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모셨던 입석 김여사님이 별세하신 후 5일이 되였다.
오늘이 삼우제 날이라
오전 일찍 삼우제를 마친 자녀들을 대표하여 막내 아들 내외가 인사차 방문했다.
공직에 종사하며 성격이 자녀들 중 가장 착하다 하여
김여사님의 히스테리 현상을 고스란히 받은 자녀이기도 하다.
'엄마는 아파 죽겠는데 잠이 오냐'는둥 새벽 3-4시에 전화하여 놀란 자녀들이 한둘이 아니다.
당신이 거절한 무릎수술 해주지 않았다고 두고 두고 원망을 많이 받았단다.
먹고 죽게 쥐약 사달라는 말을 서슴없이 자녀들에게 전화도 많이 하셨고
심부전증으로 몇번이나 죽음의 입구에서 회귀하셨고
'나는 할 말은 하는 성격이라 이해 하라'면서 아내 역시 원망도 많이 받았다.
(우측에 수건을 쓰신 김여사님)
(우측에서 3번째 하늘색 상의를 입으신 김여사님)
'여기서 모셔주지 않았으면 우리 형수가 먼저 쓸어졌을겁니다'
오랫동안 모셨던 형수에 대한 고마움도 알게되였다.
큰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모실 당시
며느리가 충주에 다녀오자 '외출하고 왔으니 큰 절 해라~'며 시집살이를 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예전 일들을 나누면서 서로 수고 했다고 격려했다.
당연한 일들이라 생각하겠지만 워낙 깐깐한 분이신것을 서로 알기에 웃으며 나눌수 있었다.
일어 나면서 사례를 하는데 뜻 밖에 많이 넣었다.
별도로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해 달라고 따로 주기도 했다.
아침 일찍 부터 죽음에 대한 전조증상이 나타나 오전에 친구들과 함께 임종전 예배를 드렸고
죽음을 앞두고는 두번의 안수기도를 했는데 두번째 기도후 10여초 후에 별세하셨다.
우리는 김여사님의 별세 후 다음날에는 서로 축하?하며
죽음의 복을 받고 편안히 숨을 거둔 김여사님을 추억하며 특별 음식을 시켜 먹으며 자축하였다.
어르신들의 기도제목중 하나가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이다.
기도하다가, 잠자다가, 친구들의 기도를 받으며 죽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래서 김여사님을 우리는 부러워 한다.
비록 무화과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3장 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