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우리 부부는 한국에 돌아온 후 시차적응에 실패했다.
거의 열흘간을 새벽에 깨고 잠들지 못하는 피곤한 나날을 보냈다.
나야 주부니까 낮잠으로 대신할 수 있다지만
부족한 수면시간임에도 출근을 해서 종일 쉴 틈 없이 진료를 해야하는 남편이 걱정이었다.
아침에 당귀잎을 넣은 샌드위치를 먹은 남편이
"여보, 그 잎이 독성이 좀 있나 봐. 혀가 약간 감각이 이상한대?"
"어제도 먹었는데 무슨 소리야?"
그리고 이틀이 지났는데 퇴근 무렵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내게 문제가 좀 생겼는데 집에 가서 얘기 할께."
가슴이 콩닥거리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퇴근한 남편은 얼굴에 경미한 안면마비가 왔고
진료를 받았으며 뇌의 문제가 아닌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니
열흘 정도 스테로이드 약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증세는 심각하지 않아 바로 정상으로 회복될 것이라 했다.
그러나 병은 내 맘대로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초조한 마음에 큰애에게 말을 하니 대수롭지 않게
"처방대로 약 먹으면 회복돼요, 걱정 마세요. "
했다.
남편에게 어떻게 자각증세가 왔느냐고 물었더니
아침에 칫솔질을 하는데 물이 새더라 했다.
그런데 그는 그걸 내게 말하지 않고 혼자서 병원에 다녀오고서야 얘기한 것이다.
나는 왜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하고 무심함을 자책하며
그이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이가 신경을 쓸까 싶어
"여보 ! 하나도 모르겠어. 당신 얼굴이 약간 각져서인지 나도 몰랐잖아."
하고 너스레를 떨고 마음에 평안을 누리도록 도와주면서
" 여보! 근데 병원을 세를 주거나 좀 쉬면 어때요?"
했더니
"안돼. 아직 쉴 나이도 아니고 당신 부양도 해야지."
한다.
난 그이가 쉰다면 어떻게 생활할지 혼자서 가계대책을 세우다가
퇴근한 큰애에게
"가브리엘, 아빠 편찮으시면 네가 가족 부양해야 하는데?"
하고 넌즈시 말했더니
"엄마, 걱정 마요. 그럴 수 있어요."
하고 올라간다.
하긴 나라고 생계대책이 없을까...
문득 내가 그이에게 짐이 되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이는 성실한 성품 그대로 매 끼 빠뜨리지 않고 약을 먹었다.
스테로이드제재는 위장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아 위장약도 잘 챙겼다.
하루가 다르게 그는 나아갔다.
신자는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일수록
주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묵상하며 순명을 약속해야한다.
가까운 성지신부님께 미사를 청하고 남편의 상태를 알리며 기도를 청했다.
신부님은 우리 부부를 골배마실 성지로 불러
가정을 위한 기도, 부부를 위한 기도와 자녀를 위한 기도를 봉헌하라고 하셨다.
성할 때나 아플 때 항상 신의를 지키고 서로 사랑할 것이라는 구절에서
그에게 언제나 성실한 아내로 살 것을 결심하며 그이의 애타는 마음을 알기에 목이 메었다.
남편은 기도문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 어깨를 다독였다.
속 깊으신 신부님께서 남편이 원했다면 안수를 해 주시려고 하셨을 것이다.
안수를 어색해하는 남편을 금방 눈치 채시고
기도하는 우리 뒤에서 고요히 함께 기도해 주셨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실 사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멀리 계신 신부님께도 기도를 청했더니 금방 가정 방문을 오셨다.
암을 겪으며 순명이란 단어를 깊이 묵상한 탓에
가슴이 툭 떨어질만큼 겁나는 일이었지만 의연하게 잘 넘겼다.
남편은 정말 일 주일만에 완전회복이 되었다.
뇌질환으로 인한 것이었거나 심한 안면마비는 약간의 후유증을 남긴다는데
남편은 거짓말처럼 깨끗이 나았다.
참 다행하고 감사한 일이다.
주님께 감사~~~!!
이번 일로 인해 그이와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더 축복되다 고백하고
우리 가족은 더 많이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임을 느낄 것이고
내게는 일상 속의 더 많은 감사를 선물로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