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마치자, 우레와 같은 환호는 울려펴지지 않았다. 그저 몇몇 단골 손님들만이 수고했다는 듯 술잔이나 찻잔을 들며 나에게 미소지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표정에 미소로 반색하며 스테이지에서 내려왔다. 오전 11시, 점심으로는 좀 이르지만 퍼브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 느긋한 주말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런던에서 익숙한 퍼브와는 달리 이곳 리마솔의 퍼브는 레반트의 느낌이 강해서, 건물이 외부로 탁 트여 있어서 멀리 지중해가 보이고, 테라스와 거리에도 테이블을 놓아 개방적인 느낌의 퍼브였다. 나는 가게의 한 구석에 놓인 스테이지에서 감미롭게 오전 공연을 마치고 바에서 고급 와인 글래스를 행주로 딱는 퍼브마스터에게 말했다.
"오늘 공연 어땠어요? 이 정도면 조금 추가 수당 정도는 요청드려도…"
마스터는 나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뭐 몇푼 더 얹어준다고 내가 가게 말아먹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결국 그거 다 나중에 추심만 더 당하는 거 아니냐?"
"에이, 그래도 그거랑 이거랑은 다른 얘기죠. 그리고 안들키고 다 써버리면 그만이고요. 저도 좀 일요일에는 군것질이라도 하게, 추가 수당 좀…"
"군것질이라면 가게 음식 집어먹으면 될것을… 어이, 너 손님 온 것 같은데?"
나는 마스터의 말에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의 여신님이 서 계셨다. 상당히… 화가 난 표정으로… 하하하… 이걸 어떻게 한다?
잠시후… 일단 다짜고짜 급소만 여덞곳을 강타당하고 기절했다가 깨어났다. 그리고 손님들은 퍼브의 신입에게 차력의 재주가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박수를 쳤고, 마스터는 추가수당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우리 둘을 테라스가 있는 자리로 잠시 좀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와인과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서… 물론 공짜는 아니겠지만. 그래서… 몇 달만에 그녀와 다시 마주보고 자리에 앉게 되었다. 첫 시작은 그녀였다.
"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거예요?"
"그야… 일하는 중인데요. 지금은 지인 방문으로 잠시 휴식중…"
"젠장할!!! 말장난 하면 죽여버릴꺼예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예요? 당신이 왜 지금 리마솔의 허름한 퍼브에서 푼돈 받고 일하고 있는 건데요? 오론테스 전투가 끝나고 나서 갑작스럽고 황당하게 바랑기안들한테 호위를 빙자한 연행을 당해서 콘스탄티노플에 끌려가서, 카이쿠바드를 구워버렸다고 사람들이 낯부끄럽게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며 개선식 비스므리한거 하느라 시간을 빼앗기고 부랴부랴 다시 달려왔더니…
모든 상황은 종료되어 있고, 데네브는 난민들이 버리고 간 개 몇마리 말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각자 멤버들의 행방도 알수없는 가운데 내가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알아요? 결국 수소문해서 찾아찾아 돌아다녀서 알아보니… 리마솔의 제국군 조차지역 안에서 구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는데, 무슨 심문이라도 당하고 있을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팔자좋은 알바활동이죠? 당장 해명해봐요! 지금 내가 없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예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팔자 좋은 알바 활동 아닌데요. 나름 필사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중인데… 어어어… 여기서는 그리스의 불 안된다니깐요! 여기 제국군 조계 구역 안이에요! 전쟁난다니깐요. 설명할께요. 설명한다니깐요."
광분한 그녀를 진정시키고 나는 숨을 고르며 설명을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하나… 일단, 난민들의 행방은 대충 들었겠죠? 오론테스 전투가 끝나자 마자 제국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수천척의 바지선이 안티오크에 도착해서, 일제히 난민들에게 보급과 구호를 시작했죠.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듯 그 엄청난 물자와 준비가 완벽하게 빈틈없이 진행되더군요. 물, 식량, 의복, 의료진은 물론이고, 아이들 장난감이며 간이 목욕장비에 장애인들의 의족과 목발까지 준비해 왔더라구요. 역시… 우리랑 비교되게 프로들이 다르긴 다르데요.
그렇게 난민들이 다들 리마솔로 겨우 두주만에 이송되고, 현재는 그들의 희망하는 아르메니아, 시칠리아, 안달루시아, 모로코, 신대륙으로 흩어지는 과정은 정말이지 장관이었습니다. 제국은 그들에 대해서 무책임하게 대처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고 이동에 관한 모든 보호와 더불어, 도착한 현지에서도 오랫동안 그들이 생활의 터전을 잡을수 있도록 보조금과 현지 생계 대책까지 마련해줬다고 하더라구요."
그녀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 소식은 비잔틴에도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좀 창피하게 나의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저는 체스에 체포되었어요."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니, 대체 왜요? 분명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당신은 황제 폐하랑 같이 오론테스 강 언덕위에 있었잖아요. 근데 갑자기 왜…"
"노래가 끝나고, 곧 전투가 마무리 되자, 저는 문득 고개를 돌려봤더니,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요. 크리스틴과 라와드는 아이들과 함께 적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달려갔고, 그 와중에 어느새 어머니도 사라져 버리셨더라구요. 그리고 대신, 제 주변에 왠지 위험해보이는 사람들이 은밀하게 포위하고 다가왔어요. 그리고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그들의 손에 체포되서 어디론가 끌려갔었죠."
나의 말에 에스더는 조금 불편한 표정을 보였다. 리엔이 부재인 시점이라면 요인 경호는 분명 그녀의 역할이었다. 물론 그녀도 나름 싸울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지만, 카이쿠바드를 발견하고 광분해서 대열을 이탈해 달려들어간 점이 그녀에게는 나름 임무 방임으로 여길수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별로 개의치 않게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머리가 뒤집어 씌워져서 도착한 곳은… 리마솔이더군요. 이곳 리마솔에서도 가장 기밀 시설인 체스의 동방권역 지역 본부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두통에 시달리며 되뇌이던 그분… 마틸다 위체였습니다. 그녀는 나를 흘깃 한번 보며 무표정하게 심문을 시작하라고 명령하고 자리를 비웠죠. 뭐… 내가 힘있나요? 그냥 심문하는 대로 당하는 수 밖에요. 몇일 동안 그들이 묻는 질문에 솔직하게 다 대답했죠.
그리고 그러면서… 제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엄청난 사고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들어보니깐, 그 행동의 여파로 인해 현재 서방 세계의 모든 열강들의 힘의 균형이 붕괴되고, 각 지역에서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반역죄 정도는 경범죄로 취급해줄 용의가 생길 만큼 어마어마한 짓을 저지른 저에 대해서 제국의 모든 유력기관들이 다들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나서… 결국 오랜 심문을 하던 끝에 당장은 죽이는 것도 난처하다는 의견이 있었던 건지, 무기징역으로 처리되어 버렸어요."
"무기 징역이라뇨? 지금 여기에…"
"아, 그게 말이죠. 구금 지역이 좀 애매해요. 제 처분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제국법원의 선고가 내려진게 아니라 제국의 4개 권력 기관의 합의에 의한 특별명령으로 처분이 내려진거라서… 어처구니 없게도 정식으로 감옥에 갈 자격이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감옥에 투옥시키면 그것도 불법이래요. 뭐가 그리 복잡한건지…
하여간 그래서 구금을 폭넓게 지정해서, 이곳 리마솔 제국군 조차기지 권역 전체로 정해졌어요. 이 안에 있는 동안은 무사하지만, 관계자 동행없이 경계를 건너는 즉시 전 사살당한다고 하더라구요. 에휴… 이건 대체 뭘 어쩌라는 걸까요? 감옥에 처넣으면 차라리 밥이라도 제때 나올텐데… 이렇게 어중간하게 형을 집행하니, 당장 이 연고도 없는 리마솔에서 잘 곳도 먹을 곳도 없이 그냥 길에다 내팽겨쳐 버리더라구요.
덕분에 길거리에서 노숙에 3일을 굶고 구걸하며 연명하다가, 겨우겨우 외곽에 위치한 이곳 퍼브에서 종업원 겸 파트타임 가수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와서 숙식 제공으로 푼돈에 고용되었어요. 그 모든 일이 겨우 몇 주 사이에 벌어진 거라고 생각하니… 아득한 옛날 일만 같은데…"
나의 말에 그녀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대체 제국에서는 왜 그런 짓을… 아무리 그래도 당신은 폐하의 적자잖아요. 이건 너무 지나쳐요. 도움을 청할 다른 지인들이 제국에 없어요?"
"아마도… 없을것 같아요. 제국의 4대 권력 기관이 다 저를 잡을라고 작정을 한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누가 저를 돕겠다고 나서겠어요? 어머니도 그건 무리실 것 같은데요… 들어보니 일단 체스에서는 저를 최고 등급 위험인물로 분류했더군요. 저에 대한 감시 등급이 오메가 레벨로 설정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첩보 체계는 잘 모르지만 딱 들어봐도, 왠지 대단히 위험물 관리하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리고 제국 국무부에서는 저의 제국 시민권을 파기하고, 인적사항에 대해서 제국법의 범위안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통고하더라구요. 에휴, 막연하게 느꼈는데 그 정도 선고를 받은 사람은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제국 역사상 단 한명밖에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중범죄자로 취급하는 걸까요?
로시니 학파가 이끄는 재무부도 뒷끝이 끝내주더라구요. 저에게 데네브의 책임자인지를 확인하더니, 그렇다고 하니깐, 데네브를 구하기 위해 발생한 비용을 저한테 청구하더라구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결국 데네브의 리더가 아닌것도 아닌지라… 청구서를 수령했는데… 우와 이거 숫자나 단위가 잘못된게 아닌가 싶던데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청구서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그녀의 눈이 빠져 나오지 않을가 걱정해야 했다. 그녀는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면서 나에게 되물었다.
"이… 이거 대체 얼마인거예요? 이 정도면 대충 제국의 10년치 세입을 상회할 것 같은데요…"
"지금 이 세계에서 가장 부자를 묻는다면 여러 사람들이 각축전을 벌이겠지만… 가장 거지를 물어본다면 아주 깔끔하게 저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 지금 퍼브에서 일해서 받는 급여에서 일부씩을 갚아나가고 있기는 한데… 과연 끝이 보이려나 모르겠어요."
그녀는 대단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퀸스가드는요? 에라드 위체경은 당신과도 무관하지 않은 사이 아닌가요? 마틸다 위체라면 몰라도 그분이라면 당신에게 그리 모질게 굴지 못하실 것 같은데요…"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에라드 아저씨라면 그래도 좀 어떻게 해주지 않으실까 하고요. 하지만 더 매몰차더라구요. 심문받던 상황에 아무것도 없는 골방에 감금되어 있는데, 마침 지나가시길래 도와달라고 했는데, 보는둥 마는둥 눈을 흘기시다가 외면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럼 좀 편하게 잘수라도 있게 해달라고 하소연했더니… 들고 있던 낡은 방패를 방에 던져주고 그거 베고 자라고 하더라구요. 에휴… 우째 그리 모질게 대하시는건지… 제일 상처 받았어요."
나의 말에 에스더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내가 없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거예요? 당신이 이 지경이 되는 동안, 다른 녀석들은 뭐한거예요? 데네브의 멤버들은 지금 뭐하고 이런 상황을 방치한거죠?"
"오… 그렇죠. 나의 동료들… 다들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죠. 내가 체스에 납치되자,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그런 짓을 당한것에 분노한 데네브의 멤버들은 죄다 리마솔의 마틸다 위체를 찾아왔다고 하더라구요. 나의 석방과 그동안의 만행에 대한 사과에 대해 담판을 짓고, 경우에 따라 수가 틀리면 잔혹하게 데네브의 복수를 보여주리라 다짐하고요.
그런 흉흉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자마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들의 면회 신청이 놀랍게도 간단히 수용되었고, 어이없게도 그들을 맞이한 것은 마틸다 위체 본인 한명이었다고 하더라구요. 다른 아무런 체스의 경호나 요원들 없이 마틸다 아주머니는 그들을 맞이하였다는 사실에 동료들은 놀라면서도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맞붙었답니다."
그녀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나는 결과를 먼저 말해야 하나 고민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딱 15분만에 전원 마틸다 아주머니 한테 처발려 버렸다고 하더라구요."
그녀는 오늘 자주 놀라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말없이 설명을 요구했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뭐 나도 전해 들은거니깐, 정확한 내용은 불확실하지만… 이런 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의 상황을 그녀에게 전달해주었다. 마틸다 무쌍의 전설에 대해서 말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비시니아의 흑사자여. 이번 회기 제국 의회에서 우리 여당은 아나톨리아의 무기 대여법을 아비시니아에도 동일하게 적용 효력을 발휘하는 입법을 준비중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산타 할머니신가요? 크흑… 이런 선물을 받을 줄은… 동포들이여 이제 희망이 생겼다. 마틸다께서 다 해주실꺼야. 희망이 있잖아. 희망이… 10년 동안 희망없이 살았지만."
"어머니, 이번에 저지르신 만행은 아들인 저라고 해도 그냥은…"
"아들아… 대견하구나."
"네? 아… 아니 뭐가…"
"나는 너라면 틀림없이 내가 설계한 새로운 전쟁의 패러다임을 현실에 구현하리라 여겼단다. 좋은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너를 환영하는 세상을 주고 싶었단다. 그런 엄마의 마음과 기대를 너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멋지게 구현하였구나. 기쁘구나, 나의 아들아…"
"어… 어머니… 죄… 죄송합니다. 어머니의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맨날 원망만 하고… 크흑… 제가 불효자입니다."
"살라딘공, 지금 사패드의 포로수용소에 일족들을 체스 요원을 파견하여 구출하였습니다. 알 아딜의 직계들은 일부 이미 처형되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과 아이들은 곧 크레타에서 만나실수 있을겁니다."
"그…. 고맙기는 하지만 그런걸로 얼버무리려 하지 말아요. 나는 데네브의 군인입니다. 당장 우리 주군을 석방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흠… 역시 이걸로는 약했나? 그럼 방법을 바꾸죠. 나, 에라드 애미되는 사람이다."
"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 에!라!드! 애!미!라고!"
"크… 크흑… 뭐지? 왠지 미운 마음이 천배쯤 늘어나는데 이상하게 저항할 수가 없어. 왠지 제대로 옷갖춰입고 새벽에 일어나서 설거지나 빨래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자꾸 까불면 돈봉투 내밀며 우리 아들과 이쯤에서 정리해 달라고 그런다."
"마스터! 당신이 어떻게 나를 버릴수가 있어요? 당장 해명해 보세요. 레베카 사수가 그렇게 간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그렇게 동료를 버리는 비정한 방식이 당신의 리더쉽입니까?"
"나는 너를 버린 적 없다."
"무슨 소리예요? 그럼 이건 뭔데요? 난 왜 데네브에 강제 동참한건데요?"
"그야 물론… 자격 시험이지. 너는 전통적인 체스의 마스터 자격 시험에 투입된거다. 적진에 지원없이 투입되어 임무를 완수하는 체스 마스터의 자격 시험, 너도 모르지는 않을텐데?"
"그… 그건 아버지 이후로 체스가 예루살렘에서 철수하고 나서는 더 이상 시행되지 않고 유명무실해진 관례잖아요."
"유명무실해지긴? 나도 그 시험 통과해서 체스마스터가 된건데."
"마스터가요? 언제요?"
"로마! 기억 안나냐? 어린 에라드 안고선 제국 건국에 가장 핵심적인 임무를 완수한 그 전설을?"
"아니… 그건 그냥 에라드 안고간 덕분에 아무도 의심안하고 되려 현지에서 도박으로 돈까지 벌어온 흑자 작전에, 반쯤 관광이었잖아요! 그걸 어떻게 이번 일이랑…"
"꼬으면 너도 애기 하나 어디서 구해서 안고 가던가! 군소리가 왜 이렇게 많으냐? 그러니 레베카가 너를 시험에 보낸다고 하니 걱정하면서 차라리 자기가 복직하는게 어떠냐고 하는거지."
"지…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레베카 사수가… 살아있어요?"
"그래 살아있다. 독한 기집애… 키트 부카를 죽이고 하수도에 몸을 던져서 무려 3주를 좁은 하수도를 기어서 기지에 복귀했다. 오는 와중에 얼마나 쥐를 많이 잡아먹었는지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복귀했더라."
"아니… 근데 그걸 왜 나한테는 안알렸어요!!!"
"이 미친 놈아! 그럼 전역한 체스 요원의 신분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리? 그리고… 네 형수잖아. 당연히 형이 결혼했으면 형수가 누구인지 확인해보는게 정상 아니냐? 그게 아니더라도 임무 핑계대고 형 얼굴 보는거 괴롭다고 궁상떨며 느베리 가문의 추수감사절 파티에 불참하니 형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거잖아! 니 형수가 올해는 좀 휴가줘서 집에 보내라고 나한테 신신당부를 하더라. 아오… 저런 덜렁이를 정말 시험 통과했다고 마스터 후보로 둬야 하나? 두통 오네…"
"제가 죄가 많은건 알지만… 그래도 이번 상황은 해명을 좀 해주셔야…"
"크리스틴 디블랭, 너에게만은 내가 사과하겠다. 너는 샤를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다. 죄의식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결자해지를 위해서 너를 고뇌에 내버려둔 것은 사과하마. 뭐, 결론적으로는 일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만. 사과 대신으로 너에게 만나게 해줄 사람이 있다."
"누… 누구를?"
"발리앙 디블랭 경의 따님들이 너를 만나고 싶어한다. 어렸을때 친하게 지냈던 육촌언니들 이라지? 지금은 스폴레토에서 그분들 외에도 디블랭 일족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머물고 있다. 오랫동안 루치아로 살아오느라 만나볼 엄두도 못내었을꺼라 생각한다. 곧 일이 정리되는 대로 그들을 만나게 해주겠다. 그리고 앞으로의 너의 거취에 대해서는 그때 고민하자. 다시 한번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해준 네게 사과하고, 성지에서 시녀장으로 성실히 일해준 것에 감사한다."
"아이샤라고 했던가? 나는 경제를 잘 모른다. 그래서 오는 길에 로베르 총리가 알려준 팁을 그대로 너에게 전달하겠다. 데네브로 인해 발생된 제국의 비용에 대해 다음 분기 대손충당금 계정으로 처리하겠다. 이 말을 하면 네가 갑자기 태도가 확 바뀔거라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지금 뭐하는 거예요? VIP가 서 계시잖아요! 당장 나가서들 리마솔에서 가장 안락한 의자랑 제일 고급의 마실 것들을 사서 접대 준비해요."
"어이, 누님… 나 좀 화났어. 이번에는 장난질이 좀 심한거 아냐?"
"넌 좀 닥치고, 얼른 아말피의 해군 조선기지에 가서 설계 업무 지원하고, 곧바로 킬레의 해군 훈련장으로 이동해. 너무 놀았어. 더는 우리도 눈감아주지 못해. 이제 슬슬 봐준 값을 해야 할 시간이야."
"어이어이… 나 씨서펜트야. 그 누구도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고?"
"너 자꾸 까불면 네 오글거리는 비즈니스의 스토리를 전 지중해에 널리 알려버린다? 앞으로 모든 무슬림들이 키득거리는 상황에서 네 사업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으냐?"
"아놔, 누님,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어이어이, 궁금해하지마. 야! 아이샤, 아니 선배님, 말해주려고 하지마! 프라이버시야!!!"
"왕자님을 석방해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모든 데네브의 백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겁니다."
"오랜만이다. 쾰른의 찌질한 암살자 초보 녀석아… 이제는 제법 어설픈 티는 벗고 그 영감 비슷한 풍모가 몸에 배였구만. 아오, 소름돋아. 당장이라도 관뚜껑 열고 나와 마운트 걸 것 같아. 다 필요없고… 얌마, 너 이거나 받아가. "
"이… 이게 뭡니까?"
"쿠폰이다. 네 사부가 안쓰고 너한테 넘겨 주라더라. 원래는 물려주는 건 절대 안되는 건데 반대했다가는 정말 관뚜껑 열고 뛰어나올 것 같아서 다른 여섯명도 합의했다. 이것 하나만 예외로 하자고… 신중하게 생각해서 좋은 일에 써라. 남용하면 감당 못할 상황이 터진다."
"얼… 얼티넘? 이걸 스승님이 제게?"
"영감태기… 하여간 끝까지 사람 뒷목잡게 하는 재주있다니깐."
나의 말이 끝나자 에스더는 점점 더 두통이 밀려오는지 고개를 떨구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체스마스터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 보더라구요. 나름 그 엄청난 일을 해낸 동료들이라서 한번 해볼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게 어처구니 없이 당하는 걸 보니 뭐라 할말이 없어지더라구요."
"멜리장드는요? 걔라면 마틸다 위체에게 제대로 이를 악물고 머리라도 쥐어 뜯을 기세로 덤볐을꺼라고 생각하는데요? 걔는 뭐했어요?"
"하아… 말한대로 그 녀석 제대로 한판 붙어보려고 작정하고 왔더라구요."
"다들 뭐하는거야? 지금 우리 주군을 감금한 저 년이 던진 개먹이에 깽깽거리는거냐? 정신차려! 우리는 데네브다! 우리는 지금 구걸하러 온게 아니라 정당한 요구와 악의에 대한 심판을 하러 온거라고!!!"
"마침 이렇게 만나서 다행이군요.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저와 대화를 하시죠. 당신과는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많은 논의와 협력을 필요로 할 것 같습니다."
"뭐… 뭐예요? 갑자기 이 정중한 태도는? 몇 년전에 항의하러 갔을때는 그토록 무례하게 쫓아내놓구선… 왜 이제와서 정중하게 대하는거죠?"
"기억못하시나요? 그때 분명히 말씀드렸을텐데요. 뭔가를 주장하고 싶다면 최소한 동등한 자격을 갖추고 오라고요. 그러면 그에 걸맞게 대우하고 대화에 임하겠다고요."
"그…러긴 했었죠. 그럼 뭐예요? 지금은 내가 존대를 받을만한 자격을 갖추었다는 건가요?"
"당연하죠. 나는 현제 제국의 2인자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데네브의 2인자라 들었습니다. 국력의 차이와 무관하게 당신과 나의 입장을 동등합니다. 우리는 같은 자격에서 양국가의 미래에 대해 논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축하합니다. 몇 년만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군요. 내가 당신만할때는 키스를 해주고 추가수당을 받을지 말지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당신은 이미 한 국가의 수반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서서 자신의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내었습니다. 훌룡합니다. 당신의 큰조부께서 자랑스러워 하실겁니다."
"에… 저 그러니깐… 할아버지가 저를 자랑스러워 하신다는 건…"
"자, 앉으시죠. 앞으로 두 나라의 상생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어려워하지 말고 기탄없이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결국은… 그 녀석 증오하기 보다는 의외로 인정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복수는 흐지부지하게 끝나고 본격적인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에스더는 점점 피곤해지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그녀가 별다른 말이 없자 내 말을 이어갔다.
"제국은 데네브의 난민들을 수용하고 이후의 생계 보전도 확실하게 약속했습니다. 대신, 데네브측에서는 그간에 발생한 정치적 여파들에 대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제국에서 책임져주고, 어느 정도 감당할 수준인것들은 돌멩이 이론대로 제게 묻는 것으로 하고 데네브 작전의 차후 협상을 마무리 지었어요.
덕분에… 뭐 오시는 길에 들으셨겠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 우리 외에 외부의 열강들 사이에서는 모든 것이 데네브가 아닌 제국과 황제 폐하의 뜻으로 진행된 일로 알려졌습니다. 관련 후속 여파들은 위에 제국 4개 기관의 일에서 언급드렸던바와 같이 몽땅 제가 뒤짚어 쓰게 되었구요. 각지에서 이교도들도 나몰라라 하지 않고 모두를 구하시고, 맘루크에게 한방먹이고, 샤를 카페를 제거하고, 카이쿠바드를 구워버린 어머니에게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난민들에게도 시작과 끝을 장식한 어머니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던지 다들 이 일이 어머니의 업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 다들 그러더라구요. '그곳에는 알라도 예수도 없었다. 오로지 조안만이 있었다.' 라고요… 허허허… 우리 어머니 거의 메시아급으로 칭송받으시네요. 부담스럽지는 않으시련지…"
나는 문득 그나마 제대로 작별인사를 한 오스만 가지를 떠올렸다. 순진한 얼굴로 나를 왕이라 불러주었던 소년은 전투를 마친 할아버지를 모시러 가기 위해 달려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의 손을 잡고 진심어린 감사를 표시하며 자신은 영원한 나의 신하라고 말하고 갔다. 뭐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거겠지. 나는 조금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궁금해할 다른 동료들의 이야기도 꺼냈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도 다들 무사히 제국의 호의로 고생의 대가를 받게 되었어요. 케두스는 일단 독립운동은 바이바르사가 버티고 있는 한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곱트교 난민들을 아르메니아로 안전하게 이동시키고 나서, 제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케임브리지에서 당분간 정치학을 공부하며 머물거라고 하더군요.
살라딘은 예루살렘의 군주였던 점을 감안해 제국내에 영지를 주는 것을 고려했지만, 본인이 사양했고 대신 객원장군 대우로 제국 사관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어요. 데네브 작전 동안에 겪은 일들을 토대로 새로운 군사 전술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에라드는 그녀와 같이 응용전술학 강사로 따라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대외적으로는 살라딘의 지휘로 알려져서 서운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에라드형, 의외로 그것보다는 더 강한 적과 실전에서 붙을 것에 대해 흥미진진해하고 있더군요. 못말리는 체스광이죠.
안젤모는 마틸다 위체의 명에 순순히 따랐어요. 다만 그가 가는 곳마다 현지에서 여자 문제로 인해 제발 발령 내달라는 요청이 체스와 제국군부를 괴롭혀서 문제였지만요. 한동안 침체기였던 제국 해군은 앞으로 대서양을 근거지로 한 강력한 함대로 다시 태어날 것 같아요. 그 선봉에는 안젤모와 같이 오랫동안 실전 경험을 쌓은 씨서펜트의 승무원들이 있을 듯 하더군요.
아이샤는 베니스로 갔어요. 안젤모의 소개로 안토니오 제국국립은행장님과 기욤 상공인연합회 회장을 만나게 되었다더군요. 그 두 사람은 안젤모의 소개장을 보고 아이샤와 면담을 가졌고, 1시간 후에 두 경제계의 거두들은 밖으로 뛰쳐나와 서로 머리끄댕이를 잡고 난투를 벌였다고 하더라구요. 서로 아이샤의 후견인이 되겠다고요. 결국 두 사람이 공동 후견인이 되어서 아이샤는 베니스 상업 대학에 편입해서 본격적인 학업에 전념할 듯 하더군요.
리엔은 체스로 복귀했어요. 마스터 시험을 통과해서 후계자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하며 개선했지만… 의외로 그 시험 통과한 사람이 자기 말고도 17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또 속았다고 마틸다 아주머니를 욕하며 길길히 날뛰었다고 하더라구요. 아무튼 이제는 제법 중간 고위급 간부로 일하는 듯 하더군요.
라와드와 크리스틴은 신대륙으로 떠났어요. 라와드에게는 수십만 시아파를 대표해서 제국 정계의 각지에서 러브콜이 들어갔지만, 그는 종교인이 세속화되고, 특히나… 자신이 마치 시아파의 왕처럼 군림하게 되면 그것이 시아파와 제국 양쪽에 좋지 않을꺼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대륙의 조아니아에 이민을 결정한 무슬림들과 함께 그곳에서 가르침을 전하러 떠나기로 했어요. 그리고 크리스틴에게 정식으로 같이 가줄 것을 청했다고 하더군요. 크리스틴은 아내는 한 사람만 두라는 조건으로 그것에 동의했다고 해요. 지금쯤… 대서양을 한참 건너고 있겠죠?
멜리장드는 좀 딱하게 되었어요. 제국과의 협상을 마무리하고, 그간의 일을 정리한 레포트를 대학에 제출하고 스타가 되었죠. 한마디로 근래에 가장 격렬한 정치적 이슈를 최근거리에서 접한 사람의 논문이니 이슈가 안될리 없었죠. 단숨에 조기 졸업이 확정되고, 주변에 호응의 여세를 몰아 졸업 후 앙주 지역구에서 제국의회 의원선거에 출마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한가지 변수가 생겼죠. 구호 기사단이었어요.
'앞으로 구호기사단은 기존의 무력을 버리고 앞으로 구호에만 전념하는 의료단체가 될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상징적인 의미로 현임 단장께서는 은퇴하시고, 신임 단장을 멜리장드님, 당신으로 모셔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우리의 명예를 회복하여 주고 위대한 전임 단장인 필립 카페의 손녀인 당신에 대해 현임 단장께서는 흔쾌히 동의하시고 의사를 여쭤보라 저희들을 보내셨습니다. 수락하여 주실수 있으시겠습니까?'
'제가 감히 이런 과업을 감당할수 있을련지요… 하지만 모두의 뜻이 그렇게 큰조부님의 유지를 이어받는 것이라면 부족하지만 임무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 녀석… 구호기사단의 단장이라면 거의 샤를 카페 급으로 위치는 왕에 준하는 지위죠. 나름 승승장구하는 자신의 행보게 나쁘지 않을꺼라고 생각한듯 하더군요. 그래서 구호기사단은 기뻐하며 그녀를 단장으로 모시고, 검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의료단체로서의 일을 시작했죠. 그리고 그들이 단장에게 요구한 첫번째 임무에서 그녀는 당황해버렸다고 하더라구요.
'의사… 면허를 따라구요?'
'물론입니다. 이제 구호기사단은 의료조직입니다. 우리 조직을 이끄는 단장이 의료에 대해 문외한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그… 그렇지만 저는 정치학과, 그러니깐 문과 출신인데요… 그리고 이제 대학도 조기 졸업했고, 고향에서 제국 의회 의원 선거에 나가려고 했는데… 가장 큰 문제가 의외로 저 수술 같은 거에 좀 약해서, 가족들이 다들 의사인 와중에 저만 혼자 정치학 공무한건데요…'
'일단… 다 필요없고, 학위부터 따고 고민해보시죠. 따라 오십시오.'
'아… 안돼!!!'
'돼!'
그 녀석… 의외로 정치 분야에는 신동이라고 불리워도 의학에는 약했는지… 로도스의 구호기사단 부속 의과대학에 거의 강제로 끌려가서 눈물을 쫙쫙 쏟으며 조기 은퇴하게 해달라고 울고불고 하고 있더라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앙주에 계신 필립 카페경도 자기가 후배들에게 했다고 멜리장드가 날조한 말을 조용히 묻어주는 대신 말나온 김에 의사면허나 제대로 따라고 독려해 버렸다고 하더군요. 그 헛똑똑이가 지금은 로도스에 감금 비스므리하게 되서 열심히 의대 입시 공부중이라고 합니다.
뭐, 이렇게 다들 자기들의 자리를 잘 찾아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의 말이 끝나자 에스더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요?"
"저요? 제가 뭘요?"
"당신은 뭘 얻었는데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지금 여기 리마솔의 허름한 퍼브에 처박혀 잡일이나 하려고 그런 일을 시작한건 아니잖아요."
"뭐… 그런가요? 하지만 나는 지금의 상황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어차피… 왕이니, 리더니 하는건 나에게 애당초 무리였어요. 저는 저와 같이 동거동락한 난민들이 무사히 탈출해서 잘 살고 있다는 그 사실이면 충분히 만족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나쁘진 않았어요. 확실히 지금의 삶이 좀 궁핍하고 힘든건 사실이지만…
뭐 어때요? 덕분에 좋은 친구들과 추억이 생겼잖아요.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도 가족이 생기고 아들을 넘어 손주가 생겼을 때, 손자손녀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줄 꺼리가 생겼잖아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16살의 여름에 뭐하셨었어요?'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말하는거죠.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친구들과 함께 그해 여름의 엑소더스를 같이 했단다.' 라고 말이죠… 어때요? 멋지지 않아요?"
나의 말에 에스더는 이제는 기가 막혀 어이를 상실할 힘도 없다는 듯이 힘빠진 얼굴로 앞에 놓인 와인을 한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하아… 정말이지, 바보라고 해야 할지, 호구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할말을 없게 만들어 버리는 군요."
나는 그녀의 실망에 달리 할말을 찾을수 없었다. 그래서 말없이 나도 와인 한잔을 마셨다. 이곳의 퍼브는 낡았지만 경치만은 최고였다.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은 덕분인지 이제는 번화해진 리마솔에서도 가장 좋은 지중해 풍경이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멀리서 오는 바닷 바람이 다소 상쾌한 기분을 들게 하며 나는 모든 고행을 끝마치고 이곳 퍼브에서 그녀와 함께 바다를 보며 와인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함을 느꼈다.
물론 그녀의 관점에서는 한심하기 그지 없겠지만 말이다.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상당히 실망을 하리라 생각했던 그녀는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리고 나서 한참동안 고민을 한듯 어렵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와인 덕분인지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이다.
"만약에 말이에요… 당신의 현재 처한 입장에 대해서… 우리 비잔틴이 손을 써줄수 있다면, 만약에 그렇다면 당신은 그것을 수용할 생각이 있나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좀 알아듣기 쉽게 말을 해주셔야…"
그러자, 그녀는 뭔가 체념한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니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비잔틴의 포르피로게니타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비잔틴으로 올 생각이 있냐는 거예요? 의사가 있다면 비잔틴에서는 당신에게 선고된 각종 형과 채무, 감시를 동맹의 정식 요청을 통해서 관철시키고 우리쪽으로 모셔올 용의가 있습니다만…"
나는 그녀의 말에 어처구니 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되물었다.
"네? 아그네님이 제게 관심이요? 저는 아그네님은 리엔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런거 가능한가요? 아무리 봐도 제게 집행된 것들이 어지간해서는 쉽게 해제되지 않을 것들이라 생각했는데요…"
"그… 그딴건 생각하지 말고 당신 상황이나 걱정하라구요. 그리고 비잔틴을 얏보지 마요. 동맹으로서 그 정도 요청은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할 수는 있어요. 대답해요. 당신의 의사표명이면 충분해요. 그대로 제국 당국에 우리쪽 요구를 통고하고 납득시켜서 콘스탄틴노플에 귀빈으로 모실께요. 여기서 이렇게 시궁창 같은 생활을 하는건 당신도 원치 않잖아요."
그녀는 왠지 당황하고 삐친듯 화를 내며 내게 대답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얼굴이 새빨개져서 시선을 흐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해보았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아무렴 지금의 중노동과 푼돈 받은것도 일정액 제국 재무부에 추징당하는 삶만 할까?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그녀를 보면 그런 고민이 왠지 답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초조하게 내 대답을 기다리던 그녀에게 말했다.
"거절할께요."
"왜… 왜요? 이보다 더 좋은 제안이 어딨다고… 어째서 거절하는건데요? 이유를 말해봐요!"
당황해서 소리치는 그녀에게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비잔틴의 포르피로게니타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니깐요."
"뭐… 뭐라고요?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리고 나는 심하게 당황하는 그녀에게 말없이 내 앞에 테이블에 장식으로 놓인 장미꽃을 한송이 뽑아 내밀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상황에서 얘기하는 것도 뭐하지만… 우리 정식으로 사귀지 않겠어요? 이제 지위는 바닥까지 떨어지고 가진건 몸뚱이에… 아! 채무도 재산이지. 뭐 그런 거렁뱅이지만… 그래도 당신이 좋아요. 늘 멀리서 나를 바라봐주며 위기때면 나타나 나를 구해주는 당신을 사랑해요. 처음 봤을때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정식으로 프로포즈할께요. 제 연인이 되어주세요."
그리고 나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장미를 내밀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퍼브의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나를 바라보고 응원하였다. 그녀는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으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리쳤다.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언젠가 사막의 카나트에서 같이 보낸 시간속에서 강렬한 기억인 키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대답은 하지 못하지만 왠지 안절부절하지 못하여 당황한 그녀에게 얼굴을 다가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점점 더 당황하기만 할뿐 제지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구 입술이 닿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키스라도 한듯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입술을 떼자… 여전히 넋을 잃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이걸로… 동의라고 봐도 되겠죠? 나의 연인…"
그리고 그녀는 강렬하게 의사 표시를 했다. 그대로 인중에 정권찌르기…
"크아아아악!!!"
그리고 땅바닥을 나뒹구는 나를 개잡듯이 두들겨 패며 소리쳤다.
"이 자식아!!! 지금 뭐가 어쩌고 어째? 땡전한푼 없는 세계 최강의 거렁뱅이가 여자친구에 연인은 지랄!!! 너 진짜 죽고 싶어!!! 카이쿠바드처럼 웰던으로 구워줄까!!! 분위기를 몰아붙여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 망할놈의 자식아!!! 몇날몇일을 찾아 헤맸는데 팔자좋게 여기서 띵가띵가하다가 뭐가 어쩌고 어째? 죽어! 그냥 여기서 죽어! 제국이 널 죽이지 못하니 그냥 내가 콱 죽여버리고 사건 해결해 버릴란다. 죽어어어어!!!!"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한참동안 신나게 나를 밟아버리고선 화를 삭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망할 손님들은 좀전까지는 분위기 선동하다가 지금은 그냥 키득거리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땅바닥에서 나뒹굴다가 그녀가 퍼브의 문을 나서려는 찰라 그녀에게 소리쳤다.
"잠깐만요!"
내 말에 그녀가 멈춰섰다.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진지한 표정… 나는 그녀에게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하지만 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부셔버린 테이블이랑 의자값은 좀 내주고 가요. 나 그거 월급에서 까면 다음주에는 물만 먹고 버텨야 하는… 크아악! !!"
그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미간에 노미스마 금화가 날아와 꽂혔다. 으아… 죽을만큼 아프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씩씩거리며 퍼브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내 곁에 와서 금화를 주워들고 한번 깨물어본 마스터는 말했다.
"테이블값으로 좀 남겠다. 실연 기념으로 독한 술 좀 줄까?"
"아뇨… 독한 술은 필요없어요. 실연한거 아니니깐요."
"응? 내가 볼때는 너 완전히 자폭한거 같은데…"
"내기하실래요, 마스터? 아마도 그녀는 분명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올꺼예요. 항상 그랬으니깐. 그녀의 시선에는 항상 내가 있고, 나의 시선에는 항상 그녀가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는 마스터에게 한번 싱긋 웃어보이고 어지러진 테이블과 의자를 치웠다.
에스더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당장 뭔가 태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억누르며 리마솔의 시가지를 걸어갔다. 오랜 항구도시인 리마솔은 십자군 전쟁의 시기에 예루살렘의 중간 기항지이자 서방세계의 전진기지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다 예루살렘 왕국이 무너지고 나서 한동안 무슬림들의 손에 떨어졌다가, 다시 제국과 비잔틴의 공세로 탈환에 성공하고 나서, 비잔틴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제국에 감사의 표시로 리마솔 구역을 제국의 조차지로 양도하였다.
그리고 나서 제국은 그곳은 동방 진출의 거점으로 강력한 군사기지를 건설했는데, 동시에 10개 군단과 6개 함대를 수용할수 있는 군영과 군항… 그리고 관련 병기 제조 시설과 체스의 지역 본부, 그외에 제국 군인들의 가족들을 위한 후방의 생활시설들도 빈틈없이 갖추어져 있어, 오랜 전통과 신식 도시게획이 합쳐진 유려한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걸어가는 거리는 그 도시의 외곽에 있는 구시가지의 노천 카페 골목이었다.
"어머나… 에스더양, 오랜만이네."
한참동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리며 가던 그녀는 문득 어디선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 작고 아담한 노천 카페가 있었고, 손님은 하나 없는 가게에 야외 테이블 하나에 두 여자가 담소를 나누다 그녀를 발견한듯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가서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자리에 걸터 앉았다. 그러나 그녀를 부른 여자는 개의치 않고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는 저도 더 못참아요. 더는 얼버무리지 마세요. 똑바로 해명해 주셔야 겠어요. 더 이상 농담으로 얼버무리신다면 저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그녀의 말에 마틸다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뭐, 체스의 그물망안에서 제법 용감한 발언이군요. 황제 폐하의 앞에서 무례라고 할만하지만 우리가 저지른 짓이 있으니 일단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요. 그리고… 물어봐요. 뭐가 더 궁금한가요? 오늘 이 자리에서 다 해명해드리죠. 특별히 당신이라면… 분명 들을 이유와 권리가 있으니깐요."
그녀의 말에 에스더는 마틸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묻겠습니다. 대체, 제국의 4대 기관들은 지금 왜 죤에게 저렇게 행동하는 거죠?"
"뭔가 문제라도? 이번 일의 정치적 소요를 생각해보면 그리 무리한 처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묻고 싶은건… 지금 당장의 그의 처우가 아니라 4대 기관의 입장 말입니다. 대체 왜! 제국의 4대 기관은 지금 죤을 황제와 동격인 대우를 하고 있는 건가요?"
그녀의 말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 마틸다는 딴청을 피웠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딴청피우지 말아요. 제가 바보로 보이시나요?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행동은 모두 황제나 황제의 후계자가 아니면 받을수 없는 대우들이에요. 표면적으로는 죤을 홀대하고 학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최상의 지엄한 대우를 암묵적으로 하고 있는 거라고요.
우선 국무부, 제국법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죠? 제국에서 제국의 시민이 아니며 제국법에 적용을 되지 않는 사람, 유일하게 제국법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 누구죠? 단 한분 황제 폐하 뿐이잖아요.
그리고 체스, 오메가 레벨이라고요? 처음 들어보는 감시 체계 단위지만 짐작은 가더군요. 감시 레벨은 곧, 경호 레벨과도 동일하겠죠. 황제가 체스의 유일한 알파 레벨 경호 대상이라면 대체 오메가 레벨은 뭘까요? 성경에서 나오는 나는 곧 알파요 오메가라는 문장에서 볼 때 그건… 곧 황제 경호 레벨로 죤을 관리해야 하지만 동격을 줄수는 없으니 유사한 레벨을 신설한거 아닌가요?
다음으로 재무부… 제국의 10년치 세입이라니… 결국 그건 다 죤의 채무가 되어버렸죠. 근데 말이죠. 저와 동행한 재무관 여자애가 언젠가 저에게 경제 상식을 하나 알려주더군요. 채무란 담보가 없는 사람에게 절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요. 제국의 10년치 세입에 해당하는 죤이 가지고 있는 담보가 대체 뭔가요? 저는 그게 제국 자체라고 밖에 생각할수 없더군요.
마지막으로 퀸스가드… 방패를 던져주고 자라고 했다고요? 제가 바보로 보이세요? 근위대장이 자신의 방패에 누군가를 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른다고 생각하나요? 아마도 죤은 얼간이니깐 모를수도 있지만, 그런 금방 들통날 속보이는 짓은 선수끼리 그만 두도록 하시죠.
이 모든 것들은 다 죤의 죤재에 대해 제국이 심상치 않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이해할수 없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예요. 대체, 왜 제국은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벌여서 까지 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려 하고, 이제는 다시 묻으려고 하는거죠?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해명을 해보시죠. 우선은… 이 망할 데네브 작전 자체가 왜 벌어지게 된건지부터 말해보세요."
그녀의 말에 마틸다는 여전히 시선을 딴곳을 보았다. 대답을 한 것은 조안이었다.
"자... 그렇게 너무 흥분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봐요. 다 얘기해준다니깐요."
그리고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은 에스더를 보며 조안은 옛 추억을 회고하듯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꺼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나… 뭐 일단은 가장 처음부터 말해주는 것이 좋겠죠. 첫 시작은 십여년 전의 어느 크리스마스 파티였어요. 당시에 나는 제국의 안정을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며 건강을 많이 상한 상태였고, 보다못한 남편은 얼티넘을 사용해 나에게 강제 휴가를 부여하던 그런 시절이었죠.
당시에 휴가를 통해 체력을 많이 회복한 나는 거의 마쳐가는 안식년의 마지막을 오랜 나의 동료들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죠. 지금 제국의 7영웅으로 불리는 그 사람들이 다 앙주의 작은 시장 관저에 모였죠. 그리고 담소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논의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옛 동료들의 해후였어요.
당시에 정치적 의견의 차이로 의회에서는 다소 대립하던 마틸다와 필립도 오랜 흉금을 털어버리고, 서로의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했었죠. 그리고 술이 제법 거나하게 올랐을 때, 마틸다는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그려오던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제국이 성립되고 나서, 우리 제국에 대해서 가장 강한 집착을 가진건 마틸다였어요. 그녀의 입장에서 우리 제국은 그동안 존재했던 그 어떤 정치체계보다 우수하고 발달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이상의 나라였어요
그녀는 그 나라가 천년만년 지속되어야 진정한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이 이뤄질 것이라 여겼죠. 하지만, 영원한건 아무것도 없죠. 오랫동안의 공부를 통해 영원한 제국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마틸다는 절망했죠. 하지만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어요. 그녀는 과거의 사례들을 분석해서 그것을 보완하고 수정하여, 영원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흔들림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이상을 담을수 있는 제국의 설계도를 준비하고 있었죠.
정확하게 그려지진 않았지만, 마틸다는 그날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의 해후에 감동하고, 앞으로 다시 이런 파티를 가질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술기운을 빌어 그녀의 의견을 천천히 꺼내놓기 시작했었죠. 그녀는 별 생각없이 꺼낸 이야기지만 그 여파는 거대했어요. 마틸다도 놀랬죠.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의 스승들은 할말을 잃고 천년의 제국을 미리 바라본 그녀의 혜안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으니깐요.
그리고 그날 필립 카페, 안젤모 로시니, 루이 느베리는 정식으로 제국의 관료직에서 은퇴를 선언했죠.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인 자신들은 마틸다가 그린 미래에 발목잡는 것밖에는 할수 없다면 전격 사임을 결정했죠. 그것이 바로… 제국 정계에서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의회의 구도를 뒤바꾼 '위체의 난'의 실체예요."
에스더는 마틸다를 바라보았다. 마틸다는 시선을 외면하고 말했다.
"아무렴… 내가 영감님들을 정말로 남편 병사들을 동원해서 몰아내겠습니까? 내게는 스승이자 은인이자 아버지 같은 분들이었는데…"
그리고 조안의 말이 이어졌다.
"그날, 마틸다가 말한 천년의 제국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지는 바로 세가지였어요. Legacy of Rome, The Republic, Sons of Abraham 라고 명명된 각각의 사항은 우선, 로마 제국의 행정력과 상비군을 중신으로 한 군사력을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한 Legacy of Rome, 수많은 백성들이 시민으로서 의회에 참여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고, 가장 현명한 사람의 의회의 수장으로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The Republic,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많은 종교와 민족을 초월해 아브라함의 자식들은 모두 하나의 나라에서 서로 화합하고 살아가는 구조인 Sons of Abraham, 그것을 위해 제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죠.
앞의 두가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제국군은 앙주파의 협조하에 순순히 기존 영주들의 봉토와 군사력을 반납하고 대신 재산과 관직으로 보상하여 봉건제를 조금씩 물러나게 하고, 중앙 집권의 체계를 갖추어 갔지요. 그리고 일부 봉건 귀족들의 불만도 제국 의회의 설립을 통해 원한다면 자신이 의회의 지지를 받아 제국의 정책을 결정할수도 있는 권한을 부여하여 해소하였지요. 앞의 두가지는 큰 무리 없이 잘 진행이 되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세번째였어요. 현재 오랜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서로 상처입은 각 종교를 한곳에 모아 서로 화합하게 한다는 것은… 단순한 제국의 정책을 수립하는 것으로는 간단히 해결되지 않았어요. 일단 태초부터 기독교 국가에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프랑스인과 잉글랜드인들에 의해 세워진 제국이… 하루아침에 다른 수많은 종교와 민족을 대표할 테니 모이라는 것은 무리가 따르고 성사되기도 어려웠죠.
일부 제국 내에서 타 종교와 민족에 접근성을 용이하기 위해 추진한 개혁 교회의 출범도 결국은 이베리아 종교전쟁이라는 끔찍한 결론으로 마무리되어 이 미션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었죠. 그런데… 우리는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를 찾았어요.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 왕국의 마지막 여왕이었던 멜리장드 여왕과 그의 봉신들이었죠. 그녀의 봉신들은 물론 대부분 기독교 출신들도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무슬림과 곱트교도도 봉신으로 일하고 있었죠.
그것은 그녀의 관용정책에 더불어 그녀의 왕국이 무슬림의 바다에서 항상 위기에 놓여 있었고,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서로 종교와 무관하게 왕국의 모든 세력들이 힘을 합친 결과라는 것에 주목했어요. 그렇다면 비슷하게 다른 종교에 있어서 위기가 닥치고, 그들을 이교도들이 구출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혹시 예루살렘 왕국과 같은 각 종교가 화합하고 단결하는 이상의 왕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마침… 그때 예루살렘이 맘루크의 손에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이 서방세계에 알려졌죠.
그래서 나와 마틸다는 그곳으로 급하게 달려갔어요. 마틸다는 일단 리마솔에 남아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달려가서 현지에서 우리의 계획을 관철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지요. 그리고 그후의 일은 에스더양이 아는바와 같아요."
그녀들의 말에 에스더는 두통이 밀려오는 듯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천년의 제국이라니… 정말 그게 가능하기는 한건가요? 현재 제국의 체제가 다른 열강들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거기다가 모든 종교가 화합해서 같이 살아간다고요? 지금 그들과 싸워온 시간이 무려 수백년이 넘는데... 맙소사... 그런 어마어마한 스케일이라니…"
"어머나, 2천년을 찍고 계시는 비잔틴에서 그런 말을 하면 좀 서운한데요."
"그렇다고 해도… 너무 무모한 계획이었습니다. 성공했으니 다행이라고 해도, 실패했을 경우에 대해서 복안이란게 있기는 한건가요? 대체 어저자고 그런 무모한 일을…"
그녀의 말에 대답한 것은 마틸다였다.
"원래대로라면… 이 계획은 이렇게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런 말도 안되는 거대한 탈출계획 대신에… 성지의 백성들이 노예가 되는 것은 감수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성지에서 탈출한 폐하와 제국의 차세대들이 리마솔에 모여, 노예로 부려지는 시아파 백성들을 협상과 회담으로 조금씩 해방한다는 느낌으로 계획이 추진되고 있었죠."
"훨씬… 현실적이네요. 근데 왜 그 계획이 그런 말도 안되는 걸로 변질된거죠? 마틸다 위체, 당신의 의도가 아니란 말인가요?"
"저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는 건 잘알고 있습니다. 제가 저지른 행동의 파격성 때문에 사람들은 저를 비난하면서, 기승전마틸다 라든가, 조슬랭을 일부러 복상사시켜 조안을 시장으로 만든 마틸다라든가, 아예 에덴동산에서 뱀한테 사과를 받은 마틸다로 불리고 있더군요. 하지만… 저도 사람입니다. 대외적으로 많이 안알려져서 그렇지, 저도 실수도 하고, 후회되는 짓도 많이 합니다.
이번 경우에는 큰 실수를 무려 세가지나 해버렸죠. 첫번째는 바로 사과장수 파멜라 툴루즈 할멈입니다. 전전대 체스마스터이자, 예루살렘 왕국의 마지막 시녀장이며, 루이 스승님의 스승이기도 했던 그녀는, 성지에서 만난 폐하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그 계획에 적극 찬성하면서, 그런 작전은 그렇게 소극적으로 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모든 백성을 압제에서 구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폐하에게 바람을 넣었죠. 덕분에 폐하께서 그 말도 안되는 계획을 덜컥 수락해 버린거고요.
결국 그녀는 작전이 실행되기 얼마전에 천수를 다하셨지만… 오랫동안 여론조작에 익숙한 그녀는 성지에 제국을 따라 자유의 땅으로 가야 한다는 여론을 물밑에서 열심히 살포해 두었더군요. 그래서, 살라딘도 맘루크의 어처구니 없는 과잉 탄압에 당장, 제국을 떠올릴수 밖에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해두었더군요. 무서운 할매… 멸망한 왕국을 위해 죽는 그 순간까지 멈추질 않다니… 정말이지 혀를 내두르겠더군요.
그리고 두번째 실수는 바로 샤를 카페였습니다. 네 그 표정을 보니 샤를에게 들은 모양이죠? 내가 그 자식한테 편의 제공한 거요.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그 놈은 작정을 하고 왔더군요. 정신나간 샤를이 이베리아 종교 전쟁에 뛰어들었다 나라를 말아먹자, 남루한 옷차림으로 우리를 찾아와 일족의 죄를 사죄하며 자신의 목숨으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폐하는 예전에 구하지 못한, 외가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며 자결한 여섯번째 왕자를 떠올릴수 밖에 없었죠. 그는 그렇게 우리에게 용서받고 재밌는 의견을 내놓더군요.
제국의 우위를 인정하며, 더 이상의 역사의 흐름은 제국으로 흐를 것을 확신했죠. 그래서 자신이 제국을 적대하는 쪽에 돌아가 제국의 입장에서 통제하기 편한 적이 되겠다는 제안을 해왔어요. 상당히 미심쩍었지만, 일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단기로 사죄하러 온 순진무구해보이는 소년의 말을 의심하기는 어려웠죠. 그래서 제공되었습니다. 자금과 정보, 물자까지도요. 결국… 산타 카탈리나에서 거하게 뒷통수를 맞고 나서야 실체를 깨닭았지만. 열받아서 라만차에서 아예 죽여버릴라고 했는데 도망치는 재주 하나는 타고난 놈이더군요.
하여간 그 녀석은 이번 성지의 계획에도 배후에서 암약해 일을 필요이상으로 키웠어요. 원래대로라면 크게 관심이 없었을 맘루크 측의 노예 사냥이 가시화 된건 전부 다 그 녀석의 술책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죠. 그 녀석만 아니었다면… 일이 이 정도로 어처구니 없이 거대한 규모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죤을 남겨둔 것이 실수였어요. 죤이 좋은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정도라고만 생각했었죠. 근데 아니더군요. 그리고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 일찍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육감적으로 그 아이가 있어야 할곳이 성지라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르자 에스더는 답답해서 물어봤다.
"그게 누구인데요?"
"그야… 그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몽포르 잉글랜드 국왕이죠. 그는 그 크리스마스의 밤에 별다른 말이 논의중에도 없었어요. 특히나, 세번째 Sons of Abraham을 위해 모든 종교와 민족이 따를 만한 지도자가 과연 존재하느냐의 문제를 논할때는 특히 말이 더 없었죠. 그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자신의 아들이 바로 그 적임자라는 사실을요."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요?"
"그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기 얼마전에 죤이 무단으로 옥스포드의 별궁을 빠져나가 숲으로 간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곳은 바로 문둥병 환자들의 집단 격리시설이 있는 곳이었어요. 에드워드 국왕은 자국의 복리 후생에 관심이 많이 예전에는 괴물취급을 받으며 추방당하던 문둥병 환자들을 위해 잘 정비된 의료시설과 격리시설을 준비하여 주었죠. 하지만, 오랫동안 핍박받던 환자들이라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풀어 죤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결국 발견한 것은 에드워드 국왕이었죠. 그리고 그의 눈에 믿을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거기 사람들이 기피하던 문둥병 환자들에게 둘러쌓여 하프를 타며 노래를 들려주는 죤이 있었어요. 에드워드는 그때 깨닭았죠. 자신은 문둥병 환자들을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시설을 만들어 줄수는 있지만, 그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안아줄수는 없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자신의 아들은 그것이 가능하고, 그건 바로… 그 아이가 자신의 주인이라는 증거라는 것을 깨닭았다고 하더군요. 그건 마치, 처형대 위에서 당당히 죽음을 수용하던 조안의 모습보다도 더 위대해 보이는 모습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아들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리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그것은 진정한 이 땅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가진 자에 대한 경배이자, 동시에 자신의 아들이 겪어야 할 삶의 고난에 대한 설움과, 늘 자신이 아닌 자신의 아내와 아들에게 세상의 위에 군림할 자격을 준 하늘에 대한 원망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폐하에게만 조용히 고했고 요청했다고 하더군요. 죤에게서 떠나라고요. 부모로서의 그늘이 너무 크면 앞으로 우리의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자에게 혼란을 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요. 그 말을 알아들은 폐하는 죤을 런던에 남기고 떠났고, 에드워드 국왕은 그 이후 딱히 죤에게 후계자 교육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로 결정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결국 시간이 왔어요. 에드워드 국왕은 이제 한계에 도달한 성지가 그의 데뷔무대라고 생각했죠. 앞으로 박해받게 될 수많은 시아파와 다른 종교의 백성들에게 죤이 정말 왕이 될 자격이 있다면 분명 기적이 임하는 것을 볼것이라 확신하였죠. 그래서 그를 예루살렘으로 급파하였다고 하더군요. 물론 형식은 추방을 빙자해서요. 어찌보면, 제국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도 해석할수 있는 일에 거대한 환송을 하며 보내는 것은 무리였겠죠.
그리고 죤은…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결과를 내놓았어요. 황제 폐하가 계셨어도 성공률이 희박하다 생각한 어마어마한 작전을 몇몇 동료들의 협조와, 이제는 사라져가는 옛 영광을 기억하는 전사들을 일으켜 세워 성공리에 마쳤죠. 처음에 죤을 남겨둔 것은 우선 황제의 신변을 확보하고 감시가 느슨해진 틈에 안젤모를 통해서 회수할 생각으로 남겨둔 것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안젤모를 설득해서 자신과 합류시켜 체스의 연락책과 어긋나게 해버리고, 리엔까지도 끌어들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직을 구성해 버렸더군요. 뭐… 누군가의 충동질도 한몫하긴 했지만."
마틸다는 그렇게 말하며 아그네를 노려보았고, 아그네는 찻잔을 들이키며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마틸다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제가 의도하기는 하였지만 군데군데 개입된 외부의 의지와 변수들로 인해 일 자체가 심하게 틀어져 버렸고, 그 틀어져 버린 일이 의외로 정석적으로 사건을 해결해서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버린거죠. 이제는 좀 이해하겠어요? 나는 신이 아니에요. 내가 의도한 일이 모두다 내 맘대로 풀리면 참 좋겠지만, 세상일이란 당신들이 겪었던 것 그 이상으로 제멋대로 흘러가기 마련이죠. 이게 바로 당신이 궁금해하는 데네브 작전의 진상입니다."
에스더는 그제서야 모든 일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이것은… 에스더는 그제서야 찻잔을 한잔 들며 말을 할 수가 있었다.
"나참, 결국은 뭐예요. 우리는 결국 제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셈이군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제국이 영구불멸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완벽한 후계자를 만들어주기 위한 의도였던거잖아요."
그러나 그녀의 질문에 마틸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물었다.
"무슨 뜻이시죠? 제국의 후계자라뇨?"
"부정하실 셈인가요? 지금 이 데네브를 통해서 나올 리더는 틀림없이 당신들이 천년의 제국을 세우기 위한 초석이 되는 Sons of Abraham이 가능한 크루세이더 킹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그 자격을 죤에게 주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계획한거 아닌가요? 결국, 죤으로 하여금 제국의 후계자이자 동시에 타국의 이교도들의 군주도 겸하는 자격을 갖추게 한거죠. 이건 모두… 제국의 교묘한 상속 프로젝트였어요. 아닌가요?"
그녀의 질문에 마틸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네, 아닙니다. 이건 죤을 위한 상속 프로젝트가 결단코 아닙니다. 일단, 후보는 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딱히 죤이 아니어도 그 누구라도 데네브를 인솔하여 그곳에 도달하였다면 그 사람은 자격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체스에서는 애초에 당신을 비롯한 모든 데네브의 멤버들과 각 유럽과 중동의 유력한 젊은 지도자들, 거기에는 샤를 카페, 바라카, 살라미슈, 카이쿠바드, 잘랄 웃딘, 키트 부카, 칼릴 등도 있었어요."
"자… 잠깐, 카이쿠바드와 샤를 카페라고요?"
"물론입니다. 이 계획의 대전제는 그 누구라도 이교도와 이민족들 모두를 화합시키고 이끌수만 있다면 설사 그것이 제국의 적이라고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여기서 샤를 카페가 만만치 않은 녀석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되죠. 체스의 분석에 따르면 그 녀석은 우리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아차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그 녀석은 속으로야 어찌되었건 겉으로 언론플레이를 조금만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의 자리를 손에 넣을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은 그러지 않았죠. 알면서도요. 그게 그 녀석을 두렵게 생각되게 하는 점이죠."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으로서는 죤만 유일하게 그런 시험을 통과한거잖아요. 그렇다면 말 다한거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마틸다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이번 사건이 자격 시험이라면 유감스럽지만 죤은 불합격입니다."
그녀의 말에 에스더의 눈이 커졌다.
"아니… 대체 뭘 어째야 합격인데요? 저 정도로는 모자라다는 건가요?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을 해야 직성이 풀리실껀가요? 대체 무슨 놈의 난이도가 이렇게 높은데요? 사람이 통과하라고 만든 기준이긴 한건가요?"
그녀의 말에 마틸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죤은… 너무 체념이 빨라요. 특히나, 자신의 목숨에 대해서는 기이하리 만큼 집착이 없어요. 장점이긴 하죠.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합니다. 저래서야 그 어떤 봉신과 백성들이 죤 밑에서 안심하고 살아갈수 있겠어요? 언제 시체가 되서 나뒹굴지도 모르는 주인을 위해서 각료들과 백성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항상 심하게 고통받아야 할겁니다. 지도자는 그래서는 안되요. 그 녀석이 샤를의 반의 반만이라도 탐욕이란게 있었음 좋았으련만… 이래서는 정말이지 사람잡는 지도자로 불리기 딱 좋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비단 저의 의견뿐만이 아니라, 이번 심사에 참여한 저를 제외한 6 영웅 모두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죤은 가장 바라지 않던 후보이기도 했습니다. 그건 바로 죤이 폐하의 적장자라는 사실때문이죠. 혈통의 신화는 천년의 제국에 가장 안좋은 첫단추입니다. 설사 죤이 일생 좋은 군주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는 앞으로의 미래에 안좋은 선입견을 남겨요. 항상 적장자가 우수하다는 보장은 없어요. 죤은 다행히 적장자임에도 나름 괜찮은 자격을 갖추었지만, 행여나 수준이하의 반푼이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황위에 오르면 어떻게 하죠?
물론 제국은 앞으로 50년안에 황권을 대부분 의회로 이관하고 지배하지 않는 군림하는 황위를 추진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적장자의 신화는 항상 그 문제에 발목을 잡을 소지가 다분합니다. 항상 복고주의자들은 현재의 모순을 과거의 영광으로 연결지으려 하죠. 하다못해... 차남이나 삼남만 되어줬어도 얘기가 훨씬 나았으련만..."
그녀의 말에 에스더는 기가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반박할 여유도 없었다. 틀린 얘기가 아니었으니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체 그러면 어쩌시자는 건데요? 저런거 한번 더하고선 이번에는 목숨이 아까워 벌벌 떠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합격을 주실껀가요?"
"뭐…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합격을 못한 최유력 후보라면… 어떻게든 합격을 하도록 가르쳐야 마땅하겠죠. 적장자인거야 어쩔수 없으니 걍 놔두고 대신, 권력의 의회로의 이전에 가속을 해야 할듯 합니다. 그 와중에 또 저는 폐하의 허락을 받고 하는 일임에도 황제의 권력까지도 전횡하려는 권신으로 세상에 욕을 한바가지는 먹게 되겠죠...
그리고 앞으로 제국에서는 채무 상환이라는 명목으로 죤을 이것저것 다양한 미션들에 투입할 것입니다. 그 미션을 통해서 보충교육을 좀 받고, 자신의 목숨도 중요한걸 알게 되면… 지금보다는 좀 나은 믿을수 있는 자질을 갖출지도 모르죠."
그녀의 말에 에스더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생각했다. '죤의 자질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죤의 명성을 세상에 더 드높이려는 건 아닌가요?' 라는 질문이 나올뻔 했지만 자제하였다. 그리고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듯 하네요. 결국… 우리가 한 일은 모두 제국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자취조차 찾기 어렵게 되버리겠군요. 제국은 좋은 후계자를 얻고, 이교도의 지지를 얻었지만… 데네브는 이제 자취조차 없이 사라져 버리겠군요. 그저 괜찮은 작전명으로만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뿐이구요.
에스더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차를 마셨다. 자신도 입장이라는게 있어 설령 데네브가 국가로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함께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응원했다. 그들이 이룬 꿈이 현실화되는 것을… 그러나, 마틸다는 여전히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아까부터 자꾸 후계자, 후계자 하시는데… 대체 무슨 후계자를 말하는거죠? 그리고… 왜 데네브가 사라진다는 거죠? 데네브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듯 하군요."
그녀의 말에… 에스더는 찻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죠? 지금 제국이 데네브의 리더를 후계자로 삼고, 그 요인들을 포섭하고, 백성들을 수용했잖아요. 그런데 데네브가 사라지지 않는다뇨? 그게 대체 무슨…"
그녀의 말은 마틸다를 대신해서 조안이 받았다.
"데네브는 사라지지 않아요. 절대 그래서는 안되요.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 위험천만한 일을 멀리서 지켜보고 개입할수 없었는데요. 조금 안타깝군요. 당신이라면 혹시 알아채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반대입니다. 사라지는 것은 데네브가 아니에요. 바로 제국입니다."
최근에 많이 놀라고 있지만… 근래에 가장 놀랄수 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에스더는 담담하게 자기 나라의 종언을 고하는 황제에게 물었다.
"제… 제국이 사라진다고요? 그게 무슨…"
"엄밀히 말하면… 사라지는 건 아니겠죠. 흡수되는거겠죠. 그리고 그 흡수의 주체는 물론 데네브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요? 국력차이가 얼마나…."
"국력은 문제가 안됩니다.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일수 있는 프레임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지금, 데네브는 우리가 지향한 완벽한 Sons of Abraham의 국가입니다. 그곳에는 기독교 군주일지라도 여러 민족과 종교 출신의 관료들과 백성들이 어우러져 화합을 이루고 있죠. 그곳에서라면… 그 어떤 종교와 민족, 심지어는 국가도 차별받지 않고 들어갈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에는 제국도 한 부분으로 참여할 수 있을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최우선 가입 혜택과 구성비를 감안한 영향력을 내부에서 발휘하여 주도권을 쥘수 있겠죠. 하지만, 큰 틀이 데네브라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그건 원래 그 모든 것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상의 프레임이자 거대한 실험이었으니깐요.
그래서… 데네브는 사라지지 않아요. 지금은 비록 영토가 없기에 제국이 잠시 위탁보호하고 있지만, 곧 데네브의 깃발이 다시 서는 날 사람들은 일어설 것입니다. 이미 듣지 않았나요? 당신의 백성들은 이렇게 말했다면서요? 알라도, 예수도 없던 곳에 오로지 조안만이 있었다고요? 그건… 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그들에게 영어는 그리스식으로 많이 읽혀서 죤을 요한으로 부르는데 그게 조안으로 들린 것을 착각한 것 뿐이에요.
백성들은 절대 잊지 않아요. 누가 자신들의 주인인고, 자신들과 함께하며, 자신들을 일어서게 하는지를요… 그리고 앞으로 죤의 활약이 계속될수록… 그 백성들의 작지만 거대한 목소리는 계속 커져 갈것입니다. 저는 이미 경험해 본적이 있어요. 제가 그들의 소리를 듣고 자포자기의 순간에 일어섰을 때 저는 한 제국의 지존이 되어 있었어요.
비록 저는 같은 문화권과 같은 종교의 백성들에게 받들어져 그 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었지만… 죤은 달라요. 죤이라면 서로 말조차 잘 통하지 않는 모든 백성들에게 받들어질겁니다. 그의 노래가 왕의 연설이 될것이며, 그의 순박함이 왕의 품위가 될것이며, 그의 각료들이 위대한 나라, 데네브를 받들고 지켜내는 기둥이 될것입니다."
조안의 말에 에스더는 뭐라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건…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거대한 규모의 일이다. 그녀는 새삼 자신들이 해낸 일이 대체 얼마나 엄청난 여파를 미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마틸다가 부연 설명을 하였다.
"애초에… 제국의 명칭에 대해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요? 제국은 단 한번도 정식 명칭을 쓰지 않고 오로지 제국으로만 불렸죠. 원래대로라면 앙주제국이라는 명칭을 써야 맞겠지만, 그러지 않았죠. 왜 그랬을까요? 그건 당연히 오늘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곧 간판을 바꿔야 할 나라라면, 대외적으로 크게 알리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7 영웅들은 합의를 했었죠. 덕분에… 우리는 대외적으로는 슬쩍 조안 폐하의 즉위를 데네브의 원년으로 생각하게 역사가들의 혼란을 주면서 신생 국가에 편입을 할수 있게 된거죠."
그녀의 말에… 에스더는 더 할말이 없었다. 의문은 풀렸다. 하지만… 마음속은 좀더 복잡해졌다. 그것은 단순히 죤이 처한 입장이 바로 조금전까지 동정을 사던 것에서 전혀 반대의 입장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상황도… 그때 마틸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마침 오신김에 정산을 마무리 하도록 하죠. 이번 데네브 작전에 비잔틴에서 참여한 부분에 대해 일정한 지분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겠죠? 그리고 보아하니… 에스더양이 지금 죤을 만나고 그 의견을 전달하고 온 것 같은데… 어떤 답변을 하던가요?"
예상치 못한 마틸다의 말에 에스더는 화들짝 놀라다, 조금전 죤과의 헤프닝을 떠올리고 화가 치솟는 것을 느끼며 대꾸했다.
"관심없다는 군요. 애초에… 그런거에 관심있었던 녀석이라면 이런 바보같이 호구스러운 일에 뛰어들리가 없잖아요."
그러나 그녀의 말에 마틸다는 눈빛을 빛내며 조안에게 차를 리필하고 다시 물었다.
"그 질문… 정확하게 물어본거 맞나요? 중의적인 의미로 물어본거 아니고요? 예를 들면 정확하게 누구라고 지칭하지 않고, 비잔틴의 포르피로게니타라고 착각할만한 방식으로 물어봤다던가?"
그녀의 말에 에스더는 화가 왈칵 치미는 것을 느꼈다.
"우리 비잔틴이 뭐라고 의견을 구하건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나는 동맹국에 결례가 되지 않는 수준과 스미르나 협약에서 언급된 부분을 의거해서 정확하게 그에게 질의했고, 전혀 엉뚱한 방식이긴 하지만 분명히 비잔틴의 포르피로게니타에게는 관심없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그러니깐 그 얘기는 더 언급하지 마시죠. 저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뭔가 질문이 이어질게 두려운 듯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아그네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역시나… 청춘이네요."
그러나 마틸다는 조금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선 아그네에게 물었다.
"이제 슬슬… 까실때가 된거 아닌가요?"
"네? 뭐를요? 체스마스터께서 이미 확신하시고 있는 그 사실을요? 그거라면 추측하신게 맞아요."
마틸다는 역시나라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조안은 영문을 모르고 눈을 깜빡였다. 마틸다는 자신의 오랜 친우이자 상관인 그녀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나무는 숲에 숨기고, 돌은 강변에 숨기는 법이죠. 하지만 우리 신생 제국보다 수천년을 더 버텨온 비잔틴의 계책과 모략에는 저도 두손 두발을 들을 지경입니다. 포르피로게니타를 포르피로게니타에 숨긴다는 발상은 대체 어떻게 하면 나오는 거죠? 폐하 조금 전 눈앞에서 발끈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마지스트리아노스 아가씨가 바로 오랫동안 사실여부가 불확실했던 비잔틴의 비밀의 포르피로게니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조안은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아… 에스더? 난 처음 볼때부터 그럴꺼라 생각했는데?'
그 말에 아그네와 마틸다가 놀라버렸다.
"어… 어떻게요?"
"죤이랑 친하게 지냈잖아. 서로 꿍짝도 잘맞고… 우리 죤이랑 잘 노는 애라면 비슷한 애겠거니 했지. 근데 비잔틴 출신이면 비슷한게 포르피로게니타잖아. 그래서 그런줄 알았지."
조안의 말에 어지간하다는 마틸다와 아그네는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러면서 마틸다는 정신을 추스리고 아그네에게 물었다.
"정말이지 몇몇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제외하고 감쪽같이 속였군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거죠? 그리고… 당신도 역시 보랏빛 방에서 태어난 포르피로게니타임에는 틀림없잖아요. 하지만 그간의 행동을 보면 비잔틴의 정식 후계자는 에스더이고, 그것을 당신이 지키고 있는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거기다 스미르나 회담에서 일파만파를 일으킨 그 발언… 당신의 모략이었죠? 해명해 주시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왜 의도적으로 에스더를 죤에게 붙인건가요? 그리고 에스더는 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못한거죠?"
그녀의 질문에 아그네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아아… 역시 여자들의 이야기는 항상 이런 출생의 비밀이 나와야 재밌죠. 하지만 그리 대수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이 모든건 우리 비잔틴의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인한 문제 때문에 발생한 일이죠. 우리 콤네누스 왕조가 들어서고 위대한 알렉시우스와 아름다운 요하네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의 조부이신 마누엘 대제로 이어지는 왕조는 순탄했었죠.
하지만 위기가 닥쳐온 것이 바로 마누엘 선황의 후계자인 알렉시우스 2세 였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한 알렉시우스 2세는 프랑스 출신의 모친의 섭정을 받으며, 연이어 프랑스 출신의 약혼녀를 맞이했는데 그게 바로 아녜스 카페, 저의 어머니시죠. 그런 그의 친서방 정책은 비잔틴 내부에서는 불만을 많이 야기했는데… 그 필두가 바로 나의 아버지인 안드로니쿠스였죠.
가문의 망나니로 이름을 날렸던 나의 아버지는 불만 세력을 포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알렉시우스 2세를 감금하고 바실렙스가 되었죠. 그리고 알렉시우스 2세의 약혼녀인 아녜스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았는데… 나의 어머니 아녜스는 그런 위기 상황에서 현명하게 처신하셨죠. 나의 아버지의 아내가 되는 조건으로 대신 알렉시우스 2세를 절대 해쳐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걸고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 그에게 가셨죠.
그리고 자신의 하녀를 보내 알렉시우스 2세를 돌보게 하셨는데… 그때 그 하녀, 마리아 부인과 나의 계부이신 알렉시우스 2세 사이에서 에스더가 태어났죠. 어머니는 마리아 부인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 몰래 그분을 황궁으로 불러들여 출산을 블라르케르나이의 보랏빛 방에서 하게 해서 비록 사생아이긴 하지만 그 아이에게 정통성을 가지도록 해주었죠. 결국 아버지는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복잡한 정치적 이슈로 인해 알렉시우스 2세께서 바실렙스로 복귀하고, 어머니는 바실리카로 돌아가셨고, 안타깝게도 마리아 부인은 궁궐에 머물지 못하고 대신 어머니의 배려로 바랑기안 근위대 선임 대대장인 헥터 바넬과 재혼하게 되었죠.
그래서… 남겨진 에스더는 실제로는 저와 4살 차이나는 동생, 촌수로는 조카가 된거죠.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서로 물고 할퀴며 싸웠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저의 어머니 아녜스는 현명한 분이었어요. 에스더를 친딸과 다름없이 키웠고, 저에게도 항상 동생을 위해 살라고 가르치셨죠. 그건 아마도, 자의가 아닐지라도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도 뻔뻔스럽게 돌아온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속죄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저는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살아왔죠. 부끄러운 아버지의 삶으로 인해 고통받은 자상한 계부와 그 아이에게 내가 할수 있는 것이라면 가능한한 다 해주자고 마음먹고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그 아이는 쉽게 마음을 열지는 못하는 것 같더군요. 결국, 고민 끝에 마지스트리아노스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 조직의 수장 자리까지 차지하며 지켜왔었죠.
하지만 그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마음을 터놓지를 못하는 것 같더군요. 죤을 만나기 전까지는 요. 죤 왕자님과 그 아이가 만난건… 전적으로 우연이였어요. 왠지 그 아이는 들은 풍월로는 뭔가 한량같이 사는 죤에 대해 이상하리 만큼 적대감을 보이더군요. 하지만 결국 만남을 거듭하면서… 그 아이도 많이 변했어요. 전에는 절대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는 아이였는데, 어느샌가 크게 웃거나,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돌봐주고 걱정해야 하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걸어갈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였구나 하고 말이죠. 폐하와 체스마스터에게는 이번 작전이 국가의 대계와 죤의 미래와도 연결된 일이었지만… 저 역시도 이건 에스더의 미래와 우리 비잔틴의 미래를 걸고 달려든 일이었어요. 다행히도… 좋은 결과를 낸 것 같군요. 카이쿠바드가 덤으로 느껴질만큼…"
그녀의 말에 마틸다는 조금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은건가요? 그녀를 그렇게 후원하는 것이? 당신도 틀림없는 비잔틴의 황위 후계자임에는 틀림없잖아요. 원한다면 권리를 주장할수도 있는 입장일텐데요. 실제로 비잔틴 내부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없지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뭐랄까나… 조금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사실 나의 아버지, 불민한 안드로니쿠스도 그런분이셨죠. 뭔가 말년에 한번 야망을 품고 대권을 노리는 대신 충직한 트레비존드의 봉신으로 사셨다면 좋았을 것을… 하여간, 저는 그런 삶은 원치 않아요. 평생동안 어머니의 한이 되었던 계부와 동생에게 보상하는 것만 마치면 이런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보시나요? 보아하니 죤과 에스더, 두 녀석다 당분간은 저렇게 쭉 갈 것 같은데…"
마틸다의 말에 아그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 청춘 남녀의 일은 그대로 자기들이 멋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죠. 원하시는 앞으로의 국가의 프레임을 다시 짜는 문제, 그러니깐 간단히 말해 결혼을 통한 동군연합으로 제국과 비잔틴이 합쳐지는 문제는… 뭐 이미 짜놓은 흐름대로 흘러가지 않을까요? 데네브의 프레임은 제가 직접 가담한 입장에서 보건데 상당히 이상적이고 굳건해요.
그리고 그곳에 제국이 우선권을 쓰겠다면, 지분이 좀 낮더라도 2번 번호를 받고 비잔틴도 가담하지 못할 것도 아니죠. 뭐 영역을 보건데 거의 전성기의 로마와 유사한 강역이 되니깐… 대외적으로는 로마라는 명칭을 데네브의 앞에 놔달라는 등의 요구가 수용된다면 콘스탄틴노플에서도 그리 큰 저항은 없으리라 여겨져요. 물론…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은 언젠가 제 손으로 처리를 해야 겠지만요.
뭐가 되었든간에… 얼른 그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저는 이제 이런 복잡한 일은 내팽겨치고 어디 잘생긴 미소년이랑 같이 밀월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훨씬 더 바라마지 않는 삶입니다만… 혹시 리엔 한가하면 저한테 주지 않으실래요? 쓰읍... 아, 죄송... 침이... 제국에서 별로 신경 안쓰시도록 여기저기 놀러다니면서 유유자적하게 보낼까하는데, 동반 파트너 한명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마틸다는 미소지었다. 실질적인 비잔틴의 차기 후계자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에게 자진 사퇴의 의사와 협조의 의사까지 확인하였다. 이제 걱정하던 동맹의 이반은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동군연합을 통하여 데네브가 되었던 제국이 되었던 두 제국의 통합은 가시화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속으로 리엔의 인권따위는 무시하고, 리엔을 포박할 포장을 빨간 리본으로 할까 파란 리본으로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안이 마찬가지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시작이군요. 그 아이들은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많이 바빠질꺼예요. 언젠가 다시 성지에 돌아가는 날까지… 그 아이들의 행보에 행운이 있기를 축복하여 줍시다."
그런데 이번 작 등장 인물들 나이는 몇 살쯤 되려나요? 보니까 아이샤가 12~13살, 멜리장드도 그 정도 나이인데 안젤모랑 케두스가 헬렐레하니 이거 로리타 아닌가요? 그리고 에라드 2세보다 살라딘이 나이가 훨씬 많을 것 같은데, 에라드가 앙주 공방전에서 탄생했다면 나이가 적어도 30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Peter Von Petersburk-Hoi"아 그럼 20~10대 사이겠구나." 황제는 이해한 뒤, 레이날드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는 돌아갔다. 이에 레이날드는 피터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특별히 너의 죄를 감하여 종신 바텀형에서 20년 바텀형으로 낮추셨다! 감읍하여라."
잘 봤습니다. 제 쿠폰 아이디어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런데 과연 아그네 양이 멀쩡히 은퇴할 수 있을런지... 그러면 죤은 이제 북구, 페르시아, 말리, 러시아, 인도까지 데네브 작전을 다시 수행하나요? 창녀와 광대의 마지막화를 떠오르면 아마 작가님은 아즈텍과 몽골까지 갑자기 스케일을 키울 것 같은데.
첫댓글 요한 황제 만세!
그런데 이번 작 등장 인물들 나이는 몇 살쯤 되려나요? 보니까 아이샤가 12~13살, 멜리장드도 그 정도 나이인데 안젤모랑 케두스가 헬렐레하니 이거 로리타 아닌가요?
그리고 에라드 2세보다 살라딘이 나이가 훨씬 많을 것 같은데, 에라드가 앙주 공방전에서 탄생했다면 나이가 적어도 30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은 요한과 에스더의 침대 위 하모니로 장식해주십시오.
@Peter Von Petersburk-Hoi "아 그럼 20~10대 사이겠구나."
황제는 이해한 뒤, 레이날드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는 돌아갔다. 이에 레이날드는 피터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특별히 너의 죄를 감하여 종신 바텀형에서 20년 바텀형으로 낮추셨다! 감읍하여라."
잘 봤습니다. 제 쿠폰 아이디어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런데 과연 아그네 양이 멀쩡히 은퇴할 수 있을런지...
그러면 죤은 이제 북구, 페르시아, 말리, 러시아, 인도까지 데네브 작전을 다시 수행하나요?
창녀와 광대의 마지막화를 떠오르면 아마 작가님은 아즈텍과 몽골까지 갑자기 스케일을 키울 것 같은데.
결국 퍼유로 끝났어
오오..맙소사..
음... 에스더와 아그네를 보면서 음 쟤네들 왕자와 거지놀이 하고있는거 아냐? 했는데 둘 다 공주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