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표
노정애
12월 14일, 월요일, 서울역, 13시1분 출발하는 KTX에 올랐다. 코로나19의 방역단계 격상으로 창가 자리만 예약이 가능해 옆자리는 비어있다. 청량리, 상봉역을 지나자 대부분의 창가좌석은 승객으로 채워졌다. 영하 10도지만 날씨는 맑다. 창밖 풍경은 청아하고 햇살은 따뜻하다. 책을 꺼냈다. 정진희의 수필집 『떠나온 곳에 남겨진 것들』. 훌쩍 떠날 때 읽으리라 생각하며 아껴두었던 책이다.
혼자만의 여행은 처음이었다. 식구들에게 일주일의 여행을 알렸을 때 딸아이는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고 남편은 양해가 아니라 통보냐며 서운한 내색을 비쳤다. 가족, 친구들과의 여행이나 큰아이를 보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도 혼자는 아니었다. 올해 시작된 팬데믹(pandemic) 은 우리의 일상을 바꾸었다. 작은아이는 재택근무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남편도 출근은 했지만 이른 귀가를 했다. 정기적으로 나갔던 글쓰기반과 독서토론반, 모임 등 만남을 전제로 하는 모든 관계는 일단 멈춤 중이었다. 연일 핸드폰에서는 모임을 자제하라고 안내문자가 떴다. 사람들을 만나 차 한 잔 마시기가 두려워 집에만 있었다. 식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서 좋았지만 가끔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다. 슬슬 탈출을 모색했다. 딸아이가 숙소를 추천하고 남편이 기차표를 예매해줘서 편안한 마음으로 떠났다.
2시간 후 강릉역에 도착했다. 일주일치 짐은 작은 트렁크가 전부다. 서둘러 역사를 벗어났다. 파란 하늘이 나를 반겼다. 함께 내린 승객들은 모두 흩어졌다. 사람들이 없는 역사 뒤편으로 갔다. 집을 나오면서 썼던 마스크를 내리고 강릉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맑고 상쾌한 바람과 나무의 향이 폐 깊숙이 들어왔다. 서울보다는 따뜻했지만 이곳도 영하의 날씨라 코끝이 찡했다.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역사 뒤편의 쉼터공원을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걸었다.
숙소 체크인 절차는 까다로워졌다. 거리두기, 손소독, 열재기, QR코드 찍기, 설문지 작성을 하자 예약된 방을 배정받았다. 순백의 침대보가 씌워진 침대와 작은 책상, 티 테이블과 의자두개, TV와 음료냉장고가 전부인 단출한 방이다. 일주일 동안 머물 집이다. 짐만 들여놓고 나왔다.
숙소 앞 송림 숲은 넓고 길었다. 야외조각품들이 많았다. 곁에 있는 소나무도 작품처럼 한겨울 추위를 즐기는 듯 초록이다. 코앞이 바다다. 아무도 없었다. 마스크를 내렸다. 동해의 거친 파도소리를 들으며 주단처럼 깔린 솔잎 위를 걸었다. 솔향이 내 몸 구석구석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강문해변으로 갔다. 그곳도 텅 비었다. 2M 거리두기가 필요 없는 곳이 얼마만이던가. 두어 시간 바다와 송림을 산책하고 바닷가 작은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차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가끔 발코니로 나가 별을 봤다.
‘아름다움의 가면을 쓴 것들을 남겨두고 나도 이상향을 찾아 떠나온 것일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어디서도 벗어날 수 없는 이중성과 모순을 품은 부조리한 삶. 떠나온다고 사라지거나 피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고립을 의미하며, 때론 상처란 사람을 자유롭게도 한다는 것을 잠시 누리고 싶었을 뿐이다. 아니, 상처란 내가 허락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핑계로 이렇게 강줄기를 따라 매일 걷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진희 「떠나온 곳에 남겨진 것들」 중에서
줄을 그었다. 떠나온 나는 가까운 이에게 주었을 상처와 내가 받았던 상처를 생각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 탓에 나의 짜증과 화는 남편과 아이에게로 향했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무던한 성격의 식구들 덕분에 크게 상처 받은 기억은 없다. 같은 상처도 개개인이 느끼는 질량은 다르다. 내게는 실바람인데 그에게는 태풍 같아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고 할퀴고 지나가 생채기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많이 미안했다. 부디 내가 준 상처들을 용서하시길.
줄친 글을 천천히 읽었다. 내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주고받았던 ‘상처’들이 방안을 떠돌다가 이내 사라졌다. 식구들에게 잘 있음을 카톡으로 알렸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의 공간, 고요가 주는 편안함 속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너른 해변에는 드문드문 무리지은 사람들이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맑은 날씨 덕분에 수평선 위로 뜨는 붉은 해를 오는 날까지 볼 수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와서 잠시 아침뉴스를 봤다. 책을 읽고, 두어 시간 산책을 하고,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저녁이면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를 홀짝거리며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떠나온 곳에 남겨진 것들』을 읽으며 그리스며 이탈리아로 멋진 여행을 하면서 나를 돌아봤다. SF소설인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미래의 시간들을 상상할 수 있어 좋았다. 손홍규의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은 첫 장부터 섬세한 문장에 반하고 심연을 건드리는 아픔이 내 마음을 콕콕 찔렀다. 그렇게 4일을 보냈다.
남편이 왔다. 그도 많이 답답했었나 보다. 송림을 걷고 바다를 보고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가 있어 산책 대신 좀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설악산 흔들바위, 심곡부채길, 주문진항, 안반데기까지 하루에 하나씩 걷거나 구경하며 다녔다. 밤이면 함께 맥주를 홀짝거렸다. 며칠의 고요는 깨졌지만 자주 웃고 함께한 30년 세월을 이야기했다. 서로를 다독이며 선물 같은 귀한 시간에 감사해했다. 남편이 분기에 한 번은 이런 여행을 가라며 기분 좋게 말했다. 날카로운 가시들만 쏟아냈던 아내의 말투가 솜털처럼 부드러워진 것을 그도 알았음이라. 편안해진 마음에 오고가는 말도 부드럽다. 생채기를 내는 상처도 없다. 이것이 쉼이 필요한 이유리라.
일주일의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왔다. 마음이 가벼워져서인지 떠날 때보다 한결 여유롭고 편안했다. 쉼표를 잘 찍었다.
노정애
부산 출생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책과 인생> 등단
한국산문 문학상 수상
남촌문학상 수상
수필집 《나의 소확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