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츄샤의 노래(유호 작사, 이인권 작곡, 송민도 노래, 1960년)
해방 전 일본 게이오대학을 다닌 유두연 감독은 러시아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몹시 좋아하였다. 그래서 그는 늘 입버릇처럼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다. 마침내 영화를 만들 준비가 되자 그가 메가폰을 잡고 당대 최고의 인기배우 최무룡과 김지미를 주연배우로 출연시켜 영화 <카츄샤>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제시대 어느 시골마을 부농(富農)의 집에서 시중을 드는 옥녀(김지미)는 방학 때 시골집에 온 그 집의 상속자이자 대학생인 원일(최무룡)과 사귀어 아이를 가진다. 원일이 서울로 간 사이에 옥녀는 그 집에서 쫓겨난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서울로 올라와 ‘카츄샤’라는 이름으로 카바레에서 일하다 뜻하지 않게 살인미수를 범하게 된다. 그 사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가 된 원일이 옥녀와 관련된 이 불운한 소식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직장에 사표를 내고 그녀에게 달려온다. 그리고 그녀는 원일의 품에 안겨 죽는다.
1958년 가을 명동의 어느 양주집에서 유두연 감독은 이런 내용을 담은 영화 <카츄샤>의 주제곡 작사를 작사가 유호에게 부탁하였다. 이 자리에서 유두연 감독은 원작 소설에서 네푸류드 공작으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이 영화에서는 누구로 할 것인가 하는 얘기를 하면서 자신이 그 역할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하였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은 유 감독은 “내가 다리만 성한다면 무슨 연기든 마음대로 해낼 텐데…” 하는 얘기를 덧붙였다.
술을 마시면서도 이 노래의 작사를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유호는 유 감독이 방금 말한 ‘마음대로’라는 단어가 자꾸 뇌리에 맴돌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매듭이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자 그는 술집 마담에게 메모지를 얻어 구석자리로 가서 영화의 원뜻을 잘 살리는 주옥같은 가사를 금방 완성하였다.
<카츄샤의 노래>로 제목이 정해진 서정시처럼 아름다운 이 가사를 받은 유두연 감독은 다음날 작곡가 이인권에게 작곡을 의뢰하였다. 곡이 완성되자 가수 송민도가 노래를 불렀는데, 영화는 물론 노래도 모두 크게 히트하였다. 원래 이 영화의 타이틀곡은 유호 작사, 이인권 작곡, 최무룡 노래의 <원일의 노래>였으나 송민도가 부른 <카츄샤의 노래>가 훨씬 히트하였다. 이 노래는 1970년대 가수 김부자가 다시 불러 공전(空前)의 히트를 하였다.
허스키한 저음이 매력적인 송민도는 1925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이화여고를 졸업했다. 1947년 서울 중앙방송국(KBS 전신) 전속가수 1기로 뽑혀 <고향초>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1950년대 <나 하나의 사랑>, <청실홍실>, 1960년대 <카츄샤의 노래>, <서울의 지붕 밑>, <청춘 목장> 등을 불러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 노래를 작곡한 이인권은 1919년 청진 태생이다. 그는 1938년 <눈물의 춘정>으로 가수로 데뷔한 후 해방 전 <꿈꾸는 백마강>, <귀국선>을 불러 히트를 하였다. 해방 이후 그는 작곡에 손을 대어 <꿈이여 다시 한번>, <카츄샤의 노래>, <미사의 노래>, <단골손님>, <바다가 육지라면>, <들국화> 등을 작곡하여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작사가 유호는 이미 여러 번 소개한 대로 한국 대중가요계의 빛나는 별이 된 작사가이다. 그가 만든 수많은 노래들을 부르며 한국인들은 전쟁과 가난, 그리고 이별의 신산(辛酸)이 닥치는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살아갔다.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잊어
얼어붙은 마음 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오실 날을 기다리는 가엾어라 카츄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츄샤는 떠나간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보내드린
첫사랑 맺은 열매 익기 전에 떠났네
내가 지은 죄이기에 끌려가고 끌려가도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보고파라 카츄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츄샤는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