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영국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실화
암호 해독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승리 이끌어
전쟁에서 암호는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다. 극비의 명령을 전달할 때 글자를 변형하거나 특정의 규약에 따라 단어를 나열하는 등의 방법으로 적에게 치명타를 입히거나 공격을 피하는 것이 목적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암호를 지키려는 쪽과 풀어내려는 쪽의 전쟁은 총칼을 들고 싸우는 전투 못지않게 치열했고 그 결과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라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독일의 암호 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풀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실화다. 숨어있던 2차 대전의 비화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1912∼1954)과 암호 해독팀이 독일군의 암호 체계를 풀어 노르망디 상륙작전, 아르덴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이야기다. 1943년 전쟁 중 연합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앨런 튜링을 포함한 수학 천재들이 런던 근교에서 1800개의 진공관을 활용한 암호 해독 기계 콜로서스(Colossus)를 발명해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이 기계는 비록 암호 해독이라는 특수 용도로만 쓰였지만,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ENIAC)보다 앞서는 컴퓨터의 원조로 꼽히기도 한다.
암호 해독팀, 독일군의 공격 무력화
영화는 절대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 ‘에니그마’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연합군이 체스 우승자, 언어학자 등 각 분야의 수재들을 모아 암호 해독팀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중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동료와 불화를 겪으면서도 암호 해독을 위한 특별한 기계 콜로서스를 발명한다. 여기에 또 다른 천재 수학자 조안(키이라 나이틀리)까지 합세하면서 암호 해독에 가속도가 붙는다. 마침내 암호 해독에 성공하지만, 성공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일부러 독일군의 침공을 허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연합군 수뇌부는 해독한 암호를 이용해 독일군의 공격을 무력화시킨다.
화려한 전투 장면 대신 인물에 초점
영화는 전투 장면은 거의 없고, 후방 영국 근교서 연구하는 수학자 앨런 튜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대개의 천재가 그렇듯이 외골수다. 하나의 목표가 생기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다. 다른 동료들과 소통도 서투르다. 그는 “암호학이 말하기와 뭐가 달라? 사람들은 말할 때 말 속에 다른 의도를 숨기곤 그걸 알아듣길 바라지. 난 안 그러거든. (말하기는) 나한텐 (암호풀이와) 다를 바 없어”라며 동료 간의 소통이 암호 풀기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이 같은 행동은 오해를 낳기도 한다. 그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돈에 상관없이 밀어붙이고, 남녀 구분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명령체계를 무시하고 처칠 총리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암호를 풀겠다는 일념 하나로 암호 해독에 성공해 큰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 된다.
비극적 삶을 살았던 뛰어난 수학자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낸다”란 대사는 영화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존 인물 앨런 튜링은 뛰어난 두뇌를 가진 수학자였으나 성격적 결함, 당시엔 ‘이상한 병’으로 간주됐던 동성애자로 비극적 삶을 살았다. 조안 역시 탁월한 암호 해독 능력을 지녔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무시받았다. 그녀는 대학 졸업 당시 두 과목에서 최고 득점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겐 학위를 줄 수 없다는 당시 방침으로 학위를 받을 수 없었다. 영화는 이 같은 ‘루저(Loser)’임에도 불구하고 일에 대한 열정과 천재적인 능력, 추진력으로 인간 승리한 평범한 영웅을 재조명하고 있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도 보이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섬세한 연기가 인상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전의 중요성
영화는 전쟁의 이면사(裏面史)를 잘 보여준다. 앨런 튜링과 그의 암호 해독팀이 뛰어난 업적에도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건 비밀작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전선에서 총을 들고 전투를 한 것이 아니다. 후방에서 수학 미적분을, 퍼즐을 풀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노르망디 상륙작전, 아르덴 전투 등에서 연합국이 승리했다.
“우린 연합국의 승리를 도왔지만 아무도 몰랐다. 우리 정보 없이는 모두 불가능한 승리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전쟁이란 그저 남부 작은 마을에 모여 퍼즐을 푸는 거였다.” 전쟁에서는 눈에 보이는 서사적인 전투뿐만 아니라 정보전도 중요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