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9일(수)■
(누가복음 6장)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묵상/눅 6:26-31)
◆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어떤 사람의 인생관은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이다. 진리를 말하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려고 하며 무엇이 진리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느 것이 다수가 지지하는 사상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평생 남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서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은 과연 '착한 사람'일까?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평가될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주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충격적인 판정을 하신다. 그런 모습이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이란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사람들은 화들짝 놀랄만한 경고다.
이 말씀은 나의 인생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말씀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으려고 하는 인생관인가, 아니면 진리를 추구하는 인생관인가? 진리를 위해 비난 받을 것도 불사할 사람인가, 아니면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진리마저 내던질 사람인가?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조금도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장 정확하고 뛰어나게 해석한 사도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라고 했다. 주님께서 경고하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인생관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닮아가고, 그를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롬 14:18) 아멘.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으려는 기대를 버려라. 아니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으면 안 된다. 그것은 내 인생이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섬기려면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아니오'라고 거절할 수 있어야 하며, 관계가 불편해질 각오가 되어야 한다. 심약한 마음을 버리고 믿음으로 단단히 서 있으라.
◆ 그러나(But)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 하며
26절과 이어진 말씀에 '그러나'로 시작하는 내용이 문맥에 맞지 않아서 어색하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화가 있다. 그러나 일부 사람이 너희를 비난하면 복이 있다는 식이 되어야 문맥이 맞다. 그런데 주님은 엉뚱한 말씀을 하신다. 갑자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무언가 생략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진리를 따라 살 때, 반드시 대적하는 사람이 생기고,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는데, 그런 상황이 발생할 때 우리도 똑같이 그를 미워하지 말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우리가 진리를 따르는 자임을 더욱 분명히 해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러나'로 문장이 시작된 것이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는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한다면 사기꾼의 사기나, 보이스피싱도 기쁨으로 당해주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그렇게 어리석게 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 완전하신 주님도 어떤 도움 요청은 단호히 거절하셨다(눅 12:14).
이 말씀은 신앙과 진리 때문에 심히 조롱당하고 몹시 핍박받을 때, 신앙 때문에 내 겉옷을 빼앗기는 일을 당할 때,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행하는 자에게 관용을 보여야 함을 말씀하심이다(빌 4:5). 이러한 관용은 그들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일깨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모욕당하시고, 뺨을 맞으셨으며, 겉옷뿐 아니라, 속옷마저 빼앗기셨다(요 19:23). 그러나 십자가상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오늘 말씀의 완벽한 본을 보이셨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본을 우리가 어떻게 본받을 수 있을까? 내 결심과 노력으로는 어림없다. 그런 것은 자기 의에 불과할 뿐이다.
오직 주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여 주님의 어떠하심을 맛봄으로써 우리는 주님을 닮을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을 안 만큼만, 주님을 믿은 만큼만 실천이 가능한 자임을 잊지 말자.
오늘 본문의 주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후에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주님 말씀을 실천했고, 다른 제자들도 그러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더욱 알려고 하며, 더욱 깊이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자.
주 예수님,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 살게 해주십시오. 주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날마다 주님을 배움으로써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