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과 함께 하는 킬리만자로 여성등반대/정국향,이상은…마랑구 코스
하늘은 그야말로 온통 램프의 꽃밭 글·사진 이상은 대전쟈일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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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샘을 지나 키보산장으로 가는 길. |
황갈색 풀포기들이 띄엄띄엄 줄지어 몸 부서지는 황무지의 땅 아침에 눈떠 해야 할 바란 오직 걷는 행위입니다.
서서히 달구어오는 대지에서 푸석푸석 피어오르는 먼지들이 마구 입속으로 달려들면 더러는 그냥 마셔주고 더러는 삼키고 더러는 뱉어내고… 아예 푸른 초원일랑 꿈속에서나 그리기로 했습니다.
헤밍웨이가 그렸던 킬리만자로의 눈, 조용필이 불렀던 킬리만자로의 표범 기억나는 대로 혼자 웅얼거리며 걷고 또 걷고… 차라리 하이에나의 울음소리가 그리웠습니다.
휑하니 낮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교묘히 살갗을 비집고 다가오는 황야의 손길 까슬까슬한 먼지세례 한번 받고 나면 낮아집니다.
움츠린 목뒤로, 구부린 어깨 너머로 킬리만자로 꼭대기 만년설이 햇살에 눈부십니다.
낮은 자세로 그렇게 걷다보니 정상입니다.
너무나 척박해서 눈물나는 땅, 먼지세례로 콧물범벅이 되는 메마른 땅. 곽재구 시인의 글귀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이불자락인 섬진강의 모래를 등에 지고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은 그대로 램프의 꽃밭이었다…” 한낮의 열기가 식고 먼지 푸석이던 대지에 등대고 누우면 하늘은 그야말로 온통 램프의 꽃밭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척박한 곳의 별빛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잠보(안녕)!” 드디어 아프리카다.
생각했던 것보다 날씨가 서늘하다.
8월의 아프리카는 우리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더니…. 케냐 공항에서 탄자니아행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반소매 차림의 팔다리에 소름이 돋는다.
버스를 타고 국경 도시 나망가로 이동하여 출입국 수속을 밟고 탄자니아 제2의 도시라는 아루샤에 도착했다.
근방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메루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부슬부슬 안개비속에 저 멀리 메루산(Meru Peak·4565m)이 신비롭게 아른거린다.
다음날 아침 아루샤를 출발, 모쉬에서 현지인들이 장을 보는 동안 사진을 찍었다.
낯선 이방인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던 사람들도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포즈를 취해준다.
일행을 태운 미니버스가 킬리만자로 입구 마랑구 게이트(1980m)에 도착하니 약 30여 명의 사람들이 포터가 되기 위해 모여 있다.
호기심 어린 눈빛들. 동양인들이, 그것도 젊은 여자 넷이서 움직이니 무척이나 신기한가보다.
킬리만자로의 붉은 카펫을 따라 입산 수속을 마치고 열대림이 울창한 길로 들어선다.
아슬아슬한 옷차림의 타잔이 튀어나올법한 푸른 정글이다.
물소리, 산새 지저귀는 소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에 가득 찬다.
붉은 흙 깔린 오솔길에 간간히 흩뿌려진 나뭇잎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카펫 위를 걷다보니 문득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토록 밟고 싶어 한다는 오스카수상식장으로 이어지는 붉은 카펫이 떠오른다.
조물주께서 정상을 향해 열어놓으신 킬리만자로의 붉은 카펫. 장미꽃잎을 한 바구니 뿌린다한들 지금의 이 길만 같으랴. 처음 가는 길에 대한 설렘, 아니면 아프리카 열대림에 대한 신비로움에 매료된 때문인지 어떤 흥분에 사로잡힌 채 그렇게 붉은 길을 걷는다.
만다라산장(2370m)이다.
어느새 안개가 꽉 들어찼다.
고산에서는 오후 3시가 넘으면 날씨가 얄궂어지나보다.
식당 위층에 자리를 잡았다.
시끄럽긴 하지만 움직이기 귀찮을 땐 잠자리와 식탁이 가까운 편이 차라리 낫다.
산장에는 침상용 매트리스가 깔려있어 등반용 매트리스는 필요 없고 굳이 깔끔을 떨자면 얇은 은박매트 정도면 충분하다.
모두 바쁜 일정에 고단했던지 곧바로 잠에 빠져든다.
다음날 빵·커피·달걀 프라이로 허기를 달래고 호롬보산장(3720m)으로 향한다.
40분 가량 걸어가니 오른편으로 마웬지봉(Mawenge·5148m)이 보인다.
12월이나 1월엔 등산로 주변에 색색의 꽃들이 화사하게 피고 푸르른 초원이 하얀 구름, 파란 하늘과 더불어 기막힌 풍경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8월, 화려한 꽃 대신 마른 가지들이 숯처럼 까맣게 타들어가고 황갈색 풀포기들이 흩어져있을 뿐이다.
하늘엔 까마귀 한 쌍이 무료한 듯 날고 있고,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땅에 살짝 엉덩이만 붙인 먼지들이 입속으로 화르륵 달려든다.
지루하고 따분한 길을 소풍 나온 여고생들처럼 수다로 채우며 호롬보산장에 도착했다.
등반 3일째. 새벽 어스름 속 구름들이 산장 아래로 낮게 깔린다.
“아심! 보온병은? 더 없어?” 다른 팀들은 식기나 장비들이 호화판이고 보온병도 서너 개씩 되는데, 우리 팀만 1개 있는 보온병이 없어지면 찾느라 허둥댄다.
규모가 작은 여행사에서는 장비를 별도로 제공하지 않고 가이드가 자신의 물품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러니 남들처럼 커피잔, 물잔 따로 쓰는 호사를 누릴 수는 없는 것이다.
키보산장(4750m)으로 향하는 길. 마지막 샘(last water point)에서 포터들이 오늘과 내일 먹을 물을 보충한다.
앞으로 4시간 동안 사막 같은 황무지를 건너가야 한다.
이곳을 지나면서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고소 증세를 호소한다.
벌써 여러 명이 바위에 쓰러지듯 기대어 자고 있다.
“우리도 30분 쉬고 가자.” 국향 언니와 시연이가 많이 지쳐 있다.
메스꺼움, 졸림, 나른함, 무기력, 두통. 모두 고소 증상이다.
산장에 도착한 후 국향언니는 바로 침낭으로, 시연이는 저녁식사 후 바로 잠자리에 든다.
은선언니와 나도 새벽 출발을 위한 장비점검 후 잠자리에 들었다.
밤 11시. 통 잠이 오지 않아 조심스레 뒤척이다 설핏 잠이 드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웅성거린다.
우리는 산장에 늦게 도착한 탓에 조금 더 휴식을 취한 뒤 새벽 1시에 정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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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롬보산장에서. 왼편부터 필자, 오은선·박시연·정국향 대원, 가이드 프레디. |
고맙고도 소중한 인연 어둠 속의 웅성거림은 산으로 걸음을 옮기자 잦아들었다.
찬바람이 방풍 재킷 사이로 파고든다.
어제 저녁 잘 때만 해도 ‘늦겨울이지만 역시 적도에 있는 아프리카구나’ 싶게 추운 줄을 몰랐건만 지금은 손끝이 시리다 못해 아려온다.
30분 간격으로 오르다 쉬기를 반복하고, 쉬는 동안은 너나 할 것 없이 졸음에 고개를 떨군다.
“렛츠 고, 폴레폴레!” 졸던 가이드가 일어나 외친다.
‘폴레폴레(천천히)’라는 말을 들으니 네팔 히말라야에서의 등반이 떠오른다.
‘비스따리 비스따리(천천히)’도 네팔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니었던가. 가이드와 포터를 구해서 등반하는 모양새는 히말라야 쪽이나 이곳 킬리만자로나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히말라야 고산족 셰르파들과는 달리 이곳 가이드들은 낮은 곳에 살다가 한번씩 산에 오르는 터라 대부분 고소 증세로 힘들어한다.
산장 출발 1시간쯤 지나자 위에서 랜턴 불빛이 가까워진다.
2명의 등반 포기자. 잔뜩 움츠린걸 보니 추위로 하산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속장갑 위에 윈드스토퍼 장갑을 낀 내 손가락도 굳어 잘 펴지지 않는다.
‘아, 오버미튼을 챙겼다가 마지막 짐 챙길 때 뺐던 것이 이토록 후회될 줄이야.’ 킬리만자로를 너무 만만하게 본 나의 경솔함. 산에서의 사소한 부주의는 곧 고통으로 이어짐을 다시 한번 느낀다.
등반 시작 4시간 경과. 희끗하게 사람 그림자가 보이고 뿌연 먼지바람을 푸석이며 2명이 양옆에서 1명을 부축하며 아래로 거의 내달리다시피 하산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졸음에 가득 찼던 눈을 하고 있던 프레디가 눈을 치켜뜨고는 우리에게 말한다.
“하쿠나 마타타, 폴레폴레(걱정마, 천천히만 가면 돼)!” 동이 트고 길만스포인트(5685m)가 가까워 올 무렵, 먼저 출발한 여러 팀들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길만스포인트까지만 가더라도 등정증명서(길만스포인트는 녹색증명서, 우후루피크는 갈색증명서)가 발급되므로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힘들게 우후루피크까지 가지 않는다.
오전 9시. 드디어 길만스포인트. 기념촬영을 하고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물 한모금과 간식을 먹는다.
“오늘 안으로 호롬보까지 하산하려면 서둘러야겠는걸. 자, 일어나자.” 우후루피크(Uhuru peak·5895m)까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프레디, 은선 언니, 나만 걷고 있다.
국향 언니와 시연이가 힘들어 뒤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전 11시. 모래와 잔돌이 햇살 아래 벌겋게 드러난 언덕을 올라 우후루피크라 적힌 푯말 앞에 섰다.
“에고, 지겨운 것! 드디어 아프리카 정상 킬리만자로 꼭대기로구나.” 은선 언니에게는 5대륙 최고봉 등정 순간이다.
‘도전의 설레임과 지루함이 공존했을 시간들. 남은 칼스텐츠와 빈슨매시프 역시 건강하고 씩씩하게 해내시겠지.’ 이전 여러 선배님들이 다녀온 자료들을 보면 정상 가는 길에도 눈이 수북이 쌓여있던데 지금 이곳은 겨울이 끝날 무렵인데도 잔설조차 깔려있지 않다.
길 양편의 빙하만이 이곳이 아프리카 최고봉 정상임을 알려줄 뿐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2015년경에는 킬리만자로에서 빙하가 없어질 위기에 처해있다고 하니 킬리만자로 빙하는 우리 세대 이후에는 표범과 아울러 전설 속에서나 존재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예전에는 한라산 백록담에서 수영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은 우기 때가 아니고는 거의 바닥을 드러낼 정도의 물만 고여 있으니 멀리 이곳 아프리카만을 걱정할 일이 아니다.
자연에서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그저 ‘안타까운 손실’ 정도로 여기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 손실’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은선 언니와 등정기념식을 하고 15분쯤 내려오니 저 멀리서 반가운 모습이 보인다.
국향 언니가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로 힘들게 올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언니야 올 줄 알았어!’ 국향 언니가 올라오자 은선 언니와 나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발길을 돌려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작년 아시아 여성산악인들과 함께 했던 히말라야의 니레카봉(6159m) 등반 때처럼. 다시 정상이다.
“축하한다.
국향아!” 은선 언니는 5대륙 등정보다 국향 언니가 포기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한 것이 더 반갑고 기쁜가보다.
기념촬영을 위해 태극기를 들고 나란히 서있자니 가슴이 울컥 뜨거워진다.
참 고맙고도 소중한 인연이다.
산의 높고 낮음을 떠나 두 번이나 셋이 함께 정상에 서다니. 지루하던 이 길이 얼마나 그리워질까 내려오는 길은 너무 지겹다.
한달음에 내려 갈 듯 가까워 보이는 저 아래 황무지는 신기루인양 좀처럼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지친 발걸음만이 먼지를 더욱 부추길 뿐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삶의 모습이 엿보인다.
저 끝없는 먼지길을 언제 갈 것인가 지겨워하더라도 나는 분명 오늘밤엔 사막을 가로질러 건너가 있을 것이다.
저 굽이굽이 산 너머는 왜 이리 까마득할까 막막하지만, 몇 시간 후엔 그 너머에서 따듯한 차 한 잔 마시고 있겠지. 세상사 한치 앞 일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내가 이 길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어디까지 갈까 정하기만 한다면 그대로 가는 것이다.
내일이면 아루샤, 모레는 암보셀리 행이다.
편안하려 했다면 떠나지도 않았다.
그래 아프리카의 먼지 또 먹어주마, 실컷 마셔주마. 배부르게 마시고 나면 내 몸에서 영양분으로 자리 잡겠지. 황폐한 이곳에서 나는 내일의 여정을 그려보며 모레의 모습을 만난다.
지루했던 이 길이 돌아가면 얼마나 그리워질까. 산에서 내려오면 중독처럼 다시 배낭을 꾸리게 되듯 언젠가 이 척박한 땅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오지 않을까. 결국 그들도 지겨워하다가, 힘들어하다 나처럼 중독 될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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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후루피크 정상에 선 대원들. 왼쪽부터 정국향·오은선 대원, 필자. |
기간 2004년 8월 14일~24일
대원 오은선(영원무역·수원대산악회OB) 정국향(한국대학산악연맹 학술이사·이화여대법정대산악회 OB) 이상은(대전등산학교 간사·대전쟈일클럽) 박시연(수원대산악회 OB)
INFORMATION
킬리만자로 등반 길잡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인 킬리만자로(5895m)는 탄자니아에 있는 휴화산으로 세계 최고의 화산이다.
정상부는 주봉인 키보(Kibo·5895m)를 비롯하여 마웬지(Mawenzi·5149m), 쉬라(Shira·3962m) 등 세 개의 성층 원추화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의 크기는 동서로 약 80㎞에 달하며 그 중 키보는 가장 높은데, 전형적인 분화구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고봉을 우후루피크(Uhuru peak)라고 부른다.
1889년 독일 지리학자 한스마이어와 오스트리아 등산가 푸르트쉘러가 처음으로 등정하였다 등반 적기와 날씨, 예방 접종 킬리만자로는 적도 남쪽에 위치해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이며 연중 3월말에서 6월초까지는 본 우기, 10월말에서 1월초까지 짧은 우기이다.
따라서 그 외의 시기가 등산 시즌이다.
치료 중인 질병의 영문 진단서와 처방전을 준비하고, 떠나기 전 가정의학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황열병·말라리아·파상풍 등에 대비할 것. 여행자 보험가입은 필수다.
짐 수송과 숙식 포터 1명이 지고 가는 짐의 무게는 1인당 15kg. 따라서 큰 카고백보다는 중간 크기의 카고백이 더 유용하다.
음식 걱정은 접어두자. 15세기 말부터 식민화에 열을 올린 유럽인들이 줄곧 다녀간 곳이라 익숙한 서양음식으로 식단이 짜여 있다.
산장에서 음료수를 살 수 있으며, 물이 맥주보다 비싸다.
만다라·호롬보·키보 산장 등을 이용해도 되고 산장 주변에 텐트를 칠 수도 있다.
각 산장마다 태양열 전지판이 있어 식당·방·화장실에는 조명을 위해 전기가 들어오지만 카메라나 캠코더를 충전할 수는 없다.
방은 2인·4인·6인실, 단체실 등 크기가 다양하므로 가이드와 미리 상의 후 결정하면 된다.
성수기 때는 산장뿐만 아니라 텐트 자리도 구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