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인하여
(느헤미야 8 : 1-12)
수년전 공산주의가 무너지기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는
“턱시도를 입은 예수”라는 제목의 기독교를 조롱하는 반신적인 연극이 상영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주인공 예수역으로 출연한 사람이 알렉산더 로스톱제브(Alexander Rostovzev)라는 미남배우 였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교회 나가본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그가 주인공으로 결정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극의 절정에서 그는 예수의 산상수훈 두 구절을 낭독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5:3-4)
이 말씀을 읽던 그는 두차례 더 반복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연극을 지휘하는 스탭들은 다음을 진행하라고 무대뒤에서 싸인을 주고 있었지만 그는 무대에 무릎을 꿇습니다.
무대의 막은 내려졌고 연극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날 그는 예수를 모독하는 역할대신 예수님의 말씀에 은혜를 깨닫고 눈물로서 회개 한 것입니다.
말씀이 가지고 오는 승리요 부흥이었습니다. 이런 말씀부흥이 나에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한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했고, 느헤미야 총독을 중심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았습니다.
원수들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일은 52일 만에 완공되었고, 유다 백성들은 각기 자기들의 거처로 흩어졌다가 초막절을 맞이해서 다시 예루살렘 성 수문 앞 광장에 모여들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수축하면서 신앙심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흥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회복을 위해서 에스라와 동역자들을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부흥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에게서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부흥으로 인도하실 때 어떻게 반응했고 승리교회는 어떤 일을 해야 부흥이 일어날까요?
1.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 왔습니다.(1절)
본문 1절에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여기서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라는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온 것입니다. 모이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모든 백성들이 자진해서 일제히 수문 앞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모일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승리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말씀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부흥이 일어나기를 위해 뜨겁게 모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나님은 두 세 사람이 모인 자리에도 함께 하십니다. 진정한 심령의 부흥을 위해 말씀을 읽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본문 3절에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하 모든 사람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무려 6시간 동안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6시간 동안 말씀을 전한 에스라도 대단하지만 말씀이 선포되는 동안 내내 움직이지 않고 경청했던 백성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가 없으면 10분의 시간도 지겹지만 재미가 있으면 1시간이 10분처럼 여겨지고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을 즐거워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5절에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에스라가 율법 책을 펼 때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에스라에 대한 예의라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경외심과 열정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요한계시록 3장 15-16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하나님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사람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열정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을 쓰십니다.
2. 하나님을 송축할 때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합니다.(6절)
본문 6절에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백성들은 에스라가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자 기쁜 마음으로 아멘, 아멘하며 화답했고, 응답했습니다. 공감이 되면 저절로 고개가 끄떡거려지고, 아멘이 나오고, 응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예수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진실로’를 두 번씩 반복하고 있습니다. ‘진실로’라는 말이 바로 신약성경의 언어, 헬라어로 아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멘’하는 것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아멘 하지 않아도 속으로 공감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아멘으로 화답하면 그 공감하는 것이 더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백에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믿어도 입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그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고백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13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믿음이 없어도 자꾸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면 그 말로 인하여 믿음이 생기고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아멘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아멘으로 응답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아멘"은 하나님의 무한한 신비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의 말씀은 절대적 권위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의 말씀에 "아멘"하라, 아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아멘은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한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실제로 여러분 입술로 아멘, 마음으로 아멘, 영으로 아멘해 보십시오.
입술이 찬양으로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마음이 근심, 염려, 걱정하는 마음이 바뀝니다.
영혼이 가라앉아 있다가도 힘이 솟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을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입니다. 방패요, 요새입니다.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한 검과 같습니다. 심령을 파헤치는 말씀을 들으니까 죄에 대한 아픔이 생기고, 아픔이 생기니까 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깨달음이 있고 회개의 눈물이 있고 더 나아가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3.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절)
본문 10절에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느헤미야가 먹고 마시라고 말한 것은 그 때가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이고, 여호와를 기뻐하기 위해서는 힘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자기만 먹을 것이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기를 권면했습니다.
교회는 사랑공동체입니다. 신앙생활은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하며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잘 믿고, 나 혼자 배부르고, 나 혼자 편안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공동체 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먹을 것이 없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습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깨달은 바를 즉시 실천함으로 살아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새로운 영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새 영을 받고 거듭난 자들입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말씀에 복종합니다.
말씀에 근거한 정체성을 선포하는 것이 진짜 정체성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려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송축하고 아멘 아멘 하며 믿음의 확신을 가집니다.
나는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합니다.
나는 하나님으로 부터오는 힘을 공급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