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출신 6.25전쟁 호국인물 이상수 소령
생몰연대 : 1926. 12. 18 ~ 1950. 10. 13.
출신지역 : 전남 고흥
최종계급 : 공군 소령
상훈내용 : 을지무공훈장, 공비토벌기장
참고문헌 : 호국용사 100선, 호국의 별 제3집
1. 생애(1926∼1950)
1926년 12월 18일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면 봉암리 224번지에서 출생한 이상수(李相垂) 공군 소령은 1943년 경성외국어학원의 3년 과정을 마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다이하센(太刀洗) 육군비행학교를 졸업하였다.
1948년 7월 22일 항공병 제1기로 입대한 그는 1949년 3월 1일부로 군번 50056의 공군 소위로 임관하고 동시에 항공사령부 비행부대에 배속되어 비행부대 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미 공군으로부터 OJT 기술이전교육을 통한공군 발전을 도모하였다.
1949년 10월 11일 공군 독립비행단으로 전속된 그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신예전폭기 인수단원으로 도일, 단기간의 교육을 마친 후 전폭기를 비행하여 7월 2일 대구기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였다. 1950년 10월 13일 유엔군 북진작전에 앞서 서울기지에서 출격한 그는 적도 평양시내의 김일성 관저에 대한 폭격을 마치고 북한군사령부에 대한 공격을 가하던 중 적의 대공포화에 피탄되어 애기(愛機)와 함께 적진으로 돌입해 최후를 마쳤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51년 7월 1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는 동시에 대한민국 공군 출격 조종사 중 전사자로는 유일하게 2계급 특진의 영광을 안게 되어 공군 중위에서 공군 소령으로 진급하였으며, 이 외에도 1952년에는 공비토벌기장과 6·25종군기장을, 다음해에는 대통령 수장 등을 수여받았다.
2. 공적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상수 중위는 F-51 전폭기 인수단원으로 선발되어 도일, 성공적으로 인수한 후 동년 7월 3일부터 출격에 임하여 의성, 함양, 상주, 무주, 대전 등지로 남하하는 적의 전차 및 차량, 보급품 등을 공격해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이후 1950년 8월 18일 통영상륙작전에 참가하여 해군·공군·해병대의 협동작전을 도와 성공적인 작전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1950년 10월 13일에는 평양시내의 김일성 관저를 공격한 후 북한군사령부를 공격하던 중 피탄되어 전사하였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적의 공세를 저지하던 아군의 전반적인 전세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자 대구기지에서 출격하고 있던 한국공군 비행단은 지상군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1950년 9월 23일 서울 여의도기지로 전진했다.
여의도 기지로 이동한 한국공군 비행단은 이날부터 유엔공군의 지시에 따라 북한내 신의주, 용암포, 곽산, 중화, 신안주, 평양, 겸이포, 강계, 만포진 등지로 출격하여 폭탄과 로켓트, 네이팜탄, 기관포탄 등으로 목표물을 공격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상수 중위는 10월 2일부터 여의도 기지에서 출격을 했다. 이날 이상수 중위는 박희동 대위와 정영진 중위, 김성룡 중위와 미군으로 혼성된 F-51 3개 편대는 신의주, 박천, 겸의포 등지로 출격하여 적 차량 6대와 군용건물 11동을 격파하고 적병 35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0월 5일 이 중위는 정영진 중위와 미군 2명과 함께 출격하여 강계 상공에서 적의 군수품 수송용 기관차 5대와 군용건물 2동, 교량 1개소를 공격해 대파했다. 그리고 10월 13일, 토요일이었다. 이따금씩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였다. 일기는 좋지 못했지만, 이날도 여의도기지의 한국공군은 JOC의 지시에 따라 북한지역에 대한 대지공격에 나섰다.
이 중위는 이날 평양 시내의 적 군사시설 폭격명령을 받았다. 그는 명령에 따라 박희동 대위를 비롯한 2명의 미군과 함께 4개의 250㎏폭탄과 4개의 로켓탄을 장비한 전투기에 탑승하고 부슬비가 내리는 여의도 기지를 이륙하여 평양상공으로 향했다.
이날 현재의 전황은 서부전선에서 38선을 돌파한 유엔군이 황해도 금천을 점령하고 평양을 향해 계속 북진 중에 있었다. 기상에서 내려다보자 패퇴하고 있는 적의 차량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박희동 대위를 편대장으로 한 4대의 F-51 전폭기가 비구름을 뚫고 평양 상공으로 돌입하자 평양 사위에 배치되어 있던 적의 대공포화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적의 지상포화는 비행기 주변에서 무섭게 작렬했다. 그러나 편대장기를 선두로 한 4기 편대는 적의 지상포화를 뚫고 목표물을 찾아 선회하기 시작했다. 목표물을 발견한 뒤, 편대장의 명령과 함께 4기 편대는 적의 지상포화도 아랑곳없이 적의 군용물 창고를 목표로 로켓트탄 공격을 개시했다. 포탄이 명중될 때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이상수 중위가 또 한 발의 로켓트탄 공격을 가하고 고도를 높이고 있을 때, 편대장의 공격중지 명령과 함께 귀환 명령이 내려졌다. '편대장님! 저에게는 아직도 2발의 로켓트탄이 남아있습니다. 김일성 관저와 북한군 사령부건물을 나머지 폭탄으로 박살내겠습니다.'라고 이 중위가 말했다.
이 중위는 계속 김일성 관저와 북한군사령부 폭격을 주장하였고, 편대장은 이 중위의 주장을 거절하지 않았다. 편대가 다시 평양상공을 선회하기 시작하자 적의 대공포화도 불을 뿜었다. 이 중위는 무섭게 작렬하는 적의 포화를 뚫고 제1목표를 향해 급강하하면서 로켓트탄을 발사했다. 폭탄세례를 받은 김일성 관저는 불바다로 변했다.
이 중위의 대지공격을 엄호해주던 편대장은 이 중위에게 집중되고 있는 적의 지상포화를 분산시키기 위해 기총소사로 적의 고사포진지를 누벼댔다. 그 사이 약 8,000피트 상공까지 상승했던 이 중위는 서서히 각도를 잡으면서 북한군사령부 2층 본관건물을 목표로 해 급강하를 시작했다. 그리고 로켓탄을 발사했다.
이 중위의 정확한 조준에 의해 발사된 포탄은 건물 중심부에 명중되어 작렬했다. 이어 북한군사령부의 별관 건물을 목표로 급강하하면서 기총소사를 가하고 상승하던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기체가 무섭게 동요하면서 붉은 화염이 엔진에서 치솟았다. '편대장님과 전우들의 건투와 무운을 빕니다!' 이 중위는 편대장에게 마지막 고별인사를 보냈다. 그 순간, 화염에 싸여있던 비행기는 완전히 기능을 잃은 채 요란한 폭음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져 폭파되고 말았다.
개전 초기부터 조국의 영공을 지켜왔던 이상수 중위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21회의 출격을 마지막으로 장렬하게 산화했다.
첫댓글 좋은소식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