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 어느 시골 농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근면 성실하기로 칭찬이 자자했던 한 농부가
열심히 밭을 갈고 있는데 느닷없이 토끼 한 마리가
숲속에서 뛰어 나오더니 밭 가운데 있던 감나무에
머리를 찧으며 죽었다.
밭을 갈던 농부는 졸지에 토끼 한 마리를 얻고나자
힘든 농사를 죽어라고 짓는니 차라리 죽은 토끼를
줍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들고 있던 호미며 쟁기를 팽개쳐 버리고
나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어서 토끼가 숲속에서 뛰어나와
죽어주기만을 학수 고대했다.
그러나 3박 4일이 지나고 3년 6개월이 지나도록
토끼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농토는
폐허처럼 변해 버려 다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농부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토끼, 무슨 속상한 일이 있어 자결의 길(?)을
택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필이면 성실한 농부의
앞에서 죽음을 택해 전도양양한 한 젊은이를
폐인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토끼의 잘못이 너무나 크다?
아니다. 이는 자신에게 갑자기 찾아온 요행에 기대를 걸고
그 동안 기울였던 노력을 포기해 버린 농부에게 잘못이 있다.
요행, 그것은 어쩌다 찾아오는 보너스 같은 행운이다.
이를 믿고 자신의 할바를 다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다.
요즘 지하철역 등에서 동전으로 박박 긁어대는 이른바
즉석복권인가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 청소년들이 쉽게 눈에 띈다.
복권을 긁어대는 그들의 눈빛이 이 훈장은 너무나 싫다.
번들거리는, 요행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그들의 눈빛은
어서 토끼가 뛰어나와 감나무에 머리를 박아주기를
기다리는 농부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부와 재물은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만이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다.
어쩌다 찾아온 행운으로 인해 얻은 재물은
또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만다.
어리석은 농부가 되기 싫다면 노력하라.
성실히 노력하는 자에게만이 진정한 앞날이 있을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