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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놀이, 매사냥의 기원
매사냥은 야생 맹금류가 사냥하는 습성에서 착안한 것으로, 신석기시대 전후인 기원전 30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중앙아시아 및 몽골 평원에서 발원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매사냥은 이후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 등 동서 국가로 전파되었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때 가장 번성했다.
아시리아의 왕 사르곤 2세의 치세(B.C 722~705)에 매사냥이 중동에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고, 5세기인 400년 훈족과 알라니 족으로부터 매사냥이 유럽으로도 전해진다. 이후 엽총이 발명되는 17세기 후반까지 유럽 전역에서 매사냥이 성행하였다. 특히 영국 색슨왕조 시기에 매사냥은 전성기를 누렸고, 신성 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는 십자군 원정 때 자신이 중동에서 본 매사냥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책 『조류를 이용한 사냥 기술』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동양에서는 몽골초원을 거쳐 지금의 만주지역 원주민인 숙신(肅愼)에 의해 전승되던 것이 중국으로 전파, 고대 주 왕조 시대에 처음 출현하였고, 한 왕조와 당 왕조에서 모두 매사냥을 즐겼다. 동양과 서양 모두 매사냥이 왕족, 귀족 중심으로 향유되면서 수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오락으로써 존재 가치를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韓)민족의 매사냥은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행해졌다. 고구려의 도읍지 국내성에 위치한 무덤의 벽화가 이를 증명한다. 한반도 매사냥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중국에서 전파되었을 확률이 높다. 북방 지역에서 전래된 매사냥이 고조선을 거쳐 삼국시대로 이어지면서 활성화된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삼국시대에 매사냥이 유행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남아 있다. 그리고 『일본서기』라는 역사책에는 백제 사람들이 일본에 매사냥 방법을 알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매사냥이 활성화된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특히 고려 충렬왕 때가 최고의 전성기였다. 직접 매사냥을 즐겼던 충렬왕은 매의 사육과 사냥을 담당하는 ‘응방’이란 관청을 두었다. 고려 때 문인 이조년이 쓴 『응골방』이란 책에는 매의 생김새, 훈련법, 치료법, 관리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매사냥은 일제강점기에 금지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통을 이어온 사람들에 의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매사냥의 전통 및 전승
매사냥은 그 자체가 ‘사회적 관습과 의례, 축제 행사’는 물론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표현되는 전통이다. 여기에는 새의 생태와 행동 및 생활환경에 관한 전통 기술 및 지식, 전통적인 매사냥 도구의 제작, 그리고 그와 관련된 언어 표현, 회화, 조형물, 시, 의식, 음악 등에 내재한 언어학적·예술적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 매사냥은 하나의 전통문화로서, 전수교육, 가족 내에서의 학습, 클럽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식 훈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매사냥의 본질은 실전 활동이므로, 주요한 비공식적 교육 방법은 노련한 매사냥꾼이 입문자에게 직접 기술을 보여주며 가르치는 방법이다.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지식의 전승은 주로 가족내에서 일어나며, 몽골·모로코·파키스탄·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에서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매사냥꾼들은 자녀를 훈련시켜 새를 다루고 새와 신뢰를 쌓는 방법을 가르친다. 이는 매에게 먹이를 주고, 손가락에 앉히고, 미끼를 이용해서 매를 부르는 등의 기술을 습득시키는 기나긴 훈련 과정이 다.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이러한 방식은 문화적 가치 및 전통을 전수하는 데도 동일하게 효과적이다.
중앙아시아 및 동아시아, 중동아시아, 북아프리카 및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매사냥의 전통 명맥은 끊겼던 적이 없다. 18세기부터 19세기 유럽에서 잠시 쇠락의 시기를 겪기도 했으나, 매사냥 전통은 이내 회복되어 점차 증가하는 도시 사람들과 전원 지역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유럽의 이주민들이 아메리카 대륙, 남아프리카, 오스트랄라시아(Australasia,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서남태평양 제도(諸島)를 포함하는 지역)에 정착하였을 때 그들과 함께 들어온 다양한 전통중에는 매사냥도 있었다. 매사냥은 심지어 아조레스(Azores) 제도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매사냥의 전통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은 전원 환경에 기반을 둔 매사냥의 전통을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요인이다. 매사냥의 전통은 60여 개 국가에서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 사막의 개활지에서는 장거리를 비행하는 매를 날리는가 하면, 아시아의 초원 지역에서는 매뿐 아니라 몸집이 큰 독수리도 날린다. 한편, 유럽 대부분과 일본, 중국의 일부 지방, 파키스탄과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림지대 및 혼합농지에서는 참매나 새매와 같이 단거리를 비행하는 새를 선호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서식지가 다양하여, 날개가 짧거나 긴 맹금을 모두 날릴 수 있다.
유럽의 매사냥꾼들은 경기 대회 같은 특별한 국내외 사교 모임에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를 마칠때에는 연설을 하고 나팔을 불어 그날의 사냥감에게 경의를 표한다. 오스트리아·벨기에·체코 공화국·헝가리·스페인 등의 많은 유럽 국가들은 사냥의 성공을 기원할 수 있도록 성당에서 매사냥의 수호성인에게 미사를 올리는 전통이 있다. 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매사냥꾼들은 매에게 포획된 새나 동물을 두고 신의 이름을 되뇌기도 한다. 또한 매사냥은 공동체에 자부심과 정체감을 만들어 주는 원천이다. 예를 들어 모로코 중서부의 크와셈(Kwassem) 부족은 지난 수세기 동안 매사냥 기술 덕분에 명예를 얻고 인정을 받아 왔다. 일부 매사냥꾼 연행자 가문은 널리 알려져 ‘비아즈(Biaz, 매꾼)’라는 성(姓)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많은 매사냥 단체나 클럽에서는 좀 더 공식적인 학습 체계를 개발해왔으며, 이를 통해 국가공인자격증 취득을 위한 견습 프로그램이나 강좌를 도입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체코 공화국·독일·헝가리·이탈리아·포르투갈에서는 합법적으로 매사냥꾼이 되려면 매사냥꾼 지원자가 국가공인시험을 통과하여야만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매사냥에 관한 지식을 전승할 책임을 부담하는 보유자 명인 제도를 개발하여 왔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각 주의 협회별로 ‘매사냥꾼 명인’을 지정하였으며 새로운 매사냥꾼을 지도하고 훈련하는 과정을 돕도록 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부르키치(Burkytshi)·쿠스베기(Kusbegi)가 제자들에게 기술을 전수하여 매사 냥에 관한 유산을 전승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10월 초부터 이듬해 해동(解凍) 될 때까지 매사냥이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의 매는 ‘해동청’, ‘해청’이라 하여 용맹하고 사냥을 잘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한편 매사냥을 할 때에는 매의 꽁지에 소리를 나게 하는 방울과 주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시치미’를 달았다.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은 바로 자기 집에 날아온 매의 시치미를 떼고 자기 매인 척하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사냥에 쓰는 매를 사육하고 사냥하는 사람을 응사(鷹師)라고 하며, 현재 우리나라에는 2명의 응사가 시도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매사냥의 전통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