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신포국제시장' 이야기/ 먹거리 골목 인천 신포동 중화루(中華樓)에서의 인천고교 동기생과 '2014년 송년회'를 마치고 동인천역(東仁川驛)을 향하는 길에 홀로 신포시장 일원을 감명 깊게 둘러보고 왔다. 나는 초중고 시절을 지금의 수도국달동네박물관이 있는 수도국산 기슭 인천 송현동에서 살면서 자유공원 기슭과 배다리 근처의 학교만을 주로 왕래하면서 살아서 신포동에 대하여서는 이렇다 기억이 없던 사람었는데 인천의 진면목을 이제야 비로소 볼 수 있어서였다. 솔직히 말해서 신포동 하면 지금의 신포동 외환은행 뒤의 호프집 자리에 있던 동방극장(東方劇場)만 생각난다. *. 신포동(新浦洞) 어원 신포동은 구한말 인천부 부내면(府內面)과 다소면(多少面)의 일부였던 곳으로 1983년 인천 개항(開港) 당시에는 '터진개', '탁포'등으로 불리워졌다. '터진개'란 바다로 통하여 열린 냇가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탁포를 '濁浦'라 한자로 쓴다면 인천바다에는 개펄이 많아서 바닷물이 흐리기 때문에 탁포라 한 것 같다. 이 '터진개'는 1903년에는 새로 번창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신창동(新昌洞)'이라 하다가, 일인(日人)에 의해서 1914년에는 일본식 지명인 '신정(新町)'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해방 되자 1946년 1월 1일에 일본식 한자 지명(地名)을 고칠 때 '신정(新町)'을 '신포(新浦)'로 바꾸었다. 1977년에는 사동(沙洞), 신생동(新生洞), 신포동(新浦洞), 답동(沓洞) 등을 통합하여 신포동(新浦洞)으로 확장 되었다. '사동(沙洞)'은 구한말까지 작은 섬이었고, '신생동(新生洞)'은 개펄이던 것을 일본인들이 매립하여 만든 간척지(干拓地) 거류지였다. 그래서 새 '신(新)', 포구 '포(浦)'라 하여 '신포동(新浦洞)'이란 지명이 생긴 것이라 생각된다. *. 신포국제시장(新浦國際市場) 신포시장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신포국제시장(新浦國際市場)' 현수막이다. 국제시장, 하면 부산 국제시장이 연상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 신포시장에서 가장 발길을 끄는 곳이 먹거리 골목이다. -사진 출처: 신포시장 홈페이지 골목 중에는 다국음식골목, 수선골목, 칼국수골목, 생선골목 등이 있지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사람들이 주욱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닭강정' 거리다. 강정이란 찹쌀가루 반죽을 적당하게 썰어서 말린 뒤에, 기름에 튀기고 꿀이나 엿을 발라 깨, 콩가루, 잣가루 따위를 묻힌 과자로, 흔히 엿강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닭강정의 시초가 되는 신포닭강정의 역사를 다음 그림을 통해 각자 알아보자. 옛날 제물포에는 우리나라의 다른 고장 어디나 있던 5일장이 없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1895년 경 청파동의 정홍택씨가 중구 내동, 터진개의 선창가(옛신포슈퍼마켓 자리)에 한옥집에서 붙박이 생선전을 열면서부터 근대식 상설 재래 신포 어시장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19세기 말엽에 중국산동성 출신인 강씨, 왕씨가 당시 우리 민족에게 낯설은 양파, 양배추, 당근, 토마토, 피망, 시금치와 푸성귀 등의 씨앗을 들여와 재배하여 인천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 중국인과 서양인들에게 파는 '신포동 푸성귀전'이 생겨났다. 이는 우리나라에 야채시장으로는 처음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다 보니 시장 속에 등대공원(燈臺公園)이 있다. 우 팔미도 등대 1903년에 한국 최초로 지었다는 '인천 팔미도등대(八尾島燈臺)'를 기념하기 위해서 비슷한 모양으로 세워 놓은 그 등대 모형 같다. 이런 구조물들은 신포시장을 찾는 정다운 사람과 연인들에게 인증샷을 찍어 기념할 수 있는 포토존을 위해 조성된 것 같다. 닭강정을 먹고 갈까 했더니 이어 나타나는 옛날 찐빵, 호떡, 산동만두, 공갈빵이 옷깃을 잡는다.이들은 신포국제시장답게 중국풍의 먹거리들인데 그 중 '공갈빵'의 유래는 무엇일까 궁금해서 스마트폰에게 물어 보았지만 그 어원을 묻은 이는 많은데 그 대답들이 시원치 않다. 묻는 이들이 이름에 얽힌 특유한 이야기거리가 있나 해서 묻는 것인데 그런 이야기가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나름대로 그 답을 꾸며 보고자 한다.
'공갈빵'이란 속이 텅 비고 속이 빈 중국식 빵의 낮은말[卑語]로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말이다. '공갈(恐喝)'은 아동어로 '공갈 치지마!'에서 보듯 거짓말의 낮은말이다. 그러니까 공갈빵이란 맛을 내기 위한 소도 넣지 않고 배만 불룩하게 만든 빵 같기도 하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맛있는 과자 같은 빵이라서 공갈빵이라 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길에 시장기를 눈으로 유혹하는 오색 만두, 김치, 고기 만두에서 그 만두(饅頭)에 관한 재미있는 어원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중국에서 위·촉·오(魏蜀吳)가 천하를 다투던 삼국시대인 서기 225년경에 있었던 이야기다. 제갈량(諸葛亮)이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그때 함께 있던 종자(從者)가 하는 말이 남만(南蠻)의 풍습에 따라 사람의 머리 아흔아홉 개(또는 49개)를 수신(水神)에게 제사지내야만 건널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제갈량이 살인 대신에 밀가루로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한 음식을 빚어 소로 돼지고기 등을 넣어 제사를 지내자 비로소 풍랑이 가라앉았다. 그것을 처음에는 만두(蠻頭, 만족의 머리) 또는 ‘속일 만(瞞)’, 머리 ‘頭’(두) ‘瞞頭’(만두)라 하다가 ‘蠻, 瞞‘(만) 자가 음식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다 하여 음(音)이 같은 ‘만(饅)’을 빌려서 ‘만두(饅頭)’라 했다 한다. -송의 ‘사물기원(事物紀元)’ 신포동은 면적 1.82㎢에 6,458여 명(2008)이 사는 인천 중구에 있는 재래시장이다. 인천 1호선, 동인천역에서 하차하여 2번출구로 긴 지하 상가를 걸어서 신포시장 27번 게이트로 나가거나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라는 내리교회를 지나서 신포문화의 거리 부근의 신포시장을 찾아갈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