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신발
강은교 시인, 동아대 명예교수
사람은 일생 동안 몇 켤레의 신발을 신을까.
돌아가신 최민식 사진작가의 사진집 ‘인간-제5집’에는 재미있는 사진이 나온다. 어떤 신발 가게의 사진이다. 운동화와 부츠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고무신이며 슬리퍼, 털 넣은 겨울철 덧신, 장화, 욕실화, 남자 구두, 여자 구두, 여자 샌들 등 온갖 신발이 쌓여 있는 사진이다. 신발 하나하나가 영롱한, 이슬방울이 매달린 열매들처럼 또렷이 드러난 사진…. 그런데 그의 이 사진은 운동화 끈으로 묶어 매단 운동화들과 쌓여 있는 신발 더미 사이에 있는 공간을 검은 배경으로 처리한 때문인지, 아니면 신발들이 그 때문에 또렷하게 보여서, 신발들의 울음이 이슬방울처럼 매달려 있어서 그런지 무척 슬프다.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도 신발 하니 새삼 떠오른다. 신흥 소도시에서 셋방살이하는 권 씨의 행방불명을 다룬 작품이다. 구두를 늘 반짝반짝하게 닦는 버릇을 지닌 권 씨는 집을 장만하려고 철거민 입주권을 구해 그 소도시의 철거민 대단지에 땅을 분양받았으나 집을 짓기는커녕 ‘광주 대단지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감옥살이를 한다. 그 와중에 아내가 병이 나고, 수술비를 구하려 애쓰다가 못 구한 채 분노에 빠진 그는 칼을 들고 화자인 ‘나’에게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린다. 반짝반짝하게 닦은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기고.
하긴 윤흥길 소설의 주인공 권 씨의 구두를 생각하다 보니 독재자라든가 그런 굉장한 부(富)를 소유했던 사람들의 마지막은 늘 구두 이야기로 장식되곤 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필리핀의 독재자 부인이며, 자신도 독재자의 권력을 내둘렀던 이멜다 역시 도망친 다음에 그가 살던 집을 수색한 결과 나타난 것이 명품 구두 수백 켤레였고, 엊그제 우리나라의 큰 사건의 중심에 있는 한 여자에 대한 화제도 그가 살던, 한 값비싼 동네의 값비싼 빌딩을 수색하자 수백 켤레의 명품 신발과 가방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었다.
옛 이집트에서는 왕이 신는 샌들은 가죽, 목피, 금과 구슬로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한다. 장식에는 걸을 때마다 적들이 짓이겨 뭉개지라는 의미에서 적의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들 신발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의 소재라든가 장식은 계층에 따라 그 신분의 고귀함과 재산의 많고 적음을 규정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아마도 신발은 그 주인의 존재 증명과도 같았다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광주 대단지 사건’을 암시하는 윤흥길의 소설 속 주인공 권 씨가 사라진 뒤 아홉 켤레의 구두만이 툇마루 밑에 남았다는 사실은, 그의 존재의 두꺼움은 열 켤레도 못 되는 아홉 켤레의 반짝이는, 그의 구두에 전부 담겼다는 슬픈 사실이리라. 아침마다 잔뜩 등을 구부리고 아마도 ‘지상의 방 한 칸’(박영한의 소설 제목)의 꿈을 반짝반짝 닦던 그!
우리의 고분군에서도 왕의 발을 보호하는 온갖 무늬가 수놓인 청동 신발은 고귀함의 상징으로 나타나 그 인물의 존재, 특히 그 위상을 밝혀준다. 죽어서도 그 무덤의 주인은 그 청동 신발에 의해서, 고명한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당당히 이름을 달게 된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홍원이란 이름의, 어머니의 고향인, 지금은 이북인 ‘고향 탈출기’에서는 늘 모개신이란 것이 등장하곤 했다. 모개신이 무엇인가 했더니 짚신의 이북 말이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홍원이란 바닷가 마을에서 백일 된 나를 업고 당시 경성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느라 가족을 돌보지 않고 떠나버리신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가 시퍼런 물결 출렁이는 임진강을 맞닥뜨리자 나를 앞가슴에 돌려 안고, 울까 봐 나의 입을 꼭 막은 채, 한밤중에 지게에 앉아 건너셨던 것이다.
그때 고향에서 신고 나온 신발이 모개신이었다. 어머니는 동두천으로 건너오자 모개신을 벗어 가슴에 품고 맨발로 걸어 경성으로 들어오셨다고 했다. 그 이유는 모개신 닳는 것이 아까웠다는 것이다. 그때 동대문쯤에서 나를 업고 맨발로 가는 어머니를 부른 사람이 어떤 신발 가게 주인이었다고 하셨다. “글쎄,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뒤돌아보니 어떤 신발 가게주인이 ‘고무신’을 들고 흔들며 ‘새댁, 새댁, 고무신 하나 사요’ 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이 대목에 이르면 나와 동생들은 쿡쿡 숨을 참고 속웃음을 웃곤 했다.
그러니까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의문이 들곤 한다. 모개신이 짚신이라면서 뭐 그리 아까웠을까? 곧 아버지를 만날 텐데…, 그러면 새 신 하나 사 신으면 되지…. 그러나 좀 더 생각하면 모개신은 바로 우리의 근대사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열악하기 짝이 없던 식민지 시대인 근대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내려 하던 사람들의 존재 증명 같은 것…. 글쎄, 요즘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심각’한가?
아무튼 우리 세대는 너무 ‘심각하게’ 살아온 것 같다. 역사를 운위하면서 4·19를 만들어내고, 한일협정 반대 데모를 하며 대학 4년 중 3년을 조기 방학하고, 고문과 실종이 판치던 유신 시절을 항거하며 살아내고, 온갖 고문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치를 떨고, 시인 김준태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복사물로 돌려보느라 밤을 새우고…. 지금 보면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쓰는, 거기에 자꾸 매달리는 시(詩)도 너무 구식이라선지, 이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하긴 ‘신발’에 대한 이야길 하면서도 이런 식이다. 근대사를 운운하고, 나아가 ‘존재에 대한 중얼거림’으로까지 신발 이야기가 비약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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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검수완박" "장관청문회"등 요즘 뉴스를 보면
대한민국이 지긋지긋하다
언제부터 그렇게 잘먹고 잘살았다고
언제부터 그렇게 인권과 평등, 정의, 공정을
실천하고 살았다고 ... 지들만 야단법석이다
이것이 다 어렸을적 가난하게 살아온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굴곡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적 새신발 한켤레에 밤잠을 설치던
지난 시절이 그리워지는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