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ㄱ 그대의 발명 ㅡ 박 정대 ㄴ 나무생각 ㅡ 안도현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ㅡ 권 혁웅 느티나무 ㅡ나석중.신달자 느티나무 그늘 ㅡ 신 현정 느티나무 여자 ㅡ 안도현 ㄷ 담양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 ㅡ 고재종 ㅁ 마을의 느티나무 ㅡ 최하림 묵상 ㅡ 함민복 ㅅ 성 느티나무 ㅡ 나희덕 ㅇ 오늘 ㅡ 심재휘 5월의 느티나무 ㅡ 복 효근 ㅈ 젊은 느티나무 ㅡ 강 신재
그대의 발명 박정대 느티나무 잎사귀 속으로 노오랗게 가을이 밀려와 우리집 마당은 옆구리가 화안합니다 그 환함 속으로 밀려왔다 또 밀려가는 이 가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한 장의 음악입니다
누가 고독을 발명했습니까 지금 보이는 것들이 다 음악입니다 나는 지금 느티나무 잎사귀가 되어 고독처럼 알뜰한 음악을 연주합니다
누가 저녁을 발명했습니까 누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사다리 삼아서 저 밤하늘에 있는 초저녁 별들을 발명했습니까
그대를 꿈꾸어도 그대에게 가 닿을 수 없는 마음이 여러 곡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저녁입니다 음악이 있어 그대는 행복합니까 세상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도 음악이 되는 저녁,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누워서 그대를 발명합니다 영풍 안정면 느티나무
나무 생각 안도현 나보다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
복숭아나무가 복사꽃을 흩뿌리며 물 위에 점점이 우표를 붙이는 날은 나도 양면괘지에다 긴 편지를 쓰고 싶다
벼랑에 기를 쓰고 붙어 있는, 허리 뒤틀린 조선소나무를 보면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주고 싶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아무 일 아닌 것같이 멀리 보내는 밤나무 아래에서는 아무 일 아닌 것같이 나도 관계를 맺고 싶다
나 외로운 날은 외변산 호랑가시나무 숲에 들어 호랑가시나무한테 내 등 좀 긁어 달라고, 엎드려 상처받고 싶다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권혁웅 느티, 하고 부르면 내 안에 그늘을 드리우는 게 있다 느릿느릿 얼룩이 진다 눈물을 훔치듯 가지는 지상을 슬슬 쓸어 담고 있다 이런 건 아니었다, 느티가 흔드는 건 가지일 뿐 제 둥치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느티는 넓은 잎과 주름 많은 껍질을 가졌다 초근목피를 발음하면 내 안의 어린 것이 칭얼대며 걸어온다 바닥이 닿지 않는 쌀통이나 부엌 한쪽 벽에 쌓아둔 연탄처럼 느티의 안쪽은 어둡다 하지만 이런 것도 아니다, 느티는 밥을 먹지도 않고 온기를 쐬지도 않는다 할머니는 한 번도 동네 노인들과 어울리지 않으셨다 그저 현관 앞에 나와 담배를 태우며 하루 종일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런 얘기도 아니다, 느티는 정자나무지만 할머니처럼 집안에 들어와 있지는 않으며 우리집 가계는 계통수보다 복잡하다 느티 잎들은 지금도 고개를 젓는다 바람 부는 대로, 좌우로, 들썩이며 부정의 힘으로 나는 왔다. 나는 아니다. 나는 안이다 여기에 느티나무 잎 넓은 그늘이 그득하다
영암군 서면 느티나무
느티나무 나석중 괜찮다 몸 한구석에 귀뚜라미가 울어도
보이지도 않는 귀뚜라미는 왜 와서 우는지 요즈음 보이지도 않는 아들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 때 나는 깜짝깜짝 뉘우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나에게 서운한 때 많았을 것이라고
그러니 아들아 너는 걱정하지 마라 모든 게 철부지 해 가는 이 느티의 심사 너도 일가를 이룬 나무, 몰아치는 비바람 잘 견디며 귀뚜라미처럼 괜히 와서 우는 일 없도록
해가 짧아지면서 오른쪽 무릎에서 악기 소리가 나지만 몸이 알아서 현 한 줄 심심치않게 튕겨주는 일 이제 뼈가 닳고 가슴이 바트는 일도 괜찮다 괜찮다
느티나무 신달자 혼자 되고 첫 고향길 큰길 두고 외곽길 고요히 돌아 어릴 적 업히고 업어주던 느티나무 앞에 서다 아무 말 않고 서로 삭은 등을 바라본다 엄마 보듯 뜨거워지는 목줄기 영풍 순흥면 느티나무
느티나무 그늘 신현정(1948 - ) 느티나무가 제 몸을 번쩍 들어 올리고 서 있다 느티나무는 그야말로 무슨 숙명적인 제 그림자를 몽땅 내려놓고자 하는 것이지만 우린 길도 가다 말고 찾아들어 모자도 벗고 발도 말리고 삼매경이라도 빠지는 것이다 구름은 부풀고 매미들도 덩달아 따라 들어올려졌다
괴산 우령 느티나무
느티나무 여자 안도현 평생 동안 쌔빠지게 땅에 머리를 처박고 사느라 자기 자신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가을날, 잎을 떨어뜨리는 곳까지가 삶의 면적인 줄 아는 저 느티나무
두 팔과 두 다리로 허공을 헤집다가 자기 시간을 다 써버렸다 그래도 햇빛이며 바람이며 새들이 놀다 갈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고, 괜잖다고 애써 성성한 가지와 잎사귀를 흔들어 보이는
허리가 가슴둘레보다 굵으며 관광버스 타고 내장산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저 다소곳한 늙은 여자
저 늙은 여자도 딱 한 번 뒤집혀보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땅에 박힌 머리채를 송두리째 들어올린 뒤에 최대한 길게 다리를 쭉 뻗고 누운 다음 아랫도리를 내주고 싶을 때가 있었나보다
그걸 간밤의 태풍 탓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인생의 절반도 모르는 자의 서툴고 한심한 표현일 뿐
담양한재초등학교 느티나무 고재종 어른 다섯의 아름이 넘는 교정의 느티나무, 그 그늘 면적은 전교생을 다 들이고도 남는데 그 어처구니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선생들이 그토록 말려도 둥치를 기어올라 가지 사이의 까치집을 더듬는 아이, 매미 잡으러 올라갔다가 수업도 그만 작파하고 거기 매미처럼 붙어 늘어지게 자는 아이, 또 개미 줄을 따라 내려오는 다람쥐와 까만 눈망울을 서로 맞추는 아이도 있다 하기야 어느 날은 그 초록의 광휘에 젖어서 한 처녀 선생은 반 아이들을 다 끌고 나오니 그 어처구니인들 왜 싱싱하지 않으랴 아이들의 온갖 주먹다짐, 돌팔매질과 칼끝질에 한 군데도 성한 데 없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지 끝에 푸른 울음의 별을 매달곤 해도 반짝이어라, 봄이면 그 상처들에서 고물고물 새잎들을 마구 내밀어 고물거리는 아이들을 마냥 간질여댄다 그러다 또 몇몇 조숙한 여자 아이들이 맑은 갈색 물든 잎새들에 연서를 적다가 총각 선생 곧 떠난다는 소문에 술렁이면 우수수, 그 봉싯한 가슴을 애써 쓸기도 하는데, 그 어처구니나 그 밑의 아이들이나 운동장에 치솟는 신발짝, 함성의 높이만큼은 제 꿈과 사랑의 우듬지를 키운다는 걸 늘 야단만 치는 교장 선생님도 알 만큼은 안다 아무렴, 가끔은 함박눈 타고 놀러온 하느님과 상급생들 자꾸 도회로 떠나는 뒷모습 보며 그 느티나무 스승 두런두런, 거기 우뚝한 것을
김제 봉남면 느티나무
마을의 느티나무 최하림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둥지처럼 마을에 머물면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땅바닥에 모여 눈에 익은 어수선한 풍경을 본다 어느새 달려왔는지 11월의 그림자가 발끝에 어른거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슬픔 같은 것이 머리카락에 스미어 이마를 축축하게 하고 마을 길에서 개들이 왔다갔다 한다 어제 그리웠던 얼굴이 등불을 밝히고 땅 끝으로 새들이 사라져간다 밤이 깊어간다 들판에는 아직 어스름이 남아 있고 길 찾는 사람이 두 손을 겨드랑이에 찌르고 걸음을 자주 한다 그때에도 느티나무는 얼굴을 숙이고 거기 그렇게 꼼짝 않고 있다
묵상 함민복 삼백년 묵은 느티나무에서 하루가 맑았다고 까치가 운다
잡것 남원 보절면 느티나무
聖 느티나무 나희덕 속이 검게 타버린 고목이지만 창녕 덕산리 느티나무는 올봄도 잎을 내었다
잔가지 끝으로 하늘을 밀어올리며 그는 한 그루 榕樹처럼 제 아궁이에서 자꾸만 잎사귀를 꺼낸다 번개가 가슴을 쪼개고 지나간 흔적을 안고도 저렇게 눈부신 잎을 피워내다니 시커먼 아궁이 하나 들여놓고 그는 오래오래 제 살을 달여 내놓는다 낮의 새와 밤의 새가 다녀가고 다람쥐 일가가 세들어 사는 구름 몇 점 별 몇 개 뛰어들기도 하는 바람도 가만히 숨을 모으는 그 검은 아궁이에는 모든 빛이 모여 불타고 모든 빛이 나온다 까마귀 깃들었다 날아간 자리에 검은 울음 몇 가지가 뻗어 있기도 한다
발이 묶인 채 날아오르는 새처럼 덕산리 느티나무는 푸른 날개를 마악 펴들고 있다
<사라진 손바닥> 문학과 지성사
담양 대전면 느티나무
오늘 심재휘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용서하듯 쳐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
저녁이 되자 비는 그치고 그 젖은 나무에도 불이 들어온다 내가 마른 의자를 찾아 앉으면 허튼 바람에도 펼쳐진 책이 펄럭이고 몇 개의 문장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면 길 위에 떨어진 활자들 서둘러 주울 때 느닷없이 다가와 말을 거는 수많은 어둠들
저 느티나무 밑을 지나는 오래된 귀가도 결국 어느 가지 끝에서 버스를 기다릴 테지 정류장에서 맞이하는 미래처럼 서로 닮은 가지들의 깜박거리는 불빛 속마다 조금씩 다른 내가,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앉아 있을 테지 , 벗겨도 벗겨도 끝내 속내를 보여 주지 않는 오늘들
그런 것이다 생의 비밀을 훔쳐본 듯 내게로 온 투명한 하루가, 서서히 그러나 불치병처럼 벗겨지는 풍경을 홀로 지켜보는 일에 대하여, 단지 우리는 조금 쓸쓸해지면 그만이다
5월의 느티나무 복효근 어느 비밀한 세상의 소식을 누설하는 중인가 더듬더듬 이 세상 첫 소감을 발음하는 연초록 저 연초록 입술들 아마도 지상의 빛깔은 아니어서 저 빛깔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초록의 그늘 아래 그 빛깔에 취해선 순한 짐승처럼 설레는 것을 어떻게 다 설명한다냐 바람은 살랑 일어서 햇살에 부신 푸른 발음기호들을 그리움으로 읽지 않는다면 내 아득히 스물로 돌아가 옆에 앉은 여자의 손을 은근히 쥐어보고 싶은 이 푸르른 두근거림을 무엇이라고 한다냐 정녕 이승의 빛깔은 아니게 피어나는 5월의 느티나무 초록에 젖어 어느 먼 시절의 가갸거겨를 다시 배우느니 어느새 중년의 아내도 새로 새로워져서 오늘이 첫날이겠네 첫날밤이겠네 남해 고현면 느티나무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젊은 느티나무 강 신재(1924-2001) 1970년 작
삼척 도계읍 긴잎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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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해물과 백두산이 원문보기 글쓴이: 아침해
첫댓글 스크랩 해왔는데 글씨들이 가지런히 정리가 안되네요
이해하시고 읽어주시길... --느티나무의 근성을 닮고싶은 여자--
느티나무에 대한 모든 것... 우와~ 누나는 이미 느티나무를 닮았는 걸... ^^
느티누님 ㅋㅋㅋㅋ.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면서 드는 생각이..
여름에 느티나무 아래에 누워있으면 차암 좋겠다~^-^ 좋은 글,사진 보고 가욤~
상아야느티나무가 드리워진 정자에 누워 바람의 숨결을 느껴본적이 있니
어릴적 내 유년시절의 추억이 있는 시골마을 정자가 그리워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