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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치는 보길도 산릉
간밤의 눈 갠 後에 景物이 달랃고야
이어라 이어라
압희 萬頃琉璃 뒤희 千疊玉山
至匊悤 至匊悤 於思臥
仙界ㄴ가 佛界ㄴ가 人間이 아니로다
――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 「漁父四時詞」에서
주) 지국총(至匊悤)은 배에서 노를 젓고 닻을 감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어사와(於思臥)는 ‘어여차’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 산행일시 : 2018년 2월 3일(토), 흐림(눈, 바람)
▶ 산행인원 : 14명(영희언니, 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산정무한, 인치성,
수담, 사계, 두루, 향상, 신가이버, 오모육모)
▶ 산행거리 : 도상 11.2km
▶ 산행시간 : 5시간 49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02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22 -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
05 : 21 - 땅끝마을 갈두항
07 : 00 ~ 07 : 40 - 보길도 산양항
08 : 11 - 정자리 정자초교, 산행시작
08 : 35 - 암릉, 140.3m봉
08 : 58 - 북바위(217m)
09 : 28 - 남은사(南誾寺)
10 : 30 - 385.3m봉
10 : 38 - 망월봉 갈림길
10 : 57 - 망월봉(望月峰, 365.9m)
11 : 22 ~ 12 : 00 - 망월봉 갈림길, 330.9m봉
12 : 08 - 뽀래기재
12 : 38 - 누룩바위
12 : 46 - 적자산(赤紫山, 격자봉 格紫峰, 431.1m)
13 : 07 - 수리봉(407.3m)
13 : 32 - 큰길재, ╋자 갈림길 안부
14 : 00 - 부용리 주차장, 산행종료
익일 16 : 0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보길도 산행지도
▶ 보길도, 북바위(217m)
새벽 4시쯤이다. 무박산행의 자동모드로 잠을 깨고 차창 밖을 내다보니 눈보라가 세차게 몰
아친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해남을 지날 때는 설원을 달린다. 우리 차 바로 앞에
눈보라를 뿌옇게 일으키며 달리는 트럭을 제설차인 줄로만 알았다. 땅끝마을에서 멈추는 보
길도 가는 트럭이었다. 이 어둑한 새벽 눈보라치는 땅끝마을 갈두항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보길도로 등산하러 가는 사람은 우리들뿐이다.
대간거사 님은 이런 날씨에도 배는 출항한다지만 이따 오후 4시에 돌아오는 배편이 어떨지
동분서주하며 관계요로에 알아보았으나 그때 가 보아야 알 수 있다는 어정쩡한 답변만 들었
다. 만약 기상악화를 핑계하여 그냥 달마산이나 두류산을 가자 하고 산행지를 변경하려 했다
면 반란이 일어났을 것. 다들 무사태평일뿐더러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하고 들떠 있었다.
미리 아침요기를 해 둔다. 선착장 한 쪽에 있는 조그만 바람막이 비닐막사에 들어가 어묵탕
끓인다. 동절기 출항시간은 7시다. 6시가 넘고 주민등록증을 제시하여 배표를 산다. 단체인
우리 모두가 매표소 앞에서 줄을 서야 하느냐, 아니면 한 사람이 주민등록증을 모아 일괄 제
시해도 되느냐에 대해 의견이 갈렸으나 후자가 맞았다. 요금은 1인당 편도 6,500원, 버스는
25,000원이다.
우리가 맨 먼저 왔음에도 우리 버스보다 먼저 여러 대의 승용차와 두 대의 긴 트럭을 싣기에
이러다가 우리 버스는 싣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해했으나 염려 없다. 차고가 운동
장만큼이나 넓은 ‘드림 장보고’호다. 바람이 약간 불어대지만 워낙 큰 배라서 미동조차 않는
다. 배는 곧 망망대해로 나아간다. 눈발인지 해무인지 잔뜩 흐려 잿빛 바다 말고는 보이는 것
이 없다.
배는 40분 걸려 노화도(蘆花島) 산양항에 닿고, 서둘러 장사도(長蛇島) 보길대교 건너 보길
도(甫吉島)로 간다. 북바위는 정자리 정자초교 뒤쪽에 있다. 눈발이 거칠게 몰아친다. 길 없
는 생사면을 뚫고 가자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일반 등로를 찾는다. 동네사람에게 묻
자 해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정자교회 오른쪽으로 임도가 보이기에 얼른 잡았으나 임도는
산자락만 맴돈다.
억새 숲 헤치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대숲 지나고 울창한 상록수림을 간다. 어둑하다. 길 없는
‘우리의 길’이다. 눈보라는 피했지만 우리 찾는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지레 수그리고 간다. 밀
림은 하늘을 가렸다. 우리로서는 좀처럼 대하기 어려운 남부수종이라 황칠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감탕나무, 가막살나무 등은 알지 못하고 기껏해야 동백나무, 사스
레피나무 정도만 알아본다.
북바위가 가까웠는지 굵직굵직한 바위를 지나고 암벽과 맞닥뜨린다. 일부 일행은 왼쪽 사면
으로 돌아 오르고 다수는 크랙 비집어 직등한다. 잡목 억센 가지가 버팀대다. 그렇게 한 피치
올라 140.3m봉이다. 다시 밀림을 헤치며 나아가고 오르막은 잡목 섞인 바윗길이다. 살얼음
언 너른 암반에 올라선다. 흐리지만 조망이 좋다. 수구목재 건너편의 282.8m봉이 심산준봉
이다. 북바위는 곁에 오뚝하다.
2. 산행 들머리인 정자리 정자초교(폐교) 뒤편, 앞은 멀구슬나무 열매
3. 북바위 가는 생사면, 주로 동백나무, 사스레피나무 등 상록수림이다
4. 북바위(217m)에서, 스틸영 님
5. 북바위에서 내려다본 보길대교
6. 오른쪽 멀리는 보길도 광대봉
7. 수구목재 건너 282.8m봉, 심산준봉으로 보인다
▶ 망월봉(望月峰, 365.9m), 적자산(赤紫山, 격자봉 格紫峰 431.1m)
북바위(217m) 남쪽을 내리는 길은 북쪽과는 다르게 잘 났다. 여태 밀림 헤치느라 다소 지체
하였던 시간을 벌충하고자 줄달음한다. 야트막한 안부 지나고 여러 갈래의 길들이 출몰하여
오히려 헷갈린다. 비가 오면 도랑일 수로가 등로로 변했다. 너덜 덮은 낙엽 위로 눈이 약간
쌓였다. 소로 양쪽에는 조그만 돌탑들이 줄을 이었다.
387.6m봉 남릉 갈림길에서 위쪽에 있는 남은사를 향한다. 덩굴 숲 터널을 지나고 석탑 옆으
로 누옥 한 채가 있다. 남은사 절집이다. 중은 출타 중인지 드나든 기색 없이 조용하다. 그 옆
으로 숲속에 여러 개의 반석이 놓인 쉼터가 고적하다. 남은사 오름 길에 스틱을 찾으러 갔다
가 길을 잃은 신가이버 님을 기다리며 오래 휴식한다.
절 옆이라 입산주 탁주가 조심스럽다. 곡차라 하고 마신다.
수필가이자 교육자인 오덕열의 수필, 「남은사 가는 길에」(2008)의 첫 머리다.
“남은사(南誾寺)는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였던 보길도(甫吉島)의 중마산에 있는 작은 암자
다. 남은사를 찾은 것은 십여 년 전 노화중학교에 근무하던 때였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가 아니다. 고산은 세 번이나 유배(경원 ․ 기장, 영덕, 삼수)를
갔으나 보길도는 아니다. 인조반정 이후 해남에서 지내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제주도로
가려다가 보길도에 들러 은거하였다. 남은사는 보길도에 있는 유일한 절이라고 한다.
날씨는 시시각각 변덕을 부린다. 눈보라쳤다가 햇볕이 나기를 반복한다. 신가이버 님이 어련
히 찾아올까 몇 번 소리쳐 불러주고 망월봉을 향한다. 남은사 위쪽 387.6m봉(중마산)은 들
르지 않는다. 완만한 숲속 사면을 단숨에 내려 임도와 만나고 임도 따라 오른 ╋자 갈림길 안
부는 선창재다. 곳곳에 전망이 트이는 암반이 있어 어둑한 숲속 길이 그다지 심심하지 않다.
암봉인 385.5m봉도 그 아래 암반도 경점이다. 건너편 산릉과 사면의 동백나무 숲에 쌓인 눈
은 색다른 가경이다. 385.5m봉 넘고 ┣자 망월봉 갈림길이 나온다. 망월봉까지 남서진 1km
다. 다니러간다. 평지다. 바윗길 몇 번 지나고 슬랩 오르막이다. 고정밧줄이 짧게 달려 있다.
그래도 빙벽이라 상당히 미끄럽다. 망월봉. 사방이 트여 망월하기 아주 좋은 봉우리다.
망망대해 수평선 너머로 햇빛이 눈부시다. 밤이라면 달빛이 교교할 터. 다만 생각한다. 슬랩
을 살금살금 내리고 냅다 줄달음하여 금방 삼거리다. 때마침 (또 하나의 버너와 코펠을 가지
고 온) 신가이버 님을 만난다. 라면 끓여 점심밥 먹는다. 산중에서 이렇게 추울 때가 또 있었
던가? 라면발 집는 젓가락질이 어렵다. 전에 없던 수전증이 생긴다.
8. 지나온 능선
9. 왼쪽은 387.6m봉(중마산), 가운데 안부께에 남은사가 있다
10. 남은사 위쪽 387.6m봉(중마산)
11. 가운데가 남은사 위쪽 387.6m봉(중마산)
12. 남은사 위쪽 387.6m봉(중마산)
13. 북바위 지나서부터 등로는 잘 났다
평평한 330.9m봉 지나고 한 피치 바짝 내리면 산행교통의 요충지인 ╋자 갈림길 안부는 뽀
래기재다. 벤치 놓인 쉼터이기도 하다. 보옥리 보죽산을 들르지 못하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나무 끝가지 훑는 바람소리가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진다. 오
후에 배가 갈 수 있을는지 슬슬 불안해진다. 429.0m봉 넘고 평탄한 등로다. 종종걸음 한다.
등로 옆 데크계단 놓인 누룩바위를 들른다. 앞뒤 산정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쌓인 눈이 고산
의 눈보라가 되어 흩날린다. 잠깐 내렸다가 한 피치 길게 오르면 적자산이다. 데크계단 오르
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으나 나무숲이 같은 높이여서 별로 전망할 것이 없다. 그 아래 공터
에서 산릉 너머 바라보는 망월봉이 한 경치다.
적자산(433m)은 보길도의 주봉으로 산 이름은 고산 윤선도가 명명하였다. 원래 이름은 격
자봉(格紫峰)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적자봉으로 변하였다. 고산 윤선도의 「격자봉」이라
는 시에서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즉, ‘자미(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 잡으려면’ 자신을 먼
저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병자호란 때 인조의 항복을 ‘잘못된 마음’으로 보았던
것이 아닐까?
높은 파도 거대한 물결 가운데 洪濤巨浪中
우뚝 서서 진퇴를 하지 않나니 特立不前却
자미의 마음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欲格紫微心
먼저 부끄러워하며 바르게 되어야지 要先恥且格
한편, 두산백과는 “해가 수평선으로 가라앉을 때 하늘과 바다가 붉은색·보라색·노란색·주황
색으로 물든 무지개빛 노을은 신비롭다. 산정에서 이 장관을 바라보면 신선이 된 듯한 황홀
함을 느낀다. 이처럼 붉은색과 보라색 등의 찬란한 빛이 황홀경을 되쏘는 봉우리라서 ‘적자
봉’이라 한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달리한다. ‘격자봉’이 ‘적자봉’으로 변한 건 단지 따뜻한 남도지방의 나른
한(또는 게으른) 발음 탓이라고 본다. ‘격’은 혀를 말아 안쪽으로 넣어서 내는 소리인데 반하
여 ‘적’은 혀를 바깥으로 자연스레 내면서 나는 소리다. ‘격’보다 ‘적’이 발음하기 더 쉽고 편
하다. 이를 테면 ‘형님’을 ‘성님’으로 부르듯이.
14. 동백나무는 더러 꽃이 피었으나 심한 겨울 가뭄으로 말라버렸다
15. 보옥리와 보죽산(甫竹山, 뽀족산, 197.1m)
16. 보죽산(甫竹山, 뽀족산, 197.1m)
17. 멀리는 남은사 위쪽 387.6m봉(중마산)
18. 망월봉 정상에서
19. 망월봉에서 바라본 적자산
▶ 수리봉(407.3m), 부용리(芙蓉里)
적자산에서 수리봉은 0.9km 한달음 거리다. 수해(樹海)에 잠수하여 자맥질 한 번 없이 머리
내밀면 돌무더기 쌓인 수리봉이다. 조망 좋다. 광대봉 너머로 완도의 상황봉이 가깝다. 눈이
시도록 둘러보고 하산한다. 모처럼 가파르게 뚝뚝 떨어진다. 얼음이 살짝 깔린 슬랩에는 가
드레일 밧줄이 달렸다.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 큰길재이다. 왼쪽 부용리로 향한다.
밀림의 길고 긴 터널을 한참 지난다. 이윽고 세상이 훤해지고 곡수당(曲水堂)이 나온다. 이
제는 잠시나마 문화생활 한다. 곡수당은 고산의 아들 학관이 거주하며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지었다. 계곡 건너 동와, 소은병(小隱屛), 귀암을 들여다보고, 낙서재(樂書齋) 뜰에 모여 기
념사진 찍는다.
병자호란(1636년) 때의 일이었다. 고산(1587∼1671)의 시장(諡狀) 중 일부다. 시장은 재
상이나 유교에 밝은 사람들에게 시호(諡號)를 내리도록 임금에게 건의할 때에, 그가 살았을
때의 일들을 적어 올리던 글이다. 고산의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공이 배에서 내리지 않고 장차 탐라로 들어가서 거하려고 하다가, 배가 보길도를 지날 적에
바라다보니 산봉우리가 수려하고 골짜기가 깊숙하였으므로, 공이 ‘여기에서 살아도 좋겠
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나무를 베어 길을 내었다. 산이 주위를 에워싸서 바닷소리도 들리지
않고 청량하고 삽상하며 천석(泉石)이 기막히게 아름다워 참으로 세상 밖의 가경이었으므로
마침내 부용동(芙蓉洞)이라고 명명하고는, 격자봉(格紫峯) 아래에 집을 짓고 낙서재(樂書
齋)라고 편액을 내걸고서 노년을 보낼 계획을 세웠다.”
그가 이곳에 거처하며 읊은 「황원잡영(黃原雜詠)」이라는 시다. 무척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시제의 황원은 보길도의 앞바다라고 한다.
봉래로 착각하고 들어와 홀로 진경 찾으니 蓬萊誤入獨尋眞
물물이 맑고 기이하며 하나하나 신비로워 物物淸奇箇箇神
가파른 절벽은 천고의 뜻을 말없이 간직하고 峭壁默存千古意
아늑한 수풀은 사시의 봄빛을 한가히 띠었어라 穹林閑帶四時春
어찌 알랴 오늘 산중의 이 나그네가 那知今日巖中客
뒷날 그림의 소재가 되지 않을 줄을 不是他時畫裏人
진세의 재잘거림이야 말할 것이 있으랴만 塵世啾喧何足道
돌아갈 생각하니 신선들 책할까 두렵도다 思歸却怕列仙嗔
동 시대 서인의 거두였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은 말년에 제주도로 귀양
가다 배가 폭풍에 밀려 본의 아니게 이곳에 들렀다. 그는 아래의 시 한 수를 지어 이곳 바위
에 새겼다. 귀양 가는 이의 마음과 스스로 이곳에 둥지를 튼 이의 마음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이나 크다.
여든 셋 늙은 몸이 八十三歲翁
멀고 찬 바다 한 가운데 있구나 蒼波萬里中
한 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이기에 一言胡大罪
세 번이나 쫓겨나니 역시 궁하다 三黜赤云窮
북녘의 상감님 우러르며 北極空瞻日
남녘바다 바람 잦기만 기다리네 南溟但信風
이 담비 갖옷 내리신 옛 은혜에 貂袋舊恩在
감격하여 외로이 흐느껴 우네 感激泣孤哀
낙서재 아래 밭마다 심은 황칠나무 묘목을 들여다보며, 가시가 없으니 엄나무는 아니고, 아
주까리가 맞네, 그르네 하며 부용리 주차장까지 왔다. 황칠나무 약재를 판매하다는 광고를
보고야 알았다. 말로만 들었지 보지 못한 나무다. 두메 님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화장실에
들르고 매점에서 나오는 동네 주민을 만났다. 보길도를 나가는 배편은 오전 10시 30분 이후
로 끊겼다는 소식을 듣는다.
난감하다. 빈말이 아니라며 노화농협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보여준다. 혹시 막배가 있을
지 모른다며 한 가닥 실낱같은 여운을 남긴다. 오후 2시다. 문화생활의 연장으로 느긋하게
세연정이며, 명승인 고산 윤선도의 원림을 구경해야겠다는 계획은 단번에 깨졌다. 혹시 있을
지도 모를 막배가 떠날라 산양항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간다.
20. 적자산 가는 도중 누룩바위에서 망월봉
21. 적자산 가는 도중 누룩바위에서
22. 적자산 정상에서 바라본 보죽산(뽀족산)
23. 멀리는 수리봉에서 바라본 완도 상황봉
24. 부용리 가는 길
25. 고산 윤선도 유적지 낙서재에서
(부기)
요행은 없었다. 눈보라치는 산양항은 썰렁하다. 매표소 창문에 공책 뜯어 ‘기상악화로 인해
결항입니다’라는 글귀만 써 붙이고 아무도 없다. 대합실은 텅 비었다. 언제쯤이나 배가 뜰 수
있는지, 막배는 있을는지 물어볼 데가 없다. 선사 전화번호를 배 출항시간표 밑에 썼지만 전
화를 받지 않는다. 동네사람들도 통 보이지 않는다.
노화읍으로 뒤돌아간다. 시장통에 좌판 벌인 할머니에게 묻는다. 별로 신통한 대답을 얻지
못한다. 시장통 옆에 있는 해양경찰파출소를 찾아냈다. 스틸영 님이 여러 정보와 연락처를
수집했다. 오늘은 출항이 없다는 것. 내일 출항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라는 것. 태풍주의보는
발령되지 않았지만 선사가 일기를 보고 자체로 출항을 결정한다는 것. 여하튼 선사에 수시로
전화하여 출항가능 여부를 알아보라는 것.
무릇 난리는 혼자 당할 때 난리이지 여럿이 당하면 난리가 아닌 법. 오늘은 긴 시간 기분 좋
게 즐길 일이 남았다. 우선 출출한데 생선회부터 먹으러 가자 하고 보길도로 건너간다. 노화
도 사람들이 보길도의 횟집과 민박, 팬션 등을 추천한다. 문 연 횟집이 드물다. 보길대교 건
너 왼쪽 해변의 첫 번째 횟집에 들어갔다.
먹거리에는 산정무한 님이 일가견이 있다. 산정무한 님을 따라갔다. 횟집 종업원 아주머니와
흥정하였다. 자연산 감성돔 4인 1상에 12만원이라고 한다. 너무 비싸다며 우리가 감성돔을
한두 번 먹는 것도 아니고 한 상에 8만원으로 먹는다고 하였다. 실제 그렇다. 아주머니는 무
슨 농담을 그리 심하게 하느냐며 눈에 흰자위만 보이도록 힘준다. 사장님에게 내락을 받으러
가더니 10만원에 하자고 한다. 그렇다면 스끼다시를 많이 내놓기로 하고 1상 10만원에 낙착
하여 4상을 주문한다.
방바닥이 차갑게 쓸쓸하던 횟집이 갑자기 바빠졌다. 우리 뒤로 다른 손님들도 들어온다. 스
끼다시는 전복회와 산낙지회, 멍게 약간 그리고 삶은 노란호박, 톳 등이다. 감성돔회는 큼지
막하게 썰었다. 한 점을 씹어 삼키는데 입이 아프다. 회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먹었
다. 당분간 회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다 먹지 못한 회는 매운탕에 넣었다.
배가 부르고 얼근하니 뭍으로 갈 배 생각이 난다. 완도행 마지막 항차는 어떨지 몰라 동천항
에 가보기로 한다. 땅끝마을로 가는 산양항과 완도 가는 동천항은 산굽이굽이 돌아 6.8km나
떨어져 있다. 저녁 6시이면 이곳도 어둡다. 동천항은 몇 개 가로등이 불 밝혔으나 찬바람만
쌩쌩 불어댈 뿐이다. 이로써 오늘은 확실히 결항이다.
이제는 숙박을 걱정할 일이다. 노화읍 하나로마트에 들러 식수 사고, 소주, 맥주, 사이다도
사고, 과자, 과일도 사고 다시 보길도 간다. 횟집 옆에 팬션이 있었다. 여성동지 3명은 별도
1개 방, 남성동지 12명도 넓은 거실 딸린 1개 방에 들었다. 2차의 술판을 벌인다. 온돌인 거
실 바닥이 얼음장이라 베개 하나씩 깔고 앉아 불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마신다.
두 시간이 지나도록 거실 바닥은 얼음장 그대로다. 겨우 1/3분 정도만 미지근하다. 7도였던
실내온도가 1도 오르는 데 20분이 걸린다. 그것도 우리 체온 때문이리라. 사장을 불러 대책
마련을 요구하자 1주일동안 불을 넣지 않은 방이라서 그런다며 두 시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기다린다. 밤 10시가 가까워지도록 그대로다. 4명은 다른 방으로 옮긴다.
새벽 2시가 돼서야 거실과 방이 뜨뜻해진다. 비로소 몸이 풀린다.
이튿날 아침.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어댄다. 그래도 배가 뜰지 몰라 산양항으로 간다. 매표
소에 잠깐 들렸다는 매표원은 오늘도 결항이라고 한다. 배가 언제쯤 뜰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단다. 팬션으로 뒤돌아간다. 가는 길에 아침거리로 편의점에 들러 햇반과 라면을 사기로
하고.
모두 풀이 죽었다. 오늘 하루를 무엇을 하며 보낼까? 아무런 생각이 없다. 대간거사 님이 웃
자고 한 말에 웃는다. 섬에 며칠간 갇히다 보면 너나없이 신경이 예민해져 싸움판이 벌어질
것이라고 한다. 우선 누가 이런 보길도로 오자고 했느냐며 책임지라고 하지 않을까 맨 처음
보길도를 꺼낸 자기가 그 과녁이 될 것을 걱정한다.
해결사는 스틸영 님이었다. 힘없이 가는 버스를 잠깐 멈추게 하더니 중대발표 한다. 동천항
에 완도 가는 배가 7시 10분에 있다고.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칙칙하던 버스 안 분위기가 일
변하여 환해지고 만세 만세 부르며 동천항으로 씩씩하게 달려간다.
첫댓글 창하며 냅다 려가셨네요
드라마틱 하네여 언제 완도 상황봉을 중심으로 완도주를 함 잡는게
예 거기는 다녀왔서유,,
같이 해서 무섭지 않았습니다~
하룻밤의 정이 새록새록이었습니다.
섬산행의 a~z를 경험한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경험 추억속에서 아련히 아름답게 빛나겠네요.보길도 산행 덕에
이번주는 가는줄 모르게 바삐 움직이네요.
반전이 있어 즐거운 합숙이었네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 베리 굿이에요.
@메아리(김남연) 다리 있는 섬만 가요~~~~
시간 남을 때 뾰족산이나 다녀오시지 그랬어요. 참 조망도 좋은데...
킬문 님 말씀 들으니 더욱 아쉽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