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시는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중세까지는 조밥이나 메밥에 날생선 버무려놓았다가
오랜시간 보존해 발효시키는 조리법이였는데, 현재는 방법을 대신해서 식초를사용하며,
밥을 약간 되직하게 잘 지어야합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초밥이 주먹만 했습니다.
평소 먹어온 한입 크기 생선초밥보다 3배는 커 보였습니다.
이 초밥을 쥐여준 63빌딩 일식당 슈치쿠 초밥요리사 다카시마 야스노리(高島康則·47)씨는 20년째 한국에서 초밥만 만들어온 장인.
그는 "150년 전 탄생 당시의 에도마에즈시(江戶前壽司)는 이만했다"고 말했습니다.
에도마에즈시는 '에도(江戶) 성문 앞(前)에서 파는 초밥(스시·壽司)'이란 뜻. 에도는 도쿄의 옛 이름입니다.
다카시마씨는 "에도마에즈시는 현대 초밥의 원형"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에서 생선초밥을 만들어 먹은 건 7세기로 알려졌습니다.
붕어 따위 민물생선 내장을 제거한 다음 소금에 절이고 밥을 채워 삭혔습니다.
우리의 식해와 비슷했습니다.
16세기부터는 도시락 같은 틀에 밥과 생선살을 담아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달씩 숙성시켜 먹었습니다.
성미 급한 에도 사람들은 생선초밥이 숙성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18세기 중반 에도성 앞 포장마차 주인들이 식초로 간한 밥에 생선살을 올려 팔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당시로서는 '패스트푸드'였습니다.
인기를 끌자 같은 방식으로 초밥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성 안에도 생겨났습니다.
포장마차 손님들은 가게 앞에 서서 허기를 때웠고, 가게 손님들은 '테이크아웃' 해서 집에 가져가 먹었습니다.
당시 초밥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노동자들이 식사 대용으로 먹었기 때문에 크고 양이 많았습니다.
요즘 초밥은 샤리(밥) 30g에 생선 15g이 표준입니다.
그런데 18세기에는 2~2.5배 더 커서 두세 입에 나눠 먹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냉장 시설이 없었던 시절이라 날생선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간장에 절인 참치나 초절임 전어, 데친 새우나 오징어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먹는 날생선을 얹은 초밥은 역사가 50여 년에 불과합니다.
샤리는 2차대전 이후 차츰 작아졌습니다.
다카시마씨는 1995년부터 한국에서 일했습니다.
이제 일본과 한국의 초밥 문화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올챙이스시'라고 해서 밥은 적고 생선살이 길게 꼬리처럼 늘어진 초밥이 유행이었습니다.
붉은살 생선을 선호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는 흰살 생선을 선호하는 손님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 손님들이 선어(鮮魚)보다 활어(活魚)를 선호하는 건 여전히 일본과 다릅니다.
잘 만든 초밥을 알아보는 방법은 없을까?
다카시마씨는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부드러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꼬챙이로 초밥을 세로로 찔러 관통한 다음 살짝 들어 올릴 수 있지만, 입에 넣으면 밥알이 확 퍼지며 생선살과 고루 섞이는 느낌이
나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