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苦難)
롬1:17, 히13:13
1. 들어가는 이야기
四旬節(사순절) 기간 중 오늘은 苦難(고난-suffer)에 대하여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성경은 苦難(고난)은 기쁘게 여길 만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3:10) *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 *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sufferings)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2:3).
*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suffered)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느니라(히5:8-9)-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13:12-13).
3. 苦難(고난-suffer)을 받으라, 무슨 뜻인가?
첫째. 苦難(고난-suffer)-苦楚(고초)-艱難(간난)-苦生(고생)-苦痛(공통)-患難(환난)-괴로움-어려움-힘듦 등은 同族語群(동족어군)에 속하는 말들입니다.
苦難(고난-suffer)이란? 영적인 것이든-육적인 것이든-운명적이고 강제적인 것이든 간에 각 사람이 무엇인가 이루기 위하여-무엇인가 지키기 위하여 甘受(감수)하는 과정에서 實存(실존)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들끓는 아우성이요-답답함이요-목마름-치열함-미칠 것 같은 몸부림이요-지극정성-안타까움-잠 못 이룸-뜨거움-아픔-사무침-괴로움-앉으나 서나 간절히 사모함이요-이 자리에서 당장 죽어도 좋다 하는 각오로 목숨을 내대는 투쟁(빌2:30, 살전2:8)...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것을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9)” 라고 울부짖었고, 바울 사도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18, 고후11:22-33)” 하셨습니다.
둘째. 영적 일이든 세상일이든 공짜로-거저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결코!
바울 사도는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sufferings)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하셨고,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그 능욕(the disgrace)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13:13)”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면류관-성공-일류가 되는 데도 고난을 甘受(감수)해야 합니다. 스톡홀름 대학교 앤더슨 에릭슨 박사는 <10년 법칙-the ten-year rule>에서, “한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성과와 성취를 이루려면 최소 10년 지속적-집중적-정교한 훈련을 해야 한다. 실제 사회 경험으로 보아도 자기 분야에서 한 획을 긋는 인물로 성장하려면 최소한 10년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노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이것은 직업인(프로)으로서의 絶對不變(절대불변)의 법칙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말콤 그래드웰은 이것을 “1만 시간: 하루 3시간 씩 10년”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참고: 말씀의 샘물 고전예화 439호, 518호, 563호).
셋째. 苦難(고난)의 형태가 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시대의 고난(고후11:22-33)이 육체적 고난이었다면, 우리 시대의 고난은 돈의 위험-異性(이성)의 위험-異端(이단)의 위험-사회, 정치, 매스컴의 위험-무엇보다 “우주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다” 하고 “인간복제를 현실화” 시킨 과학 기술의 위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눅5:38)-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