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에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그 요구의 어처구니 없음을 떠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건 정말이지… 엄청난 광경이었다. 백만의 군중들이 밀집되어 내가 있는 언덕 주변에 모여있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전투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그건 틀림없는 백만명의 관중을 두고 하는 공연과도 같았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무리예요. 저는… 도저히… 애초에 그리 좋은 가수도 아니었었고… 지금은 더군다나 무리에요. 저기를 보세요. 다들 전투에 집중하고 있어요. 자신의 의지로 삶을 개척하고 생의 강렬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요. 저기서 제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들에 대한 모욕에 불과해요.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꺼예요. 그리고 어차피… 하프도 없다고요."
그리고 나는 어머니와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말했다.
"어머니가 하세요. 노래가 아니라, 독려를 하세요. 어머니는 황제 폐하시잖아요. 다들 어머니의 독려와 응원에 힘을 내고 목숨을 걸고 싸우기로 맹세할꺼예요. 저는 무리예요. 처음부터 저는 무리였어요. 할수없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변함없는 어조로 말했다.
"그럴수는 없단다. 이들은 너의 백성이야. 네가 명명하고, 네가 이끌었으며, 너와 같이 싸워온 사람들이야.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손님에 불과하단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어. 너의 노래를…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항상 힘든 와중에 더 힘든 상황에서도 미소지으며 흐트러트리지 않았던 너의 권위, 너의 노래를 기다리고 있어.
클라크 데 슈발리에에서… 너는 이미 너의 병사들과 함께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너는 너의 백성들에게 너의 목소리를 전해야해. 지금은 싸워야 할 시간이야. 각자 서로의 무기를 가지고… 에라드는 체스로, 안젤모는 매력으로, 아이샤는 건설로… 각자 자신이 잘하는 것을 지금 최후의 결전에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지.
너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네가 가장 잘하는 것, 네가 세상과 소통하였던 것, 네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했던 그것을 가지고 최후의 결전에 임해야 한단다. 이제 고개를 들고 다시 세상을 바라보려무나. 그들이 오고 있다. 그리고… 너의 하프도."
나는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내 눈앞에 크리스틴과 라와드를 필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아이들이었다. 오빠나 누나의 품에 안긴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부터, 이제는 곧 청년이 될듯한 장성한 아이들까지, 이번 여정에 낯익은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중에 가장 앞에 서있는 아이가 나에게 낯익은 물건을 내밀었다.
"너는…"
"카심 가지의 손자, 오스만 가지입니다. 명하신대로…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나의 왕이시여. 노래를 들려주세요. 여기 모든 데네브의 아이들이 모여있습니다. 슬플때나 즐거울때나, 배고플때나 목마를때나, 우울할때나 행복할때나… 저희들은 저희와 함께 놀아주신 왕자님을 기억하고, 왕자님의 노래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저는... 왕자님이 주신 무화과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같이 어께를 맏대고 전장에서 함께 해주시고 무사히 돌아와 주셨습니다. 왕자님께서는 기억하시지 못하실지라도... 저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것이고 앞으로의 삶에 기둥이 될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불러주세요. 당신의 목소리로… 힘겨운 피난길에서 많지 않은 즐거움이고, 왠지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며 미소짓게 해주었던 그 노래를… 저희들의 아버지와 형, 친척들에게 들려주세요. 그들이 무사히 이기고 돌아올수 있도록, 당신을 지킨가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세요."
나는 오스만이 내민 하프를 손에 받아들였다. 몇일만에 받아든 하프는 왠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틈에서 환하게 미소지으며 나의 행동을 기다리고 있는 크리스틴과 라와드도 바라보았다. 나는…. 한참동안을 망설이며 하프의 현에 손을 가져갔다.
해자의 양끝으로 선회하라는 명령을 받은 마르탱과 위그는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달리고 있었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미칠것 같은 기분, 바로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조소하였다. 기병의 양익 선회를 막기 위해 따라붙은 병사들이 아무리 봐도 늙은이들로 밖에 안보이는 보병대라는 사실에 그들은 적의 미약한 전력을 비웃으며 속도를 높여 그들을 따돌리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기마대의 속도를 높이자, 역시나 말들은 일제히 앞으로 질주했고, 측면에 따라붙은 적의 보병대는 기마대와 멀어져 뒤쳐졌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보병대는 의외로 기마대의 전력질부만큼 빠르지는 못했지만 일정한 속도로 오와 열을 맞춰서, 해자를 따라 정확하게 10 X 200의 긴 직사각형 진을 구성하여 정돈된 모습으로 그들을 쫒아왔다. 어이없게 여겼지만, 발맞춰 걷는 일정한 구보의 속도에 그들은 느리지만 천천히 그들을 따라잡았고, 마르탱과 위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다시 따라잡자, 각 부대에 명령을 내려 다시 속도를 높이라고 하였다. 다시 거리는 벌어졌으나 그것도 잠시, 질주후에 어느 정도 속도가 저하되는 기병대와는 달리 보병대는 여전히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그들을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보병대가 기병대의 꼬리를 무는 듯한 속도를 유지하며 추격을 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사태는 계속되었다. 진을 맞추어 속도를 늦추지 않고 진격하는 적과는 달리… 기병대는 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열이 길게 늘어져서, 지금은 마치 3천여명의 기병대가 일렬로 달리는 것처럼 길게 늘어져 버렸다. 그리고, 말의 피로가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르탱은 깨닭았다. 오전 내리 투항하러 와서 불만 왕창 질러놓고 도망친 왕자를 추격하느라 전 병력이 반나절이 넘는 질주를 했고, 그 덕분에 말들이 상당히 지쳐있었다. 그리고, 나름 중장비를 갖춘 병력들 덕분에 다른 기병대보다도 그 피로도는 더 심했다.
하지만 하루종일 쉬다가 행군을 시작하는 적은 다소 무리한 속도지만 오랫동안 행군 연습을 해온듯 발을 맞추어 걸으며 그들을 빈틈없이 따라붙고 있었다. 그들은… 미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오론테스강의 해자의 유입.. 그것은 사실상 그들이 노리는 해자 양쪽 끝에 선회할 통로가 없을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상황에 직면하자, 두 사람은 동시에 기병대의 전력 질주를 다소 저하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을 보병대는 놓치지 않았다.
"굴람들이여! 선회하라! 선회하라!"
노병들은 보는 사람이 놀랄만큼 전력질주하던 행군을 지속하여 속도를 늦추던 적의 기병대를 앞질러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90도로 꺽어 가장 외곽에 존재하는 다리에 달려들어 다리를 내렸다. 다리가 내려지는 모습을 본 마르탱과 위그는 더 놀랄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침투를 막아도 모자랄 판에 다리를 자기들의 손으로 내려버리다니… 그러나 그들의 경악은 이어졌다.
순식간에 굴람 보병들은 다리를 건너 방향을 선회하여 그들의 앞에 진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샐러맨더 군단은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후열에 뒤처진 병력이 오기를 기다려 한번에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난 보병들을 밀어버리겠다고 작정하였다. 그러나… 빠른 것은 보병대였다.
길게 늘어진 샐러맨더 군단이 돌격가능한 진형을 구성하도록 집결하는 것보다 빠르게 굴람들은 해자를 건너서 정렬을 하여 정면에 상단으로 창을 든 1천명의 열, 중간에 중단으로 창을 든 5백명의 열,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위에 하단으로 창을 내려찍을 듯 잡은 열의 마치 로마의 3열 진을 보는 듯한 진형을 구축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에 왔던것과 마찬가지로 정면에 도열한 천명의 병력이 발맞추어 걸으며 전진했다. 양쪽에서 카심과 유수프가 소리쳤다.
"나의 형제들이여! 눈앞에 지치고 비루한 말을 타고 몸도 못가누는 중갑을 입은 적들에게 우리가 줄 것은 죽음 뿐이며, 왕에게 받칠 것은 영광뿐이로다. 굴람들이여 전진, 나 카심 가지가 형제들과 함께 할것이다!!!"
"아오… 제발 여기서 끝장 내고 서로 다시 만나지 말자. 칠순에 예비군이 왠말이냐. 그것도 바랑기안이나 프라이팬 처럼 근위대로 명예로운 것도 아니고 노예병으로 근무하고선… 걍 죽여! 죄다 죽여! 비싼거 입은 놈은 일단 죽이고 체포해."
그들은 완만하게 전진했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기병은 그 특유의 기동성이 혼란에 빠졌을때도 나온다. 다가오는 3열의 창의 공세에, 몇몇 용감한 기병들은 돌격을 감행하기도 했지만, 결국 창에 꿰인 꼬챙이가 되서 굴람들의 짜증만 유발시켰을 뿐이다. 몇몇 기병들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자 아직 합류를 마치지 못한 기병대는 당황하며 벌써 후위에는 합류를 거부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였다. 마르탱과 위그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 한심한 무슬림들… 어서 집결하지 못해? 훨씬 더 많은 병력으로 쫄지마! 우리가 집결하면 저 따위 놈들은 한수에 붕괴시킬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드렵다면 그대로 말을 몰아 놈들의 진형을 우회해서 후방으로 들어가도 된다. 일단 모두 모여! 그래야 싸우든 도망치든 할거 아니냐!!!"
그리고, 그들의 말에 호응하듯 후위에서 엄청난 기세로 병사들이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위그와 마르탱은 이제야 놈들이 정신을 차렸다며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곧 일그러졌다. 그것은 다급하게 본진에 합류한 뒤처진 놈들의 표정이 다들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뷸하자 마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후방에 기병대 출현! 후방에 기병대 출현! 무서운 기세로 우리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마르탱과 위그는 동시에 서로 저 너머 후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양익으로 갈라져 1 해자를 넘어 그들의 후위에 다라붙은 프라이팬 연대가 거의 동시에 그들을 들이쳐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정면에서는 굴람의 창병대가, 후방에서는 프라이팬 연대가 나타나자 양익으로 선회한 병력은 급격하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에라드는 조용히 명령을 내렸다.
"레프트 나이트, D4, F6, G8. 라이트 나이트 B3, D4, E6."
그리고 그의 명령은 실시간으로 양익에 프라이팬 연대에 전달되어 지휘랑 연결되었다. 에라드는 적과 아군의 기동의 빈틈을 노려 투입된 프라이팬 연대의 기동을 직접 지휘하며 완편된 그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체스피스인지를 깨닭았다. 그것은 클라크 데 슈발리에에서의 운용을 뛰어넘는 역량이었다. 단순히… 그들의 오랜 지휘관이 합류한 것만으로도 저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다니… 그는 감탄하며 얼마전 그의 아버지와의 조우를 떠올렸다.
각자 자신들의 카드를 꺼냈을 때, 에라드는 조금 소외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은 이렇다 할 꺼낼 카드가 없다는 사실에 그는 괜한 미안함마저 느꼈다. 카드가 없는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사용할수 있을지 알수 없는 카드였다. 그의 망설임에 살라딘은 조언과 설득으로 그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는 결국 망설이다 편지를 썼다. 그의 부친에게로… 내용은 간단했다.
'카이쿠바드를 잡고 싶습니다.'
미리오케팔른에서 패전한 다음 다소 상심해서 오랜 시간 사직서를 제출하려 하였으나 제국 의회는 왠지 그게 달궈진 쇠라도 되는 양 자기한테 묻지 말고, 총사령관은 근위대장 겸임이니 여제에게 사직을 재가 받으라고 손사래를 쳤고, 여제는 한동안 성지에 가있느라 제출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누라에게 체포되 리마솔에 도착한 여제는 의기양양하게 '안티오크는 예루살렘 왕국의 데쥬레가 아니니 갈꺼임.'이라고 선언해서 마누라의 주름을 늘려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멀뚱히 사직서를 들고 있던 그의 손에서 사직서를 빼앗아 서명한 다음, 민간인 자격으로 같이 가자고 명령해서 정신없이 끌려와버린 것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에라드 위체 제국군 총사령관의 도착에 본진은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에라드는 그의 부친에게 담담한 얼굴로 온 것을 환영하여 자신들을 지휘해 줄것을 간청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은 싸대기였다. 나뒹굴어진 에라드가 살라딘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자 아버지는 그에게 소리쳤다.
"살다살다 이런 멍청한 제안은 처음이군. 총사령관이라는 자가, 오랫동안 자신과 같이 싸워준 병사들을 전선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외부인에게 넘기겠다고 하는거냐?"
"하지만… 상대는 카이쿠바드란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도저히 상대할수 없는…"
"정신차려라 이 얼간아! 카이쿠바드면 어떻고, 에라드 위체면 어떻다는 말이냐? 그래봤자 사람이다. 상대가 사람이고,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칼로 찌르면 죽는다는 전제만 틀리지 않는다면 뭉게버릴 방법은 만가지도 넘게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현장에 도착한 외부인의 몫이 아닌 그들과 절실히 싸워야 할 너의 몫이다. 네 할일을 남에게 미루지 마라."
그의 말에 에라드는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데네브의 총사령관으로서, 제국의 전임 총사령관이자 근위대장이며 현재 우리 데네브의 개인자격 옵저버로 참여한 에라드 위체, 그대는… 총사령관인 나의 말에 복종하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내려진 명령을 빈틈없이 수행하여 적과 싸울 것을 맹세할수 있습니까? 잘 생각해보고 대답하십시오."
그러나 에라드는 대수롭지 않은 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 싸울 뿐이다. 그외에는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수도 없다. 지시하라, 총사령관… 내가 해야 할일은 무엇인가? 그대의 명을 따르겠다."
에라드는 그제서야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프라이팬 연대에 합류를 명했다.
"어이, 대장… 군살이 많이 붙었구만? 미리오케팔른에서 털렸다매? 그러게 우리랑 같이 갔어야지."
"사모님 성질은 여전한가 몰라? 라만차에서 우리 피토할뻔 했잖아."
"대장까지 합류하니, 예전에 앙주의 난봉꾼 시절로 돌아간 것 같구만. 이제서야 프라이팬 연대 완편이네. 돌아온걸 환영해."
에라드는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해후를 마쳤다. 그 모습을 본 에라드는 안심하며 자신의 부친을 체스피스로 포함한 전략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대략적인 준비를 마치자 그는 아버지에게 그것을 설명했다. 그는 한참동안 그것을 바라보다 말없이 동의를 하였다. 그리고 말했다.
"잠시 주변을 물러주지 않겠나? 총사령관에게 개인적인 할 이야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에라드는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도 정작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는 오랫동안 기다려주었다. 한참만에 어렵게 말이 나왔다.
"네 어머니와… 나를 원망하고 있느냐?"
"……"
"나는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네 엄마는 원망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마도… 네 관점에서 보면 나는, 다리가 불편한 자식이 장군으로서 명성을 잇지 못하자 화가 나서 관심도 가지지 않았고, 너의 어머니는 그런 너를 감싸기보다는 종종 체스를 상대해줄 뿐 자신의 일로 인해 집안에 자주 있어주지 못한 못된 부모로 생각되겠지. 그리고 결국, 국가의 대의를 위해 자식도 사지에 내다버리는 그런 부모로 보였을 것이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는 오랫동안 묵은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너는 축복의 아이였다. 앙주가 제국이기 이전에 우리 품에 와서, 나는 비겁자가 되려다 결국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말머리를 돌렸었지. 그리고 네가 태어났을 때 제국의 모든 실력자들이 너를 축복하며 마치 제국의 미래를 떠받들 대들보로 축복하였다. 나 역시, 네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더구나. 너는 얼마지나지 않아 소아마비의 증세가 왔고, 눈물겨운 노력끝에 병세는 회복했지만, 결국 다리를 절게 되었지. 그때 나와 네 엄마는 절망했단다.
군인에게 다리를 전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기병대의 돌격이 주력이 되고, 지휘관이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끈끈한 동료애로 묶여야 비로서 폭발적인 위력을 가질수 있는 이 시대의 군대에서, 너의 신체적 약점은 군인이 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것이었다. 설령 무리해서 그것을 도전한다고 해도… 결국 오래지 않아 목숨을 잃을 것이 확실해 보였지. 그 상황에서 나와 네 엄마는 너의 미래에 대해 전혀 다른 선택을 하였단다."
그의 말에 에라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전혀 다른 선택이라뇨?"
"나는… 너를 어떻게든 세상에 살아가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에게 일부러 군대와 관련된 일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막아, 네가 무리해서라도 군인이 되는 것을 결사 반대하였지. 그것만이… 너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네 엄마는 달랐다. 네 엄마는 항상 나보다 똑똑하고 과감하며 용감했지.
내가 절망에 빠져 오로지 너를 지키는 것에만 골몰하는 동안… 네 엄마는 네 자질을 고려하였다. 그리고 네가 군인이 되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막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깨닭았지. 그래서 그녀는 결심하였다. 이 세상이 너를 군인으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너를 포기시키는 대신, 이 세상을 너에게 맞게 바꾸겠다고 말이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에라드는 할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이어졌다.
"당시의 군대는 기사와 봉건제가 혼합된 용사들의 것이었다. 그 군대에서는 모두가 싸워야 했고, 거기서라면 다리가 불편한 네가 활약할 기회는 없다고 봐야겠지. 그녀는 그 상황을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전쟁을 일당백의 용사들과 천재적인 현자들의 것이 아닌, 숙련된 일반 병사와 편집증적인 관료들의 것으로 바꾸겠다고, 그리고 그것이 머리속에 펼쳐진 전략대로 지시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시대를 초월하는 군대를 만들고자 했다.
물론 전례나 청사진이 없던 것은 아니다. 엄격한 군율과 통신체계, 그리고 분업화된 군직무와 각자 개별적으로 숙련된 하사관들이 지휘관의 역할을 대신할수 있는 군대는 이미 로마 시대에도 존재하기는 했었지. 하지만 오랜 봉건제를 거치며 퇴화된 전쟁방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녀가 바란 이상의 군대… 그러니깐 멀리서 체스보드 위에서 움직이는 체스피스처럼 지휘가 가능한 군대는 너무나 시기상조였지.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국의 전권을 가지게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군대의 개혁을 나를 통해 단행하였고, 그중 일부 부대에게 그녀가 그리던 이상을 구현할수 있는 독자적인 훈련체계를 요구하여 그것을 어느 정도 현실화시켰지. 그게 바로, 라만차에서 활약했던 프라이팬 연대에 체스가 개입했고, 결국 그 지휘를 네 엄마가 맡았던 이유란다. 그녀는 자신의 지휘로도 내가 지휘하는 것과 다름없는 위력을 발휘하는 부대를 만들길 원했고, 그것을 라만차에서 다소 생각치도 못한 돌발상황에 성공하였지."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에라드는 놀랄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린시절을 회고했다. 단순한 체스 대국이라고 생각한 모든 기보 하나하나에 그녀의 어머니는 의미를 담고 복기하며 현실과 접목시키라고 조언했었다. 어린시절에는 뭔소린가 싶었던 그 이야기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그것은 모두 어머니가 못난 자신을 위해 만든 시간의 흐름 조차 뛰어넘은 선물이었던 것이다. 에라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멋진 여자 아니냐? 자기 남편은 제국의 무력의 정점으로 서게 하고, 아들은 시간을 뛰어넘은 군사 교리를 현실화시켜 넘겨줬지. 네 어머니를 원망하지 말거라. 그녀는 오랫동안 너를 많이 안아주고 싶었을꺼다."
두 에라드는 말없이 석양을 바라보았다. 저 너머에 있을 리마솔에서는 그 오랜 시간을 묵묵히 자신의 남편과 아들, 그리고 제국을 위해 살아온 한 어머니가 있었다. 에라드는 다시금 마음을 다지며 어머니의 선물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지휘를 이어갔다.
"레프트와 라이트, 나이트 그대로 굴람과 협력하여 적의 전열을 붕괴. 추격은 금지한다. 적진 붕괴 이후 중앙에서 다시 합류하라."
그의 모습을 본 살라딘이 보고했다.
"1 해자를 넘어 온 적들의 소탕이 거의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 예정대로 시작할까요?"
"현장 상황을 판단하여 그대로 지시하십시오. 저는 오로지 프라이팬 연대에 집중하겠습니다."
살라딘이 소리를 질렀다.
"집결하라! 해자를 넘어온 병력은 거의 소탕되어 간다. 다음 타겟은 적의 후발대 6천명과 카이쿠바드가 지휘하는 친위대 6천명이다. 전 병력 중앙으로 집결하라. 포위망을 좁혀라! Drangon covered by Web! 다시 전달한다. Drangon covered by Web!"
그녀의 말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곧 전쟁터의 상황이 다시 급격하게 변화했다. 해자를 넘어 와서 양익에 구호기사단과 바랑기안에 둘러쌓여 붕괴된 병력이 무너지자, 두 내노라하는 최강의 군사 집단은 방향을 돌려 정면의 해자 너머에 여전히 돌파할 방법을 찾느라 끙끙대는 적의 후발대를 바라보았다. 함성이 울려퍼졌다.
"다리를 내려라! 일제히 다리를 내려라!"
소리가 울려퍼지자, 지금까지는 결단코 내려지지 않을 듯 거두어진 다리들이 일제히 내려졌다. 그리고 그 통로를 통해 정면에서 구호기사단과 바랑기안이 돌격하기 시작했다.
"형제들이여!!! 영광의 시간이다! 기사단을 위하여! 여왕 폐하의 명예를 위하여!!!"
"미리오케팔른의 빚을 갚아주마. 애송이들, 뭣빠지지 않게 주의하며 따라와!"
중앙에 있다가 갑자기 몰려드는 적들의 기세에 후발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멀리서 양익에 아군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들 해자를 우회하러 갔다가 프라이팬 연대와 굴람들에게 제대로 얻어맞고 후퇴한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좇아 굴람의 보병대가 양날개에서 좁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위에서는 별다른 특이한 기동 없이 그저 몰아붙이는 것 만으로도 양익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프라이팬 연대가 퇴각하는 적들과 뒤섞여 이동할 만큼 재빠른 기동으로 다시 중앙에 합류하였다. 두 연대가 가운데에서 합류하자, 그 위치는 그대로 적의 후발대의 배후가 되었다. 결국 후발대 6천명과 합류한 패잔병들은, 정면의 바랑기안과 구호기사단, 양옆에 굴람, 그리고 배후에 프라이팬 연대의 포위를 당하는 형국으로 몰렸다.
약 1만여명의 샐러맨더 군단의 병사들이 제대로 대오를 갖추지 못하고 중심부에 내몰리자, 점점더 혼란은 가중되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그들중에서 소리쳤다.
"당황하지 마라! 주군께서 보고 계신다. 우리를 포위한 놈들은 우리보다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포위망 따위에 당황하지 말고 전원 하마하고 방어진을 짜라."
그렇게 지시하는 것은 조금전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다급하게 달려와 합류한 주세페 도리아였다. 가장 노장인 그는 이를 아득바득 갈며 고함을 치며 병사들에게 진정을 명했다. 그러자 그의 말이 조금은 먹혀들었고, 쫓겨온 마르탱과 위그 등도 그의 행동을 보며 정신을 수습하고 병력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말에서 내려 방어진을 짜고 밀집하였다. 촘촘한 창의 진형은 굴람들의 것보다는 미숙했지만 그래도 다들 중장갑주를 갖춘 자들의 진형이라 그런지 두텁기 그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에 전황의 흐름이 다시 조금 변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안젤모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왜… 당신의 망할 성희롱을 진지하게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거죠? 닥치고 결론이 뭐예요?"
"너무 몰아붙이면 상대도 저항이 심해진다는 거지. 그 저항을 멈추기 위해서는… 저 흐름을 주도하는 자를 제거하고, 방어진을 붕괴시켜야지. 여기서 기다려!"
"조… 조심해요."
안젤모는 널판지를 타고 유영하다 어느 시점에서 아군 쪽 해자에 널판지를 대고 아이샤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포위망이 완성되가는 모습을 보자, 다시 해자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는 유속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떠내려오는 부목과 시체들을 밟고 가라앉기 전에 바로 뛰는 신기에 가까운 재주를 보이며 해자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한창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 뛰어들었다.
"안젤모 그라치아니가 왔다. 처녀들은 모두 치마를 들고 반겨라!"
그의 말에 구호기사단의 뒷편에 있던 멜리장드가 소리쳤다.
"그건 아니잖아요!"
"아? 그런가? 좋아… 유부녀와 소녀도 상관없어. 아무튼 누가 나랑 한판 붙어볼테냐? 거기 발기 패턴 특이한 영감? 당신인가?"
그의 말에 주세페는 거대한 커틀러스를 들고 다짜고짜 그에게 내리쳤다.
'챙'
그는 육중한 기세로 날렵하게 검을 휘둘렀고 그 검이 안젤모의 창에 막히자 맑은 금속성과 함께 안젤모는 몇걸음 뒤로 밀려갔다. 그 어마어마한 기세에 안젤모는 당황했다.
"어이, 영감 제법인데?"
"안젤모… 안젤모… 안젤모 이 가증스러운 이름을 가직 그 자의 대자여. 너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해. 난 사망방식을 복상사로 이미 정해두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거든. 아름다운 여인의 품이 아닌 곳에서의 사망은 사양하겠어!"
그리고 두 사람은 난전중에서 격렬하게 창과 검을 휘두르며 난투를 벌였다. 그러나 어지간하다는 안젤모도 지금까지 본적없던 제노바 노장의 기세에는 당해내지 못하고 수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적진에 이동이 감지되었다.
"더는 못참겠구나. 이 한심한 놈들… 내가 친히 놈들을 물리치겠다. 샐러맨더 군단, 친위대 진격하라. 지금까지 상대해온 아군과는 격이 다른 공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어라. 가장 우선 목표는 바로… 우리 앞에서 보란듯이 해자의 후발대를 후방 포위하고 있는 더 퀸스가드 퍼스트오더의 병력들로 삼겠노라. 후세인, 아론, 조지… 동행하라. 그리고 핫산은 후방에 남아 도주하려는 아군들을 너의 심복 암살단으로 제거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핫산이 군례를 취하자 일제히 샐러맨더 군단의 친위대가 카이쿠바드의 번쩍이는 황금갑옷을 호위하듯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정말로 지금까지 등장한 병력과는 달랐다. 지금까지의 샐러맨더 군단의 기병들이 병사들만 완전 무장을 취한 자들을 경기병으로, 마갑을 일부분 말에 덮은 기병들을 중기병으로 불렀다면… 그들이야 말로 중장기병으로 불리는 것이 마땅한 말과 사람 모두가 완전히 갑옷을 둘러 하나의 거대한 무기로 일체화된 병사들이었다.
단지 몇기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그들의 병력은 6천명의 카이쿠바드의 정예 병력으로 똘똘 뭉쳐 자신들의 전방에서 보란듯이 양익을 유린하고 돌아와 이제는 중앙의 배후를 포위하고 있는 프라이팬 연대를 향해 진격했다. 그 상황을 파악한 살라딘은 에라드에게 보고했다.
"드디어 움직입니다. 적의 최정예 중에서도 최정예가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전원 완전 마갑과 완전 갑주를 감싼 비잔틴의 클리바노포로스와 유사한 병종입니다. 돌입하기만 하면 그 무엇이든 분쇄해버린다는 미리오케팔른의 마룡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라이팬과 좋은 승부가 되겠군요. 제가 콘트롤 하겠습니다. 잠시 후발대의 포위진을 풀겠습니다."
그리고 에라드는 큰소리로 외쳤다.
"프라이팬 연대, I have control! 모든 병력은 나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라. 본격적인 체스택틱스를 다시 시작한다."
그말이 울려퍼지자 마자 그들은 곧 포위를 풀고 배후에서 돌진해오는 샐러맨더 군단 친위대와 마주보았다. 에라드가 명령했다.
"전 병력 전진, 속도를 트롯으로 유지하라."
그리고 그 말에 곧바로 프라이팬 연대 500명은 6천명의 노도와 같이 몰려오는 적들에게 진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카이쿠바드도 소리쳤다.
"건방진 놈들… 정면으로 돌격해오다니 앙주의 기적을 재현할 생각인가? 좋아, 붙어보자. 누가 더 베짱이 있나 한번 해보자. 친위대 속도를 높여라."
두 부대의 거리는 서서히 좁혀지기 시작하였다. 거리는 1천보, 두 부대는 서서히 전의를 불태우며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에라드는 차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순식간에 거리는 8백보로 좁혀졌다. 두 부대는 서로 죽일듯한 기세로 달려들어갔다. 어느 누구도 멈추지 않을 듯 두 부대의 거리는 좁혀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에라드는 명령을 내렸다.
"화살 기동(Arrow Riding)을 개시하라."
그리고 프라이팬 연대의 속도가 다소 완만해졌다. 숨을 죽이는 듯한, 그리고 모든 말과 병사의 호흡이 일치되는 듯한 모습이 보여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강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곧 돌진해 들어가는 카이쿠바드의 시선에도 들어왔다. 그는 비웃듯 말했다.
"흥, 병력과 무장의 열세를 속도로 만회하겠다는 건가? 네놈들의 그 특이한 기동은 이미 샤를에게 들어보았다. 짧은 시간동안 속도를 극한까지 글어올려 거창 돌격으로 파괴력을 증대시키겠다는 생각이로군. 다른 바보들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군단, 1천명씩 연대단위로 거리를 두고 파상 공격을 준비하라. 1열이 적들과 조우해서 속도가 떨어지는 순간 2열과 3열이 그대로 덥쳐서 끝장을 내버려라. 시행하라!"
그의 명이 내려지자 중장기병들은 일사분란하게 거리를 띄우고 파상 공격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두 부대의 거리는 이제 400보까지 가까워졌다. 곧, 두 부대의 지휘관이 소리쳤다.
"샐러맨더 군단! 전원 들이박아!"
"프라이팬 연대, 전원 화살기동…"
그리고 이어진 에라드의 말에 카이쿠바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은 하지 말고, 우회기동해서 그대로 측면으로 빠져나가라!!!"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프라이팬 연대는 일제히 부대를 선회하여 샐러맨더 친위대의 앞에서 우회기동을 해버렸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300보, 200보, 100보를 남겨놓고 프라이팬 연대는 완전히 샐러맨더의 정면에서 벗어나 측면으로 이탈해 버렸다. 그러나… 이미 너무 속도를 올린 샐러맨더 군단은 눈앞에서 벌어진 적들의 우회기동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진격을 하다가, 마침 후방이 뚫린 공간으로 도망쳐나오는 아군 패잔병들에 그대로 들이박혀버리는 참상이 발생했다. 다행히도 병력을 분산시킨 덕분에 한바탕 혼란은 최전방의 1열에만 영향을 미쳤고 2열 이후의 병력들은 제동에 성공하여 도망친 프라이팬 연대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이 더러운… 이교도 놈들이… 이 비겁한 놈들아, 제대로 한번 붙어보지도 않고 꽁무니를 빼다니!!!"
그리고 그들의 욕설에 프라이팬 연대는 비웃듯 말했다.
"우리가 미쳤냐? 니들을 대상으로 정면 돌진하게? 억울하면 나 잡아 봐라~~~"
그렇게 소리친 프라이팬 연대는 우측으로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카이쿠바드는 제대로 열이 받아 버렸다.
"유인? 유인을 하려면 매복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부대로 매복 공격을 가한단 말이냐? 전황을 살펴보아라. 이미 1해자와 2해자 사이에 위치한 병력들은 대부분 튀어나와 후발대를 중심으로 한 우리 병력들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저들을 추격하지 않고 후발대를 지원한다면… 저들에게 꼬리를 물리게 된다. 그것이야 말로 놈들의 의도에 끌려가는 것이다.
적의 기동병력을 완전히 거세하고 나서 후발대를 지원해도 아직 승산을 충분하다. 모두 나를 따르라. 지금 우리를 기만한 저 간악한 도적들의 목을 치러 진격한다. 샐러맨더 군단 친위대 전원 돌격하라!!!"
"와아아아아!!!!"
그리고 그들은 먼저 튀어나가 아군과 충돌을 일으킨 1열의 병력만 수습이 되는 대로 후발대에 추가 지원을 명하고 그대로 프라이팬 연대를 추격하였다. 프라이팬 연대는 그들의 추격을 보고 적당한 속도로 도망쳤다. 그들의 진로에는 곳곳에 양익으로 선회하려다 패퇴한 적병들과 지형지물들이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다. 진로를 방해하던 적들은 그들에게 달려오는 프라이팬 연대를 보자, 조금전의 수치스러운 패퇴를 만회하려는 듯 소규모들이긴 했지만, 곳곳에서 집결하며 진로 방해, 혹은 요격을 준비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에라드는 조용히 살라딘에게 말했다.
"먼 동방에 손자라는 전략가는 적을 제압하는 부대의 움직임에 있어,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고, 적을 치고 빼앗을 때는 불이 번지듯이 맹렬하게 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고, 숨을 때는 검은 구름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듯이 하되, 일단 군사를 움직이면 벼락이 치듯이 신속하게 해야 한다… 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천년의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은 교훈이 되는 말입니다. 어렸을때 그 이야기를 듣고, 항상 체스의 기보에 그 여섯가지 움직임을 반영한 움직임으로 적과 싸웠는데… 오늘 실전에서 사용해보니 그 위력이 새삼 실감이 날 듯 하는군요. 하지만… 손자께서는 한가지 움직임을 놓치신신듯 합니다. 뭐, 그분이 사셨던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기동이니 어쩔수 없었겠지만요… 오늘 주제넘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생각한 부족하다고 여겨진 부분을 기동해볼까 합니다."
"명령을…"
"적을 유인할때는 사막의 유사와 같이… All squards be the sandstream."
"All squards be the sandstream! 반복한다. 프라이팬 연대, All squards be the sandstream! 에라드 총사령관이 관제한다."
그리고 잠시후 멀리서 프라이팬 연대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산개였다. 그러나 단순한 산개가 아니었다. 각각의 기병들이 4인 1조로 묶여서 그들은 백여개의 각각의 스쿼드로 분리되어 거리를 두고 마치 주먹에 쥐고 있던 모래가 땅바닥에 내팽겨쳐져서 확 퍼져나가고, 그것이 그대로 흐르는 듯한 기동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에라드는 바쁘게 명령을 내렸다.
"4인 1조 스쿼드로 민첩하게 움직인다. 세부 기동은 각 스쿼드의 단장의 명에 따라 움직여. 절대로 단독으로 싸우지 말고 각 스쿼드의 윙맨의 지원을 받아 공격하고 공격 성공시 즉시 이탈해. 각자 벌떼처럼 산개해서 정면에 요격하는 적들을 역으로 요격해버려!!!"
"산초, 측면으로 이동해. 속도를 더 낮춰도 아직 여유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우회해. 윙맨 따라 붙어. 말에서 내린 놈들을 시야안에서 공격해들어가지 마."
"세르반테스, 눈앞의 적이 아니라 요격 범위의 지휘 체계를 먼저 붕괴시켜. 의외로 경무장들이 지휘관인 경우가 많으니,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해."
"키호트, 지나치게 말을 점프시켰다 내리치는 공격을 가하지마. 오버킬이야. 공수전환시 텀이 생겨. 작은 공격으로 개인이 아닌 전체에 유리한 움직임을 모색해."
그들 명성을 떨치는 중대장들을 제외하고도, 에라드는 각각의 스쿼드들을 일일히 멀리서 통제 및 컨트롤하며 추격하는 적들을 둔 상태에서 여유롭게 정면에서 막아서는 패잔병들을 상대했다. 그러한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거대한 곰을 상대하는 말벌의 공세와도 닮아 있었다. 각각의 4인 1 스쿼드로 구성된 백여개의 부대를 개별 통제하면서도 에라드는 한 개의 스쿼드도 놓치지 않고 기민한 움직임을 지시하여 막아서는 적들을 말그대로 벌집으로 만들어놓고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추격의 속도는 여전했다. 경기병인 그들과 중장기병인 샐러맨더 군단의 기동력은 원래대로라면 샐러맨더가 낮아야 정상이지만, 막아서는 패잔병들의 어느 정도의 속도 저지의 기여와, 워낙에 분노한 카이쿠바드의 독려 덕분인지 전 병사들은 말을 한계까지 몰며 그들을 추격해서,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아론은 정면, 조지는 우익으로, 후세인은 좌익으로 진격하라. 3면에서 놈들을 포위하듯이 몰아 잡아 죽인다. 투르크족의 사냥법으로 놈들을 제거하라."
그의 부하들은 투르크인은 아니었지만 그의 명령대로 일사분란하게 3면에서 포위하듯이 양익에 속도를 더 높이고 중앙에서는 견제하듯이 프라이팬 연대를 몰며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서서히… 앞질러 나간 양익이 속도를 더 높이며 중앙으로 감싸들어가자, 프라이팬 연대는 당장이라도 거대한 손아귀에 잡힐 듯 보였다. 멀리서 에라드는 초조하게 다시 합류하여 움직이고 있는 그들의 기동을 보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들이 도달해야 하는 어느 지점을… 그리고, 곧 그 순간이 왔다. 제일 앞에서 병사들을 이끌며 필사적으로 정면이 아닌 바닥을 살피던 키호트가 뭔가를 발견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말을 에라드가 받았다. 그는 멀리 해자 너머의 중심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아들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화살 기동(Arrow Riding)을 개시하라."
샐러맨더 군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추격이나 돌격이 아닌, 쫓기는 상황에서 대체 왜? 그리고 곧이어 그들은 그것 역시 기만이라고 생각하고, 자밋 멈칫한 양익의 기세를 늦추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건 진짜였다.
조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틀림없이, 자신의 눈앞에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프라이팬 문장이었다. 그것은 몇초전만 해도 절대 자신의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후세인도 당황했다. 뭔가 슥 스치고 지나간 순간… 자신의 팔이 사라졌다. 피가 쏟구쳤지만 너무나 황당해서 통증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찰라의 순간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양익에서 돌아 포위하려던 샐러맨더 군단의 날개이 끝을 베어버리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곧 프라이팬 문장이 새겨진 방패에 얻어 맞고 땅바닥을 나뒹군 조지는 자신을 제대로 엿먹인 가문의 원수에게 욕을 내뱉으며 떨어진 돌이라도 집어던지려고 마침 손에 집히는 돌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돌을 집어들고 던지려는 찰라… 그는 잡은 돌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너무 하얬다. 이곳에서 절대 존재할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색이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피해 질주하는 기병들의 난장판에 재대로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는 그런 위화감이 느껴지는 돌들이 수십개, 수백개가 넘게 널려 있다는 사실을 깨닭았다.
그리고 그는 그 돌이 자연적으로 하얀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물감이 칠해져서 뭔가의 표식이 되기 위해 놓여졌다는 사실을 깨닭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 그의 시야에, 그를 중심으로 지금 막 황망해하면서도 프라이팬 연대를 기세좋게 쫓고 있는 샐러맨더 군단의 병사들이 대부분 그 하얀 돌이 널린 범위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닭았다. 그리고 프라이팬 연대가 화살 기동을 한 것은… 그곳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사실 까지 깨닭자 그는 소리쳤다.
"주군, 어서 피하십시오!!! 여기는 지금…"
그러나 그의 외침은 고함소리들에 묻혀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서, 에라드는 상황을 주시하고 읍조리듯이 조용히 말했다.
"카이쿠바드여… 그대에게 군중들은 무가치한 짐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소중한 병사들입니다. 결국 전쟁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요긴하게 사용하느냐에 달렸지요. 체스의 말중에 소중하지 않은 말은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폰 하나도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퀸을 잡을수 있는 것이 체스의 비정함이죠. 그리고 그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열흘안에 정해진 탄착군에 화살을 쏟아넣는 일은 열흘안에 거대한 해자를 세개 파는 것보다 만만치 않은 숙제더군요. 하지만, 다행히도 해자를 파던 남자들 대신 여자들과 아이들은 열흘 만에 그리 정확도가 높지는 않지만 단 한발, 단 한발의 화살 정도는 정해진 범위안에 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습니다.
퀸은 퀸으로 잡는 것이 아닙니다. 퀸을 잡는 건 의외로 폰이죠. 그래서, 당신을 잡는 것은 우리의 퀸인 프라이팬 연대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미약하기 그지 없는 폰들이 맡을 것입니다. 자, 받아보시죠. 우리 백성들이 한발 한발 쏘아 그 수가 십만발에 달하는 화살을… 이것이 바로 진정한 와일드 위즐(Wild weasel)입니다. Singing in the steel rain!!!"
그리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샐러맨더의 병사들은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에 당황했다. 그리고 곧이어… 강철의 비가 내려왔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에라드의 명으로 각 부대는 과감하게 사격을 해자 너머 총안에 견제용 일부를 제외하고 포기하였다. 그리고 그 활을 군중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그걸로 모자라, 각 군중들이 가지고 있던 활들을 모조리 징발하여 한곳에 모았다.
평화의 도시 출신이지만 대부분 망명객이기도 했던 그들은 집안에 칼이나 창, 활 한 개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화살은 활에 비해 많이 부족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어차피 한방이면 충분하니깐. 각 군중들에게 나눠진 석궁이나 화살들은 열흘동안의 연습을 통해 어느 정도 각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동하는 적이라면 절대 무리였지만 땅에 고정된 거대한 원에 내려 박는 건 열흘의 연습을 통해 익힌 걸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프라이팬 연대가 제대로 약을 올려 유인하고 범위 안에 들어온 적들을 화살기동으로 회피하여 멀리 거리를 벌리자… 그 강철의 비를 맞는 것은 오로지 샐러맨더 군단의 몫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여자와 아이들이 쏘는 화살이었지만,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수천명의 샐러맨더 친위대원들을 고슴도치처럼 되서 피를 흘리며 나자빠졌다. 카이쿠바드는 다행히도 화살비에 몸을 던져 막아준 병사들의 덕분에 죽음을 면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황망한 사태에 그는 뭐라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 강철의 비는 포위당한 후발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카이쿠바드의 친위대가 엄청난 공격에 무참하게 유린되는 것을 본 병사들은 하나둘 슬금슬금 도망을 치려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겨우 말에서 내리라고 해서 진형을 유지하던 주세페는 눈앞의 적을 두고 초조해져 버렸다. 그러나 초조한건 안젤모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눈앞에 노인은 지금까지 싸워본 그 어떤 적보다도 노련하게 자신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강철의 비가 내리자, 서둘러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마무리하려는 듯 그는 더 격하게 칼을 휘둘러 안젤모를 밀어붙였다.
"죽어라… 안젤모의 대자야. 네놈을 죽여야 네놈의 스승에게 죽은 나의 여섯 친척들과 내 얼굴의 흉터의 고통이 사라질 것 같다."
그의 말을 들은 안젤모는 조금 빈정대듯 말했다.
"응? 뭐야… 영감, 안젤모 영감한테 당한거였어? 아하… 이제야 알겠구만."
"무엇을 알겠다는 거냐?"
두 사람의 창대와 칼날이 맞부딪치며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노려보며 대화하였다.
"당신… 도리아 가문의 일곱용 중에 하나였구만."
"그래, 내가 바로 우리 도리아 가문의 영광을 책임지고 네놈들 베니스의 개새끼들을 물리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도리아의 일곱용 중에 하나였다. 네놈의 스승이 다른 여섯을 죽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분노를 불태우며 그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안젤모는 싱글거리며 말했다.
"근데 말이지… 안젤모 영감 손에서 살아남았다는 걸 보면… 영감은 수준 이하였나봐."
그의 충격적인 말에 주세페는 소리쳤다.
"뭣이? 네놈이 감히 나를 모욕할 셈이냐?"
"워워… 진정하라구. 근데 사실이라구. 안젤모 영감이 소시적에 제노비안 슬로터로 불리면서 사람잡던 시절에 말이지… 먼 훗날 베니스의 위협이 될 인재들은 미리 싹을 밟는 다는 속셈으로 도리아의 여섯 용을 사냥했다고 하더라구. 근데 영감은 안젤모 영감이랑 붙어먹고서도 살아남았다며? 생각해보라구. 당신 형제들 여섯을 죽인 안젤모 영감이 실력이 없어서 당신을 놔줬겠어? 그 영감이 당신을 상처만 내고 놔준건… 당신이 그 영감 판단에 훗날 베니스의 위협이 될 가치가 없는 찌질이로 여겨졌기 때문이야."
그의 말에… 주세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럴리 없어. 절대로 그럴수는 없어. 이 자식… 헛소리 하지 마라!!!"
그러나 그러게 외친 그는 엄청나게 흥분해버렸던 탓인지 저번처럼 민첩한 검술을 보여주지 못했다. 안젤모는 씨익 웃으며 창을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곧… 승부가 났다. 안젤모의 승리로…
"재밌었어, 영감… 성질 좀 죽였으면 영감이 이겼을지도 모르지…"
"크헉…"
주세페는 그의 말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안젤모는 그의 몸을 관통한 창을 뽑아내었다. 그에게 멜리장드가 다가와서 물었다.
"정말이에요? 안젤모 재무부 총리가 소시적에 제노바의 인재들을 죽이고 다녔다고요? 잠시 학비 버시려고 용병 생활하신 적이 있단 소리는 들었는데 그런 소리는 처음인데요? 그리고 베니스를 위협할 찌질이라서 놔줬다고요? 정말요?"
"내가 알게 뭐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을… 걍 당황하라고 아무 말이나 주어다 던진거지 뭐. 근데 내 생각에는… 그 영감 성격상 얼굴에 상처 냈는데 죽이지 못했다면… 그건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전남 밤에 오입질을 심하게 하셨던가, 아니면 만취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더 높을꺼야. 암…"
멜리장드는 그의 어처구니 없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주세페가 쓰러지지 포위된 후발대는 점차 붕괴되기 시작했다. 프라이팬 연대가 후방을 비워주자, 오히려 달아날 틈이 생겼다는 사실에 탈주하려는 병사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그리고, 그나마 굳건히 버티던 말에서 내려 창으로 진형을 구성한 자들은 눈을 뜨고도 믿을수 없는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전장의 한가운데,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진형에 핀포인트로 솓구친 거대한 불꽃의 기둥이었다.
"키리에!!! 일레이손!!!"
그리고 연이어 거대한 불꽃의 기둥이 진지위에 쏟구쳐 올랐다. 바랑기안 근위대는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며 섣불리 적진에 뛰어들려하지 않았다. 적진을 달리며 손을 흩뿌리고, 발로 밟는 곳마다 불꽃의 기둥을 만들고 있는 그녀는 바로 에스더였다. 그녀는 모처럼 대량으로 보급받은 그리스의 불을 미친듯이 휘두르며 적진을 유린해나갔다. 그리고, 한참을 달리던 그녀는 곧 마지막으로 적병들이 창으로 진형을 구사하고 있는 곳을 보았다.
그녀는 그대로 달려가 점프했다. 그리고 연이어 주인을 잃고 날뛰는 말의 콧잔등을 밟고 2단 도약을 하며 높이 날아올라 그대로 적진을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외침이 울려퍼졌다.
"익스터미나투스(Exterminatus)!!!!"
그리고, 엄청난 장관이 펼쳐졌다. 그녀의 양손에 조금 떨어진 곳에 두개의 거대한 불꽃이 생성되고 그것을 손을 모아 착지한 지점에 합치자,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엄청난 열풍과 불꽃의 파도가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에 퍼져나갔다. 그녀는 사정없이 그녀의 적, 비잔틴의 적, 그리고 그녀의 소중한 사람의 적을 태우며 소리쳤다.
"카이쿠바드, 이 개자식아… 나와라! 구워주마!!! 아버지와 우리 조국을 미리오케팔른에서 욕보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카이쿠바드는 황망하게 전장을 살펴볼수 밖에 없었다. 믿을수 없게도, 그의 샐러맨더 군단이 곳곳에서 참패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있었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절대로 꾸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악몽이었다. 그는 그 앞에서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도 그는 현실을 부정할만큼 멍청이는 아니었다. 그는 리더였고, 사령관이며 서방세계의 최강의 명장이다. 곧바로 그는 다음으로 행할 수를 생각하며 조지에게 말했다.
"도저히 믿을수 없구나… 나의 용사들이… 위대한 나의 군대가… 저런 남루한 난민들의 손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가는 것을 나는 보고 있는 것이냐?"
조지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카이쿠바드가 말했다.
"결국, 이 방법까지는 쓰지 않으려 했건만… 도리가 없을 듯 하구나. 나는 그들에게 자비롭게 서로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고 우리 용사들의 검에 삶을 마치는 행운을 주려 하였지만… 저자들이 정녕 그들이 처한 현실을 자각하지 않고 버틴다면, 하는수 없지."
"주군… 무슨 묘안이라도…"
"장기전으로 전환한다. 놈들이 지금 엄청난 행운으로 곳곳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고, 중앙의 부대를 포위하여 섬멸하려하고는 있지만… 아직 우리의 병력은 1만명 이상 남아 있고, 후방은 비어있다. 각 부대에 명령을 내려라. 철수를 준비한다. 놈들은 한때 승리의 달콤함을 맛보며 축배를 들겠지만… 놈들의 식량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을 것이다.
우리는 남은 병력들을 데리고 후퇴해서 전면전을 벌이는 대신 멀리서 그들을 파상 공세를 취해 저자들이 파놓은 해자 속에서 그대로 고립시켜서 말려죽여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병사들은 다시 얼마든지 보충할수 있다. 건방진 자들… 감히 나 카이쿠바드에게 이런 수치를 안기다니… 이제 놈들은 편하게 죽기를 바래서는 안될것이다."
"명안이십니다. 곧 병력들에게 집결을 명하고 후방으로 퇴각을 준비하겠습니다. 놈들의 숫자를 고려해보면 3일이면 식량은 동이 나고, 퇴각한 유격병력들이 견제를 가하면, 감히 해자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오론테스강이 말라버릴만큼 물만 마시다 아사할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 아직 나는 전쟁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핫산에게 명령해야겠군. 조금전에 퇴로를 확보하고 도망치려는 놈들은 제거하라고 명했는데… 이제는 제거하는 대신 대기시키라고 해야 겠다. 전령을 보내라. 핫산에게 명령 정정을 전하라. 이제 더 이상 피해를 늘려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카이쿠바드는 멀리서 후방으로 통하는 퇴로를 보았다. 그들의 부대에서 유일하게 기병이 아닌 마시아프 출신의 암살자 부대를 이끄는 핫산이 그곳을 지키고 도망치려는 아군들을 잔혹한 방식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몇몇 명령을 어기고 탈주하려는 패잔병들이 퇴로를 향해 접근하자… 그들은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을 맞고 땅바닥에 나뒹굴어지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카이쿠바드는 그 모습을 보고 핫산이 생각보다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흡족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 모습에 이어진 기이한 광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앞장선 몇몇 병사들이 화살에 맞자,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전장에 합류하려던 병사들의 등에도 화살이 날아가 박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려퍼지며 시체가 땅바닥에 널부러지기 시작했다. 카이쿠바드는 당황했다. 자신이 명한 것이긴 했지만 일을 저렇게 과하게 하다니…
그래서 서둘러 자신이 보낸 전령이 그에게 명을 전해 더 이상 아군의 살육을 멈추기를 기대하려던 찰라…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전령들도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을 나뒹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퍼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히든블레이드와 체술이 특기인 핫산이… 왜 난데없이 활을?
카이쿠바드의 의문을 풀어줄 핫산은 대답할 상황이 되지 않았다. 그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눈앞에 한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을 입을수 있다. 곧 망설이다 내지른 건에 닿는 것이 없는 느슨한 공간을 확인한 그는 희망을 품고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그것은 함정이었다.
"크아아악!!!"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휘감아오는 거미줄 같은 은사의 공격에 그는 당황하여 필사적으로 몸을 피하려 하였지만 그럴수록 아교와 유리를 붙인 가늘고도 질긴 실은 그의 몸에 파고들어 잔혹하게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온몸이 결박 비슷한 상태가 되자, 어둠속에서 그가 나타났다.
"어둠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 정작 자신들은 어둠속에 죽는 것에 무방비하다니, 기가 막히는군요. 하긴… 원래 당신들의 방식은 생명을 1회용으로 쓰는 것이었죠? 그러니 마약이며 술이며 여자를 안겨서 꼬신 인재를 그렇게 사지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미는 거겠죠. 특히나… 당신처럼 그런 행각이 과하다고 여겨져 교단 내에서도 추방된 이단자라면 더할것이고요."
리엔은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로 입가에 실을 물고 각 열손가락에 연결된 실로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조정하듯이 공중에 데롱데롱 매달린 핫산을 더 단단히 포박하였다. 핫산은 이제 입까지 실로 감겨 열수 없는 상태에서 조금전의 일을 회상했다.
몇몇 얼빠진 도주병들을 처치하자, 그들은 울며겨자 먹기로 포위된 본진이나, 프라이팬 연대를 뒤쫓는 카이쿠바드의 병력에 합류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그것은… 그들의 배후에 있는 좁은 암벽사이에 난 퇴로와, 그 암벽위에서 떨어진 작은 자갈과 모래였다. 그는 왠지 모르게 기이한 기분을 느끼고, 그들의 부하들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명한 다음 암벽을 타고 올라갔다.
올라간 암벽에는 중간중간 틈 같은 곳이 미로처럼 존재했다. 그리고 그 공간들이 연결된 곳에서 보니… 놀랍게도 정면에 펼쳐진 오론테스강과 그들의 전장이 손안에 들어올 듯 좋은 전망이었다. 잠시동안 그 공간들을 정찰하던 찰라… 그는 웅성거림 같은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그는 곧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상당한 정예병력이 막 도착한듯 숨을 헐떡이며 장비들을 정비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궁병이었다. 그들이 태세를 정비하는 순간… 전투는 엄청난 결과가 발생할것이 분명했다. 그는 서둘러 아직 태세를 마치지 못한 그들을 기습해, 소요 사태를 벌이려고 그의 장비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것을 제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거기까지다. 너는 내가 상대한다."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황급히 몸을 날려 자리를 이탈하며, 그는 자신이 눈치조차 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자신의 뒤를 잡은 존재에 대해서 경악했다. 그러나 그 사람, 리엔은 그런 그를 여유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레베카 팀장님이 한번 결착을 내려다 못하셨다고 들었다. 내가 대신 네놈을 상대해주마. 병력들은 내러벼둬라. 똑같이 그림자에 숨어서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는 삶을 사는 자들끼리… 신나게 서로 죽여보자. 리엔 느베리가 네놈을 상대하겠다."
그리고 몇분후… 그는 미로처럼 연결된 통로에서 완전히 전투력을 상실하고 그에게 포박되어 버렸다. 이동할때마다 겹겹히 쳐놓은 거미줄 같은 은사의 움직임에 리엔은 멀리서도 그의 움직임을 한눈에 알수 있었고, 차분하게 그를 몰아붙여 은사로 엮어 행동을 봉쇄하고, 결국 손아귀에 잡아버렸다. 리엔은 자기 손에 들어온, 한때 암살자들의 우상이었던 자를 보며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발걸음을 돌려 이제 태세를 마쳐가는 부대에 돌아갔다.
"준비는 다되셨습니까?"
그들중에 유달리 덩치가 큰 사나이가 말했다.
"완벽하다. 이미 배치도 마쳐가고 있다. 곧바로 원호사격을 준비하겠다."
"감사합니다. 리틀 죤 중대장님. 마리안 중대장님은 어디 계신가요?"
"대장이랑 같이 암벽 정상으로…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하게 되겠군.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맡겨라."
리엔은 그에게 군례를 표하고 한걸음 물러났다. 그러면서 그간의 일을 잠시 회상했다. 죤이 떠나던 날 밤에 있었던 회의에서 그가 내놓은 카드는… 다른 사람들을 상당히 당황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리마솔 기지에 주둔한 군을 불러오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라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리마솔의 군대를 불러오시겠다고요? 그게 가능한겁니까? 거리 상으로는 인접해있기는 하지만, 보시다시피 제국은 우리 데네브의 일에 관연하지 않으려고 할텐데… 하물며 군법이 업격하기로 소문난 제국군이 기존의 기조를 어기고 우리를 도와줄 이유는 없으리라 생각되는데요."
"나는… 군대를 데려오겠다고 했지, 제국군을 데려오겠다고 한 적 없는데."
"리마솔에 제국군이 아닌 군대가 있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요? 제국군 군사기지인 그곳에 제국군이 아닌 군대가 존재할리가…"
"엄밀히 말하면… 제국군이 아닌 부대, 하지만 제국에는 속한 부대가 있다. 제국이 성립되고 나서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각 봉건군주들의 사병을 돌려받아 제국군으로 재편하는 사업이었지. 아직까지도 정예병력들은 대부분 상비군으로 재편되었지만 일부 보조군들은 이제는 이름뿐이긴 하지만 봉건 영주들의 휘하인 경우가 있지. 그런 부대라면… 소집령이 없는 상황에서 임의로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리마솔은 제국군 기지이지만 동시에 상비군 재편을 위한 장소이기도 하니, 현재 재편 대기중인 봉건 영주들의 군대도 다소 존재하긴 하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어지간한 전투능력을 가진 부대들은 가장 우선적으로 제국군으로 재편되었지 않습니까? 지금 남은 병력들은 대부분 지역 예비군 수준의 병력이라 큰 도움이 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딱 하나… 아직 봉건귀족의 군대이면서, 정규군에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제국군에 재편되지 않았던 부대가 하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연치곤 공교롭게도… 그 부대가 지금 리마솔에 내년도에 있을 정규군 재편 작업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상태이고, 그 부대를 오랫동안 이끈 사령관 또한 리마솔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사령관은… 현재 제국의 기조에 대해 대단히 화가 나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를 설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리엔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정상을 향한 곳이었다. 그리고 주변이 확트인 정상이 나타나자, 그 사령관이 의기양양하게 저너머를 향해 소리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얘들아!!! 내가 돌아왔어. 지금까지 엄청나게 고생했다. 뒤는 내가 맡을께! 제군들,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적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 리마솔에서 몰래 탈영 및 탈옥해서 오느라 시간을 너무 지체했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먹어치울 적들은 충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모두 화살을 시위에 장전하고 별다른 명령 없이도, 알아서 퇴각하는 적들을 사살하라. 단 한명의 적도 이곳을 빠져나가게 해서는 우리 부대의 이름이 울꺼다.
발사하라! 셔우드 레인저(Sherwood Ranger)들이여!!! 오늘 외삼촌을 대신해서 오랫동안 너희들을 이끌었던 내가 다시 함께하겠다. 나 로빈 더 후드 몽고메리(Robin the hood Montgomery)가 너희들과 함께 싸운다. 다시 한번, 4차 앙주공방전에서 활약하고 이베리아 종교 전쟁에서 로타링기어를 접수한 우리들의 명성을 떨쳐보자! 전원 발사!"
리엔은 자신의 손에 체포되어 압송되었으나 별다른 원망도 하지 않고 자신의 요청에 동의하고 그대로 달려와준 몽고메리 대사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그가 군인이었던 시절 그의 외삼촌인 죤 몽고메리와 함께 제국의 성립 초기부터 앙주파의 주력 병력으로 활약하여 제국이 설립된 이후에도 라인 전선 군단의 핵심으로 활약해준 그들, 셔우드 레인저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전장을 살펴보았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딱 좋은 타이밍이다. 이제, 전세는 기울어졌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부친이 앙주에서 추방되었을 때 런던으로 가 모든 앙주파 제후들의 병력을 몰고 와 반격을 가하고, 그것을 유유자적하게 체스를 두며 감상하였더는 이야기를 회고하며 자신에게 그런 취미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아쉬워했다.
카이쿠바드는 이제 완전히 경악에 빠져버렸다. 어느 순간 자신들의 후방에 나타난 암벽지대에 매복한 궁병부대들은 경악할만한 궁술로 도주하려는 적들을 남김없이 저격해 땅바닥에 나뒹굴게 해버리고 있었다. 단 한방의 헛발도 찾기 힘든 그들의 사격에 카이쿠바드의 병사들은 패닉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카이쿠바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오늘… 알라께서 나를 버리시는구나."
그리고 그 순간, 조지 노르망디가 소리쳤다.
"피… 피하십시오, 주군… 크아아악!!!"
어느순간 후방에서 다시 돌아와 얼마 남지 않은 카이쿠바드의 호위병들을 날려보낸 기마대가 있었다. 그리고 나타난 자는 카이쿠바드의 눈에도 낯이 익은 자였다.
"에라드… 위체…"
그러나 에라드는 별다른 말이 없이 땅에서 나뒹굴고 있는 카이쿠바드의 호위병과 카이쿠바드 본인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카이쿠바드가 이를 갈다 잠시후 뭔가를 체념한듯 말했다.
"네놈이었구나. 그래 네놈이었어… 누군가 했더니 결국 네놈의 작전이었어. 결국 네놈이 이렇게 미리오케팔른의 복수를 하는구나. 그래, 어떠냐? 기쁘더냐? 나 카이쿠바드에게 미리오케팔른에서 당한 수치를 씻고 복수를 성공한것에 대해 행복하겠구나. 이제부터 패전의 수치와 나에 대한 열등감으로 잠못이루는 밤은 끝이겠구나.
축하한다, 적이여. 한때 내 앞에 꼴사납게 도망치던 적이여. 오늘 네가 나를 죽이고 복수를 완성하겠구나. 그래, 가져가라. 네놈이라면 나 카이쿠바드의 목을 가져가는 것을 인정할만하다. 죽여라. 네놈의 손으로 나를 죽이고 최강의 반열에 올라가라. 다른 자는 인정하지 않겠다. 이 세상에 오로지 네놈만이 내 목을 가져갈 것을 허락하노라."
그러나, 카이쿠바드의 격양된 말에 다소 갸우뚱하며 말을 받았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나는 미리오케팔른에 대해 별다른 사감이 없다. 지휘관으로서 패전한 것에 책임을 통감할뿐… 이긴 전쟁에서 개인의 승패 연연하는 것은 군인의 덕목이 아니다. 그리고 열등감이라…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거 모른다. 군인은 시킨 명령에 복종하면 그만이지,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열등감이라면… 이미 체념한지 오래다. 네놈은 모를꺼다. 죽어도 4살짜리 아들에게 기보로는 이길수 없다는 사실을 깨닭은 부모의 심정이 어떤지를… 그리고 그 아들이 그 재능을 펼칠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때의 절망감이 더 커서 그건 나에게 있어 그건 그냥 대수롭지 않은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난 너를 죽이지 않는다. 총사령관의 명령은 지금 즉시 중앙에 포위된 적들의 도주하는 병사를 사냥하라는 것이었다. 그냥 네가 가는 길에 있었으니 쳐내고 가는 것이다. 너는 내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나 본데… 솔직히 말해 나는 네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최고의 명장? 그거 하고 싶으면 너 해라. 난 아무래도 좋으니깐.
아마도 너를 위한 죽음은… 나보다는 너를 더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진듯 하다. 그때까지 행운을 빈다."
그렇게 말한 에라드는 무관심하게 눈앞에 무방비로 나뒹굴어진 카이쿠바드를 지나쳐 자신의 임무가 있는 전장으로 달려가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카이쿠바드는 멍하니 바라보며 망연자실 해버렸다.
"이게 뭐야… 이건 말도 안돼. 지금… 네놈이 나를 무시해? 나 카이쿠바드 아르슬란을 무시해? 그 누구도 그럴수는 없어. 그 어떤 자도 나 카이쿠바드 아르슬란을 함부로 무시할순 없다고! 돌아와! 이 자식아!!! 내가 여기있다고!!! 서방 세계 최강의 명장이자, 네놈들의 숙적인 내가 여기 있다고! 어서 돌아와서 나를 죽여라! 이런 모욕은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퍼질 뿐이었다. 결국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카이쿠바드는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완전히 무시당한 자신의 처지에 이를 갈며 분노했다. 그리고 소리쳤다.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 용서할수없다. 알라여 저 오만한 자들을 저주하소서!!!"
그는 딱히 누구를 향해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에 대한 반응이 나왔다.
"카이쿠바드 아르슬란?"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존재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걸어오는 길을 불꽃의 길로 장식하여 그 자취를 한눈에 들어오게 하는 그녀… 에스더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카이쿠바드는 앞으로 닥쳐올 일에 할말을 잃고 조금전의 자존심과 분노를 잠시 잊고 망연자실해져 버렸다
처음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바로 얼마전까지 즐겁게 부르던 노래가 기억나지 않는 것에 나도 참 많이 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회상이 떠올랐다. 언젠가 예루살렘을 떠나던 날… 나는 성벽 위에서 라와드 이맘와 같이 이렇게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때는 아무런 부끄럼도 없었다. 그저 마음에 즐거움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여정을 겪으며 알게된 많은 것들이… 그저 단순하게 즐거움만으로 살아갈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어쩌면… 이 여정은 나에게 있어 지금까지 보호받는 어린 아이에서 이제부터는 혼자 결정하고 살아가야 할 어른이 되기 위한 경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야 했다.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마음속이 조금씩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더 생각하지 말자.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전황을 봐도 어차피 나는 이해할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그저… 내 마음을 담아, 모든이에게 들리도록…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정에 함께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것만이 유일한 일이다.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나의 노래를 시작하였다.
[ 평소와 다름없었던 어느날 너는 갑자기 일어나서는 우리들에게 말했지 ]
"공세를 늦추지 마라! 신참들, 영감님들한테 밀릴꺼냐? 바랑기안의 긍지를 보여라. 나와 같이 가자 형제들아!."
"헐... 애들이 재롱떨러 오네... 같이 놀아줄까? 백십... 아놔, 대체 몇번째 까먹는겨?"
정면으로 들이치는 헥터 바넬 경은 이제 지휘를 그만두고 직접 도끼를 들고 참전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바랑기안의 고참들은 흐믓하게 웃으며 같이 도끼를 휘둘렀다.
[ 「오늘밤 다같이 별을 보러 가자」가끔은 괜찮은 말도 하네 ]
"후방을 포위하라. 무리하게 압박하지 말고 거점을 확보해. 도주하는 놈은 셔우드 산적놈들이 처리할꺼야. 임무에만 집중해."
"으아… 하여간, 대장이랑 도련님이 엮이니 기동이 반 미쳐 돌아가는구나… 와일드위즐에 화살기동을 엮은데다가, 연이어 포위망을 풀어줬다 다시 돌아와서 포위? 이런 제 정신 아닌 작전이 어딨어? 야! 세르반테스, 잘 기록해둬. 나중에 본국가서 우리가 하는 말이 뻥이라고 하지 않도록… 저번처럼 문학적 상상력을 집어넣으면 너 내 손에 죽는다! "
에라드경은 직접 중앙에 포위되었다 후위가 풀린 적의 후방을 다시 막으며 병사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망각하지 말것을 독려했다. 키호트경은 어처구니 없는 프라이팬 연대의 기동 지시에 당혹해하면서도 열심히 그 요구에 맞춰 부대를 기동하며 불평을 쏟아내었다.
[ 그러며 모두 다같이 웃으며 따라나섰어. 빛 하나도 없는 밤길을 ]
"쏴라! 쏴라! 장님도 명사수로군. 이거 이거 샐러맨더 군단 듣던거랑 달리 너무 허접한거 아냐?"
"괜히 한번 맞힌 적에게 꽂힌 화살을 한방 더 쏴서 둘로 가르는 위협 사격하지 말아요. 화살 아까워요."
로빈 몽고메리는 희희낙낙하며 그 통통한 몸에서 어울리지 않을 만큼 속사를 해대었고, 곁에 있던 그의 약혼녀 마리안 중대장이 적당히 하라고 말렸다.
[ 바보같이 다들 즐겁게 걸었지 가슴속 끌어안고있는 고독과 불안에 ]
"좋아! 이제 더 이상 난전은 없다. 우리도 가세한다. 명령이 떨어졌다. 예루살렘 수비대, 전원 공격에 가세하라."
"예루살렘 수비대 전진!"
끝까지 참전을 참고 기다리다 예비대의 투입이 결정되자 마자 아딜과 마수드는 칼을 뽑아들고 전진했다. 오랜 시간 가장 열심이 난민들을 지키며 존경받아온 용사들이 마지막 영광을 위해 뛰어들었다.
[ 다같이 눌리지 않도록 어두운 세상에서 올려다보는 저 넓은 ]
"몰아붙여! 놈들이 단 한놈도 포위에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압박해!!! …근데 바압? 누가 나 밥줄꺼야?"
"얌마! 마지막 순간에 치매로 돌아오지 마! 뭐야? 왜 다들 나 쳐다봐? 저 영감태기 얼른 제 정신으로 돌려놔. 난 부관밖에 안해봤다고!"
카심과 유수프는 양쪽에서 포위를 좁혀들어갔다. 일부 굴람들은 양익이 서로 얼굴을 마주볼수 있을 만큼 근접해서 반가워하며 압박을 지속했다.
[ 밤하늘은 마치 별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모습에 깨닭았어 ]
"모두 따라 부르렴. 왕자님께서 부르시는 노래를… 이제는 하도 많이 들어서 기억하지? 힘껏 부르렴.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아빠와 형, 오빠들을 위해서!!!"
크리스틴은 데려온 아이들에게 노래를 독려하였다. 곧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아이들의 입에서 하나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 언제부터였을까 별을 보는 너를 뒤쫒고 있는 내가 있었어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스승님, 보이십니까? 지금 여기 각자 다른 종교의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당신이 바라셨던 천상의 왕국, 새 예루살렘입니다."
라와드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스승과 이 화합을 이끌어준 알라에게 기도를 올렸다.
[ 제발 부탁할게 놀라지 말고 들어줘 나의 이 마음을 ]
"헥터 바넬경, 에스더에게 일부 중대 붙여줘요. 혼자, 카이쿠바드를 잡겠다고 튀어갔어요."
아그네는 양손에 든 다마스커스를 휘두르며 바랑기안 못지 않은 무용을 뽐내면서도 먼저 달려간 에스더를 걱정하며 소리쳤다.
[ 「저게 데네브, 알타이르, 베가.」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여름의 대삼각 ]
"제가 따라붙도록 하죠. 아직 살아남은 체스의 요원들은 전원 나를 따라와. 카이쿠바드의 시신을 접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리엔은 중앙까지 달려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방향을 틀며 달려갔다.
[ 기억하며 하늘을 봐. 겨우 찾아낸 베가 하지만 어디에 있는거지? 알타이르 ]
"에고… 귀찮아라… 갑옷들이 두꺼워서 창날만 상하고… 잠시 쉬어야 겠다."
안젤모는 그의 신기에 가까운 창솜씨로 주세페 도리아를 잃고 사기가 꺽인 적병은 살육하다가, 곧 지겨운듯 때려치고, 강변으로 달려가 자리를 깔고, 느긋하게 일광욕이라도 하듯이 들이누워 버렸다.
[ 이래서야 혼자잖아 즐거워 보이는 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
"제대로 진지하게 못하겠어요? 프리메이슨 연대, 2차 방류는 저 인간이 썬텐하는 곳까지 잠기도록 하중보까지 붕괴를 시켜 버러요!!!"
아이샤는 전장에서 이리뛰고 저리뛰며 프리메이슨 연대에 지시하는 바쁜 와중에도 안젤모에게 신경질을 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곧 2차로 방류된 물은 샐러맨더 군단의 지하에 있는 버려진 카나트에 투입되어 그들이 밟고 있던 지상이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 사실은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찾아내봐도 마음이 닿지는 않겠지 ]
"너의 죗값을 여기서 마감하노라. 아비시니아의 사자들이여! 케두스 자그웨가 반역자 아디스 솔로몬의 목을 쳤도다!
케두스의 함성에 수많은 흑인 청년들은 가슴속에 분노가 씻겨지는 듯 환성을 지르며, 아디스의 목을 들고 있는 케두스에게 환호했다.
멜리장드는 구호기사단들 사이에서 은빛 갑옷을 입고 성녀처럼 깃발을 들고 소리쳤고, 그들의 전면에 적을 거의 제압한 구호기사단은 그녀의 선동에 연호하였다.
[ 하지만 가슴을 찌르는 아픔은 커져만 가 아아 그렇구나 좋아하게 되는건 ]
"부대 정위치로, 예루살렘 예비대는 우회하라. 포로들을 놓쳐서는 안돼. 좋아, 다들 잘되어가고 있어. 맙소사… 이렇게 미치도록 일이 잘풀려나가다니, 날뛰지 말고 침착해져라. 빌어먹을 더워 죽겠네. 옷이 거추장 스러워."
살라딘은 연이은 승리의 기운에 환호하고 열광하며, 열기가 올라 미치겠는 듯, 갑옷을 벗어던지고 속옷차림으로 쉬미터를 뽑아들고 마치 하렘의 무희가 춤을 추듯 지휘를 해나갔다.
[ 이런 거구나 어떡할거야? 너의 소리가 들려 너의 옆에 있는게 좋아 ]
"키리에!!! 일레이손!!! 이 개자식아! 너는 그 무엇도 나에게서 빼앗아 갈수 없다. 나의 조국과 동포도, 가족들도, 그리고 나의 사… 아 썅, 몰라, 그냥 닥치고 죽어!!!
에스더는 누군가를 말하려다 말을 먹으며 므깃도 인페르노의 열기 때문인지 얼굴이 새빨개져서 혼비백산해 도망치려는 카이쿠바드와 그를 막아셔려는 조지와 일부 호위병들을 한꺼번에 불기둥에 휩쌓이게 만들어버렸다.
[ 현실은 잔혹하기에 말할 수 없었어. 두 번 다시는 돌아갈수 없는그 여름 날 ]
남겨진 백성들은 모두 다같이 기도했다. 최후의 전투의 순간에 다들 저마다의 염원을 담아... 그리고 희망을 담아... 싸우고 있는 가족들의 무사귀환과,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삶에 대한 불안과, 지금까지 온 시간을 무사히 도달하게 해준 신의 축복에 기도했다. 그리고 노래하였다. 내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자신의 염원을 담아서 간절히 노래불러 그 소리가 울려퍼졌다.
[ 반짝거리던 별 지금도 떠올려. 웃는 얼굴도 화내던 얼굴도 정말 좋아했어 ]
수많은 이름모를 병사들도 격렬한 전투를 하며 들을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지켜온 가족과 동포들과 자신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데도 고생을 같이 해준 자신들의 지도자들을 위해 전쟁터를 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반드시 살아서 새로운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겠다고...
[ 이상하지?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너는 모르는 나만의 비밀 ]
"아들아… 축하한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이제 다시 만날때는 네가 세상의…"
어머니의 말은 의외로 아이들의 말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다시 물어보려 하였지만 노래를 부르는 중이라 불가능했다. 어머니는 그저 변함없는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어주셨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며 나는 피날레를 준비하였다. 저 너머에서 에라드가 오론테스 전투의 마지막 명령을 준비하고 있었다.
[ 밤을 넘어서 먼 추억 속의 네가 가리켜 다정한 목소리로 같이 가자고 ]
"이제... 슬슬 이 복기할 가치도 없는 시시한 대국을 끝마쳐야 겠다. 나의 주인이시여... 절름발이 에라드가 당신을 위해 아나톨리아의 마룡을 바치겠나이다. 죤, 나의 왕이여..."
그리고 에라드는 차분히 전쟁터를 바라보다, 샐러맨더 군단의 군기인 검은 화룡의 깃발이 쓰러지고 그곳에 데네브의 깃발을 세우려는 예루살렘 수비대를 보며 차분하게 선언하였다.
첫댓글 이번에는 1등이다!
잘 보고 가요
체크메이트!
오스만 가지? 호랑이 새끼가 하나 끼어있네요 ㅋㅋㅋ(차용이겠지만)
@크킹삼치 아그네 : ...이상한 기분이 든다
밀리타리 택틱이 대체 얼마야 ㅋㅋㅋㅋ
으악 오랜만에 왔더니 8화나 올라와왔네요. 몰입해서 봤습니다 ㅋㅋㅋㅋ 정말 끝나가는게 아쉽네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