습니다.
25,6년 전,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해서 벅찬 가슴으로 목회를 설계하고, 조용한 때에 큰 교회를 섬기시는 선배 목사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목사님, 제가 양곡교회에 부임해 왔습니다. 지도해 주십시오.”
“지 목사님, 실수했습니다. 양곡교회는 안 되는 교회입니다.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고 철거당하면 교회를 세울 부지도 없습니다. 교인이라고는 청년들과 몇 가정밖에 안 되는데 왜 양곡교회로 왔습니까? 전에 계시던 교회가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왔습니까? 어서 새 목장을 찾아 가십시오.”
그때 우리 교회의 최고 십일조가 5만 원이었고, 저도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월말이 되면 아이들 도시락 반찬을 살 돈이 없어 이 옷 저 옷마다 호주머니를 뒤졌습니다. 그러다 오천 원짜리 하나라도 발견하면 주님을 만난 듯 기뻐했습니다. 그런 형편에서도 제가 비싼 점심까지 사드렸는데 목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참 착잡했습니다. 제가 교회로 돌아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양곡교회에 온 것이 잘못이랍니다. 양곡교회는 누가 와서 해도 안 된답니다. 어서 다른 교회로 옮겨가랍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제 가슴에 불을 붙여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했지만 나사렛에서 나오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세주가 되신 것처럼 양곡교회가 세계의 등불이 되리라. 양곡교회가 세계를 구원하리라.’
이런 확신이 오고 힘이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우리 교회를 5만, 10만 제단이 되게 해 주세요. 그래서 세계를 구원하는 큰 방주가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막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막막했습니다. 철거지역에 있는 하꼬방 교회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철거당하기 전에 교회를 지으려고 신촌의 주택지 두 필지를 사려 하니 시청에서 종교부지가 아니라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동사무소가 서 있는 땅도, 양곡초등학교 앞의 작은 땅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양곡동에는 종교 부지가 없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공터는 지금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이 땅뿐인데, 이 땅은 도지사도, 건설부 장관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청와대에서 허락해 주어야만 되는 땅이라며 도지사가 세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저는 그 막막한 상황에서도 7년 가까이 새벽기도를 마치면 이 땅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팽 장로님도 때때로 이곳에 오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때가 되니 이 땅이 종교 부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우리 교회를 지었습니다. 여기에 교회를 지을 때 얼마나 기쁜지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를 설계할 때 제가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정문을 앞쪽으로 내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 앞이 남의 땅이어서 문을 옆쪽에 내야 하는데 자꾸 앞으로 내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교회 앞은 남의 땅입니다.’
‘그래도 정문을 앞에 내라.’
‘남의 땅입니다.’
‘문을 앞쪽에 내라.’
이 교회를 설계하신 분은 대단한 분입니다. 광림교회와 온누리교회도 그분이 설계하셨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정문을 옆에 내지 말고 앞에 내라고 했더니 “목사님, 교회 앞은 남의 땅입니다. 그러니 앞에 정문을 내도 사용하지 못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제가 우겨서 그렇게 설계를 했습니다. 얼마 후 교회 앞의 그 땅이 우리 땅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더 지난 다음에는 그 앞의 땅도 우리 땅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성전과 비디오실을 합하면 이천 명이 앉을 수 있는데 새 성전을 지으면 만 명이 앉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교회는 세계에서도 몇 교회뿐입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 교회와 프레드릭 프라이스 목사님 교회, 그리고 디엘 무디 목사님 기념 교회 정도입니다. 예전 반월의 우리 교회로서는 이런 교회가 지어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새로 짓게 되는 대 성전은 교인이 넘치면 배로 증축할 수 있게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기도를 드리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기도 드리세요」
어려워도 기도해야 됩니다. 잘되어도 기도해야 됩니다. 잘될 때 기도하면 더 잘되고, 어려울 때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콘라드 힐튼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태어났지만 ‘하나님! 하나님 영광을 위해 큰 재벌이 되고 싶어요.’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아, 네가 가진 것이 없어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기도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호텔을 세 개나 가진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호텔 세 개를 가진 성공자가 되어서 기쁜 것이 아니다. 네가 기도하고 있으니 기쁘다.”
그런데 경제 불황의 파도가 밀려와 그의 호텔도 다 망했습니다. 그의 동업자 중 한 사람은 호텔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한 사람은 관자놀이를 권총으로 쏴서 자살했습니다. 재기할 길이라고는 전혀 없는 힐튼에게 마귀가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다. 간단하다. 한 방만 쏘면 된다. 아니면 호텔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된다. 그러면 몇 초 후에 모든 것이 끝난다. 빨리 쏘아라. 아니면 빨리 뛰어내려라.’라고 충동했습니다.
‘그래, 끝내자.’라고 마음을 먹는데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아, 기도하면 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살을 포기했습니다. 권총을 내려놓으며 “하나님!” 하고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재기하게 하셔서 그는 세계에 이백오십 개의 호텔을 둔 호텔 왕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오늘 형통한 길을 가고 계십니까? 감사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해도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끝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기도하니 새 출발을 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 다음 중요한 교훈은, 응답받은 후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야! 눈부시게 아름답고 부지런하고 품위 있고 따뜻한 가슴의 아가씨! 게다가 아브라함 동생의 후손! 내 주인 아브라함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다 주셨구나. 기도한 대로 다 주셨구나.’ 하며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합니다.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인자와 성실을 끊임없이 주시는군요. 나를 내 주인의 동생 집으로 인도하셨군요. 할렐루야!”
그러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그와 계속 거래를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후로 계속 형통했습니다.
그 아가씨의 집에서 귀족 대우를 받고 이삭의 아내가 되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아브라함의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과연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구나. 형통하구나.” 하며 좋아하고, 이삭도 “엘리에셀이 최고예요. 역시 최고예요.”라며 인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더 잘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병환자 열 명이 고침을 받았지만 아홉은 다 제 갈 길로 가고 한 사람만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홉과는 거래를 끊으시고 감사하러 온 그 한 사람과는 계속해서 거래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거래가 끊긴 아홉은 망했고, 하나님과 계속 거래한 한 사람은 구원 받고 복 받은 줄로 믿습니다.
시편 73편 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잘될 때 더 주님 가까이로 다가서야 합니다. 아들딸이 대학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는 하나님께 막 매달리다가 합격하고 나면 하나님은 멀리 두고 “우리 딸이 열심히 해서 합격했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무어라 하시겠습니까?
‘너하고는 이제 거래하지 않는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과 거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거래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잘 되어도 하나님께 달라붙고, 잘 안 되어도 하나님께 달라붙어야 됩니다. 안 될 때 더 달라붙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 아들이 대학 입학시험을 앞두고 서울대의 가장 낮은 과와 연세대 상대에 원서를 냈습니다. 우리 노 장로님 아들과 똑같이 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은 두 대학에 다 떨어지고 장로님 아들은 연세대 상대에 붙었습니다. 장로님 아들도 공부를 잘했지만 제 아들도 그에 못지않게 잘했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수석 합격까지 기대했는데 두 대학에 다 떨어진 것입니다. 그때 제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장로님 기도발이 더 세구나. 8시간 동안 손을 들고 기도했는데 괜히 팔만 아팠네. 하나님, 제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나요? 이게 뭡니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모래를 씹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감사하라.’는 말씀 때문에 ‘아들이 두 대학에 다 떨어져서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 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이 가출을 했습니다. 이틀 뒤에 들어온 아들이 “아빠,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 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들어왔어요.”라고 했습니다. 날씨가 추운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한 달간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아들이 “아빠, 작년에는 주일에도 공부했어요. 잘못했어요. 또 떨어진다 해도 주일에는 이제 공부하지 않을 게요.”라고 했습니다. 그 일로 아들의 신앙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는 집중해서 공부하고 주일에는 예배드리고 푹 쉬더니 서울대 상위권 학과에 수석으로 들어갔습니다.
잘 되어도 주께 나가고, 안 되어도 주께 나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욥은 하루아침에 아들 일곱과 딸 셋, 모든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여러분, 좀 가졌다고 자만하지 마세요. 하루아침에 끝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의 S사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욥은 동방 최고의 재벌인데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후~’ 하고 부시면 누구나 그 날로 끝날 수 있습니다. 욥이 간음을 했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악을 행했나요? 의롭게 살고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도 망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됐다. 네 자세가 됐다.” 하시며 갑절의 복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잘 되어도, 못 되어도 더 주께 가까이 나아가자.”
엘리에셀은 잘 되니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예배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십대 때보다 이십 대에 더 주님 가까이, 이십 대보다 사십 대에 더 주님 가까이, 오십 대보다 육십 대에 더 주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날이 갈수록 더 가까이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사는 한 노인이 서울의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야, 오늘 네 엄마하고 이혼할 거다.”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이혼이라니요?”
“네 엄마하고는 더 이상 못 살겠다. 지긋지긋하다.”
“아버지, 이혼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야, 끝난 얘기다. 이제 더 이상 말도 하기 싫다. 대전의 네 누나에게는 네가 알려 주어라.”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서울의 아들이 대전의 누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누나! 큰일 났어. 아버지가 이혼하신대.”
“뭐라고? 말도 안 돼.”
대전의 딸이 당장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이혼은 안 돼요.”
“아니야, 이혼한다.”
“절대 안 돼요.”
“아니야, 이혼한다.”
“제가 지금 달려갈 테니 그 때까지 그냥 계세요. 이혼하시면 절대 안 돼요.”
전화를 끊은 후 노인이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아이들이 올 거요.”
노인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생일날 아들딸을 보는 것입니다. 명절에 아들딸을 보는 것입니다. 한 해를 살면서 가장 기쁜 날이 아들딸이 찾아오는 생일과 명절입니다. 그런데 아들딸이 사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으니 이혼 소동을 벌여 억지로라도 오게 한 것입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드니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특별히 손자가 더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미국에 있어서 보지 못했는데 지난 목요일에 그 손자가 서울에 왔답니다. 그러면 당장 저를 보러 올 줄 알았는데 크리스마스 때나 온답니다. 저도 이혼 소동을 벌여야 되겠습니다.
못난 자식도 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막 살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얼굴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목마르게 우리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복을 받아도, 환난을 당해도 주님께 나와 “주님, 주님!”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앞길이 아무리 막막하고 캄캄하고 불안해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셔서 결국 형통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더 잘 되게 하실 줄로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