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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 들여다보기
요즘 모방송국에서 "왕과 나"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어
조금 살펴봅니다. 환관에서 조선 5대"문종"~10대"연산군"에
까지 시종에 임했던 내시"김처선'의 이야기가 전개 되며...
하늘과 동격이였던 조선시대 왕들은 평균수명이 47세이며 평균
즉위 연령은 24세 평균 제위기간은 19년 2개월이다 최장의 임금이자
최장기 재위했던 영조는 천민 출신인 숙빈 최씨에게서 태어 나 "서자"
출신으로 왕이 된 경우이다. 아래 네모칸을 one click하시면
연산군을 비롯하여 역대조선왕조 가계도를 보실 수 가 있다
다아시는 내용이지만 참고해 보세요(원 위치로 가려면위쪽×를누른다)
★왕의 하루 일과 입니다
예로부터 왕이 치루어야 할 업무는 만기 즉
만 가지 업무라고 할 만큼 많고 많았다고 하며 왕들마다
조금씩은 달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왕들의 하루 일과는 어떠했을까 !
왕의 기상시간은 해 뜨기 전인 새벽 5시 전 후
의관을 정제하고 왕대비전이나 대비전에 문안인사
하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되어 아침나절에는
경전이라고 해서 유학의 경서를 교육받았다
경전의 해석을 놓고 왕과 신하 사이에 토론이 벌어졌는데
이 경연은 아침 점심 저녁 세차례나 했다
아침 경연이 끝나면 아침 조회를 열어 대신들의 알현을 받았다
이어 각 부서별로 돌아가며 업무 보고서를 받고
점심 식사 뒤에는 주강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그리고 지방이나 중앙으로 파견되는 관리들을 만나 여러 가지
당부를 전하고 오후 서너시경 되면 대궐을 지키는 야간 호위병들의
명단을 점검하고 암구호를 정해 준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석강에 들어가 학습하고
왕대비전이나 대비전에 저녘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감했다.
오로지 잠자리에 들기전 2~3시간 정도가
왕 자신만의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왕은 대게 아침과 저녘 두 끼의 수라와 세 차례 간식을 먹었다
왕이 식사 할 때는 큰상궁방 등 궁녀 네사람이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이들은 왕이 수라를 들기 전 혹시 음식에 독이
들어갔는지 먼저 음식 맛을 보는 역할도 담당했다
또한 왕의 신부감을 뽑는 것을 간택한다 라고 했는데
우선 전국에 금혼령을 내려 양반은 물론 서민들 까지도
결혼을 할 수 없게 한 뒤 양반 가문에서는 조상의 이름과
신부감 이름이 적힌 단자를 왕실에 제출했다
대게 신부감은 이씨가 아닌 양반 가문으로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고 왕세자 보다 두 세살 연상인 처녀로
모두 삼단계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간택되었다
한편 왕들을 괴롭힌 직업병 1위는 종기였다
종기 때문에 몇 개월 동안 문 밖 출입도 못하고 누워 지낸
경우가 허다했는데 가장 큰 원인은 막중한 임무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운동부족이었다
왕은 세수도 궁녀들이 시켜 줄 만큼
몸을 움직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궁안에는 남자가 들어올수 없었으며 오직 왕 한명만이 남자고 그 외에는 내시와 궁녀밖에 없었다 그리고 궁안에 있는 모든 궁녀는 왕이 원할때 언제든지 잠자리를 할수가 있었고 이런것을 승은을 입었다고 하며 왕과 동침한 궁녀는 바로 지위가 격상되며 후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선대의 왕때 궁녀였던 사람들은 왕이 바뀌게 되면 모두다 바뀐다고 하며 전왕의 여자였으므로 한적한 시골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하며 일종의 유배라고도 한다 어찌보면 옛날의 왕은 좋은것이라고 볼수도 있고 나쁜것이라고 볼수 있겠다. 王이시여~`
(옥산포가 들여다보고 옮겼습니다) |
첫댓글 달리 운송수단이 빈약했던 수백년전을 비교하며 운하를 논하는 그들이 얼마나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지요. 바로 하락하는 MB의 지지율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닐걸요..태종 당시 대운하를 철회한 이유는 지형조건이 맞지않아서입니다. 즉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운하를 지으면 그다지 큰 효과는 없는것이죠
운하를 철회한 이유는 지형에 맞지 않다고 해서 그럽니다. 어찌 보면 500년 전 사람들이 이명박보다 훨씬 아는 게 많다는 뜻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