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33/상사화相思花]잎과 꽃은 저대로 보고싶어 하건만
며칠 전 아침, 마당에 내려서다 깜짝 놀랐다. “저게 무슨 꽃이지? 참 예쁜데” 가족단톡방에 올리니 막내매제가 곧장 “상사화”란다. 상사화相思花?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서로 보고 싶어 하건만, 잎이 다 진 뒤에 꽃이 피기에 서로(相) 그리워(思) 한다는 ‘꽃무릇’은 고창 선운사 근처에서 가을에 본 적이 있건만, 그 과科라는 상사화는 처음 본 것이다.
지난해 어느 비 많이 온 봄날, 산에서 캐다 마당 담 아래 나란히 심어놓았는데, 이런 선물을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진초록 원추리이나 난초인 줄 알았다. 연한 분홍색꽃이 모여 있으니 이쁘다. 오늘 아침 내리는 비 속에 바라보니 아름답기까지 하다. 곧바로 검색을 해봤다. 요즘 세상엔 검색이야말로 ‘권력’이 아닌가. 꽃무릇과 상사화는 수선화과 꽃인데, 다른 게 있다. 상사화는 잎이 다 7-8월에 꽃을 피우고, 꽃무릇은 9-10월에 꽃을 피운 뒤 잎이 나기 시작해 겨울을 난다는 것이다. 잎이 말라버리고 나 60cm 졍도의 꽃대에서 꽃을 피우는 상사화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하니, 이룰 수 없는 사랑일까? 꽃무릇의 꽃말은 ‘참사랑’ ‘슬픈 추억’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Magic Lily(매직 릴리). 서양인들도 조금은 신기하게 느낀 듯하다.
아무튼, 우리집 마당이 최근 제법 ‘꽃잔치’를 벌이고 있어 보기에 심히 좋다. 백합 10여주가 긴 산고産苦 끝에 망울을 터트렸다. 올 봄에 튤립을 구경못했는데, 호랑가시나무 등에 가려 햇볕을 보지 못한 때문이다. 내년 봄엔 햇볕에 잘 드는 앞쪽으로 옮겨줘야 할 것같다. 지인이 선물한 알리움의 꽃이 지니 다알리아가 꽃을 피웠다. 동백꽃처럼 한순간 꽃망울을 떨어뜨리는 게 흠이다. 입추가 지나자 맨드라미가 닭벼슬(계관鷄冠)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김대중 선생이 틈만 나면 정원의 꽃들에게 물을 주었는지 조금은 알 것같다. 그분이 좋아했다는 인동초忍冬草도 생각이 난다. 올 봄에 대문밖 꽃밭 경사면엔 철쭉 100여그루를 심었다. 봄가뭄에 3분의 1은 죽었지만, 내년 봄에 ‘보답’을 해주리라. 눈(雪)을 토해(吐)낸 것처럼 보인다는 설토화(목수국木水菊)가 3만원 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눈 속에서 꽃을 피운다는 설리화雪裏花(납매화라고도 한다)가 장독 바로 옆에 덩그러이 서있는데, 지난 겨울 몇 송이를 피웠다. 사람은 한번 가면 영영 오지 않는데, 꽃은 어이 하여 한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피는 걸까? 꽃무릇을 어디에서 사거나 구할 수 있을까? 알아봐야겠다.
뒷산에 가면 지천으로 있는 진달래도 내년 봄에는 많이 캐와 꽃밭 주위 울타리로 삼을 생각이다. 가족묘지의 개나리를 꺾어 휘묻이를 해놓았는데, 내년 봄에 정말로 다 살아나 노오란 꽃선물을 해줄지 그것도 궁금하다. 뒷마당 손바닥꽃밭은 수선화 20여그루로 가득 찬다. 라일락의 아침저녁 향기, 백합의 진한 내음, 장독대옆 앵두나무의 제법 통통한 앵두 10여개를 한 입에 털어넣는 재미, 허브를 손으로 쓰다듬으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향기, 어디 싫고 좋지 않은 꽃이 하나라도 있을까? 노후 전원생활은 아니지만, 눈에 띠는 이런저런 야생화도 우리집 꽃밭으로 옮겨 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른바 ‘소확행小確幸’이다. 오늘처럼 하루종일 비가 내릴 것같은 날엔 서재에 틀어박혀 이런저런 자료나 옛책들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 재미’이다. 이런 날은 외롭거나 고독할 틈이 없다. 골치가 좀 아프면 내가 좋아하는 수담手談을 인터넷에서 미지未知의 인간들과 나눈다. 그것은 거의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 아아-, 집 뒤의 축사에서 소똥냄새만 안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터인데. 나는 말없이 ‘착한 저주咀呪’를 되뇐다. ‘소통 불통’의 그 축산업자 하루빨리‘복상사腹上死’하시길. 물론 상대방에겐 너무 잔인하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악몽이겠지만, 그보다 더한 행복한 죽음이 있을까. 이거야말로 착한 저주일 듯. '착한 저주'의 대상자는 또 한 명 있다. 그 사람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타고난 정치인처럼 굴고 있다. 문재인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낸 사람이 모든 것을 부정하며 택도 없는 트집을 하고 있다. 한 친구는 "그것은 악담이나 저주가 아니고 덕담이구만"하며 이죽댄다. 꽃 이야기하다 웬 복상사? 좀 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