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314장)
※말씀: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14절)
■ 주님의 뜻
"큰 감동을 주었던 분들" 선교를 가기 전에 서울 합정동에 있는 100주년 교회와 외국인 선교사 묘지를 돌아봅니다. 어려울 때 선교사로 오셔서 한국을 사랑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들의 한 분 한 분의 묘비를 돌아보며 한국을 사랑한 수많은 흔적들에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교지에서 영혼을 사랑하는 선교사님들을 통해 큰 감동을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피곤에 지친 전도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학교시절 매주 목요일 명동에서 전도하는데 길가는 어떤 권사님이 우유와 빵을 주시면서 이렇게라도 동참하고 싶습니다. °36년 전에 동남아 단기선교 갔을 때 사업하시는 어떤 분이 우리 선교일행들에게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어느 여름에 전도사역을 갔다와서, 그 다음 주에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교회 부교역자들과 4박 5일 동안 먹을 것 준비해서 영동고속도로 소사에서 강릉까지 주변 지역을 다니며 전도사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소사에서 강릉까지 하행선부터 전도하면서 강릉지점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수목원을 찾아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어떤 분이 가족들이랑 아이스박스에 싱싱한 생선, 전복, 해삼, 멍게 등을 한 접시에 담아주어 먹었는데,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신학교 기숙사 생활 할 때 학교 앞 가게 주인 권사님, 신학생들마다 김치, 대파 등의 반찬을 주었습니다. 그 때 우리 신학생들은 김치를 금치라 했고, 대파를 쓸어 라면에 넣으면 그 맛과 향이 일품이었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또 어떤 가게 주인이 음식을 대접하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다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가 돈을 벌고 있지만 이 돈은 혼자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눠야 합니다. 가셔서 하나님의 일을 잘 하십시오.” 이럴 때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전도나 선교할 때마다 기도, 선교비, 선교물품, 식사, 차 대접 감동이었습니다. °더운 여름 전도 중에 지인을 통해 빙수를 대접받았습니다. °2023.11.29 선교현지에서 지인으로 케익ㆍ꽃다발로 생일축하를 받았습니다. 누구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상식을 뛰어 넘는 것을 말합니다. 감동은 가정이나 교회에서 그리고 선교 현지에서 꼭 필요합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상식적인 삶이 아니라 감동을 주는 삶입니다. 그럼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 감동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말씀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바울 자신과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는데, 목숨을 내어 주셨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위해 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14-15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도 그 분을 위하여 마찬 가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9절). °바울은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합니다. 14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여기서는 바울이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과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신 헌신적인 사랑이며,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뜻합니다(롬8:39절). ‘강권하시도다’ 여기서 강권은 폭력적인 강권이 아니라 감동적인 강권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혔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헌신적인 행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지금 죄인 중의 괴수였던 자신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주시고, 나아가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케 하는 복음을 전파하게 하신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16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7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누가 감동을 줄 수 있습니까? 감동을 받은 사람입니다. 남을 감동시키려면 우선 자기가 감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큰 감동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크게 감동시킵니다. ※어느 날 스펄전 목사님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 아내가 묻습니다. “왜 울고 계십니까?” 그는 답변하기를, “오늘 내가 십자가를 생각해도 감동이 없어서 운다”고 했습니다. ※찬85장 4절“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 감동을 주는 사람입니다.
마5:38-42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5:38-42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삶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삶의 상식, 법, 세상 윤리(도덕)를 넘어서는 삶입니다. 하늘 차원의 삶입니다. 언뜻 보기에 이런 삶은 세상에서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삶입니다. °본문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3절에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눈에는 미친 자처럼 보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결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라고 합니다. ※위대한 종교 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그들의 모든 노력과 일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 라는 개혁의 명제를 주창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서만 미쳤던 분들입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내가 미치지 않으면 남을 미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미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힘과 노력을 기울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기의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 하나님은 감동하게 하십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 하나님은 손해 보는 일들이 많아 보입니다. 그 아름다운 천지를 다 창조해 놓으시고 이것을 몽땅 우리에게 거저 주셨습니다. 해, 달, 별, 땅, 바다, 식물, 동물,... 다 공짜로 주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독생자까지 우리의 구속주로 내어 주셨습니다. 세상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할 이유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무한히 감동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키고 계십니다. 실패해도, 넘어져도, 곁길로 나가도, 다시 찾아주시고, 회복시켜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울 때 같이 우시고, 우리가 괴로워 몸부림칠 때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워하십니다.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언젠가는 다 내놓아야 할 때가 옵니다. 사회적 지위, 소유, 돈, 건강, 재능, 목숨, 시간까지도 나의 것이 아닌 것을 알 때가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감동케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동시키는 삶을 살아도 결코 가난하게 되지 않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절).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최고의 처신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동케 하신 것은 우리도 감동의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7절을 보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존재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15절),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자입니다. 감동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감동을 주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풍성합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오늘도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 주님께 기도
하나님, 우리가 더 늦기 전에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감동케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