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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암태도 승봉산
지도
암태도 [승봉산&큰봉산] 산행지도
암태도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에 딸린 섬.
면적 43.09㎢, 인구 2,956명(2001)이다. 해안선길이 91.76㎞이다. 목포시에서 서쪽으로 약 25㎞ 떨어져 있다. 주위에는 추포도·당사도·초란도·진목도 등의 부속 섬이 있으며, 섬의 남쪽과 북서쪽에는 팔금도와 자은도가 각각 마주하고 있다. 원래는 3개의 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토사의 퇴적으로 하나의 섬으로 연륙되었다. 돌이 많이 흩어져 있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져 있다 하여 암태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약 600년 전 최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아노현에, 통일신라시대에는 갈도현에, 고려시대에는 능창현에 속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나주목에 편입하였다가 영광군에 속하기도 했으나 다시 나주목에 속하였다. 1896년 지도군이 창설되어 지도군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도군이 폐지되면서 무안군에 소속되었다. 1969년에 신안군이 신설되면서 신안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최고봉은 승봉산(356m)이며, 이 밖에도 큰봉산(223m)·박달산(197m)·추봉(159m) 등이 솟아 있다. 중앙부는 평지로 농경지와 염전으로 이용된다. 해안은 동쪽과 북서쪽에 큰 만이 있으며, 곳곳에 작은 돌출부가 있다. 사질해안이 대부분이고, 간석지가 발달해 있어 간조시에는 주위에 있는 부속섬과 연결된다. 1월 평균기온 0.8℃ 내외, 8월 평균기온 26℃ 내외, 연강수량 1,135㎜ 정도이다.
주민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나 농업에 더 많이 종사한다. 농산물로는 쌀·보리·참깨·콩·마늘·고구마·고추 등이 생산되는데, 특히 마늘은 특산품으로 알려져 있다. 연근해에서는 민어·송어·참조기·멸치·갈치·낙지·문어·전어 등이 잡히며, 대규모의 김 양식과 함께 제염업이 이루어진다.
면사무소·보건진료소·경찰지서·우체국·한국전력공사출장소·농촌지도소상담소 등이 있으며,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목포에서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1일 2회 운항된다.
고려시대에 이자겸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며, 일제강점기에는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문화유적으로는 노만사, 매향비, 우실(돌담), 서태석의 비, 추포 노두(바닷길) 등이 있다. 그밖에 추포 해수욕장, 암태도 농민소작쟁의기념공원, 오도등대 등이 있다.
신안군 자은도 두봉산
지도
자은도(慈恩島)
아홉 개의 백사장, 너른 들판이 펼쳐진 자애로운 섬
요약 :「자은」이라는 섬이름은 임진왜란때 지원을 왔던 명나라 이여송 휘하의 두사춘이라는 사람이 반역자로 몰려 이곳에 피신해왔다가 목숨을 건지게 되어 지은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두사춘은 생명을 보전한 것을 감사히 여기고 주민들의 사랑과 은혜를 못 잊는다는 뜻으로 자은도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자은도는 마늘과 땅콩의 주산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좋은 토질에서 자란 자은 마늘은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품질이 매우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땅콩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식품이며 맛이 담백하고 고소하다. 최근 자은도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특산물은 대파이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자라는 대파는 자은도 사람들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자은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면 소재지가 있는 섬으로 목포와 27km 거리에 있다. 동경 126°03′, 북위 34°53′에 위치하며 면적 53.54km2, 해안선 길이 56.8km, 연평균 기온 14.1℃, 강수량 1,172mm이다. 1,310 가구, 2,430명(2013년 기준)이다.
위치 |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면 소재지가 있는 섬 |
위도 | 북위 34°53′ |
경도 | 동경 126°03′ |
면적 | 53.54km2 |
해안선 길이 | 56.8km |
인구 | 1,310가구, 2,430명(2013년) |
목차
1. 자은도 개요
2. 자은도 둘러보기
3. 자은도 역사
4. 자은도 소작쟁의 운동
5. 자은도 자연
6. 자은도 관광과 명소
자은도 개요
자은도의 관문은 이웃섬인 암태도 오도선착장이다. 1996년 자은도와 암태도를 어어주는 675m의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남진(南津) 포구는 목포에서 오는 여객선이 닿았던 자은도 선창이었다. 남진 포구에는 일제시대부터 지서가 있었는데, 해방 이후 좌우익의 대립으로 이곳 지서가 습격당하여 탈취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사월포라는 동네와 함께 유일하게 고기를 잡던 마을이었다. 자은도 사람들의 나들목이었던 남진 포구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웃섬 암태도의 오도항이 이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오도는 원래 무인도이며 보잘 것 없는 곳이었다. 바로 앞에는 무인도인 낙오도가 있는데, 이곳은 물이 빠지면 갯벌위로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섬이다. 낙오도는 말 그대로 영원히 낙오돼버렸지만, 오도는 반대로 떠오르는 섬 중의 섬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 많은 이름 중에서 하필이면 낙오도라니! 그래도 낙오도 곁의 광활한 갯벌 위에 있는 해양생물들이 잘 보전될 수 있는 계기일 수 있어 일견 생태학적으로 기대가 되는 섬이다.
인근 11개 섬에 사는 사람들과 수많은 관광객들은 오도항을 통하여 25분 정도 배를 타고 목포와 연륙된 압해도 송공항으로 나간다. 요즈음은 압해도와 오도를 관통하는 새천년대교까지 건설되고 있어서 2018년 경에 완공되면 오도항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유명무실한 항이 되고 말 것이다.
목포로부터 27km 떨어진 자은도에 가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 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빠른 방법은 목포에서 버스를 타고 압해도 송공항으로 간 후, 오도행 농협카페리호를 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팔금도 백계 선착장을 통해서 가는 방법이다.
자은도와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등 이 네 개의 섬 가운데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섬은 자은도이다.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는데, 암태도와 자은도 사이에 은암대교가 개통된 이후로 많은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 또한 이 지역에서 가장 중심되는 도서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은도는 전국의 섬들 중 열두 번째로 크다. 자은도를 여행하다보면 의외성이 많다. 섬에 대한 고정관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바다와의 거리가 멀고 대부분 주민들의 생업이 농업이라서이다. 분명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지만, 주민들은 바다일보다 들일을 더 많이 한다. 한운리와 고교리 등 김 양식을 하는 마을도 있지만 아주 제한적인 데다 수산업 의존도가 매우 낮은 섬이다. 바닷가에 살지만, 땅을 일구고 살아온 바다 속 농촌마을이다. 천혜의 바다라는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해변산중’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다. 간척하여 만든 땅이 엄청나게 크고 기름지기 때문이다.
자은도는 지질학적으로 특이한 곳이다. 신안군 우이도에는 모래언덕이 있다. 겨울에 북풍이 거세게 불면서 모래가 파도와 바람에 밀려와 사구를 이룬 곳이다. 자은도도의 지형상 바다였던 곳이 거센 파도와 바람에 의해 모래가 쌓이고 쌓여 육지가 된 곳이 많다. 지금의 자은도 지도는 사각형처럼 생겼지만 예전에는 섬 안쪽으로 만(灣)이 깊숙이 파고들어와 해안선이 복잡했다. 오랫동안 자연현상이 일어난 것인데, 바다를 뭍으로 만든 것은 바로 파도와 바람의 힘이었다. 서해의 세찬 파도로 인해 바닷가 주변에 퇴적된 모래언덕이 생겼고, 해변의 사막이 나중에 땅으로 바뀌었다. 자은도 북쪽에 있는 백산리와 한운리, 송산리 일대가 그렇게 형성된 마을이다.
자은도의 지형을 변화시킨 것은 대규모 간척사업이다. 한 뼘의 땅이 아쉬울 때인 일제시대였던 1920년대부터 주민들은 자연퇴적으로 얕아진 곳을 둑으로 막고 논과 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1950년 6 · 25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수많은 섬사람들이 동원되어 울력을 벌였다. 이때 거대한 방조제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어른들은 지게에 돌을 지고 와 바다에 부리고, 섬 아낙네들도 자갈을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바다에 쏟아부었다. 수년 동안 피와 땀을 흘린 결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둑이 되어 자은도는 간척에 의하여 만들어진 섬이 되었다.
당시의 자본과 노동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을 비금도 대동염전 사장인 유의구(전국회의원)의 도움으로 조흥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실현시켰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섬사람들의 노력이 가장 큰 수훈감이었다. 주민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둑을 쌓고 거대한 농토를 얻은 것이 사실이지만, 나중에 이 돈을 갚지 못해 여러 사람의 손에 넘어가곤 했다. 이런 과정을 통과하면서 마침내 면적 52.2km2, 해안선 길이 56.8km의 국내 열두 번째로 큰 섬 자은도가 탄생한 것이다.
섬사람들에게는 넓은 땅을 갖게 되었으니 위험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간척된 이곳이 얼마나 비옥한지 농사가 잘 되어 동네 누구는 1억을 벌었네, 2억을 벌었네 하면서 자랑할 정도라 한다. 그래서 자은도에서는 기껏해야 서너 가구 정도만 어업을 겸한다.
섬의 동쪽엔 염전이 있고, 세발낙지와 짱뚱어, 칠게가 꿈틀대는 찰진 갯벌이 가득하다. 서쪽에는 소나무숲을 거느린 모래밭이 깔려 있다. 하얗고 고운 모래를 자랑하는 천혜의 해수욕장이 아홉 개나 줄지어 늘어서 있으므로 관광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섬이다. 이들 해수욕장은 경사가 거의 없어 완만하기에 물놀이를 한적하게 즐길 수 있고, 드넓은 갯벌에는 백합과 같은 수산물 캐기 체험 등이 가능하다. 앞으로 더 높은 관광수입이 기대되는 곳이다. 후덕하고 자애로운 자은도 사람들은 지금도 주민소득이나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 이유는 넓은 땅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물산과 천혜의 자연조건 덕분이다.
자은도는 마늘의 주산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좋은 토질에서 자란 자은 마늘은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품질이 매우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섬 전체를 뒤덮은 마늘밭에서 쏟아지는 스프링쿨러의 시원스러운 물줄기도 자은도의 볼거리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해수욕장 주변의 모래밭에서 대파를 재배하고 있는데 대파 수확기에는 목포 등지에서 수많은 인력들이 자은도로 건너온다고 한다.
자은도 둘러보기
은암대교를 타고 바로 자은도로 들어서면 자은도 나들목이다. 오른쪽으로 역사와 자연관광의 자은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있고 그 맞은편 왼쪽 산중턱에 정자쉼터가 있다. 나무를 박아 만든 계단을 타고 오르면 은암정이라는 팔각정자가 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일품이다. 한쪽으로는 아름다운 남진 포구가, 다른 쪽으로는 암태도의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은암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일품이다.
다리가 끝나는 도로변에 4개의 비석군이 보인다. 형태가 각양각색이다. 배를 묶는 돌기둥과 불망비 등 4가지 다른 형태의 석조물이 세워져 있다.
다리를 건너 1km 남짓 달리면 T자 모양으로 생긴 삼거리가 나오고 그곳에서 좌회전해 다시 3km를 더 가면 자은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자 중심지인 구영리가 나온다. 자은도의 중심에는 말 두(斗)자를 쓰는 두봉산(363m)이 있는데, 이 구영리 뒤편에 자리한다. 섬사람들은 두봉산이라고 부르기보다 말봉산이 더 익숙하다.
바로 옆섬 암태도에는 되 승(升)자를 쓰는 승봉산(355m)이 있는데, 이 산도 되봉산으로 불리는 것과 같다. 천지가 개벽할 때 한 말 정도 크기의 땅이 솟아 말봉산이 됐고, 한 되만큼의 땅이 솟아 되봉산이 됐다고 한다. 지금의 말봉산과 되봉산의 높이 차이는 고작 8m 뿐이다. 신안의 산들 중 두 번째로 높은 두봉산의 너른 자락을 중심으로 자은면 24개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자은도에 닿아서 먼저 간 곳은 둔장해수욕장. 둔장 해변은 한운리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 충주 석씨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손은 없다. 김해 김씨와 밀양 박씨, 충주 최씨, 전주 이씨 등이 많이 살고 있으며 동족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동족마을로는 백산리(김해 김씨), 유각리(경주 최씨), 고장리(전주 이씨), 구영리(제주 양씨), 유천리(이천 서씨), 와우리(신창 표씨), 둔장리(진주 강씨) 등 집성촌이 있다.
자은도는 백사장의 천국이다. 해수욕을 즐길 만한 장소가 드문 아래쪽 세 섬에 비해, 자은도에는 넓디넓은 해수욕장이 무려 9개나 된다. 모두가 섬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백사장은 섬의 북단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남단까지 펼쳐져 있다. 9개의 백사장 중 둔장해수욕장(길이 3.5km)이 가장 크지만, 관광객들은 백길해수욕장(670m)이나 분계해수욕장(600m)을 주로 찾는다. 이들 세 곳의 해수욕장은 화장실, 샤워실, 텐트 등 편의시설을 갖춘 곳이다. 거의 모든 백사장이 ㄷ자 형태의 포근한 해안선에다 기암괴석과 시원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 싸여 있다.
이 중에서 둔장 해변은 가장 길고 넓고 완만하다. 모래와 뻘흙이 섞였는데도, 바닥이 단단해 발이 빠지지 않는다. 한운리 둔장 마을과 송산리 두모 마을에 걸쳐 있으며, 자은도에서 가장 넓은 해수욕장이다.
둔장해수욕장에서는 소나무 숲에서 야영이 가능하며, 백사장 앞 할미섬에는 독살(돌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둔장마을 앞바다에 자리한 약 10만 m2에 이르는 동양최대 규모의 독살은 원시어업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돌을 쌓아 물을 가두고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독살은 바다에 친 돌울타리를 말한다. 밀물때 돌울타리를 넘어 들어왔다 썰물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돌담 사이로 물은 빠지지만 물고기는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돌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돌담 한가운데 하수관 같은 관을 묻어 바다로 튀어나온 관 끝에 기다란 그물을 걸어둔다. 돌울타리에 갇힌 물고기들이 이 관으로 몰려들어 그물에 걸리게 되는 손쉬운 어업법이 독살법이다.
둔장해수욕장은 앞이 확 트였다. 소두리도, 대두리도라고 불리는 두 개의 작은 무인도가 있을 뿐 툭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다. 독살이 있는 쪽은 다소 물살이 센 편이나, 다른 곳은 물놀이하기에 좋은 곳이다. 모래 역시 아주 가는 편이다.
백사장 뒤편에 나무로 데크 시설을 마련해두었고, 곳곳에 벤치를 마련하여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데크 시설을 따라 계속 가면 중간에 건물이 몇 채 있는데, 그 앞에 원형의 바다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하얀 색의 조립식 건물과 옥상을 가진 2층짜리 건물이 있다. 주변에는 잔디 등이 있어 야영하기에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이 주변이 둔장어촌계 체험장이다. 이 뒤로 소나무숲이 있는데 입구가 보인다. 바닷가의 해송이야 흔하디 흔한 수종이지만 동양최대 규모의 송림 숲이라 안쪽 산책길에 「무념무상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월포 마을 뒤 서쪽 해안에 있는 해수욕장이 신돌해수욕장이다.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신돌해수욕장은 석양이 유독 곱다. 두리도를 앞에 두고 붉은 빛이 바다와 하늘로 젖어드는 장관을 이룬다.
자은도에서 해수욕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백길해수욕장과 분계해수욕장이다. 분계해수욕장은 바다 건너 철새 서식지로 유명한 칠팔도 앞바다의 풍경이 아름답고 노송 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이곳은 자은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2010년 시민단체들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한 소나무숲이 있다.
자은도 맨 아래에 있는 백길해수욕장은 눈부신 하얀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규사 성분이 많아 백사장은 희고 단단하다. 주변의 기암과 어울려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3km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고운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지고 수심이 얕아 가도가도 끝없는 모래밭이다. 광활한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고운 모래사장은 주변의 소나무와 어우러져 있다. 해수욕을 위한 편의 시설과 민박을 갖추고 있다.
백길해수욕장은 두 곳으로 갈린다. 가운데에 툭 튀어나온 곶이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양쪽에 해수욕장이 있다. 그 뒤로 우거진 소나무 숲이 있는데 이곳에도 생태공원을 조성해두었다. 전망대와 무지개다리 그리고 데크 시설 등 다양한 시설물을 설치해 해수욕 외에도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둔장해수욕장에서 두모체육공원까지는 2km이고 사월포까지는 4km라고 표시되어 있다. 길은 아주 단순하다. 그냥 좌우로 짧은 목재기둥을 박고 그 사이를 밧줄로 연결해 길을 만들었을 뿐 별다른 것은 없다. 관리상태가 부실하기는 하지만 걸을 수 있다. 어느 정도 걸어가면 왼쪽에 철제로 된 펜스를 두른 운동장이 있고, 해안쪽에는 포토 존을 만들어 두었다. 좀 더 걸어가다 보면 잔디를 깐 운동장이 나타난다. 이곳이 두모체육공원이다. 별 특징이 있는 시설은 아니다. 관리동이 있어 이곳에서 수시로 야영이 가능하다. 운동장 한 번 둘러보고 운동장 입구까지 간 후 모래밭으로 나간다. 중간에 산책길이 있지만 이용객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 이곳을 벗어나면 바로 옆에 사월포가 있다. 반폐가가 제법 보인다. 이곳 역시 매립된 지형이다. 맞은 편 높은 곳이 소롱산으로 정상에 레이더 기지가 보인다. 예전에 해군기지가 있었다고 마을사람이 말한다.
선착장에 닿으면 큰 배 한 척이 반쯤 기울어진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제법 큰 어선이다. 배 안에는 물이 가득하다. 해안도로를 따라 집들이 있는데 바닷물이 도로까지 닿을 정도이다. 사월포 앞쪽 멀리 재원도와 증도가 있다. 이곳은 예전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나 지금도 새우, 병어, 강달어가 많이 잡혀 여름철에는 사월포 포구에 어선들이 북적거린다고 한다.
자은도 역사
사월포는 원래 부서 파시로 유명한 어장이었다. 부서는 참조기와 비슷한 민어과 어류이다. 자은도에서 유일한 어장은 남진포구와 사월포라고 할 수 있는데 40여 년 전만 해도 파시가 설 정도로 호황을 누린 곳이다.
지금은 그 명성을 찾기 어렵지만 사월포에 파시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무렵이다. 그때 사월포에는 농사를 짓는 네 가구가 살고 있었다. 그 후 사월포에 부서떼가 모여들면서 음력 4월부터 6월까지 전국에서 배들이 몰려들어 사월포에서 상장구지 코뱅이(할미바위)까지 3천여 척의 배가 촘촘하게 들어차, 배 위로 걸어서 섬으로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원주민들과 외지사람들이 10여 채의 홍등가를 차리고 흥청거렸다. 이에 따라 선구점과 전문 잡화상 등이 들어섰다. 선원들은 흙과 김치와 여자를 그리워했으므로, 파시철만 되면 술이 부르는 폭력사건 등으로 경찰관 2명이 임시 파견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고기잡이를 하면서 배에서는 나무를 가지고 밥을 해먹었는데, 물과 나무도 동네에서 팔았다. 나무는 돈을 주고 사기도 하고, 어획한 생선과 교환하기도 했다.
당시는 풍선(風船)이 판을 치던 시절이라 전국 각지에서 4~5톤 정도의 조그마한 목선이 5~6명의 선원을 태우고 부서를 잡았는데, 부서잡이는 사월포에서 10여 km 정도인 가무구섬(까마귀섬)까지 나가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잡힌 부서는 멀리서 온 운반선에 팔았다. 이 배들은 고기가 상하지 않도록 얼음에 고기를 넣고 전국 각지로 싣고 나갔다.
어느 한 주민은 이렇게 회고하였다.
전국서 온갖 고깃배가 다 와, 여서서 고기를 부렸다닝게로.
사월포에 아가씨만 80명이나 되았응게.
부서가 부욱 북하고 우는디 시끄러워 잠을 못 잘 정도였어라.
요 해변으로 게도 겁나 깔려 있었어요. 물릴까봐 발 디디기도 무서웠당께.
물 한 통에, 게 한 통씩 바꿨소.
파시는 1960년대까지 지속되었지만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서 끝이 났다. 그 대신 강달어가 몇 년 동안 잡히다 사라졌다. 1960년대 이후 흥청대던 파시촌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파시가 사라진 이유는 바다 생태환경의 변화이리라.
자은도 소작쟁의 운동
자은도 소작쟁의 운동의 전말을 설명하기 위해 전라도닷컴의 김창헌 기자가 쓴 기사를 잠시 인용한다.
자은도의 넓은 들녘은 역사의 땅, 저항의 땅이다. 암태도의 소작쟁의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자은도에서도 과도한 소작료 징수에 반발, 쟁의가 일어났던 적이 있다. 암태도에 이어 1925~1926년, 자은도 농민들은 깨어 있는 의식으로 역사의 큰 흐름을 이었다. 소작인 회의는 소작료를 4할로 낮출 것을 요구하며 지주와 맞섰다.
자은도 소작쟁의의 주요상대도 암태도와 마찬가지로 지주 문재철이었다. 문재철을 비롯한 일부 지주들은 농민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소작료 불납에 따른 재산차압을 단행했다. 1926년 1월 3일 목포에서 180명의 경찰관이 자은도에 투입되고, 경찰관들은 모든 뱃길을 막아 섬을 고립시켰다. 당시의 한 신문에 따르면, 경찰들은 소작회 대표자 검거에 나섰는데 자은 농민들은 하나같이 ‘내가 소작회 대표요’라고 달려들었다 한다.
몇 번의 충돌 후 훈련된 무력은 40여 명의 농민들을 체포하고 지주 문재철의 바람대로 소작인의 가산을 차압했다. 집달리와 지주단체농담회의 고용인은 경찰관 30명의 보호를 받으며 집집마다 다니면서 먹을 양식도 남겨두지 않고 차압했다. 자은도의 소작쟁의는 도초도 소작회 등과의 연대를 통해 자은도를 벗어나 확산돼갔다. 일본 관리들은 암태도의 경험으로 이를 피하려 했고, 지주들은 집결된 민중의 힘이 두려웠다. 쟁의로 인한 충돌이 일어난 지 한 달 만인 1월 30일 소작인회의는 지주 대표로부터 협정서를 받아냈다.
자은도의 소작쟁의 운동은 지주들의 관대하지 못한 이권 때문에 일어났다. 현대와 달리, 당시의 농경사회가 갖는 정서로 보나 농경문화를 끌어온 한민족의 나누는 정서로 보나 시대적으로 민족이 겪고 있는 나라를 빼앗긴 아픔의 역사로 보나, 관대함이 작용하지 못한 것은 분명 당시로서는 소작인들의 분노로 이어졌을 것이다. 저항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 자은도에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자은도 자연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리아시스식 해안과 서해안에 거대한 갯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제시대부터 최근까지 여러 군데를 국토확장과 식량증산 차원에서 거대한 바다를 방조제로 막아 간척을 했고, 어머니 자궁과 같은 강의 하구를 둑으로 막아 고기들의 산란과 살 길을 막아버렸다. 게다가 발달된 어업기술로 인한 남획과 오염으로 고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영암호, 금호호, 진도군내호, 고천암호, 새만금호, 시화호, 화옹호, 고흥만호, 해창만, 계화호, 마동호, 서산지구 등은 간척으로 엄청난 땅을 얻었지만 얻은 만큼 도리어 잃은 것도 많다.
방조제를 다시 원래대로 터놓으면, 나머지는 바다가 다 알아서 이전보다 더 풍요로운 바다세상이 이루어질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자은도의 유일한 어촌마을 사월포는 그나마 생태계가 보전돼 있어 어느 정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마을이다.
자은도 소작쟁의 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사월포 파시의 역사적 배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은도의 역사라는 보물이다.
거대한 옥토에서 일구어내는 대파와 마늘, 땅콩, 함초, 천일염 등 특산물에는 과거 섬사람들의 땀과 노력, 염원이 함께 깃들어 있는 간척의 힘이자 자랑거리이다.
섬의 동쪽엔 염전이 있고, 세발낙지와 짱뚱어, 칠게가 꿈틀대는 찰진 갯벌이 가득하다. 서쪽엔 소나무숲을 거느린 모래밭이 깔려 있다. 하얗고 고운 모래를 자랑하는 큰 해수욕장이 아홉 개나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이다. 이들 해수욕장은 경사가 거의 없어 완만하기에 물놀이를 한적하게 즐길 수 있고, 드넓은 갯벌에는 백합과 같은 수산물 캐기 체험 등이 가능하다.
연이어 있는 아름다운 해수욕장들, 최근에는 둔장해수욕장 인근에 자리한 ‘해넘이길’이 각광을 받고 있어 자은도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됐다. 지금은 리조트가 착공되어 건설되고 있으며 서해안 고속도로와 연결되었다. 새로운 관광지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고, 동시에 그들을 맞을 준비도 진행되고 있다.
2018년 새천년대교가 완성되면 자은도는 배를 타지 않고 차로 가게 된다. 주민들의 꿈이 현실화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자은도가 관광지로 알려지고 증도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는, 서남해안에서 둘도 없는 섬이 될 것이다.
자은도 관광과 명소
백길해수욕장 : 길이 840m, 폭 80m, 수심 2m의 백길해수욕장은 후면에 솔밭이 형성되어 있으며, 선착장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면 자은도 해수욕장 중에서 가장 먼저 닿을 수 있다. 모래밭에 서면 여기가 과연 우리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다. 3km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고운 모래사장은 주변의 소나무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분계해수욕장 : 자은도의 대표적 해수욕장으로 약 3km에 이르는 넓은 백사장과 백사장을 뒤덮고 있는 고운 모래와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울창한 송림, 해수욕장 바다 너머로 철새도래지로 알려진 칠팔도가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한 이곳은 여름 피서지로 적격이다. 분계해수욕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닷가 모래언덕에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노송이다.
매바위산 : 분계마을 매바위산은 이 지방의 명산 중의 명산으로 소문났다. 그래서 명당자리가 있을 것으로 알고 각 지방의 풍수들이 명당을 찾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또한 소원을 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부정한 사람이 기원을 하면 갑자기 불이 나서 화상을 입고 병신이 된다. 또 깨끗하고 신성한 명산이므로 뱀이 전혀 없고 산봉의 바위가 날카로운 매의 모습으로 늘 사방을 지켜주고 있다.
용소 : 도서지방에서는 특이하게 1만 평 가량의 호수가 있는데, 이곳을 용이 만들었다고 해서 용소라 부른다. 용소는 1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아 주변 땅콩단지의 급수원이자 이웃의 구영, 고장 들녘의 농업용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이 용소는 마르지 않고 계속 물이 나는데 양수작업 시에 용소등(30m)이 보이면 비가 와서 가뭄이 해갈되곤 했는데, 섬사람들은 승천한 용이 자기가 만든 용소에 물이 마르지 않게 비를 내린다고 믿어왔다.
해넘이길 :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해안누리길 5선에 들어간 이 길은 둔장해수욕장 끝부분에 인접해 있다. 소나무 숲길과 낮은 경사도를 자랑하는 드넓은 바다를 보며 사색할 수 있는 곳이기에 입소문을 타자, 외지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산 속의 임도(林道)인 해넘이길은 전체길이 12km 정도이고, 약 두 시간 정도를 걸어야 하기에 만만한 길은 아니다. 봄에는 주변의 꽃들을 보면서, 여름에는 피톤치드의 마력에 빠져서, 가을에는 단풍의 빛깔에 반해서, 겨울에는 맵찬 해풍에 맞서서 걸을 수 있기에 사시사철 색다른 맛을 주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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