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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갈 무렵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두 사람은 나폴레옹과 훔볼트였다. 그 중 훔볼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삶이 전 인류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막대하다. 괴테가 "진정한 정복자는 나폴레옹이 아니라 훔볼트다." 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10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루이14세의 프로테스탄트 금지령에 반대해 신앙의 자유를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프랑스를 떠난 위그노 가문의 재력가의 딸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이후 어머니가 죽자 모든 재산을 팔아 남아메리카 탐험에 나선다. 그의 나이 30세에 스페인에서 출발, 42일 만에 에콰도르에 도착한 그는 5년간 무려 3만키로의 남미 원시림과 정글 구서구석을 누비며 동식물을 연구하고 표본을 제작해 3천3백60여종의 동식물 표본을 완성했다.
그의 탐험 기록이 선박 세 척에 가득할 정도였다. 지금도 베를린의 식물원에 그의 표본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의 탐험은 실로 엽기적일 정도로 무모하고 도전적이었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논쟁 중이던 동물 신체 속의 電氣(덧말:전기) 유무를 밝히기 위해 남미에서 발견한 전기뱀장어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전기뱀장어의 일회 최대 전기 발생양은 600와트다. 이는 현광등 30개를 동시에 켤 수 있고, 심장 전기 충격기 두 대를 동시에 가동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그는 전기뱀장어를 생포하기 위해 말과 노새 30마리를 구해 전기뱀장어가 가득한 구덩이에 밀어 넣고 원주민들이 둘러싸게 한 뒤 노새들을 몽둥이와 채찍으로 나오지 못하게 때렸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맹독 쿠라레를 스스로 마시는 목숨을 건 실험을 감행했다. 이 쿠라레는 현재 수술의 혁명이라 불리는 根(덧말:근)이완제로 만들어져 수많은 인류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19세기 당시만 해도 수술 의사들은 손이 재빠르고 힘이 세야 했다. 왜냐하면 마취제로 인해 수축된 근육을 억지로 벌리고 수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훔볼트의 쿠라레 발견으로 근이완제가 개발되면서 수술이 훨씬 손쉽고 더 안전해졌다. 이렇듯 우리 주위에는 때로 무모해 보이는 도전과 탐험을 즐기며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인류 역사가 진보하며 위대한 변혁을 이루고 하나님의 역사도 그런 인물들로 인해 흥황하게 쓰여 진다.
전 서울대 교수 최재천 박사는 미국 유학 당시 누구도 연구하지 않던 민벌레를 연구하는 순간 그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고 한다. 최 교수 외에는 아무도 연구한 적이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시작과 동시에 세계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누구도 줄서지 않은 곳에 서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 일인가. 당신은 이미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된 것이다." 필자가 순복음의 무덤이라 불리는 울산, 그것도 한 번도 순 복음이 세워지지 않은 온양이라는 시골 마을에 개척을 결정하고 신학대학원 1학년 때 온양 순복음교회를 개척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교회는 그 지역 최대 순복음교회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우리가 유일한 그 지역 순 복음교회이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누리는 영광과 축복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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