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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평소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과 주말을 맞아 다녀 온 오대산 선재길 트래킹
후기 입니다. 요즘 개인적인 사정으로 느림보 화요 산행에 자주 방부를 드리 대지 못해
글로서 나마 자그만 인사를 드리고져 올려 봅니다. 내용 중에
불교에 관한 얘기들이 많이 등장함은 명산과 지리와 불교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연관성
때문에 만부득한 일이오니 종교적인 색갈로 보시기 보단 역사의 한 궤적을 더듬는다고
생각하시고 구냥 편안히 읽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수탈의 역사, 일제로 부터 해방되기 바쁘게 우린 한국전쟁이란 동족 상잔의 비극을 맛 보게
되면서 온 국토는 황폐화 되었고 백성들은 지독한 가난에 몸서리를 칠 무렵 혹자들은
말 하길 사시 사철 즉 사계절이 있는 나라 치고 대한민국 만큼 못 사는 나라는 없다고들
하였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일정한 날씨를 유지하는 아프리카나 아마존 토인들은 부지런하거나 억척을 떨 필요가
도무지 없다. 허지만 절기가 뚜렸한 변화를 보이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파종을 할 시기
에는 틀림없이 파종을 하여야 하고 가을이 되어 수확철이 되면 눈 비가 내리기 전에 언능
수확물을 걷어 들여 잘 갈무리를 하여야만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지런 하지 않거나 일정한 시기를 놓치면 굶어 뒤지던지 엄동 설한에 얼어 죽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인원이 많지 않아 학원생들 통학 시키는 미니 버스를 대절하였는데 난 요즘은 나이를
먹어서 인지 겁이 무척 많아 졌다. 우선
운전석 앞에 있는 룸 미러를 통해 오늘의 기사분이 어떤 분인가를 확인하는데 나이를 제법
많이 먹으신 어르신 이신데 눈이 와이셔츠 단추 구녕 처럼 작아서 눈을 떳는지 감았는지를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마냥 꿈틀 거리면 어쩔까 하여 걱정을 하였는데 웬걸 고속도로에 접어 들기 바쁘게
달리기 시작하는데 네비게이션에선 과속이라고 연신 부져가 울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긴 행렬을 이룬 관광 버스와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할 즈음엔 내 오금이 몹시도 저렸다.
만산 홍엽이라고들 난리를 쳐 대는 통에 엉거 주춤 채비를 챙겨서 따라 나서긴 했는데
흐미나 고속 도로 휴계소엔 차량 진입 자체가 어려워 여러 대의 차들이 대기 상태로
입장을 기다리고 있어 한참을 달려 다음 휴계소인 횡성 휴계소에 갠신히 주차를 하긴
하였는데 숙녀분들 화장실 앞엔 알록 달록한 등산북을 입은 여성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동동 걸음을 치며 대기하고 있다.
일찌거니 용무를 마치고는 차로 돌아 와서 혼자 있는 기사분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청을 드렸다. 우린 바쁜 일이 없는 사람들이니 천천히 가 주시면 고맙겠다고 헌데
휴계소를 막 떠나는 시점에서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후진을 하는 것이 아닌가?
기름이 떨어 졌다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표정들이였지만
칼자루는 단추 구녕이 쥐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뿐이 아니다
아직 월정사는 지붕도 보이질 않는데 매표를 위해 주춤 주춤 거리는 차량들이 하염없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며칠만 시기를 놓치면
단풍은 고사하고 눈에 덮힌 낙엽을 볼 수 밖에 없으니 이해는 간다. 승질 급한
몇 몇 회원님들은 아예 내려서 걸어 가잔다.
우리나라의 많은 산명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된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고 중국의 각 성에는 빼어난 명산이 있고 이 명산엔 각각의 다른 부처님이 상주하고
있다고들 믿는다. 보타낙가산엔
관세음 보살님이 구화산에 지장 보살님이 그리고 오대산엔 문수 보살님이 계시는데
이 중국의 오대산을 찾았던 신라의 자장 율사가 문수 보살님을 친견하고 중국의 승려로
부터 건네 받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이곳 오대산 상원사 적멸 보궁에 모시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은 양산에 있는 영축산 통도사,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그리고 이곳 오대산 상원사 적멸 보궁을 포함하여 다섯
군데가 있다. 참고로
오대산은 동서남북과 중앙에 도합 다섯개의 높은 대가 있는데 서대에 있는 염불암 인근에
있는 우통수란 샘이 당초엔 한강의 발원지로 알았었다. 물론 과학적인
방법으로 현재는 한강의 발원지가 태백산 검룡소로 밝혀 졌지만, 그래서 조선 왕실에선
이른 새벽에 한강에 배를 타고 들어 가서 강물 중심을 흐르는 우중수를 받아 올려서
임금님의 차를 다리는 물로 썼다고 한다.
월정사를 조금 지난 어느 주차장에 파킹을 하니 이내 계곡으로 연결되는 선재길 입구가
눈에 들어 온다.
문수 보살과의 인연으로 53분의 선지식을 찾아 구도 행각을 했던 선재 동자처럼 우리
일행들도 선재길이라 명명된 오대산 계곡길을 걸어 본다.
쾌청한 가을 날씨에 넘쳐 흐르는 계곡물을 언저리에 두고 잠시 막걸리 한잔을 걸치는
간식 타임도 가져 본다. 바로 이 맛이고 이 재밋닷.
목젖을 치면서 요란하게 내 목구멍으로 들어 가는 막걸리의 굉음이 몇 순배 있고 나니
하늘이 돈짝 만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쯤하면 돈병철씨가 부럽겠습니껴? 빌어 게이츠가 그립겠습니껴?
세종의 아들 수양 대군은 형인 문종의 아들이자 조카인 단종을 용상에서 내려 앉히고
영월 청령포로 유배로 시켰다간 종당엔 교살하곤 그 시신 조차 거두지 못하게 엄명을
내렸는데 이후 수양 대군의 아들 덕종이 요절을 하게 되고 꿈에 나타 난 단종의 생모인
현덕 왕후가 원성을 퍼 부우며 세조에게 침을 뱉고 난 이후론 극심한 피부병, 일설엔
한센씨병(문둥병)이라고도 하는데 좌우간 병마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자 온양 온천을
거쳐 이곳 오대산 상원사 까지 찾아 들었다가 이곳 어느 계곡에서 몸을 씻으며 지나
가는 동자승에게 등을 씻어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돌아 서는 동자에게 이곳 계곡에서
조선의 임금 등을 밀었다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하니 동자승의 답변이
임금께서도 어디 가셔서 이곳 오대산 상원사 계곡에서 문수 보살을 친견했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곤 순식간에 사라지셨는데 세조는 이후 병마에서 해방된다.
우리나라의 철도와 도로의 기본틀은 일제 왜정 시절의 신작로인데 종횡으로 그물 형태의
격자 무늬를 연상시킨다. 사유는 간단하다
조선땅 전역에서 수탈한 물자를 최종적으로 부산항에 집결하여 일본땅으로 실어 내기 위한
방법인데 일제나 해방 전후 이곳 상원사를 배경으로 하는 책들을 읽어 보면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고 가는 길엔 철도 레일이 놓여 있었고 차량은 나무와 숯의 가스로 움직이는
목탄차들이 수시로 다녔다고 한다. 모두가
산판 즉 벌목을 하여 목재를 실어 내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빨간 마후라 잘들 아시져? 흐 흐 중 고등학생들이 일본 포르노를 흉내 내어 목에
빨간 마후라를 두르고 두명의 남성과 한명의 여성이 벌이는 대한민국 토종 포르노를
말하는게 아니고 신 영균, 최 무룡 그리고 최 은희가 주연하여 공전의 힛트를 쳤던
빨간 마후라란 영화는 주제곡 또한 여태도 우리들 귀에 생생하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이 노래의 본향 그 영화를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영화 빨간 마후라에서 등장하는 제트 전투기가 바로 F-86 쎄이버인데 세계 최초의 후진익
(날개가 뒤로 약간 젖혀진 비행기) 전투기로서 당시 쏘련의 최신예 미그 전투기와 최초로
한국 전쟁 중에 공중전을 벌렸다고 합니다.
미국 비행기에서 F는 Fighter 즉 전투기를 뜻하고 쏘련의 미그는 MIG 인데 이 비행기를
최초로 만든 미양코와 그레고비치라는 두 사람의 이니셜 글자를 따 와서 그리 명명
되었다고 합니다.
빨간 마후라엔 참으로 고귀한 판단을 하셨던 실존 인물이 있다.
한국 전쟁 당시의 김 영한 장군 이시다.
김 영한 장군이 처음으로 빠일롯트가 되어 창공을 날자 형수되시는 분이 뽀알간 마후라를
만들어 드렸던가 봅니다. 그 이후로 빨간 마후라는
공군에서 조종사들만 목에 걸칠 수 있는 상징적인 것이 되었는데 이 김 영한 장군이란 분이
한국 전쟁 중에 무장 공비들의 출현 땜에 골머리를 앓던 국군 수뇌부의 명령을 받게
되었는데 그거이 바로 합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것이였습니다.
국보 중의 국보인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를 차마 폭격할 수 없었던 김 영한
장이 궁여 지책으로 엉뚱한 장소에 폭탄을 던져 버리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재더미로
변했을 수도 있었던 보물을 온전히 건지게 된다.
무장 공비의 준동으로 홍역을 치루던 국군은 그들의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일차로
월정사를 방화하고 이어서 상원사로 몰려 온다.
당시 상원사에는 경허 대사의 제자이신 한암 스님이 주석하고 계셨는데 중 소위급의
국군 소대장이 상원사에 불을 놓으려고 하니 잠시만 지둘려 달라고 하신 스님은 급히
가사 장삼을 수하시곤 법당에 좌정을 하시곤 소대장에게 당신은 군인으로서 명령을
받았으니 불을 지르고 난 부처님의 제자이니 응당 법당을 지켜야 한다고 하니 아마도
기세에 눌렀던 모양이다. 명령이니 아니 할 수가 없다며
법당 문짝을 몇장 뜯어서 불에 태우는 흉내를 낸 소대장은 이내 철수를 한다. 이 소대장이
후일 상원사란 소설을 썼던 조선일보의 선우 휘란 설도 있지만 내 생각엔... 좌우간
한암 스님은 일제 시절 조선 총독의 면담 조차 거부를 하자 조선 총독이 자신의 수하를
한명 상원사로 보냈는데 오늘날의 경찰 총수 격이다.
상원사를 방문한 이 일본 사람이 한암 스님에게 뜬금없이 질문을 하나 던진다.
일본이 지금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는데 과연 누가 승리를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리 가면 파출소요 저리 가면 검찰청 정문이 나오는 골치 아푼 질문인데 물론
한암 스님은 후일 한국 전쟁의 발발도 미리 알았다고 한다. 불가에선
여섯 가지 신통력이 있는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일을 알아 내는 능력을 숙명통
이라고 한다.
스님의 답변이 참으로 묘하다. 덕자승(德者勝)
덕을 많이 가진 이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인데 한암 스님은 그 일이 있은 후 그리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드시게 되는데 좌탈 입망을 하셨다.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상태로 앉아서 세상을 뜨신 사진이 실존하고 있는데 한암 스님의
제자이신 유불선에 두루 달통하신 탄허 스님의 열반 또한 참으로 신묘하다.
당대 최고의 석학이였던 함 석헌 선생과 자칭 국보인 국문학의 대가 양 주동도 탄허 스님의
장자 강의를 경청하셨는데 양 주동 박사 왈 장자가 살아 돌아 와서 자신의 책을 강의
할지라도 탄허를 따를 수가 없다는 것인데 탄허 스님이 우연히 병원에서 검진을 하게
되었는데 말기암이였는지 며칠을 더 살 수가 없다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되자 주변의 제자
들과 신도들이 난리를 치자 사람의 죽음이란 그러하지 않다며 기억이 아심삼삼 한데...
아마도 5~6년 후의 어느 날 자신이 돌아 가신 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 되었다고 한다.
티벳의 한 승려가 미국 여행길에 중병을 얻어 급히 수술대에 올랐는데 종교적인 이유로
한사코 마취를 거부한다. 물론
아무런 마취도 없이 통증도 없이 수술을 잘 끝내자 현대 의료진들이 난리를 치면서
알아 낸 것이 인체의 엔돌핀이라는 어떤 물질인데
상원사의 보문 스님이란 분 또한 종로의 관철동에 있는 어떤 외과병원에서 갈비대 네대를
건드리는 큰수술을 받게 되어 약 한시간의 참선 후에 마취없이 수술대에 올랐는데
수술이 끝날 무렵 약간의 통증만을 느꼈다고 한다.
미술평론가 최 순우 선생이 말씀 하시길 이 세상의 모든 예술품들은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월정사에서 상월사로 이르는 선재길의 자그만 돌삐 하나에도 팔만 사천 세계가 들어
있다고 한다. 오늘
하루를 참으로 의미 깊게 곰 씹어 보노라니 희뿌연 영상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 간다.
걸망(바랑)을 메고 오대산 계곡을 오르는 어느 운수 납자의 표표한 발걸음.
운수 납자가 지금의 나인가? 지금의 내가 후일의 운수 납자가 될런가?
분당 탄천변에서 혹멧돼지 돌삐 드립니다.
첨언 : 월정사 매표소를 지나 지방도와 연결 되는 삼거리에 있는 소문난 맛집을 찾아
들었는데 간판이나 내부 집기들은 60년대 읍내 장터 식당을 연상시키지만 정갈한
밑반찬과 제대로 맛을 낸 제육 뽁음(두루치기)이 가히 일품이다.
정신없이 물고 뜯고 씹다 보니 어느 새 미니 버스에 몸을 얹었는 가 해서 곤한 잠에 빠져
들어 정신이 없었는데 몬가 이상하여 눈을 뜨고 보니 버스가 고속 도로 갓길도 아닌 중간
차선에서 멈춰 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느 승용차와 우리 미니 버스가 좌우에서 동시에 차선을
변경해서 들어 오다가 물론 사고는 없었지만 약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였던 모양이다.
눈까리는 와이셔츠 단추 구녕만한 이 씁탱이 가튼 노땅이 승용차 앞을 가로 막아 차를
세우고는 어쩌자는 심뽀인지 모르지만 차에서 내려 뒷차쪽으로 부리나케 달려 가선
약간은 나이가 젊어 보이는 어떤 사람과 멱살잡이를 한다. 물론
차에 탑승하고 있는 우리 승객들에겐 아무런 상황 설명도 없었다. 주말이라
좌 우 차선으로 급거 차선 변경을 하는 차량 행렬이 위험하기 그지 없다.
몰상식이 도를 넘은 개자식이 바로 이룬 놈이다.
우리 느림보 리무진을 운영하시는, 대한민국 달구지 업종에서 가장 매너가 좋으신
전 사장님 생각이 나고 또 났다.
머슴 잘못 두면 일년 고생이고 장 잘못 담구면 삼년 고생을 하고 예펜내 잘못 만나면
평생 고생이라고 하더니만 긴 여행길엔 훌륭한 기사님을 만나는 것이 복 중의 복이라는
생각이 너무도 간절했었던 하루의 긴 여정을 마무리 합니다. 다음 어느 산행에서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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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돌삐님 산행후기 잘 보았습니다
긴 문장을 단숨에 읽을 수있게 써 내려간 문장력과 구성력에 경의를표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담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오대산 선재길..
이 가을에 걷기 참 좋은 길이지요.
무념무상..
그렇게 가을빛에 취해 있다보면 마음도 어느새 갈빛이 되고..
선명한 빛 한줄기 가슴속으로 들어오지요.
아.. 그래서 가을 속으로 걸아거 싶어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