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민박
박지웅
흑산도 바람은 호탕하다 처음에는 섬이 베푸는 호의로 받아들였다 웬걸 통성명이 끝나자 바람은 멱살부터
그러잡았다 구겨진 옷깃을 추스르며 나는 낡은 민박집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봄태풍이라 했다 그가 거느린 바람의 문장들은 분신술에 능했다 함석지붕 위로 지나갈 때는 염소 떼로 몸을
바꾸어 우당탕 뛰어다녔다
섬은 바람을 흥청망청 쓰고 있었다 바람으로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세상의 바람이 거덜 날 거야 나
는 섬의 안방에서 잠을 설치며 심란했다 그날 밤, 민박집은 고래에 들이박힌 듯 기우뚱거리며 해안에서 멀어
지고 있었다
꿈을 꾸었다, 나는 뱃머리에 서서 고래의 눈에 겨누고 있었다 작살을 비스듬히 쥐고 그가 달빛을 올려다볼 때
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살에 체중을 실어 던졌을 때 고래는 물속에 수많은 얼굴을 빠뜨리며 가라앉았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도가 바람의 얼굴을 모으고 있었다
박지웅
부산 출생. 2004년 《시와사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나비가면』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