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뜸부기 -
* 신 웅 순
뜸부기는 갔다. 발자국 소리조차 남기지 않고 떠났다. 땅거미 질 무렵 ‘뜸, 뜸, 뜸’ 여름 저녁 노을을 붉게도 물들였던 뜸부기. 논둑에 자신의 울음을 버리고 뜸부기는 어디론가로 날아갔다.
듣기만 했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모르는 뜸부기. 잊을 법도 한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나는 왜 그 울음 소리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초승달 가까이 뜬 저녁 논빼미에서 그렇게도 울어대던 뜸부기. 그 뜸부기가 이제는 원고지의 빈칸에서 옛 모습, 그대로 서럽게도 울고 있었다.
그 동안 나는 고향을 떠났고 그 논빼미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후 십여년을 부모님은 어찌 사셨을 것인가. 어떻게라도 자식들과 살아야했던 부모님은 뜸부기의 먼 울음만큼 고독했으리라.
땅만 믿고 살아야 했기에 설움은 뗏목이 되어 강물로 강물로 흘러 갔으리라. 이제는 논빼미도 흔적이 없고 개천도 흔적이 없다. 그것들은 직선의 시멘트 물길만을 남기고 영원히 사라졌다.
뜸부기는 자연과 문명의 변곡점에서 슬피 울다 아무도 모르는 저녁,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났다. 뜸부기 울음이 뜸해져 갈 무렵 농촌의 젊은이들도 하나 둘씩 회색의 도시로 떠나기 시작했다.
나도 그 대열에 있던 한 사람이었다. 물가에서 떠나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침표가 되어 소리 없이 울며 마지막 알을 품고 있었을 뜸부기.
뜸부기의 울음은 마지막 미사를 알리는, 차라리 목이 쉰 종소리였다.
온 들녘을 점령하던 달밤 무논의 개구리 울음. 개천가 물풀 위를 폴짝 폴짝 뛰어다니던 소금쟁이들. 저녁 벼포기 어둠 사이로 스을슬슬 기어다니던 어린 참게들, 푸른 하늘로 구름처럼 하얗게 밀려가던 메뚜기떼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미꾸라지 사냥하러 나온 목이 긴 백로들. 이 모든 것들은 들녘에서 그렇게 마지막 야외 미사를 드리고는 먼 곳으로 떠났다.
미쳐 떠나지 못한 것들은 뜸부기 메아리와 함께 거대한 기중기에 들려 땅 속 깊숙이 내팽개쳐 처절하게 묻히고 말았다. 훗날 그날의 증언을 위해 화석이 되어 지금쯤 깊은 뼈의 잠에 영원히 빠져들었을 것이다.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던 서울 가신 오빠는 뜸부기가 울어도 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누이 동생에게 비단 구두 사준다고 해놓고 오빠는 새벽에 말을 타고 독립 운동하러 떠났다.
비단 구두를 사가지고 온다고 믿었던 누이 동생은 시집을 가고 뜸북이는 몇 십년을 논에서 울다 길일을 택해 영원히 이 땅을 떠났다.
일제 강점기가 따로 있는가. 이 땅에 살던 새들도 독립 운동하러 갔는지 한 번 간 새들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따오기가 그랬고, 두루미가 그랬고 뜸북이가 그랬다.
사람들은 이 땅에 얼마나 더 많은 구두 발자국들을 남겨놓아야 하는가.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슬프고 가슴 아픈 것들이다.
뜸부기가 떠난 이후 아버지는 피붙이 같던 논빼미를 팔았다. 아련한 뜸부기의 울음 소리는 우리 민족의 슬픔만이 아닌, 우리 가족사에 있어서도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우리를 먹여살렸던 땅이 일제에게 빼앗겼을 때, 가족들을 먹여 살렸던 논빼미가 다른 사람에게 팔렸을 때, 뜸부기는 논둑에서 서럽게도 울다 어디론가 노을 속을 훌쩍 날아갔을 것이다.
뜸부기 그도 이제는 내 가슴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멀리 멀리 날아가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곳에서 ‘뜸, 뜸, 뜸’ 실컷 울게 떠나보내야 한다.
뜸부기의 울음은 아버지의 울음만이 아니다. 뜸부기의 울음은 누이 동생의 울음만이 아니다. 우리 민족사의 뒤안길에서 나라를 찾기 위해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우는, 아내의 금이 간 속울음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 울음도 들을 수 없는 참으로 딱한 신세가 되었다. 한 마리 새의 울음이 반세기가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는 것, 이것이 이 강산에서 내가 살고, 내 후손들이 살아가야하는 이유 전부이다.
어디선가에서 못 다 운 울음은 비바람으로라도 울기 마련이다.
들것에 실려서라도 뜸부기는 끝내 병원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 시조시인, 평론가, 서예가, 중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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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새 천연기념물 446호
오빠 생각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재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뀌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오빠 생각' 이라는 제목의 이 시가 수원의 최순애라는 열두 살 소녀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을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것 같다.
최순애는 1925년 11월 방정환 창간운영인 어린이 잡지의 동시란에 오빠생각이 입선되어 동시작가로 등단했다. 다음해에 같은 공간에 마산의 이원수가 '고향의 봄'으로 입선하여 순애씨가 꽂혀 편지를 보내 오랜동안 펜팔을 하다가 7년만에 만나기로 했다가 일제 검거 관계로 어긋났다던가.
결국 과수원집 1남5녀중 유일한 오빠였던 최영주씨가 적극 후원하여 이루어졌단다.
이 시의 실제주인공인 오빠 최영주=최신복
동경유학하다 귀국하여 방정환 휘하에서 소년운동과 독립운동도 하여 집에 거의 오기가 힘들었던듯 한데...
그 와중에 이 시가 나온 모양이다.
하지만 그 오빠는 아쉽게도 일제 말기엔 변절하여 이름을 더럽혔는데...결핵으로 1944년에 작고했단다.
남편인 이원수도 그런 오명을 썼으니 기구한 팔자인듯....
하여간 동란때 몇아이를 잃기도 했지만 행복하게 잘 살다가 98년도에 작고했단다.
일제로 인해...혹은 공산당때문에 이름 더럽힌 이들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뜸부기도 따오기도 여름철새로 번식만 하고 동남아에서 겨울을 난다는데 지금은 멸종위기 같다.
정치권에도 수많은 철새들이 날았고 앞으로도 날아다니겠지만...혹시 철새가 없어질 날이 올지도...?
......근자에 정치인도 아닌데 정치논쟁에 열올리는 선후배들에게 매도당하다 보니....
...........秋心은 결국 愁이리니.........
愁...
愁愁....
愁愁愁.....
愁愁愁愁...........2021.6
첫댓글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날 오후시간에 컴앞에서 음악소리와.
좋은글 읽으면서 머물다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네요.
항상 몸 관리에 신경을 쓰시고 한주를 잘 설계를 하시어서 즐거운 한주를 보내시기를 바람니다..
왜 누나 노래는 없는 것인지..ㅜ
이건 성차별 아닌가 ^^
우리 누나 위자료...앗 미수떼이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