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여성은 릴리트래요
박옥희
인류 최초의 여성이 이브가 아니라니! 놀랍고 충격적이었어요.
옆에 앉은 젊은 친구도 “왠 일이래요?”
우리는 서로의 무식을 한탄하면서 강의 속으로 빠져들었지요.
2014년 봄, 용산 아이파크 문화센터에 개설된 인문학 강좌에 등록했어요.
임헌영 교수의 강의였는데, 수업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시작으로 유럽과 중동, 러시아의 역사와 문학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강좌는 진행되었지요. 교수님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매력있는 목소리가 어우러진 흥미진진한 강의였답니다.
2016년 가을학기 첫 강의 제목은 <인류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유혹녀인 아담의 첫 아내 릴리트>였지요.
유대 신화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여자로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이브와는 달리 하느님은 그녀를 아담과 동등하게 흙으로 만들었답니다. 호색적인 여신이래요. 하느님의 노여움으로 낙원에서 쫓겨난 그녀의 죄명은 다양하지요. 우선 최초의 성범죄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그녀의 이름을 장식합니다. 히브리어로 “밤의 괴물”을 의미하는 이름이 상징하는 것처럼, 잠든 남자와 정을 통하는 악령이래요. 음탕하고 사악한 아담의 여자였기 때문에 하느님은 아담을 보호하기 위해 낙원에서 추방시켰대요. 우리네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거지요. 그래서 아내의 자리는 이브에게 넘겨주고 그녀는 쫓겨났지요. 이브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말하자면 당당한 조강지처의 자리가 아닌지라 그녀는 순순히 물러났어요. 그렇지만 그녀도 하느님의 창조물로써 아담과는 사실혼 관계였다는 내용이 흥미로웠어요.
아랍 전설에 모든 악령은 릴리트가 출산했다고, 냉혹, 사악. 아비 모르는 사생아 양산 등, 죄명은 끝없이 이어져요. 언젠가 몸매가 유난히 뛰어나게 아름다운 벌거벗은 여체를 수많은 뱀들이 칭칭 휘감고 있는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인이 릴리트였지요.
릴리트에 관한 이야기는 유대 신화 외에도 이슬람 세계에 남아있다고 하네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데이아(Medea)는 남편의 불륜을 이유로 두 아들과 남편을 죽인 끔찍한 악녀랍니다. 많은 후대 작가들이 그녀를 변명하는 글을 썼어요.
문학 강의에서 들은 내용입니다.
크리스타 볼프(Christa Wolf, 1929-2011)는 『메디아(Medea)』라는 소설에서 그녀를 악녀가 아니라고 썼답니다. 작가는 메데이아를 남성 권력과 집단적 폭력, 이방인에 대한 배타성, 야만에 대한 문명의 오만에 희생당한 제물로 평가했대요.
나도 릴리트 할머니를 변명하고 싶어요.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성과 관련지어 연구했어요. 모든 예술 행위 역시 성적 에너지가 위대한 작품으로 승화된다고 말했답니다.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1920)도 이렇게 말했지요.
“악마는 위대한 예술가요 위대한 학자다. 적어도 세계의 반은 악마가 만든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찾아보자면 선과 악에 관한 주장과 남녀의 성에 대하여 철학자들의 수많은 의견이 있어요. 그러나 두 사람의 의견만을 종합해 봐도 모든 예술은 악에 속하고 성적 에너지 역시 악에서 기인한다는 결론이 나오네요
존속 살인녀인 메데이아도 후손에 의해 재평가받아요. 그렇다면 넘치는 성적 에너지로 인해 저지른 릴리트의 죄도 용서받아야 하겠지요.
릴리트의 두 번째 죄명은 남편에 대한 불복종이래요.
다른 종의 동물들과 교합에 싫증난 아담이 릴리트와 결혼했어요. 아담이 그녀를 자신의 밑에 눕게 하자, 그녀는 크게 반항하여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래요.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그녀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이브와는 다르지요.
릴리트를 아담과 동등하게 흙으로 만든건 하느님의 실수일까요?
남녀차별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누구를 향한 것일까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이브는 조강지처 자리에서 신사임당처럼 남편에게 순종하고 정숙한 현모양처들의 조상이지요. 그래서 ‘여인’이란 호칭이 어울릴 것 같아요.
귀중한 본처 자리마저 마다하고 아담과 동등하기를 고집한 릴리트는 팜므 파탈(femme fatal) 의 길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여성’이라 부르고 싶어요.
나는 기꺼히 여성해방 운동의 선구자인 릴리트 할머니의 편이 될래요.
릴리트 할머니 화이팅!
『한국산문』 2023. 2월호
불어불문학 전공 2013년 9월 한국산문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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