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055호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마태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이니다.”라고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장면에 이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예고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를 만류하다가 예수께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는 책망을 듣게 되는 사건이 있다.
아무리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후에도 얼마든지 예수를 넘어뜨리는 일을 하게 되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하게 되는 실례를 보게 된다. 아무리 모태신앙이며 미션 스쿨을 나오고, 정통 교단의 교회를 다니며 교회에서 신망 있는 신앙생활을 했더라도 이런 일들은 다반사로 일어나게 되어있다.
우수한 신학교를 졸업을 하고 석사, 박사학위를 가져 훌륭한 목회를 하고 있더라도 예수를 넘어뜨리는 일은 식은 죽 먹기와 같다.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도 그 모양인데 하물며 이 글을 쓰는 본인을 비롯하여 읽는 독자 가운데 누구든지 베드로처럼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직시하고 이 글을 대했으면 한다.
마태복음 16:24의 말씀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강력한 말씀을 하셨다. 여기서 ‘아무든지’는 그 어느 누구를 지칭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면 그 어느 누구든지”라는 조건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자적인 해석의 판단으로 그 어떤 조건과 아무런 상관없이 전 세계 사람 중아무든지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나 목이나 귀에 십자가를 달고 다니면 다 크리스천으로 알게 되고 나무 십자가를 지고 다녀도 괜찮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천만에 만만에 콩딱이다. 그렇게 가치 없는 십자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혼자인 나 자신의 존재성을 부인하는 것인데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연합된 존재로 살아가야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정과 욕심으로 이루어진 옛 사람인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 없어진 나를 인정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져 없어짐에 따라 옛 사람인 나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에 반면 죽은 내가 옛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새 사람인 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옛 사람을 부인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와 함께 삼일 동안 장사지내어 예수와 함께 부활한 나에게 부활의 옷을 입혀 새 사람이 된 나를 인정하고 옛 사람이었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존재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처럼 나무십자가를 지고 전국을 돌며 행진을 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굳이 나무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힘들어하여 십자가 밑에다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바퀴를 다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렇게 힘들게 십자가를 져야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를 진 것을 우리가 굳이 질 필요가 없는데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면 나무 십자가를 질 이유가 없어졌다. 따라서 연극이나 퍼포먼스가 아닌 이상 나무십자가를 지는 행위는 그만 두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성경구절도 나무 십자가를 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로마서 8:5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사도 바울을 언급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요한 6:29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피력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상기시켜 본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일인가?
인간이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실 때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신 것을 지금까지 하고 계신다. 그 옷을 입혀 주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것이며 그 민족들을 통해 구속의 역사를 남기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 옷을 입기를 완강히 거부함에 따라 이 땅에 예수께서 직접 오시어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내신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즉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하여 어린 양으로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을 받았으며 우리의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죽어 삼일동안 장사지내었다가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골 3:10, 엡 4:23~24)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본질인데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으니 너무나 한심하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가르치고 있으니 하나님을 멍텅구리로 만들고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린 일을 자초하고 있다.
로마 13:12~14의 말씀처럼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골 3:2의 말씀과 같이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하며 요 6:27의 말씀처럼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옛 사람이 유혹하는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지 못하고 꾸역꾸역 껴입고 있는 꼬락서니를 거울인 율법을 통해 똑바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롭게 된 우리는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다.(엡 4:23~24)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구원을 받은 우리들에게 또 어떠한 행동을 부탁하는 것도 아니며 결단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과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삼일동안 장사지내었다가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지금 현재 하늘에 앉혀주신 자비를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너무나 지기 쉬운 것이며 이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어 그들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를 지게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귀나 목에 액세서리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한 몸이 되어 연합되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사순절의 막바지가 되어 가는 마당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고난만을 기억하기 보다는 십자가를 지기 쉽도록 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하심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사순절과 부활절이 되었으면 한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기뻐하고 자원하며 신속하게 십자가를 졌으면 한다.
너에게 억지로(스스로 기뻐하고 자원하여 신속하게) 오리를 가자(길 하나를 달라고) 하면 그 사람과 십리(길 두 개를 반복해서 길을 가르쳐)를 동행하라(함께 십자가를 지도록 하라는 의미)(마 5:38)는 말씀이 구레네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지는 사건과 연결된 말씀이라면 억지로 십자가를 지겠는가? 아니면 자원해서 신속하게 십자가를 지겠는가?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창골산 봉서방 성경공부가 시작했습니다.
따바르 바이트(말씀의 집)에서 실시하는 창골산 봉서방 성경공부가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도 마음에는 언제나 공허와 혼돈 속에 있는 것은 좌충우돌로 퍼져 있는 말씀을 마치 퍼즐 게임하듯 조각조각을 모아서 봐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흐트러져 있는 말씀을 정리정돈하며 봐야 하는 것이 말씀 “따바르”라고 히브리어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세상(코스모스)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질서가 잡혀 있는 존재로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에 나오는 개념과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면 말씀의 혼돈을 야기 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칼 럼 필 자 |
이종남목사 |
570220ljn@naver.com |
흐 르 는 곡 |
주님의 십자가를 아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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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보내주실곳 |
창골산 봉서방카페 |
b0356 @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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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말씀이 손기철 장로(HTM)의 말슴과 너무나 유사하여 착각에 빠질 지경 입니다 하나님의뜻에 대한 기본 적인생각이 일치하여 기쁘며 좋은글 앞으로도 열심히 읽어 기름부음을 받는자가 되도록 믿음과 은혜을 구합니다
주님의 자비를 상기케하심을 감사합니다.
좋은글 로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나를 죽이고 비울때 주님이 내안에 가득하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이 전재하에 십자가를 질수있어요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기뻐하고 자원하며 신속하게 십자가를 졌으면 한다.> - Me, too! A~~~Men!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찬양이 있듯이 ..생활에서 늘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하는 마음이 항상 감사와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알기전에는 나를 희생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이웃들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실천을 다 못해 늘 아쉽지만요...믿지 않는 남편과의 갈등이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셔서 이젠 많이 좋아지고, 어려움에 처했을때 십자가의 못박히심이 새 힘을 주시기도 하구요...좋은 말씀들 늘 감사하구요..이웃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봉서방 카페........하나님의 은총이 차고 넘치어 나누는, 모습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