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3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마르코 6,30-34
<교육은 관계다>
군대 입대하기 전 많은 선배님들이 다 같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군 생활 잘 하려면 정말 군인이 되어라!” 저는 그래서 정말 군인이 되기 위한 마음으로 훈련소에 입소하였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사제 옷을 소포에 쌓아서 넣으라고 하는데, 그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제 잠바가 소포에 다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소리 지르는 조교들 앞에서 숨도 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급기야 한 조교가 저를 불러내더니 발길질을 하였습니다.
한 대 맞으니까 안 들어가던 잠바가 박스에 다 들어갔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논산 훈련소 소대에 배치를 받으니 무섭기로 소문난 조교가 우리 소대의 담임이 되었습니다.
나이도 많고 밖에서 선생님을 하다가 들어온 베테랑이었습니다.
매 취침 전마다 침상에서 머리 박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머리를 박고 잠을 잘 수도 있을 정도로 능숙해졌습니다.
이렇게 무섭게 하니 모든 면에서 우리 소대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저는 그래도 우리를 군인이 되게 하기 위해 고생한다고 믿고 그 조교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한 번은 훈련 중 야삽을 허리띠에 차야 했는데 들어가지 않아서 그냥 허리춤에 찔러 넣었습니다.
이런 것을 놓칠리 없는 조교가 뛰어와 제 야삽을 빼어서 머리에 쓰고 있는 철모를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철모는 제 머리 위에서 뺑그르르 한 바퀴 돌았고 처음 들어보는 엄청난 소리에 귀가 멍멍해 졌습니다.
본래 훈련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글로 남겨서는 안 되는데 저는 수첩에 이렇게 썼습니다.
“조교가 너무 싫다. 밖에서 만나면... 넌 죽었다.”
이렇게 쓰고 있는데 그 조교가 와서 제 수첩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밤에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그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매우 우울하고 원망 섞인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너희가 나를 이렇게 나쁘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
본인은 상관들이나 다른 조교들에게 인정받는 교육자였습니다.
우리를 눈빛 하나로 통제할 수 있었고 본인도 우리들을 훌륭한 군인으로 만든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자신의 아들이 전국 1등을 하지 못한다고 골프채 등으로 아들을 마구 때려서
결국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여 몇 달 동안 집에 방치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강요로 아들은 서울대에 충분히 들어갈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자신도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아들 인생도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선생님입니다.
꼭 교육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애인 사이에서도 서로 잘 아는 것을 가르치고, 가족에서는 당연하고, 어디에서든 자신이 더 아는 것을 남에게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듯 교육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망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상대를 위한다는 가면으로 자신의 만족을 먼저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만족을 위해 희생되는 피해자들이 되어버립니다.
부모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 분들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 직업까지도 선택해야 하는 아이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EBS 에서 방영되었던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란 프로를 보았습니다.
그 중 박소형 선생님은 대구의 한 초등학교 4학년 담임교사로서 이 프로에 참가신청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전혀 행복하지 않아서 이 프로에 참가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선생님의 수업은 완전히 군대식이었습니다.
전혀 웃지 않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눈동작, 손동작을 하면 아이들이 철저하게 통제되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반에 비해서 여러모로 질서 잡히고 조용하고 뛰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선생님께 대한 설문조사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그냥 무서워요, 도깨비 같아요, 호랑이에요. 귀신이에요. 악마에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싫어하는지 몰랐습니다.
잘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비추어지는데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전문가들은 박소형 선생님을 비롯하여 나머지 6명의 선생님들에게 단 한 가지만 깨닫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교육이 곧 관계다.”
좋은 관계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서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짐승처럼 훈육을 받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참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춤 잘 추는 곰이나 쇼를 위한 돌고래를 훈련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동물을 훈련시키는 사람은 동물이 먼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보입니다.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은 매우 피곤합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었는데 무언가 배우기 위해 사람들은 배를 타고 오는 것보다 먼저 더 빨리 걸어서 그들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마음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 앞에 나아온 우리들이 먼저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보인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교육자의 모습이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조련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설리번 선생과 헬렌 켈러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헬렌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말하자면 짐승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헬렌 켈러를 가르치기 위하여 왔던 선생들은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는 그의 상태를 보고서는 다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설리번 선생은, 헬렌의 집에 처음 도착하던 날, 그 짐승 같은 아이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그 이후 설리번 선생은 지성을 다한 노력으로 헬렌 켈러에게 수화와 단어를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우게 되었을 때, 설리번 선생이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헬렌은 “선생님이 오시던 날 나를 꼭 안아 주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설리번 선생이 꼭 안아 주던 그 첫날부터
짐승처럼 거칠던 헬렌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길에 침 뱉는 것을 어머니의 단 한 마디에 고쳐졌습니다.
결혼하시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변하게 하려면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사랑해야합니다.
사랑스런 사람에게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는 저절로 나에게서 배우게 되고, 나는 그 안에서 행복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행복은 다름이 아닌 제자들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