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회에 대단히 보기 힘든 대격돌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의사들과의 격돌입니다. 그냥 격돌이 아니고 정부의 존립과 의사의 생존을 건 대혈투라고 보여집니다. 정부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을 의료개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료개혁에서 개혁에 대해 뭔가 잘 모르고 사용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개혁이 무엇입니까. 개혁은 혁명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혁명은 문제가 있는 제도나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입니다. 음식점에서 고기굽는 판을 통채를 바꾸는 식입니다. 이에 반해 개혁은 고기굽는 판에 붙은 찌꺼기와 오물들을 하나 하나 제거하면서 그 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회 시스템의 예를 들면 뭔가 문제가 있는 현상이 발생할 경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연구검토하고 수정해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을 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정부와 의사들과의 대립에 유일하게 전면에 등장한 것이 그냥 의사 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의료계의 문제점들 가운데 유일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의사수 확충입니다. 한국 의료계의 문제점이 오직 의사가 부족해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문제점이 백가지라면 그 가운데 하나만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의사 수만 늘리면 지금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문제점이 모두 해결될까요. 중소도시와 군단위 지역에 소아과와 산부인과 부재 문제가 해결될까요. 서울지역 대학의 의대 정원은 동결하고 경인권을 포함한 지방대에만 2천명 모두를 배정했다고 합니다. 서울 지역 대학 의대정원을 동결한 데서 정부가 이번 의료 제도 개선의 본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정부의 인원배정에 대해 서울 지역 대학 관계자들은 정부의 불투명한 기준에 따른 형평성 문제와 불필요한 갈등 조장, 이공계 경쟁력 감소 등 문제를 지적하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의사와 정부의 갈등 즉 의정갈등은 이제 총선을 앞두고 다소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의사협회가 현 정부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의사들과 현 보수 정권 퇴진 운동은 그다지 연관관계도 교집합도 없어 보이는 말입니다. 아마도 직업군을 놓고 봤을때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그런 환경에 놓여 있기에 뭔가 변화에 대한 부정적이 성향이 존재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아마도 의사라는 직업이 생기고 난 뒤 의사들의 모임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경우는 동서고금을 통해 찾기 어렵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자체가 사회의 기득권층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런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지난 2022년 대선때 의사협회 관계자들의 상당수가 현 정권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보수성향의 현 정부를 지지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정부 퇴진 운동에 나섰겠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수 정권과 보수 집단의 대결구도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지요. 주로 분열하는 것은 진보세력이지 보수세력이 분열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정부와 의사들 사이의 대결은 보수 대 보수의 대결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번 정부와 의사의 격돌은 중재 자체가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퇴로를 스스로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 의사들에 대해 그들의 기고만장한 건방짐을 눌러버리겠다는 자세이고 의사들은 정부가 힘만 믿고 앞뒤 가리지 않은 채 그냥 밀어붙이는 폭거에 순응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미 의대 정원 일년에 2천명 증원계획을 확정했고 각 대학에 증원수도 배정했습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발표해 버렸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퇴로를 없앤 것입니다. 만일 의사들이 지금 의료현장 복귀를 해도 의대 정원 변경은 불가한 상황이 됐습니다. 만일 의대 정원을 재조정한다면 정부는 신뢰성과 공신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의 자세도 변함이 없습니다. 정부가 계획을 취소하고 다시 의사들과 협의를 통해 상황을 정리할 때까지 현장 복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의사들 입장에서도 정부측의 아무런 자세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의사들만 현장 복귀를 하는 것은 무조건 항복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총선은 이제 18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의료현장의 상황이 물가불안 등 민생문제와 더불어 총선의 아주 중요한 변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누군가 어느 그룹인가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중재역할을 하고자 하려해도 자칫 총선에 대단한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릴까봐 쉽게 나서지도 못하는 양상입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하는 말도 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여당인 국민의 힘이나 야당인 더불어 민주당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극도로 언급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10만이상의 의료인들과 그 가족들을 포함하면 결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바로 의사들입니다. 그들이 지금 정권 퇴진이라는 아주 무거운 주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정권 심판에 표를 던지겠다는 것입니다.그렇다고 정부가 의사들의 반발이 두려워해서 이미 발표한 의대정원을 일단 보류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입장에서는 치명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중재나 대타협이 가능하겠습니까. 갈수록 풀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속에 피해를 입은 것은 국민들입니다. 특히 응급환자나 수술이 시급한 환자 그리고 어린 환자들의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의대 정원을 들고 나온 정부나 의사협회나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이미 예상했을 것입니다. 의사 인원 증원 문제가 거론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진보정권이나 보수정권이나 한번쯤 의사수 확대 카드를 꺼집어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고 결과적으로 국민들만 피해를 보는 상황을 우려해 보류해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아주 묘한 시점에 이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바로 총선입니다. 총선에 이 카드를 내세우며 뭔가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의사협회는 몰랐겠습니까. 정부와 의사협회 양측이 다 그런 상황을 예측했으면서도 이런 상황까지 온 것을 보면 뭔가 피치못할 전략이 동원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하여튼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보수 대 보수의 대격돌을 보면서 제발 국민들의 피해가 최소화되고 이럴때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2024년 3월 2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