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 지구 온난화
점심을 먹고 산책길에 나섰다. 도로가 작은 커피점 앞에 서너명 젊은 이들이 줄을 섰다. 더운데 사무실에서 쉬지 않고, 한잔의 커피에 저토록 목매인듯 절박하게 살아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 나라는 전국에 수많은 카페와 커피 판매처가 생기며 일상 문화로 깊게 자리 잡았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유로모니터 기준 416잔이라 하였다. 아시아 지역에선 단연 1위이고, 세계 평균의 약 2.7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커피 수입액은 2조 원을 넘어섰고, 약 2조 6,500억원(18억 6,100만 달러)을 기록했다. 커피원료는 브라질, 베트남, 콜롬비아 등에서 주로 원두를 들여 온다.
전국의 커피전문점(카페) 메가, 컴포즈, 이디야, 스타벅스, 빽다방 등 그 합계는 10만개를 넘어섰고, 주요 편의점 4사 매장 합계(약 5만 5천 개)의 약 2배에 달하며, 전체 매출액은 15조 5천억 원, 종사자 수는 약 27만 명이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오르고 가뭄이 심해지면서 주요 커피 품종의 생장이 어려워지고 있다. 커피녹병이나 커피베리보러 같은 치명적인 곰팡이와 해충 피해가 급증하고 있고, 생산량 증대를 위한 무분별한 화학비료 투입이 토양 오염과 수질 오염을 유발한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글로벌 커피 소비가 늘면서 브라질 등 주요 생산국에서는 재배 면적이 급격히 증가했다. 종전에는 키 큰 나무 그늘에서 기르던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나무를 베어내고 단일종을 대량 재배하는 플랜테이션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천연 삼림의 파괴가 심각해지고 있다. 당연히 지구온난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1997년 12월 11일 교토의정서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한 유엔기후변화협정으로 2005년 2월 16일부로 최초로 온실가스 감축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한 선진국 38개국에 배출량 대비 평균 5.2% 감축을 협약했다.
그러나 중국, 인도 등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 개도국에 감축 의무가 면제되었고, 최대 배출국 중 하나인 미국이 비준을 거부하여 실효성이 낮아졌다.
이후 2015년 12월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파리협정으로, 기후변화 대응의 기틀을 마련했다. 197개국 모두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스스로 정해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고, 나아가 1.5℃까지 제한하기로한 것이다.
개별 국가별로 목표량을 설정할 수 없는 것은, 선진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했거나, 지금도 배출하는데 비하여 후진국은 산업화가 더 필요한데 화학연료 사용제한을 하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여 약속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스스로란 단어, 예전엔 도덕책에나 있었을 법한, 추상적 개념(?)으로 변해버린 것에 기대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행에 확신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콧대센 나라는 '우리가 그걸 왜지켜?' 하고 있고, 다른 나라들도 '우리만 지킨다고 해결이 되겠나?' 하는 행태가 이어져서 이미 파리협정에서 정한 1.5도에 근접하는 1.3도 정도에 다가 서고 있단다.
내가 생각해봐도 그렇다. 정부기구, 어느 단체 하나 남은 수명 선언하지 않은 암덩어리 같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식정도는 내가 그들 머리속에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한쪽 구석에 숨겨져 찾아 쓰기에 불편할 것 같다.
아직도 개발된 빈땅이 더러 방치되어 있고, 미분양 아파트가 많은데도 산을 절개하여 아파트를 짓도록 허가를 해주고 있다. 그래 건설업자도 살아야지! 그런데 그러면 모두의 생명을 단축한다는걸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그들의 전두엽에 환경보존이나 지구온난화란 글자를 기억하는 뇌세포가 존재하고 있을까?
길을 걸으면 가로수나 정원수가 말라 죽은 모습을 자주 본다. 저걸 가뭄기간 중간쯤 한번만이라도 물을 주었더라면...내가 경험했기에 그걸 보며 안타깝게 느낀다.
나만 살면된다. 사무실에도, 아파트에도, 승용차까지 에어컨이 있다. 돈이 더 많으면 지구가 멸망하기전 스페이스X에 가입해서 달이나 화성으로 떠나살까? 정말 그렇다면 당신이 떠날때 누군가가 살아남기 위해 당신의 바지 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것이란걸 알아야 한다.
좋아하는 커피 한잔, 그게 뭐어때서? 아프리카의 눈물이라던 그러한 자연이나 인간이 처한 조건을 들추자는게 아니다. 이미 담배나 일부의 마약처럼 국민 기호품으로 자리 잡은게 커피이니 마시지 말라는 의미가는 절대 아니다. 그것들과 단절하는데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 모르는 바도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먹다 남은 커피 버리지 않게 적당량, 현장에서 먹을땐 용기 사용, 포장지는 가급적 적게, 지킬 수 있는 그런 것들...그런걸 매달 암보험료 내는 날자 기억하듯 머리속에 담고 살자는 것이다. 생활습관, 그 습관이 중요하다. 오늘날에는 온라인 택배문화가 더 많은 오염물질을 증가 시킨다.
그리고 개인보다 더 문제인 것은 국가다. 남은 공터 남겨두고 개발, 또 개발 틈만 있으면 국토를 훼손한다. 그렇게 해야 콩고물이 생기고, 그런 재미로 정치한다고?
100세 건강이라고? 급격한 기후변화가 목을 조여오는데, 혼자만 살아 남는다고? 엇그제 기후학자들의 말을 들으니 이렇게 지속되다가는 호모사피엔스란 종도 바뀌겠단다. 더운 열기에 살아남는 인간의 개체만 남아 변종되고, 지금의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멸종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이다. 각오하고 살아 왔으니 두려워 할 것은 못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한평생이라면, 그럼 왜 암이나 다른 질병은 오랫동안 신경을 쓰며 돈을 들이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몇년 후 지구의 종말이 아닌 인류의 종말이 온다면 무슨 보험(재해) 보험을 들어야 할까? 고민해 본 적은 있을까? 혹독한 기후변화로 시달리며 오랜 시간 고통받다 죽는 것보다, 오히려 빨리 끝나는 질병쪽이 낫지 않을까?
뭐? 갈때 가더라도 잘먹고 잘살자고? 그런데 잘먹고 잘살 수가 없다. 기후변화는 순조로운 작물생산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연관된 육류생산은 물론 달달한 커피 생산도 줄어들 것이다. 잘산다는 의미는 포괄적이어서 그만큼 더 폭넓고 깊은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글 싫어한다. 내 알아서 살건데 웬 밥맛없는 소리? 그런데 누군가의 잘못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단축 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 꽃길 걷는 것도, 100세 건강도 지구나 인류에 해 끼치지 않으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최근 일어난 인도네시아 지진, 네팔의 홍수... 나에겐 언제까지 안전할까? 어제 누군가의 글에다 댓글을 달았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가 나빠도 후회는 덜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