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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개발의 포크레인에 밀려난 자들의 피눈물을 MB는 보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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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영(소설가,기별논설위원)
“지휘부의 지시를 따랐다.” 용산 철거민 농성장에 투입되었던 경찰특공대의 진술이다. 그들은 농성장에 인화물질이 쌓여있는 것도 모른 채 상부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재앙은 약속된 것이었다. 용산 개발지구에서 재벌건설회사와 땅주인이 챙기게 될 이익은 1조 4천억(1조원은 1만명에 1인당 1억원씩 나눌 수 있는 액수)이고 세입자에게 주는 후원금은 2500만원이란다. 그대들이라면 권리금,시설비,상권 다 포기하고 달랑 2500만원만 들고 너댓 식구가 생활터전을 떠날 수 있겠는가.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최저의 정착금이라도 협상하기 위해 그들은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입자를 쫓아내기 위한 시공사 용역업체의 짐승만도 못한 만행(한겨례21, 제758호에 도현웅기자가 다룬 용산참사 첫 공판 [끝내 울어버린 용산법정]에 상세히 소개되었음)에 시달리다 못한 철거민들은 망루에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생명체에게 부여된 생존권보존의 최후의 수단이라고 하겠다. 권력의 누대에서 평생 행복을 누려온 한나라당의 일부의원들과 그 권속들이 가난한자들의 삷의 절박함을 알 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게릴라라고 매도 선동하여 경찰들로 하여금 망루를 공격하게 했다. 진압이나 수습이 아닌 게릴라 소탕전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공격의 시점을 만물이 곤히 잠에 빠질 수 있는 새벽 4~6시를 타겟점으로 잡았다. 하지만 그들의 악랄함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망루의 화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소방 사다리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설치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격렬한 교전 상태 속에서도 거리의 교통을 차단시키지도 않았다. 그 밖에도 의혹을 일게 하는 대목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권, 재산권을 지켜야할 경찰이 선량한 시민의 생명(6명)을 빼앗으면서까지 재벌건설사의 이익에 동참한 오늘의 사태는 묵과할 수 없다. 그들을 도시게릴라라고 정치발언에 열을 올린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원직을 사퇴하라. 공격을 명령한 경찰 지휘부를 구속 기소 법정에 세워라. 재수사를 하라는 것이다. 재개발지구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이해 당사자 간의 갑론을박의 시비는 경찰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깡패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용역 요원들을 단속하며 구청장으로 하여금 그들을 협상테이블로 인도하려는 시도라도 하였는가. 아르바이트로 번 월급으로 아버지의 양복을 한벌 해드리려고 했는데... 그 아버지는 망루에서 새까맣게 탄 시체로 내려왔다. 이렇게 가족을 잃은 통증과 허망함이 가눌길이 없거늘, 철거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이 도리어 유족과 그들에게 기둥이 되어준 전철연을 구속,공판정에 세웠다. 하늘이 노하고 땅이 꺼질, 이건 분명 정상인이 사는 세상일이 아니다. MB를 무혐의 처리하고 그와 함께 꼬리곰탕을 영예롭게 먹던 특검팀의 재앙의 씨가 용산참사현장의 검찰,경찰의 수사팀에서 개화한 것이 아니었을까. 본 사건의 재판장이 한양석 판사임을 알았을 떄 필자는 기뻤다. 냉철한 그의 법리해석은 투철한 역사의식에서 운용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미 일만페이지의 수사기록에서 누락된 3000페이지를 제출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발단의 원인과 과정을 성실히 검토, 피고의 인권을 도외시하지 않은 적확한 결론을 내릴텐데 성급하게 사퇴한 변호사며 등을 돌린 피고들이 서운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양석 판사가 8일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 27부)에서 “누군가 사주했다” 라고 노여움을 토로하지 않았을까. 한 판사를 이해하면서도 변호사 선임때까지 재판을 연기해달라고 손을 든 피고의 청원도 받아드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공판중의 해프닝을 법정소란으로 간주한 한 판사의 견해와 필자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그동안 미술잡지에 글을 쓰면서 수많은 미술인들을 취재했다. 20여년전만 해도 Performance는 미술행사의 독점물이었다. 용산 참사사건의 법정에서 재판부에 등을 돌린 피고인들과 방청객 일부가 X자를 쓴 마스크를 걸고 자리에서 일어난 행위는 용산참사사건의 내용을 함축, Metaphor한 간결하고도 우수한 Performance였다. 그 연출자(한양석판사가 누군가의 사주로 지목된)가 몹시 궁금해졌다. 최근 경찰종합학교를 퇴임한 박종환 교장을 시사 IN 문정우 기자가 인터뷰했다. 기사에서 용산참사현장에 대한 언급의 한 대목을 발췌,전재한다. “....... (전략) 이미 농성자가 화염병과 시너를 쌓아놓고 자위력을 갖췼다면 그건 바로 진압할 수 없는 거다. 위험 물질을 거의 소진할 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분들도 밥을 먹어야 하고, 배설도 해야 하기 떄문에 시간이 지나면 나 좀 데려갔으면 하고 바라는 때가 온다. 시너가 폭발했을 경우에 대비해 다른 소화 장치도 마련했어야 했다. 사건이 처음 났을떄 나는 참모들한테 그랬다. 열흘 정도는 갈 것 같다고. 그런데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니 득달같이 진압했더라. 불법 무질서를 제압한다고 그 사람이 죽어도 좋을 정도로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