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와 불교의 관계
불교는 힌두교를 배경으로 한 종교이다. 그러나 힌두교와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힌두교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 발전 된 종교이다.
그러나 불교는 부처라고 하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하루아침에 형태를 갖춘 종교라 하겠다.>
대체로 불교는 힌두교의 결점을 시정하면서 힌두교의 모순에 대한 반항에서 이룩된 종교이다.
말하자면 힌두교의 종교개혁인 것이다. 불교가 힌두교에 대한 개혁이라면 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그 힌두교를 알아야 할 것이다.
힌두교를 알기 위해서는 다음 여섯 가지 종교현상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첫째, 종교는 어떤 특정한 권위나 권위자에 추종하는 것이다.
둘째, 종교는 어떤 일정한 의식을 갖는다.
셋째, 종교는 思辨이다. 신이나 정신생활에 대한 사색으로서 이론을 형성한다.
넷째, 종교는 전통을 따른다. 경험을 통하여 얻은 진리를 대대로 물려받으며 지켜 내려오는 것이다.
다섯째, 종교는 신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이다. 초월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여섯째, 종교는 신비주의적 요소를 지닌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것과 혼합도기가 일쑤다.
불교의 배경이 되는 힌두교는 이 여섯 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었다.
첫째 요소인 권위를 주장하는 일이 힌두교의 첫째가는 특색이었다.
브라만 계급은 권위로써 특전을 누려왔다.
둘째 요소인 의식에 있어서도 힌두교는 내면의 정신생활보다도 의식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물을 뿌리는 의식, 제사, 주문을 읽고 노래하는 많은 의식들을 돈을 내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영적인 생활은 소홀히 하였다.
셋째 요소인 이론에서는 우주의 창조와 그의 구조, 그리고 윤회설과 같은 이론을 전개하는
데도 열중하였다. 이론에 치우쳐 종교의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특히 전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힌두교는 맹목적이었다. 전통을 고집하여 앞날을 발전을
가로 막는 해를 끼쳐 주었다. 신의 전능을 절대화하는 나머지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고 또한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힌두교는 신비주의를 따라서 미신적인 마술과 입신을 행하는 데로 전락했다.
이렇게 하여 힌두교는 사실상 부패했고 정신면으로는 뒤떨어져 있었다.
부처는 침체되고 부패한 힌두교를 개혁하여 다시 새롭게 만들고, 신선하고 생명력 있는 종교로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부처는 진정한 종교를 위해 여섯 가지 요소들을 배격하였다.
1. 부처는 권위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부라만 계급만이 특권을 가졌다는 것을 반대하였고 종교의
진리는 그들 소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존중히 여기고
어떤 권위자에게도 굴복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남을 의지하지 않고 제 발로 일어서는 사람만이 마지막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2. 부처는 의식을 반대하고 브라만교도들이 제신에게 드리는 예배를 쓸데없는 것이라고 반대하였다.
예배는 영혼의 안식과 자아를 극복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했다. 부처는 어떤 형식을 가지기를 거부하였다.
3. 부처는 이론을 초월하였다. 부처는 “이론과 주장이 인생의 덕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비유를 들어 말하기를 ‘독화살’에 찔린 사람이 의사의 치료를 받기 전에 ‘어떤 놈이 나를 쏘았는지,
나를 쏜 놈이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는지, 그 화살의 모든 것을 알기 전에는 내 몸에서 화살을 뽑아내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더러는 인생도 그와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처의 종교는 이론보다도 인생의 구원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영원한 것인지 유한된 것인지, 물질과 정신이 분리된 것인지를 따지는
이론 추궁에 인생문제의 해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같은 이론이야 어떻든지 간에
여전히 인생은 윤회의 번뇌 속에 살고 있다. 늙어 죽게 되고, 슬픔과 고통과 낙망은 여전히 있다.
내가 이론으로 말한 것은, “다만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고통을 없이 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것뿐이다. 이것들은 인생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 이론인 것이다.
4. 부처는 전통을 따르거나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가 과거를 지배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과거의 전통의 노예가 되지 말라. 물려받은 교리를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말라.
언제든지 전통적 교훈이 실지로 사람의 고통을 더하여주고 해를 주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되거든
언제든지 그것을 버려라.” 라고 가르쳤다.
5. 부처는 인간 스스로 노력하는 정신을 가르쳤다. 인도 사람들은 사실상 좌절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인생은 거의 자동적으로 윤회의 수레바퀴를 따라 끊임없는 고뇌 속에 시달리도록
운명지워진 것으로 체념해 버리는 것이었다. 비록 자신의 운명이 부라만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만 년의 긴 세월이 걸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부처는 이와 같은 숙명론자들의 자포자기를 반대하였다. 그와 반대로 부처는 스스로 노력하여
운명을 개척하고 인생고를 제거할 길이 있다고 믿었다.
“남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노력하는 그 사람만이 극락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6. 부처는 초자연적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 모든 신령한 힘을 배격하였다. 요술이나 점과 같은
것을 천한 것으로 여기고 금지하였다.
“그것들이 인생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미워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 그런 미신적 요소들이 다시 재발하여서 불교에 침투해 들어왔다.
불교의 종교 사상을 현대 용어로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불교는 실증주의적이다. 진리는 사람의 경험을 통하여 얻어진다고 보았다. 진정한 구도자는
이론이나 토론보다도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는 것이다.
2) 불교는 과학적이다. 과학처럼 실험을 통하여 우주의 모든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발견하려고 한다. 원인이 있음으로 해서 생성이 이루어진다. 원인이 없이는 아무것도
생성하지 않는다.
3) 불교는 행동주의적이다. 종교적 행동주의라고 불러도 좋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보다도 실생활에서
당면한 어려운 문제들을 실지로 해결하려는 것에 부처는 더 많은 관심을 기우렸다.
4) 불교는 정신치료의 종교이다. 파스떼르의 말과 같이
“당신의 종교나 사상은 내게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아픔을 고치는 것만이 나의 일입니다.”
부처도 역시 “인생의 괴로움을 고치는 일만이 내가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5) 불교는 심리학적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주와 인간관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점에서 출발하지 않고 인간 실제의 문제가 무엇인가에 관한 인간의 분석 또는 그의 생활과정과 같은
인간의 심리학적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6) 불교는 민주의적이다. 부처는 정열을 가지고 계급주의를 반대하고 특별하 계급이 선천적이라는
주장에 반대하였다. 사회의 지위가 무엇이든지 간에 불교는 누구나 환영한다.
7) 불교는 개인의 종교이다. 물론 부처가 인간의 집단사회적 본능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는 교단을 창설하여 그 단체생활이 인간수양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역설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각각 자기 자신의 인생고를 극복하는 각성에 이르는 개인의 구원이 목적이다.
그래서 “안나다야, 너는 너 자신의 등불이 되라.”고 부처는 말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11.30 20:13
불교의 사상은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입니다.
실제로 보고 듣고 익히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통해서
외부의 어떤 존재에게 의지하고 구속됨이 아닌
자신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사상이 저변에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존재가 바로 부처이니까
고은이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