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비는 출퇴근길이 아니더라도 눈만큼 애물단지는 아니지만,
귀찮은 존재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는 대박을 맞은 것처럼 반색을 하며
혹시라도 폭우가 내렸음 하고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솔직히
그렇지만 극단 이기주의는 괘씸죄에 걸려 비는 슬쩍 다녀만 갔다.
폭포 순례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흘림골 산행이 있다 보니
비가 온다는 소식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쩌겠어...' 그나마 다녀라도 갔으니
고맙다고 위로를 하며 애가 타게 기다려본다.
6월 둘째 주 일요일은 강원도 남설악 흘림골로 산행이 있는 날이다.
동녘하늘을 붉그스름하게 물들이던 아침 해님이 새하얀 새털구름에도
빨갛게 물들이며 곱디고운 빛으로 아침을 여는 잠시 이벤트에
마치 새털구름처럼 마음은 한없어 설렘으로 젖어들었다.
점심을 준비한 배낭을 메고 이제는 초여름 기운이 완연한
이른 아침 흘림골 산행 버스가 기다리는 군자역으로 갔다.
남설악(점봉산) 흘림골 산행
흘림골 산행버스가 양양고속도로를 무심히 달려간다.
산허리를 뻥뻥 뚫어 조성한 고속도로라서 그런지 터널이 유난히 많고
가끔 보이는 마을은 저멀리 고속도로 아래에 있어 현대문명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농가의 아침 풍경이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면 감정의 사치 일까?
산부자 동네 답게 산과 산을 무수히 지나 '인제 가면 언제 오나' 하던 한때는 오지 마을였던
인제인가 싶더니 어느 사이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흘림골 탐방로에 도착했다.
흘림골 탐방로 매표소 앞에는 예약을 해야 하며 오전 9~14시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친절하게 써 놓았다.
나무로 만든 흘림골 탐방로 아치형 문을 들어가자
연둣빛이 채가시지 않은 나뭇잎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짙은 그늘을 만들어준다.
다정한 그들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재빠르게 나무그늘로 들어섰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맨발산행으로 출연하셨던
산우님께서 맨발산행을 권유하신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이 망설여지지 하다 보면 중독이 되는지도 모른다.
맨발 산행도 가끔 하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등산화를 벗어 배낭에 집어넣었다.
특히나 나무계단이 많은 산길이다 보니 다칠 염려도 덜하고 맨발산행에는 전혀 부담이 없었다.
간밤에 다녀간 비가 산길을 적셔 발길 닿는 곳마다 촉촉하게 젖어들어
맨발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등선대 0.6km라는 나무 표시판이 우리를 기다린다.
어쩌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등선대를 올라가는 거라서 발걸음 갑자기 급해진다.
나뭇잎 사이로 이제 막 꼬투리를 벗은 자그마한 산목련 꽃봉오리가 숨어있다.
새하얀 꽃봉오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산목련이라니....
가볍게 여심폭포에 올라왔다.
이름 그대로 여심 폭포라서 그런지 몰라도 분명 간밤에 비는 여심폭포도 다녀갔을 텐데
흐르는 물줄기가 너무도 연약하여 폭포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이제 흘림골 폭포 순례길 첫 관문 여심폭포를 지나 산행은 계속되었다.
등선대에서 보았던 설악산의 속살
서서히 설악산의 자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저 멀리 거대한 바위들이 우뚝우뚝 솟아오르고 속살을 훤히 보이는 바위가 있는가 하면,
이따금씩 소나무들이 터를 잡고 있는 바위들도 있다.
길이는 길지 않았지만 깔닥고개를 올라와 등선대쉼터에
배낭을 잠깐 내려놓고 숨 고르기를 했다.
나무들 사이로 나무로 만든 계단을 보인다.
나무계단을 올라가자 위험천만 험한 바위가 강력하게 항의하며 등선대를 오르는
우리를 거부하였지만 살살 달려며 등선대에 올라섰다.
설악산이 파노라마같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득히 멀리 서북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지며 귀때기청봉도 보이고 끝청과 대청봉도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동해바다까지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오늘도 날씨는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동해바다는 볼 수가 없었다.
특히나 우람하고 거대한 바위들이 뾰족뾰족하게 솟아 푸르는 나무숲에
바위밭을 조성하여 나무들과 공존하며 공존의 미학을 다채롭게 선보이고 있어
과연 설악산은 그 규모가 남한의 3대 명산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설악산의 위용에 말문이 막혀 다시는 못 볼 것처럼 보고 또 보며 가만가만 등선대를 내려섰다.
용소폭포 1.9km 오늘 날머리 오색약수터 탐방 지원센터 4.5km라는
나무표시반이 있고 보면 아직도 우리는 갈길이 멀긴 멀었다.
깎아지른 내리막길을 쉼 없이 내려간다.
이제는 어쩔 수없이 맨발산행도 막을 내리고 배낭에서 등산화를 꺼냈다.
크고 작은 바위돌이 제멋에 겨워 박혀있는 흔히 말하는 너덜바위길이
내리막길을 지키며 호시탐탐 우리를 겨누고 있다.
그들의 덫에 걸려들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오다 보니 어디에선가
계곡물소리가 가냘프게 들린다.
흘림골에서 만난 산목련
고요한 숲 속의 정적을 깨우는 계곡물소리에 의지하니
갑자기 오색약수터가 저만치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려 일으켰다.
드디어 나무그늘이 깊게 드리워진 숲 속에서 오손도손 모여 점심식사를 하며
먹는 즐거움도 누렸다.
즐거움은 잠시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나무계단을 내려갔다 싶으면 바위길을 올라가고 또다시 철계단을 내려가다
산목련을 또 만났다.
새하얀 산목련은 뽀얀 꽃잎조차 두툼하여 청순한 자태가 눈이 먼저 호강했다.
설악산 산목련
곱디고운 흰 피부를 청순하게 보여주며
산행에 지친 산행꾼의 마음을
위로하는 그대여!
내 잊지 않으리 초여름 어느 날
흘림골 산행에서 만난 그대를.
용소폭포에게 다정하게 했던 위로
길이가 10m 소가 7m나 되는 용소폭포는 암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천년을 기다렸다는데
숫 이무기는 용으로 승천했지만, 암 이무기는 승천하지 못하여 바위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비록 용으로 승천은 못했지만, 바위로 승화하여 남설악 흘림골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시원한 폭포수와 깊은 소를 보여주며 봉사하고 있으니 이 또한 근사한 삶을 살고 있는 거라고
암 이무기에게 다정하게 위로하고 싶었다.
고딕양식의 철탑 같은 바위들이 우뚝우뚝 서있고 바위아래는 계곡물이 흐른다.
'골 깊은 계곡에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은 항상 흐려있어' 흘림골이라고 하는 흘림골은
장가계 미니어처를 보는 것 같다는 산우님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흔들 다리도 건너갔다.
달 밝은 밤에 선녀들이 목욕했다고 하는 선녀탕에 차마
발을 담글 수가 없는 우리는 어깨너머로 선녀탕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다.
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계곡물에서 족탕을 하며
오늘 하루 산행으로 지친 발과 다리를 다독여 주었다.
오색약수와 인연이 깊은 성국사를 지나치자
저 멀리 다리 아래로 오색 약수가 보인다.
오늘 날머리 오색 약수가 보이자 마음이 먼저 달려갔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오색약수는 나트륨과 철분이 많으며
위장병, 신경쇠약, 피부병, 신경통에도 좋다고 하니 이쯤이면 만병통치약이다.
오색 약수를 마시며 건강하게 올여름도 보내주기를 소망했다.
2024.6.9
NaMu
첫댓글
푸르름이 짙어가는 유월에
산세 유려한 설악산의 골짜기를 타고
마치 선녀가 된듯
맨발로 흘림골을 찾아가다니요.
고개를 위로 올려다 보는
여유는 있었을까요.
사진 찍느라 위로 보고 있네요.
설악산 산목련의 고고함 처럼
6월을 그렇게 보내어요.
산행기 아닌 무릉도원을 읽는 기분입니다.
흘림골 넘넘 가보고 싶었는데요.
갈 수있는 기회가 생겨서 감사했어요.
설악산은 이상하게 산목련이 많더라구요.
왠지 청순한 산목련과 설악산 잘 어울리는 것같아요.
역쉬 수필방 댓글 여왕님답게
아직은 많이 서투른 글을 댓글로
잘 포장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무더위에 지쳐가는 요즘
나무랑님의 흘림골 산행기를 읽으니
시원함을 넘어 서늘함이 느껴져요
고고한 듯 하얗게 피어있는 산목련도
아름답기 그지 없네요
갸날픈 몸으로 힘든 산행을 그것도 맨발 산행을 하시다니..
대리만족을 느껴봅니다 ㅎ
오색약수터는 저에게 친근합니다
어느 해 여름휴가 때
그린야드 호텔에 이틀 묵으면서 산행도 하고 약수물도 먹고 했거든요
오색약수터에서 올라가는 코스도 너무
절경이였어요.가을 단풍은 더 절경이고..
나무랑님! 글이 너무 좋아요.
무덥기 전에 갔다와서 대박 맞은거죠 모^^
비가 온 숲길은 촉촉해서 맨발산행하기 더
좋았어요.
우~와 설악산에서 휴가 넘넘 좋은 경험하셨어요.
그러게요 예쁘기는 가을 설악산이 제일 예뻐요.
많이 서투른데요 잘 봐 주셔서 감사드려요 루루 님^^
나무랑님 글 잘 보았습니다.
우거진 숲이 흐려있어 흘림골이군요.
맨발 걷기 동호회가 있을 정도로
요새 맨발 벗기가 유행이던데
산길을 오르면 발바닥 벗겨지지 않을까요?ㅋㅋ
우뚝솟은 바위들 멋집니다.
작년 가을에 멀찌기서 설악산을
바라만 보았는데
나무랑님 글 보면서 함께 동행하는
기분이 느껴져서 좋네요.
산목련보다 더 어여쁘신 나무랑님의
자태에 홀랑 빠져버렸습니다.
등산을 하면서 체력관리도 잘 하시는
몸 튼튼 마음튼튼 나무랑님~^^
흘림골...이름이 참 예쁘죠.
맨발 걷기 동호회도 있나봐요.
(갑자기 가입하고 싶은 충동이 들긴
하는데요 낯을 많이 가려서ㅠㅠ)
발바닥이 벗겨지지는 않는데요.
발이 까맣게 타고 거칠어지면서
미워지는 건 사실예요.
그렇지만 건강에 좋다고해서요.
얼굴도 아니고 발인데 모 ㅎㅎ
그냥...건강해서 산행 할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단지 혼자서도 산행을 하면 좋겠는 데
혼자서 선뜻 나서지 못해서 그게 늘
제 자신에게 불만이예요.
많이 서투른데요 잘 봐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 제라 님^^
덕분에 십 수년 전 친구들과 함께 했던 기억을 덧입히며 생생하게 읽었습니다.
그 시절은 산행객들이 최고 절정인 때라 겨우겨우 등선대까지만 올랐었죠.
등선대에서 오색으로 내려가는 길이 인파로 가득해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온 기억이 납니다.
세밀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그러게요 단풍의 계절 가을 설악산은 출퇴근길 러시 아워를 저리가라 만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산대까지 가셨으니
천만다행이예요.
그~쵸^^
아직은 많이 서툴지만 그래도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북한산은 자주 다녔고 오지여행도
제법 다녔는데...
한국의 명산 세 손가락에 드는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은 제대로
못 올라 보았네요.
너무 높고 험해 겁도 나고 체력도
별로라...ㅎㅎ
나무랑님 덕분에 흘림골과 오색약수터에 이르는 길, 산목련까지
잘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
저도 한라산은 못 가봤어요ㅠㅠ
근데말예요.
설악산 흘림골은 북한산보다 산행하기가
훨씬 쉬워요.
쉿! 비밀이예요.ㅎㅎ
감사는 제가 해야하는데요
많이 서투른 글 잘 봐 주셔서 감사드려요^^
사진 속
뾰족뾰족한 바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 당하는데
저기를 오르셨다는 거지요?
덕분에
전 엄두도 못내는 설악산 흘림골 산행을
속속들이 다녀왔어요.
깊은 산 초록 잎새들 속에
함초롬히 피어난 산목련의 아름다움에
눈이 부시네요.
산행 길
나무랑님의 미소는 더 아름답구요.
사진은요 흘림골 등선대에서 설악산 맞은편을 촬영한거예요.
100km도 하셨던 플로라 님인데요.
얼마든지 하시는데요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인 것같아요.
그러게요 산목련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서요.
힘든 줄도 몰랐어요.
잘 봐 주셔서 감사드려요. 플로라 님^^
거부하는 등선대를 살살 달래며 올랐다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산목련도 나무랑님도 설악산과 함께 아름답습니다.
그랬다니까요. 등선대가 저희를 거부했어요ㅠㅠ
많이 서툴고 부족한데요.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푸른비 님^^
흘림골 개방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대청봉은 열댓번이상 갔지만 아직 못가봤습니다
한번 가보고 싶네요
옙^^ 개방했는데요
꼬~옥 함 가보세요.
대청봉을 그렇게나 많이
그산 님 넘나 멋있어요.
흘림골..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가보지 못해도 꼭 지금 보는 듯..
너무도 좋고 아름다운 수필입니다.
거대한 바위들이 뾰쪽 뾰쪽하게 솟아
푸르른 나무숲을 이루는 경관은 장관입니다.
그리고 새하얀 산목련은 청순하고 고고한 자태가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또 마지막 나무랑님의 미소는
우리들을 부르는 듯 즐겁습니다.
좋은 글..아름다운글.. 감사합니다.
아....흘림골을 못 가 보셨군요.
흘림골은요 가브리엘의 오버에 아시죠.
가브리엘의 오버에 같은 곳이예요.
청국 님께서 상상하시는 순수하고 청순하고, 고요함이 살아 숨쉬는....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서투른데요.
잘 봐 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
산목련의 자태가 나무랑님 마음처럼 깨끗하고 곱습니다.
험한 바위가 거부해도 살살 달래며 길을 가는 순리적인 모습도 좋습니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오색 약수 마셨으니 올 여름 더위는 끄떡 없으시겠습니다.
산목련은 우리가 흔히 화단에서 보는 목련보다 적고 새하얀 꽃잎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했어요. 향을 맞아 보고 싶었는데요.
커다란 나무에 피어 있어서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라 살짝 아쉬윘어요.
그러게요 사고났다하면 이제는 산행 끝이라서요. 조심 안 할 수가 없어요.
제 글을 보신 헤도네 님도 유난히 무덥다는 올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주리라 믿어요^^
그동네에 주전골도 있지요? 그 옛날 화폐로 쓰였던 동전만들던 동네.. 하여튼 흘림골은 언제가도 아름답습니다. 하늘을 보면서 심호흡하며 즐기는 나무랑님 모습이 보기좋습니다. 고동네에 집사람 친구 별장이 있어 가끔 갑니다. 아마 요새 설악산 케이블카공사를 한다는 소릴 들었지요..
옙^^ 주전골 이야기를 하셔서요.
잼 난 야그 할께요.
같이 산행 하시던 산우님께서요.
오색약수로 내려오면서 "이쪽으로 가면
엽전골이야 하시는거예요."
엽전골? 같이 산행하던 산우님들 모두 웃음꽃이 피었어요.
산에 가면 늘 그래요 산행하기를 얼마나
잘 했어 공기부터가 다르잖아요.
그러게요 설악산에 지인 별장이 있으니
넘나 좋으시겠어요.
케이블카 타고 설악산을 구경 한다면
수박 겉 핥기 같은 느낌은 들거예요.
정성 가득한 글..
오랜만에 나무랑님 글 읽습니다.
설악산은 여러차례 갔습니다만..
심지어 신혼여행도 가을 설악입니다만..ㅎ
아직 정상 등정을 미룬 상태이고..
그저 중턱 아래에서 바라만 봤습니다.
저 순결해 보이는 꽃이 산목련이군요.
목련보다 개화시기가 많이 늦나 봅니다.
그러게요 오랫만에 글을 써 보았어요.
글이 잘 안써져요ㅠㅠ
우~와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넘나 멋있으세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있는 있으니까요 아직은 미루면서 보류 상태인거죠 모.
산이라서요 6월이 되어야 볼 수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