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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매(從妹)
― 지리한 날의 이야기
지 하 련
석히(奭熙)가 집으로 도라온 지 한 반 달쯤 되었을까, 어느 날 그는 숙모(叔母)가 전하는 종매(從妹)정원(貞媛)의, 편지를 받었다. 더욱 의외인 것은 방금 병을 몹시 알른 어떤 화가(畵家)와 함께 운각사(雲閣寺)라는 절에 나와 있다는 사연이었다.
그가 편지를 읽는 동안
“얘야, 어떻게 된 일이냐? 종히가 것봉을 보구 어느 절간에서 낸 편지라구 하니 그 무슨 일이냐?"
하고, 참다 못해 숙모가 말을 건넜다.
"운각사라는 절에 나와 있는 모양인데, 무슨 일로 어떻게 나와있단 말은 통이 없고, 절 보구 곳 좀 와 달라는, 오면은 뭐구 다 알 거라는 말 뿐예요―一"
그는 편지를 접으며 우정 천천이 조용조용 대답을 했는데도 숙모는 펄적 하였다.
"온 별일두, 그래 빛 년만에 만나는 오라범인데, 당장 뛰어 못 오구 앉어서 오라범보구 오라니 그런 버르쟁이가 어뒷단 말이냐ㅡ"
그는 딸의 허물을 이렇게 말하는 숙모 마음이 어쩐지 정다웠다. 여기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인 그로서 원의 어머니인 숙모의 따뜻한 마음을 받고 자라온 소치도 있겠지만 아무튼 시방 숙모의 말이 의미하듯, 석히는 속으로 은근이 자기가 나오기 전 먼저 원이 귀국하여 기대려주리라 믿었었고, 또 이러한 기대가 어그러졌을 때, 몹시 섭섭했든 것도 사실이나 그러나 이제 이렇게 편지를 읽고 보니, 이런 저런 론의할 것 없이 대뜸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첫재 사정이야 어떻게 되었든간, 과년한 처녀가 방학하면 곧 집으로 올 일이지, 더군다나 절간 같은 데서 이런 종유의 편지를 내고 달코 하는 것이 도대체 신통지가 못하였다. 그러나 신통치가 못하든 어찌든, 이를테면 신통치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로서는 이대로 앉어 누이의 소행을 가만이 보고 있을 수는 없는 것 같은, 이상하게 갈래진 심사를 겪으면서, 그는 끝내
“제가 일간 가 보기로 하겠읍니다. 그 대신 자근어머니는 누구 보구도 암 말슴 마십시오."
이렇게 잘러서 말을 하였든 것이다.
석히는
"글세 말을 허긴 어데다 대구 헌단 말이냐….너이 삼촌께서 아시는 날엔 큰 거조가 날거다―"
하고, 무얼 먼저 나서 쉬쉬하는 숙모에게, 위선 집안에서들 이상하게 생각지 않도록 이번 방학엔 시험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고 일르라는― 이런 종유의 및 가지 부탁을 더 드린 후 돌려보낸 셈이다.
집안에서는 진작부터, 큰형석건 어느 조용한 절로 가 몸을 쉬라는 부탁도 있었고 해서 그가 운각사로 간댓자 아무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이래서 숙모가 돌아간 후 그는 곧 형수에게 내일 길 떠날 채비를 부탁한 후 그대로 번一듯이 누은 채, 어데가 닫는 아무런 관연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연애”(戀愛)란 것에 대하여, 찌금찌금 생각을 굴리고 있는 참인데
"되련님 옷, 녀름 것만 챙겨요?"
하고, 둘재 형수가 드러왔다.
"아무렇게나 하슈―"
그러나 형수는 바로 나가는 게 아니라, 옆으로 와 앉으며
"안의ㅅ댁 처녀 되련님 보셨소?"
하고, 은근히 무렀다.
그가 약간 어리둥절해서 바라다보려니까
“신식 처녀래두 참 얌전하대요 미인인데도 요즘 색시들과는 다르대요―”
하고, 건너다보는 것이었다.
석히는 형수가 꼭 원의 일을 눈치 채인 것만 같어서 싫었을 뿐 아니라, 필경 이런 말을 나오게 한 것이, 방금 자기가 무료히 누어 있은 때문일 거라고 생각이 되자, 이러한 형태로 나타나는 가족들의 호의가 어쩐지 거반 누끼할 정도로 싫었다.
"그러니 그 색시가 어쨌단 말이오?"
이렇게 무뚝뚝한 대답을 하는데도 이 사람 좋은 형수는
"또 괘니 이러시지. 삼십을 바라보는 총각이 그럼 색시 이야기가 싫단 말요?"
하고, 이번엔 제법 농쪼로 말을 받는 것이었다.
그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색시이야기가 싫치 않을지도 모른다. 허나 문제는 시방 말을 하는 사람과, 그 말을 받어드러야 할 사람과의 극히 미묘한 심리적인 어떤 거리(距離)에서 오는 야릇한 불꽤감 때문에, 마츰내 그는 눈을 감은 채 자는 척 해 버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형수가 나간 후 그는 정말 자고 싶어저서 자리를 펴고 드러누었으나, 그러나 정작 자려니까 또 잠이 오지 않었다. 머릿속엔 두서없는 생각이 함부로 떠올랐다. ―생각하면 석히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현실과 차단된 그 어두운 생활에서 이따금 마음속으로 제일 다정하게 만난 사람이 있었다면 그건 누이 원이였고, 누이와 자라난 고향의 기억들이었다.
어느 여름이었다. 내년에 서울 학교를 가야할 시험준비를 겨을리 한다고 중형에게 종아리를 마진 후 화나는 판에 또 무슨 마음이 내켯든지 적은 댁옐 가서 원이를 대리고 강까로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원이는 얼골도 이뻣고 또 무남독녀이고 해서, 참 귀염을 받었다.
석히는 아무리 화가 날 때라도 강까로 나와 천어(川漁)새끼를 쫓고 모래성을 쌓고 하면 그만이었다.
원이를 강변에 앉힌 후 죄고만식한 돌을 주서다가 앞에 놓아 주면서
"오빠가 올 때까정 이것 가지고 놀믄 착하지―-"
하고, 제법 으젓한 수작을 하다가 제 바람에 열적었든지, 다시 선머슴이 된 채 물 속으로 뛰어 드러갔다. 얼마 동안 곤두백이도 하고, 뒤집어뜨기도 하면서, 한참 재주를 부리는 판인데, 핏득 원이 생각이 나서 그 편을 보았을 때다, 웬일일까? 원이가 있지 않었다. 단걸음에 뛰어나와, 고이춤을 염이는 듯 만 듯, 사면을 둘러보았으나 보이지 않었다. 별안간―원이가 물에 빠졌다―는 생각과 함께, 그는 그만 으악 소리를 치고 울었다. 뒤미처 방금 물 속에서 죽으려구 하는 모양이 보이고, ……아무래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석히는 옷을 입은 채 물 속으로 드러가면서, 작구 너머졌다.
"게 누구 없어!"하고, 구원을 청하여 한 번 더 사면을 둘러봤을 때다. 앗질앗질 어지러워서 잘 분간할 수는 없었으나, 까마득한 모래밭 저편, 바로 뚝 밑에서 새ㅅ감한 머리ㅅ박이 아런거리는 것 같었다. ―원이었다.
원이는 제대로 굄 물에서 작란을 치누라고, 생쥐처럼 젖어 있었다.
"너ㅗ너―여긔 있었니? ……여게 있었구나!"
그는 영문을 몰라 처다보는 원이를 잡고, 작구 흔들며 안어 주엇다.
도라올 때, 오라범은 원이가 벌서 엎여다닐 나히도 아닌데, 죄고만한 도랑이 있어도 업고 건넛고, 또 도랑이 아니래도 작구 업고 갔으면 싶었다. 또 이날 저녁에는 제가 가졌던 좋다는 것인란 죄다 원이를 주고 하였다.
그 후 자라갈스록 두 남매는 의가 좋았을 뿐 아니라 원이 동경으로 오든 해, 불행히 석히가 동경을 떠나야 하던 해였고 보니, 지난 삼 년 동안 석히로서는 원이를 두고 염녀한 것이 하나둘이 안였든 것이다.
*
차가 은주(銀州)에 닿기는 오정이 훨신 넘어서였다. 여기서 원이 있는 운각사까지 가려면 다시 자동차로 세 시간 가량이나 가야했다.
그는 별루 시장하지는 않었으나 다소 갈증이 나는 것도 같었고 또 이왕 겸심을 먹을라면 이곳에서 치르는 것이 좋을 것 같어서, 역전 큰길 옆으로 화양요리라고 쓴 누르께하게 생긴 이층집으로 드렀다.
그랬는데 내부는 밖앝과는 사뭇 달러 식사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훨신 더 술을 마시는 곳 같었다.
그가 되도록 구석지로 가 앉으려니까, 마진 편 테불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눈이 변으로 툭 나온 남자의 시중을 들고 있든 여자가
"게―짱 오갸꾸 사마―"하고, 손님이 온 것을 알리었다. 인해 이 칭으로부터 인기척이 나드니 콧노래와 함께 게―짱이란 여자가 나타낫다.
그는 여자에게 맥주를 청한 후 담배를 붙이고 앉어 있는데, 조금 후 여자가 술을 가저와 따러 놓고는 옆으로 와 앉었다. 그런데 여자가 무척 철따구니가 없어 보였다기보다도 입을 호―벌린 채 앉어 있는 모양 석건, 꼭 제정신 빼어 매달아 놓고 사는 사람 같었다. 그는 거듭 잔을 비우며 너무 말이 없는 것에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러니까 쉬운 말로다, 술을 먹을 줄 알거든 먹어라는 격으로, 병과 잔을 여자 앞으로 미러주었다. 그랬는데 여자가 지금 취했노라고 대답을 해서, 이래서 그는 여자가 역시 취했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식전부터 무슨 술이냐는 것처럼 싱겁게 우섯다. 그랬드니 여자는 속알치도 없이 해죽해죽 웃으면서
"모르겠어요. 그저 먹어 버렸서요―" 하고는 때글때글 우섯다 이것은 그의 우슴에 대한 비상히 적절한 대답이었다.
석히는 여자의 놀랄만큼 민감한 것을 느끼며, 일방 이렇게 식전부터 술을 먹는 여자가 보매에 결코 흉악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여 여자의 헤일빠즌 말에 연해 실소를 먹엄은 채 그대로 앉어있었다.
조금 후에 그는 별다른 의미도 없이, 그러니까 지나가는 말로다 고향이 어텐가고 물어보았다. 그랬드니 그저 먼 데라고만 할뿐 잘 말하려 들지 않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싱거운 수작이라고 생각하면서
"먼 고향에서 멀허러 여기까지 왔오?"
하고, 다시 물어왓다. 그랬드니
"그렇게 되고 이렇게 되서, 그만 여기까지 왔어요―"하고는, 그것도 어느 유행가의 곡조 같은 그대로를 함부로 재질대면서, 이번엔 변덕쟁이처럼 호―한숨을 내쉬었다
석히가 겸심 대신 맥주를 마시고 돈을 치를 무렵해서
"고향이 어듸세요?"
하고, 여자가 도로 물었다.
석히는 순간 이상하게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해서
"나도 고향을 잘 몰루―ㅡ"
하고, 대답한 후 곧 밖으로 나왔다.
신작노의 손님은 늘 부핀 모양인지, 자동차는 잠뿍 만원이었다. 뒤칸에는 옆으로 학생복에 파나마를 쓴 젊은이가 앉고, 고 옆으로 역시 학생 같은 여자가 앉고, 또 그 옆으로는 삼십 오륙 세쯤 나 보이는 여자가 앉고, 이렇게 한 칸에 네 사람식, 차 안은 용납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석히는 차가 은주를 떠날 때부터(저 젊은 여자가 나히 먹은 여자와 동행이 아니었으면…)
하고는, 긍연히 초조해 하였다. 스스로 참 오지랖이 넓다고 퇴박을 주었으나, 그러나 이러 할스록 마음은 작구 그리로 닥어 가, 모르는 결에 고개를 길다랗게 하고, 연성 나이 먹은 여자 편을 살피곤 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이 여자는 천상 뚜쟁이가 아니면 그런 종유의 무엇이다. 그 능청맞고 헤변득스런 얼골 표정이라든가, 짙으게 화장한 솜씨라든가, 또 살빛이 푸르고 기골이 장대한 것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빈틈이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비단 이 여자 앞에 내려진 이 여자의 생애를, 이 여자의 방식으로 살어 온, 어느 “욕된 세월”이 끼치고 간 흉한 흔적뿐만이 아니라 이 여자에게는 어떤 천래의 망칙한 혈유가 있는 것만 같었다. 그러나 십 분 이십 분 한 시간, 이렇게 올 때까지, 뒤 칸에 앉인 네 사람은 또 변으로 아무와도 말을 나누지는 않었다.
차가 질령재라는 고개를 타고 쏜살같이 내다랐을 때, 비로소 청년이 젊은 여자에게 말을 건넜다.
석히는 모르는 결에 숨을 내쉬며, 차창으로 얼골을 돌렷다.
차는 어느새 고개를 넘어 이젠 아득한 평야를 헷치고 다러났다. 들로 가득한 자운영을 바라보며 그는 한번 더 입가에 싱거운 우슴을 지었다.
"서울 가 다으면 먼저 어듸로 가야 해?"
이번엔 젊은 여자가 말을 건넛다.
"내 하숙으로 가야지―"
여자는 더욱 적은 목소리로 다시 뭐라고 말을 건넛으나
"그래도 먼저 그렇게 할 수바께·¨"
하는 청년의 목소리 이외는 아러 드를 수가 없었다.
석히는 여전히 들을 내다보며
(서울을 가자면 어듸로 이리를 해 가나?)하고, 객쩍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두 젊은이는 뭔지, 저이들이 저질른 일이 아직 힘에 너무 크고 벅차다는 것처럼, 기를 펴지 못한 채 작구 딱딱해저서 뉘가 보아도 모르는 사이 같었다.
거반 운각사로 가는 길목이 얼마 남지 않었을 때쯤 해서 두 사람은 다시 말을 건넛다. 무얼 여자가 언짢어 하는 기색이라도 있었든지
"작구 그러믄 난 엇저라구P·¨"
하면서
"이제 가면 동무도 있고, 뭐구 다 일없어―一"
하고, 청년이 말을 했다. 순간 청년의 얼골엔 몹시 순뙤고 간절한 데가 있었으나 두 사람은 다시 아까와 같이 말이 없어졌다.
어느새 해도 지고… 소를 몬 마을 애들의 걸음이 빠를 때다. 마을도 산 그림자도 한껏 적막하고, 어슬프기만 해서, 바로 나들이 갔든 애들이 불현듯 집이 그리울 때다. 석히는 청년에게 뭐라구 말을 건너 보구 싶어졌으나, 결국 잠갛고 말었다.
책이 든 적은 가방은 손수 들고 간다 치고도 큰 것은 부득이 사람을 식혀야 했으나, 원체가 외딴 곳이어서 적당한 사람이 없었다 좌우간 짐은 주막에 부탁하는 한이라도 먼저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오리ㅅ목이라는 데서 운각사까지는 다행히 그리 머지 않었으나, 길을 아르켜 주든 주막집 노인이
"원 길이 험해서……어데 혼자 가겠는가요?"
하고, 염여해 주었다. 그가
"뭘요ㅡ괜찮읍니다―" 하고, 말을 하니까
"어데요, 안입네다. 잘못하다간 초행에 욕볼 겝네다―"하고, 노인이 거듭 말유했다. 또 그로서도 길이 헷갈려 괜한 욕이라도 본다면 부질없는 고집일 것 같은 생각이 없지도 않어서 그대로 우물쭈물하려니까
"내라도 가지요一"하고, 선듯 노인이 따라나섰다.
석히는 연상 막걸리 냄새를 풍기는 맘씨 좋아 보이는 이 노인이 처음부터 싫지 않었을 뿐 아니라 더욱 이렇게 동행을 해주는데는 엇쟀든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미안하다는 뜻으로 말을 하니까, 노인은, 절 아래 여관집 주인도 아는 터전이고 또 중들 가운데도 친지가 있어서, 자고 내일 아츰에 와도 된다는 것과, 전에라도 심심하면 곳잘 절로 올러가 놀다 올 때도 있다고 하면서
"어데 몸이 불편해서 가십니까, 공부를 하려 가십네까P"하고 물었다.
그래서 몸도 좀 쉴겸 구경도 할겸 왔다고 했드니
"그 좋습니다, 각처에서 해마다 많이 옵네다. 한 여름만 예서 나시면 가실 땐 딴사람이 될 겁네다―"하고, 연상 자랑을 했다.
두 사람이 꼬불꼬불한 논길과 언덕길을 돌아서 큰 느틔나무가 서 있는데서부터 별안간 물소리가 들리고, 좌우로 산을 낀 은윽한 골짝으로 길이 뚫어졌다. 초행이라 그런지 고작 오리 남짓하다든 길이 십리가 실히 되고도 남는 것 같었다.
석히는 바른 편에 시내를 낀 등살길을 바위ㅅ벽에 색여진 부처들의 일흠과 염불을 뇌혀보며, 잠잫고 걸었다. 차차 골이 깊고 물이 맑어 그런지, 이상하게 생각이 외고질로 쏠리는 것 같었다. 문듯 누이의 일이 생각힌다. 뒤미처, 저 시ㅅ검은 산고비만 돌아가면 원이가 있다는 것과, 자기는 오라지 않어 누이를 만난다는 사실이 똑똑이 알어진다. 그러나 산 모랭이를 돌아가면 또 산이 가려있고, 이 모양으로 절은 좀체 잘 나오지 않었다.
"금년에도 손님이 많이 왔습니까?"
"녜一금년엔 아직 별루 없읍네다―"
노인은 이 편을 보지 않은 채, 깨진 담배통에 석양을 그었다.
"그래 한 사람도 없어요?"하고, 그가 물어볼 판인데, 그제사, 노인은
"일전에 웬 학생이 알른 사람을 대러고 올러갔지요―… 남매간인 모양인데, 그 원 부모나 있는지…."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왔구나―)하고, 생각하면서 한편 남매간이란 말이 어쩐지 유쾌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노인 앞에 내색할 수도 없고 해서
"병인이 아직 젊은 사람입듸까?"하고 예사로히 말을 건넛다.
"아 젊고 말고요. 새ㅅ파랗게 젊우신네가 인물도 준수하고 아주 얌전하든 데 요一"
노인은 뭇지 않는 말까지 전해주면서, 뎁더 웨 그렇게 자세히 묻느냐는 것처럼 바라다보았다. 그는 우정 건너편으로 시선을 옴기며, 잠잫고 걸었다.
점점 어두어저서, 근엌을 잘 분별할 수 없었으나 차츰 길이 넓어지고, 수목이 짙은 것을 보아, 절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과연 빛 발걸음 가지 않어서 불빛이 보이고 인키척이 나고 하였다.
석히는 먼저 절 아래 있는 음식점에 들려, 술이랑 저녁을 노인에게 대접한 후 얼마간 노자를 주고 큰절을 올라왔다.
그는 누이와 만난 후 방을 정하ㅛ 짐을 헤치고 하여, 부피게 굴 것을 피하려고 먼저 중을 찾어 거처할 방부터 정하기로 하였다.
어린 중이 방을 쓸고 훔치고 할 동호R원이가 혹 뜰에 나와 있지나 않나?)싶어서 그는 및 번 주위를 살피고 하였다.
중이 다소굿한 합장으로 편안히 쉬라는 인사를 하고 나간 후, 여구를 푸러 제자리에 놓고 그는 잠깐 그대로 앉어 있었다. 고대 막 황혼이였건만 주위는 야심한 듯 적요하였다. 석히는 웬일인지, 이 밤으로 누이를 찾어 볼 홍이 나지 않었다.
그는 곳 이러나 요를 펴고 다시 벼개를 바로 한 후 역부러 손을 가슴 우에 단정히 얹고는 눈을 감었다.
아직 창살이 뿌연 새벽인데도 절간으로선 그렇지도 않은지, 오래 전부터 늙은 중의 염불 소리가 법당에서 지처 나왔다.
뭘 질정한 것도 없이, 석히는 밖으로 나왔다.
정면으로 대웅전을 끼고 사방 입구ㅅ자로 된, 절간이 어제ㅅ 밤 볼 때처럼 그리 웅장하지도 않었고 또 마당도 그리 넓은 폭은 아니었으나, 바른 편 담장 넘어로 대밭이 장관이었다. 그는 절문을 나서 기억자로 꺽어진 정갈한 축대를 밟고 있었다. 상긋한 약초 내음새를 풍기는 일은 아츰 공기가 콧날이 찌릿 하도록 밝었다.
차차 안개가 걷치고 바른 편으로 적은 길이 보였다.
그는 풀섶을 쫓아 조그마한 석탑에 기대어 잠깐 걸음을 멈첬다. 마진 편 하늘이 연자홍으로 밝고, 머리 우에 파르르 적은 새들이 날를 때마다 작구 손등으로 이슬이 굴러 떠러졌다. ―이 때였다―마진 편 언득 밑으로, 바로 길엌에 있는 우물가에 원이 세수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번엔 수건으로 얼골을 훔치고, 다시 머리를 풀어 매만지고 하였다.
원이는 삼 년 전에 볼 때나 별루 다를 게 없었다. 여전 목이 가느다랗게 여위 뵈고 서먹서먹 사람을 보는 그 눈이 어듸론지 지향없는 것 같었으나, 아직 짙은 색 봄옷을 입고 있어 그런지 얼골이 몹시 히게 보였다.
석히는 여전 움직이지 않은 채, 극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누이를 불러 보았다. 그러나, 원이 이 얕은 음성을 가려내지 못한 채, 마지막 축대를 올라섰을 때다.
"원아―"
그는 크다랗게 누이를 불렀다.
사흘째 되는 날 아츰, 석히는 누이가 말유하는 것을 물리치다싶이, 도로 자기 방에서 식사를 했다. 철재라는 화가 방에서 원이와 함께 먹는댓자 다 같은 절밥이지만, 그저 한자리에서 먹자는 것이 두 사람의 히망이었고 또 자기로서도 구지 이것을 거절할 아무 것도 없어서, 그저 되는대로 버려 둔 것이었으나, 그러나 누이와 철재라는 사람의 사이가 어떠한 관게이든, 이 두 사람이 지금껏 가지고 온 그 분위기를 자기로서 건듸리기가 어쩐지 껴름직 했다. 이래서 결국,
"번번이 가고 오고, 그 귀찮어서 어듸……"하고, 말을 끊었든 것이다.
청년과 원의 사이는 지난 사횰 동안 보고 느낀 바로는 좀체 요량하기가 어려웠고, 요량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난처해지는 자기 처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아이 중이 밥상을 내어간 후, 가방 속에 그냥 드러 있는 책들을 꺼내여 여기저기 놓으면서, 이를테면 얼마를 이곳에 있게 되든지 있을 동안은, 자기 생활의 질서를 세워야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었다.
바로 원이 드러왔다.
그는 여전 책을 들치면서
"어―ㅇ-ㅡ" 그저 애매한 대답을 하는데,
"오빠―"하고, 원이 다시 불렀다. 그런데 이번엔 그 불르는 소리가 어째 간절한 데가 있는 것 같어서 그는 책을 놓으며 누이를 보았다.
원이는 그와 가까히 하느라고 굽혔든 자세를 약간 바르키며, 오라버니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전부터 원이 항용 사람을 대하는 눈이었다. 이상하게 인정에 부다치면서토 몹시 서어한 듯 서먹 서먹 보는 것이 원의 눈이었다. 그러나 이 전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눈자욱에서 그는 무턱대고ㅡ원이 나를 의심하는 것이라고, 직 제가 한 바 그 행위를 내가 비난한다고 생각는 눈이라고T이렇게, 대뜸 넘거짚으면서,
"너 언제부터 날 의심하니?"
하고, 툭 잘러 뭇고 마렀다.
사실은 이제 누가 의심하는 것인지 몰을 일이나, 지금까지 그는 아무리 마음을 짚어 본대토 참 한번도 누이의 소행을 비난한 적은 없다고 생각는다. 이건, 자기가 삼촌이 아닌 이상, 뭘 도덕적으로 비난할 끈덕지도 있지 않었든 것이고, 또 누이란 의례 자라서 제 갈대로 가는 법인 바에야 가사, 어머니나, 오라버니가 제일이든 그때 누이가 아니라고 해서, 구지 불평을 품을 모책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렇게 연덕 없는 말을 별미적게 쑥―내놓고 보니 흡사, 지금껏 애매하였든 어느 마음 귀퉁이에 불만이 한껴번에 쏘다진 것처럼 그는 다시,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나를 의심하란 법은 없지 않어P"하고, 자기도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원이는 눈이 퀭―해서 오빠를 보고 있더니, 이번엔 그 서먹서먹한 눈에 눈물이 글성해서 얼골을 떠러트렸다.
그는,
(대체 얘가 웨 이렇게 잘 우느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갈래로 생각을 짚어보면서,
"웨 우니?" 하고, 무렀다.
"…………."
"말을 해야지 않어?"
그가 한번 더 채쳤을 때, 원이는 이 말에 대답 대신,
"그분 좋은 이얘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좋은 이라니? 그래서 운단 말이냐?"
"아무튼 그분 보면 맘이 언짢어요―"
"왜?"
"가엽서요―"
석히는 잠잫고 물러 앉어 담배를 부쳤다.
원이에게 이른바 그 정신적인 데가 있었다기보다도 말하자면 그리 건전치 못한 감상(感傷)이 있는 것을 그는 전부터 잘 알고 있다 이래서 이것이 이제 한 사람의 불우한 청년 우에 전쩍으로 표현된 것뿐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감상이 주관적으로는 어느 만한 높이의 것이든, 말든, 아무튼 어느 모로 보나 원이보다는 어룬이어야 할 철재로서, 이것을 아무 고통 없이 받어드릴 수 있은 점에 대하여 그는 내렴(內念) 가벼운 비난의 감정을 가저 보는 것이었다.
잠깐, 그대로 앉어 있노라니, 이번엔 맹낭하게도 핏득, 뇌리를 슷치는―내가 설량(善良)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꽤 매됨저 모지게 부딪는 것이었다 이제 만일 누이와 청년의 사이가, 그 소위 연애관게가 아닌, 단순한 동정에서나 혹은 한 소녀의 “감상’이 얼거 놓은 사이라면, 이러한 동정이나 감상이, 반다시 “소녀의 세게”에만 있으란 법도 없는 것이며, 또한 제가 누이를 사랑할 바에야 누이가 동정하는 사람을 저도 동정해서 못쓰란 법도 없다. 뿐만 아니라 만일 이제 철재라는 사람이, 누이로 인연해서가 아니라도 능히 그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구지 누이와 친하다고 해서 그와 못 친하란 법도 없다.
석히는 여태껏 옆에 가까이 가, 말 한마듸 다정히 건너본 적이 없는, 철재라는 화가의 여윈 얼골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몹시 알른 사람 앞에, 이렇게 냉정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좌우간 다 그만두고, 방금 원이 가엽다 생각하면 제일 간단했다. 만일 이러한 것을 “리해”라고 한다면, 이제 집안에선 자기 이외 아무도 원이를 리해하고 도아줄 사람은 없지 않은가 싶었다. 이래서, 결국 그는,
"아무튼 지금 집에선 야단들 났다. 허니까 넌 기회 보아 집에 단여 오기로 하고 그리고 병인은 내가 간호해 보마―"
하고, 잘러 말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원이는 아주 날를 것처럼 좋아하면서, 병인도 대단히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
"남의 총각하고 산 속에 와서 울고 하는 색시, 무슨 색시가 그런 색시가 있어?" 이리되면 그는 우정 우서 보일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석히가 철재 방으로 옮아 온 지도 발서 여러 날 되었다 밤에 물을 떠오고 우유를 끄려 멕이고 하면서, 그는 및 번인지,
(이게 위선이라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찌 생각하면 위선인 것도 같었다. 첫재 그가 이러로 온 후 제일 처음 느낀 것이 있다면, 그건 거반 역정이 나도록 거치장스러 보이는 철재의 인생사리었다. ―가족도 없고 돈도 없고, 병만 죽어라고 앓고, 세상 이렇게 페로운 생애가 있을 수 없었다. 이리되면 결국 이 사람이 살어가기 위해서는, 사람 상호 간의 지어지는 일정한 부담의 정도를 지나서, 반다시 어떤 타(他)의 희생이 필요할 것이며 또 이건 결코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석히는 모든 것을 이렇게 따저 보려는 자기에게 어쩐지 싫은 생각이 드렀다. 이렇게 까다로운 자기가 역시 못 좋은 사람 같은 일종의 강박관념이 앞을 서기도 해서다. 이래서, 그저 쉬운 생각으로 병자란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골란한 법이고, 또 자기의 이러한 것이 남의 골란한 때를 살펴주는 마음이 될지토 또 이러한 마음이란 사람에게 있어 그저 조건 없이 좋은 마음에 속하는 것이라면, 이제 저라고 세상에 낫다가 좋은 일 한번 해서 못쓰란 법도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용기를 주는 것은 철재가 싫은 사람이 아닌 것, 석히 자신 당금에 별루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석히는 벽을 향하고 누은 채, 이번엔 철재의 마음을 더듬어 보기 시작하였다. 자기가 이방으로 왔을 때, 철재는 물론 좋아하였다 그러나 암만해도 이것만으로 그의 마음이 무사하지는 않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들치고 있는 참인데,이 때 철재도 자지 않는 모양인지 여러 번 몸을 뒤척이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잠을 자지 않는 상대방이 암만해도 꺼름직해서, 끝내 웨 자지 않느냐는 것처럼 돌아다보았다. 철재도 그가 깨어 있는 것이 반가운 것처럼 마조 보았다. 그런데 그 웃는 얼골이 극히 단순하고, 설량하였다기보다도 완전이 히게 느껴지는 어떤 순수한 고독의 그림자가 순간 이상하게 심정에 와 부닫는 것이었다. 이래서 그도 따라 시무룩이 우스며 웨 자지 않느냐고 무러보았다. 그랬드니, 병인은 늘 이렇다는 것을 말하면서, 지금까지는 잠이 아니 올 때라도 자는 척 해야 했기 때문에, 이 잠 아니올 때 자는 척이란 여간 골란한 일이 아니드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석히가 잠잫고, 그저 그렇겠노라는 얼골을 하고 있으니까,
"이젠 형도 옆에 게시고, 또 열도 차차 좋아지고 하니까, 어떻게든 꼭 낫게 하겠읍니다―"
하고, 다시 말을 하는 것이었으나 석히가 생각할 때, 이런 종유의 말이란 혼자ㅅ말이 아니라면, 완전이 저 편을 신뢰할 때 있는 말이었다.
그는 역시 조금 전 철재의 웃는 얼골에서와 같은, 이상한 것을 마음으로 느끼며,
"그래, 얼른 낫게 합시다―"
하고 말을 받으면서, 일변 좀 더 다정한 말이 있을 것도 같어서, 잠간 머뭇거리고 있는 참인데, 별안간 어색하였다. 이래서, 별생각도 없이, 그저 얼결에 옆에 놓여진 손을 잡어 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난처하였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다는 격조로 잡은 것은 아니지만, 막상 잡고 보니, 철재와의 이러한 교섭은 지금이 처음일 뿐 아니라, 그는 본시 누구와도 이러한 경우에 이런 행동이 잘 있을 수 없는 위인이었다.
다음 순간 이것을 철재도 아렀든지, 그의 손을 드러 제 손과 비교해 보면서,
"내 손보다 더 여윔니다―"
하고 우섰다.
두 사람은 이상 더 말을 건너지는 않었으나, 석히는 철재가 좋게 생각되었다. 자기 병에 대해서 절대로 무관심한 그 태도도 좋았거니와, 또 하나, 이렇게 마음이 거래될 때 볼라치면 전연 알른 사람 같이가 않었다. 자기보다도 오히려 침착하고 초연한 데가 있어 보였다.
마츰내 그는 사람이 병을 앓른다는 게 참 재미있을 것 같었다. 눈감고 가슴에 손 얹고 무작정 누어서, 귀찮어지면 죽을 것을 궁리하고, 그 반대일 경우엔 또한 살 것을 궁니해 보고……얼마나 인생에 대한 유한 배포이냐 싶었다.
이래서 그는 어데가 닿는 말인지도 모를 말을,
"사람이 병을 앓른다는 건 분명히 편하고 유쾌하지 않소?"
하고 특 잘러 무러보았다. 그리고는 제바람에 흠칫했다. 무슨 생각에서 이런 말이 나왔든지 간에, 방금 앓른 사람에게 들리는 말로는 좀 가혹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재는 극히 평범한 얼골로,
"허지만 사람이 건강하다는 건 훌륭한 자연을 몸소 느끼고 만저 보듯 즐거운 일일 겁니다―"
하면서,
“역시 사람은 앓지 말어야지요―"
하고, 우섰다.
어느 날 세 사람이 점심상을 받고 앉었는데, 늙은 중이 목기에다 산딸기를 치먼이 갖이고 와서,
"이게 우리 절에선 한철 유명한 겁네다. 병인에게도 썩 좋지요. 체할 염녜가 없게스리 수건에 짜서 물을 먹으면 음식이 아주 잘 내립네다."
하고 말을 했다.
중이 돌아간 후에 딸기를 먹고 앉었는데, 원이 버쩍 뒷산으로 딸기를 따려 가자는 것이었다. 산에는 독사가 있고 길이 험해서 도모지 갈데가 아니라고 타일렀으나 끝내 고집을 부렸다.
마츰내 원이를 주저앉힐 도리가 없어서, 석히는 누이를 따라 뒷산으로 올라갔다. 산은 별루 높지 않었으나 수목이 짙고 질번―해서 배후에 태산을 낀 풍모였다.
딸기는 나무가 많고, 칙넝쿨 다래넝쿨 이런 것들이 무성하데 많이 있는 게 아니라 돌너드랑 쪽으로, 혹은 잔디밭 쪽으로 많이 있었다.
딸기가 많어질스록 원이는 정신이 없었다
석히는 돌너드랑에 걸터 앉인 채 누이의 하는 양을 보고 있었다. 그러노라니 핏득, 지금껏 한번도 똑똑히 무러본 일이 없는, 또 원이로서두 구태여 설명하려구 않은 (원이 같은, 이를테면, 못난 성질로서 어떻게 처음 철재와 알게 됐을까? 혹은 어째서 이리로 같이 오게꺼정 되었을까?)하는, 말하자면 그 마음의 자초지종에 대한 궁금한 생각이, 머리를 드는 것이었다.
"원아―"
그는 먼저 누이를 불렀다.
누이가 볕에 얼골이 빨개서 도라다봤을 때,
"유콰허냐?"
하고, 무럿다. 원이는 대답 대신 고깻졌으로 우서 보였다.
"저번엔 울기만 하드니―-"
"저번엔? 오빠꺼정 오핼 하니까 그랬지―"
"오해라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만 알거든……"
"웨 그렇지 않단 말 못했서?"
"그런 걸 말해서 되나. 말하게 꺼정되면 발서 오해한 건데―"
"뭘루 그렇게 잘 알었니?"
"오빠기 뭇지 않는 걸루―"
말을 마치자 원이는 잠간 오라버니를 건너다보았다.
"철재 언제부터 알게 됐었니?"
그는 끝내 뭇고 말었다.
원이는 한번 더 오라버니의 기색을 살피면서,
"동경서 지난겨울에 첨 알었어요―"
하고, 대답했다.
석히는 누이의 말투가 약간 존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아, 긴장하는 것을 곧 알었을 뿐 아니라 전부터도 이렇게 태도가 딱딱해지기 시작하면 원이는 말을 잘 못했다. 이래서 그는 되도록 정면으로 보기를 피하며, 짐짓 농쪼로,
"그래, 내라도 뭐헐텐데 네게 그런 좋은 교우가 있었다니……"
하고 우스면서,
"이를 게 아니라 우리 딸기 따면서 이야기 좀 하잣구나―"
하고, 이러섰다.
이 모양으로 시작된 원의 이야기는 그리 간단치가 않어서, 정히라는 학교 동무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부터, 처음엔 유망한 화가라는데 호기심이 갔고 다음엔 중한 병을 앓른다는 데 놀랐고, 이래서 가보기꺼정 되었다는 것인데, 그런데, 한번 가 본 후로는 도저이 그냥 모른 척하고 있을 수가 없었노라고 하면서,
"아무튼 의사도 그대로는 살지 못한다구 했으니까ㅡ그리고 옆에 누구 한 사람 있어야 말이지―"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친구도 없듸?"
"있었는데 오빠 같은 일로 다들 가고 없었어요―"
"여긴 어떻게 해서 오게 됐니?"
"여긴? 의사도 귀국하라고 했고 또 병인도 이 절로 오구 싶어해서,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마츰 하기휴가고, 집에 나가는 길에 여기 들렸다 가면 될 것 같어서 나왔지―一"
"철재가 이 절을 어떻게 알고?"
"중학 때 지리산엘 가면서 들렸섰대―"
"그럼 그는 그렇다하고, 웨 집엔 오지 않었니?"
"오느라고 병이 더해저서 갈 수 있어야지. 꼭 죽는 것만 같으데. 그래서 오빠 와 달라고 집에다 편질 했지―-"
석히는 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및 번인지 실소를 했다. 세상 철을 몰라도 푼수가 있었다.
"집에서 알면 큰 야단이 날 걸 몰랐니?"
“알긴 알었어―하지만 아니면 그뿐 안냐?"
"아니면 그뿐이라? 그래 마졌다, 네 말이……"
석히는 끝내 웃고 말었다.
원이 “아무 것도 아니면 그뿐 아니냐”고 큰 소리하는 것과는 달리, 철재와 원의 감정은 그 시초부터 결코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단지 죽는다는, 혹은 죽을 사람이라는, 이 크다란 사태 앞에, 두 사람은 조금도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든 것뿐이고,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밖에 표현되지 못한 것뿐이었다.
이것은, 앓른 사람의 병이 점점 차도가 있어 감을 따라, 반대로 차차 머러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아 잘 알 수가 있었다. 요컨대 이것은 “산다”는 데서, 비로소 “죽는다’’는 사실 앞에 양보한 “자기”들을 각기 찾이려는, 어떤 잠재한 의식의 표현 같기도 했다.
날이 점점 더워저 성한 사람도 나릿 할 때가 많었으나, 신기할 정도로 철재는 날로 차도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열의 상태와 수면의 시간이 월등히 좋아져서, 아츰이면 제법 자기 손으로 세수를 할 수도 있었고, 또 유독 기분이 좋은 날은 아츰이 아니라도 곳잘 이러나, 이따금 우수운 얼골들을 그려서는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드러 주기도 하였다. 또 원이는 원이 대로 마음이 내키면 곳잘 공부도 하고, 이따금 얼골이 나 몸치장을 할 때도 있어서, 제법 오라버니를 따라 산간에 와 있는 “누이”의 모양을 가출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석히는 주막집 노인이 은주에 가서 사흘이나 묵고 사온, 등의자를 제일 전망이 좋고 통풍이 잘 되는 절 문 밖 은향나무 밑에다 갖다 놓은 후 철재를 대려다가 앉히고는 아주 만족해하였다. 정말, 병인이 오래간만에 “자연”을 대하고 신기해하는 거라든지, 만족해하는 것은 또 유별란 것이어서, 그도 덩다라 괘니 웃고 떠들고 하였다. 이때 누가 뒤에 섯는 것 같은 인기척이 있었음으로 두 사람은 모르는 결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랬드니 그곳엔 원이가 별루 시―ㅇ글 해서 꺼―뚝 서 있는 것이었다. 그 서 있는 모양이 하두 우수워서,
"웨 그렇거구 있니?"
하고, 오빠가 무러보았다. 그랬는대도 원이는 이 말엔 별 대척도 없이, 이상하게 쭈볏쭈볏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하드니, 그대로 드러가 버리고 말었다.
이 날 저녁에도 원이는 별로 말이 없을 뿐 아니라 전 같으면 방도 치워 주고, 수건에 물도 축여왔을 게고, 또 직접 철재에게토 뭐구 제게 시킬 일이 없느냐고, 무러도 보고 했을 텐데, 일절 이런 일없이 그냥 제방으로 가버렸다.
원이 나간 후 석히는 문장을 치면서,
"곤할테니 오늘은 일직 잡시다―"
하고, 자기도 누었다.
조금 후 철재가 불숙,
"육친이란 어떤 거요?"
하고 무렀다.
"글세―"
석히는 위선 애매한 대답을 하면서, 철재의 기색을 살펐다. 그리고는
"원이 처음엔 육친 같였는데, 이젠 좀 달러졌단 말 아니요?"
하고, 도로 무러보았다. 그랬드니, 철재는 이 말에 대답 대신 그저 시무룩이 우슬 뿐이었다.
석히는 요지음 "나보담도 오빠가 더 동무지 뭐―"하고, 곳잘 말하는 원이를 생각하면서,
“남성끼리는 친하면 혹 당신 말대로 육친이란 걸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이것이 이성일 땐 좀 다르리다―"
하고, 짐짓 피식이 우스며 건너다보았다.
철재도 여겐 별반 말없이, 그저 그렇겠노라는 듯이 듯고 있드니 조금 후에
"아무튼 당신 말대로 하면 이성과의 사귐이란 너무 편협해서 그 어듸……"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허나 사나이들의 사귐이 편협해지지 않기 때문에, 편협한 이성과의 사귐 보단 훨신 평범한 것이 아니겠오?…아무튼 당신은 그림쟁이니까, 나보다 더 잘 아리다―"
석히가 짐짓 농쪼로 말을 받어서, 두 사람은 제법 소리를 내고 우섰다.
어느 날 절에는 재가 든다고 벅작건 하였다. 그곳에서 한 사십 리 가량 되는 연성 사람의 재라는데, 이 근역에선 제일가는 지주일 뿐 아니라, 금년 수물 일곱에 난 아들이 죽은 제사라고 해서, 아무튼 이 절로선 드물게 맞는, 대사였음으로 및일 전부터 절엔 중들이 득신그렸다.
물론 석히로서도, 알른 벗을 위하여 염여하지 않은 바가 아니었으나, 마츰내 철재가 도저히 이 소란통을 큰절에 앉어서 격거 낼 수는 없다고 야단을 해서, 더욱 난처하였다.
이렇다고 갑작이 딴 데로 갈 수도 없는 판이고, 또 이것을 철재로서도 응당 알고 있음즉도 한데, 이처림 심한 불평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한편 미흡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사실 성가신 일일지도 몰랐으나, 또 달리 생각해보면, 철재로서 이만한 체면쯤 직힐라면 훌륭이 지킬 수 있을 것임에도 불고하고, 정말 “육친”인 것처럼 믿고, 조그만한 마음의 불평도 숨겨두지 않는, 그 버릇이라고 할까, 병인다운 고집이라고 할까―아무튼 자기로서 이런 것을 좋게 받을라면 얼마든지 좋게 받을 수 있는 일일 것도 같어서, 이래서 생각한 나머지 평소 비교적 친숙히 군, 우담이란 대사를 찾어 상의해 보았든 것이다.
그랬드니, 대사는 그 뒤 암자에 빈방이 있을 것이라고, 다행이 주선을 해 주었다.
이래서 석히는 내일 구경을 보겠다고 발서부터 몰려와 웅성대는 사람들 틈으로 철재를 대리고 암자로 옮아왔다. 암자는 큰절 왼편으로 죽림(竹林)을 끼고 더 산 속에 있어, 한적한 폭으로는 큰절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더욱 늙은 보살이 암자를 지키고 있었음으로 오히려 편리로운 점이 많었다.
저녁상을 받고 앉어서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옆에 원이 없는 것을 느꼈다.
"큰절보다 저녁이 일르지?" 철재가 먼저 아른 척을 하니까,
"원인 저녁을 먹나?"
하고, 오빠가 말을 받어서, 두 사람은 멋없이 우섰다.
이때 간둥 간동 층게를 밟으며, 원이 드러섰다.
"호랭이도 제 말하면 온다드니……"
오빠가 제법 반가히 맞이려니까, 원이는 이 말엔 별 대척도 없이, 방금 큰절에는 사람이 어떻게 많이 왔는지 물끌틋 설레인다고 하면서,
"사흘동안이나 게속한대一―"
하고, 말을 했다.
과연 원의 말마ㅅ다나, 그 후 큰절에 재는 굉장한 것이었다.
재가 끝나는 날 밤 원이는 일즉부터 오빠를 찾어와 구경을 가자고 졸랐다. 밤중에 바라를 치고, 늙은 중이 념불을 외우고, 또 옆에 죽은 이의 아름다운 안해가 죽은 이로 더부러 슬피 우는 모양은 어째 신비하기까지 하다고 하면서, 작구 떼를 쓰는 통에 석히는
"그래 영혼이 뵈이듸?"
하고, 누이를 따라 이러섰다.
두 남매가 죽림을 끼고 좁은 길을 지나려구 했을 때다.
어린 중이 웬 청년을 대리고 이리로 오다가,
"손님 오셨삽내 다―"
하고, 앞으로 달려왔다.
그는 얼른 생각해서 자기를 찾어 올 사람이 없었을 뿐 아니라, 발서 어둠이 짙고 또 오래 보지 봇한 벗이라, 종내 태식인 것을 알어보지 못한 채, 오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이때, 청년은 그의 앞을 닥어서며
"날세―얼마나 고생을 했섰나?"
하고, 손을 잡었다. 석히는 그제사
"아ㅡ자네든가? 난 누구라구―"
하면서, 거듭 반가워하였다.
태식이는 그가 동경에서 사귄 친구다. 얼핏 보아 그 성격이나 취미가 정반대인 편이었으나, 어쩐지 두 사람은 친한 폭이었다. 석히가 주변이 없고 비교적 내성적이어서 좀 침울한 성격이라면, 태식이는 이따금 웅변이요 개방적이어서 화려한데 속하였고, 강한 자기 주장이 있으면서도 표현에 있어 그리 강경하지 못한데 비해서도 반대일 뿐 아니라, 심지어 말소리가 번화하고 취하면 놀기를 좋아하는 것까지 서로 맞지 않었으나, 석히에게 침울한 일면 어데지 화려한 곳이 있었고 또 태식이에게도 어데이고 석히의 일면이 있은 것처럼 두 사람은 이를테면 서로 반대되는 곳에 이상한 얘착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만난 그리든 친구라, 이야기가 그리 간단할 수 없었다. 석히는 처음, 도로 암자로 갈까 생각하였으나, 태식이와 철재는 면식이 없을 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 앞에서 수작을 하고 또 모르는 사람의 수작을 보고 할, 어색한 분위기를 두 벗을 위해 피하고 싶었든지, 그냥 큰절을 향하고 거렀다.
태식이는 일방 길을 걸으면서, 그가 나온 소식을 듯고 곳 집으로 찾어갔드란 이야기를 하면서,
"역시 동경 시절이 제일 좋았서…그때 기억이 젤 남는 것을 보면―"
하고 우섰다.
절 문 가까이 이르자 등촉이 낯과 같이 밝었다. 석히도 따라 우스며, 자조 버의 얼골을 보았다. 오래간만이라, 처음은 잠간 눈설어 보였으나, 얼골이 홀一죽해 보이고 꺼―칠한 것이―어덴지 장년티가 나 보였다.
석히는 이 빛깔이 히고 끼끗하게 생긴 벗의 얼골이 지금도 보메 흡족한지,
"자네도 좀 여윗나?…역시 그때가 좋았지?"
하고, 새ㅅ빠진 소리를 하면서, 마악 절문을 드러서려고 했을 때다.
뒤에서 원이 오빠를 불렀다.
그는 비로서 원이와 약속하고 나온 길임을 생각해 낸 듯이,
"어―ㅇ 너?"
하고, 돌아다보았다, 그러드니 이번엔 청년을 향하여,
"내 누일세―-"
하면서,
"나와 친한 분이다―"
하고, 말을 했다.
이날 밤 석히는 태식이와 큰절 원이 방에서 자고, 원이는 암자로 가 보살 노인과 함께 잤다.
문듯 요란한 바라소리가 뚝 끝인 법당으로부터, 외질로 찬찬한 념불 소리가 호졌이 들려왔다. 석히는 밤이 이식해진 것을 깨다르며, 지금쯤 아무 영문모르고 자기를 기두르고 있을 철재를 생각하며, 이러섰다.
"자네 곤하지? 나 이뒤 암자에 잠간 단여 옴세―"
석히가 말을 하니까, 암자에 누가 있느냐고, 태식이 무렀다. 그래서 어떻 알른 친구와 같이 있노라고 대답을 했드니, 태식이는 별루 고개를 꺼떡이며,
"아―그런가? 어― ㅇ, 그래?"
하고, 그 말의 억양과는 달리, 아주 무심한 얼골로 대답을 했다.
조금 후 석히는 죽림을 끼고 암자로 향해 거르면서,
(그만 아까 이리로 올 것을…)
하는, 막연한 후회를 하였다.
석히가 암자로 드러서니까, 이번엔 철재가 제법 어리둥절해서 이 편을 보았다. 그 얼골이 꼭 "대체 누가 왔길래 웨 이렇게 왔다 갔다 부산하냐?"는 것 같어서, 그는 모르는 결에 어색하게 우슴을 띈 채, "나허구 친한 사람인데… 원이에게 얘기 들었지? 하도 오래간만이라 그동안 얘기도 좀 하고, 그럴라니까, 이리로 오면 당신헌테 언짢을지도 모르고 해서……."
하고, 길다랗게 말을 느러놓았다.
얼마 후에, 그는 별 표정 없이 그저 좋도록 하라는 철재를 두고, 다시 큰절로 오면서, 한번 더
(그만 처음부터 저리로 갔으면 좋았을걸―)하는, 아까와 같은 막연한 후회를 하였다.
그랬는데 이번엔 그가 방엘 드러서자 댓듬,
"알른 사람이란 누군가?"
하고, 태식이 말을 건넜다. 이래서, 그는 되도록 간단하게, 그리고는 좋게스리 이야기를 하면서, 거게다 또 군덕지까지 붙처서,
"자네도 보면 곧 친해질 걸세一一"
하고, 건너다보았다.
그러나, 이 말에는 별 대답이 없이,
"자네 매씨와 친한 분인가?"
하고, 태식이는 제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어되로 어떻게 옮든지, 아무튼 석히는 철재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으나, 그 후 큰절에 재도 끝나고, 방도 있고 했지만 어찌된 셈인지, 철재와 원이는 암자에 있게 되었고, 석히는 태식이와 큰절에 있게 되었다. 하긴 철재가 암자를 좋아했기 때문에, 구지 그가 철재와 같이 있을라면, 태식이도 암자로 오든지, 혹은 원이와 태식 이가 큰절에 가 잇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그는 태식이를 대리고 암자로 오길 끄으릴 것보다도 더 원이를 큰절로 보내기 주저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늘러 있은 셈이었으나 그러나, 사정이야 어떻게 되었던, 그는 철재에게 때로 미안한 생각이 없지 않어서, 이래서 큰절에서는 잠만 잤을 뿐이지, 낮의 대부분은 암자에서 지나는 셈이었다.
물론 태식이도 석히를 따라 곳잘 암자에 왔고, 또 철재로서는 뭘 까다롭게 대하려구는 않었으나, 어쩐지 두 사람의 교우(交友)는 웬일인지 이곳에서 한거름 더 드러서지는 않었다.
이 날도 그는 암자에 갔다가 오정이 넘어서야 큰절로 도라왔다.
마츰 태식이가 있지 않음으로 방 한가운데 퇴침을 베고 누은 채 낮잠을 자 볼까 생각을 하다가 방안이 이상하게 답답하고 무더운 것 같어서, 도로 밖으로 나와 은향나무께 앉어 바람을 쏘이고 있었다. 이때 저 아래서 태식이가 싱글벙글 우스며 올라왔다. 이지음 태식이는 그가 암자에 가 있는 동안 이렇게 절 근방을 곳잘 돌아 단이는 모양으로 윗도리는 그냥 샤쓰 바람인데다 집행이까지 짚어서 젊고 건강한 모습이 더한층 눈에 띄었다. 태식이는,
"뭘 그렇게 정신을 놓고 않어 있나?"
하고, 가까이 오면서,
"혼자 어데를 단이나?"
하는 그의 말엔 별 대답이 없이, 저―편 내ㅅ가에 원이와 철재가 있드란 말을 전하면서
"집행이가 아니면 연성 쓰러질 것 같어서 옆에 서 있는 정원씨가 다소 가여웠지만, 먼데서 보기엔 제법 성한 사람 같으데"하고, 말을 하면서 우섰다.
석히는 약간 조소적인 벗의 말과 태도가 뭔지 몹시 싫었으나 이것보다도 이젠 철재가 거러단일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을 뿐 안이라, ㅡ연성 쓰러질 것 같다一÷ 말에 어쩐지 고소가 나기도 해서 그대로 따라 우스며 두 사람은 큰절로 도라왔다.
얼마 후, 마악 겸심상을 물리려는데,
“오빠 좀 오래―"
하고, 원이 드러왔다.
그는 철재가 물가에서 자기를 부르는 것을 짐작하면서, 이러나 밖으로 나오니까,
"나도 곧 감세ㅡ"
하고, 태식이가 말을 했다.
그러나 절 문 밖 우물 께를 돌아 나오면서 여러 번 뒤를 돌아다보았으나, 태식이는 그만두고라도, 웬일로 원이까지 나오는 기척이 좀체 보이지 않었다.
석히는 나온 지 한참 만에서야, 원이와 태식이 내ㅅ가로 나왔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것은, 가령 태식이와 철재 이 두 사람의 사이는 이렇게 직접 서로들 맛나면 제법 좋은 얼골들이어서 태식이도 비교적 무관하게 이야길 하고 또 이따금 노래도 부르고 했거니와, 철재도 그저 하는대로 보고 있어, 웃고 즐기고 하는데, 그런데 원이와 태식이 사이는 이것과는 훨신 달렀다. 석히가 볼 때 두 사람은 결코 싫은 사이가 아닌 것 같음에도 불고하고 기실 서로들 대할라치면 이상하게 태식이는 태식이대로 뻣뻣하고, 원이는 원이대로 팩팩했다.
지금도 이 두 사람은 뭘 다투기나 한 사람들처럼, 태식이는 별라게―흥! 하는 얼골이고, 또 원이는 원이대로 뭔지―되잖다!는 표정이다.
두 사람이 가까이 오자 석히는 짐즛 화한 목소리로,
"이리 와 자네 그 “먼―쏸따루치하”나 좀 듯세 그려―"
하고 우서 보였다.
“노래는 무슨 노래들―"
이렇게 태식이도 따라 우스며, 뭐가 열적은 것처럼 우물 쭈물 옆으로 와 앉었으나, 그렇다고 뭘 구태여 사양하려는 눈치도 아니었다.
본시 노래란 장소에 따라선 웬만치만 불러도 즐거워지는 모양인지, 노래가 끝났을 땐 석히도 철재도 다만 격찬했을 뿐인데, 따로 원이만이 배식이 앉은 채 잠장고 있었다.
석히는 남의 앞에 이처럼 반짓바른 누의 태도를 이제 처음 보는 것처럼 잠깐 아연하였으나, 그러나 태식이는 짐짓 피식이 우슬 뿐,
"얼마 안가 내 생일인데―"
하고, 화제를 돌였다. 그리고는 그날 단단한 턱을 받어야 하겠다는 석히 말에,
"암 턱이 있어야지―-"
하고 대답하면서, 다시 농쪼로 우섰다.
태식이는 큰절로 가고, 석히는 철재를 대리고 원이와 함께 암자로 왔다.
먼저 철재를 늄게 한 후 한동안 방 가운데 우두머니 앉어 있었으나, 내ㅅ가에서 서늘하게 있다 온 까닭인지 방안이 더 무더울 뿐 아니라, 아직 저녁때도 엇빠르고 해서 원이를 대리고 다시 물가로 나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일부러 나온 셈이기도 해서, 그는 아래로 제법 큰 여울물이 돌아 내려가는 넓다란 반석 우에 가 앉기가 바뿌게,
"너 웨 태식이 앞에서 그런 태도 취하니?"
하고 누이를 바라보았다.
원이는 뭔지 ―난 모른다는― 태도로
"그럼 어떻거라고?"
하면서 뎁더 건너다보았다.
"어떻거다니?"
"―그 사람 이상한 사람이예요―"
"이상한 사람이라니?"
"………"
"뭐가?"
"아무튼 싫은 사람이예요―"
그는 기가 맥혔다.
조금 후 오빠는 되도록 느릿 느릿 말을 시작하였다.
"가사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건 싫은 사람이건, 네가 그 사람으로 해서 이상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 안니?"
원이는 여전 같은 태도로, 그러나 약간―내가 뭐가?―라는 듯이, 오빠를 보았다.
"보니까 요지음 너 이상하든데. 있지 웨, 네가 싫어하는 여자. 난 이따금 네게서 이런 여자가 발견될 때 참 섭섭하더라―"
그는 여전 속삭이듯 가만 가만이 말을 했다.
원이는 역시 잠잫고 있었다.
"너 집에 가고 싶니?"
원이는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웨 가고 싶니?"
"………˙"
"그럼 내일이라도 가게 할까?"
"싫어요―"
두 남매는 다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석히는 이 가기 싫다는 이유 속에는 자기도 철재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었다. 분명히 태식이라는 횡폭한 청년(원이는 이렇게 느끼는 것이었다) 앞에 도망하기 싫다는, 지기 싫다는 꽤 강경한 고집인 것을 그는 곧 알었다.
―쟁평한 여울물 위로 알록알록한 산새 한 마리가 나지막히 날러갔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내” 마음에 무리가 있어서는 못 좋다고 생각는데……가령 무리란 원체가 어떤 약점 우에 서는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는―네가 태식이라는 청년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좋아하지 않느냐?―는 물음을 이렇게 원방으로 돌려 구구한 형태로 물어보면서, 누이의 기색을 살피었다.
원이는 여전 잠잫고 있었으나 인차 제법 으짓한 태도로 말을 받었다.
"오빠 말대로 그러한 마음의 무리가 있어 좋다는 게 아니라, 내 말은 단지 옳지는 않으나 있을 수 있단 것뿐예요―"
그러나, 그는 이 순간 누이의 얼골에서 이상하게 노한 표정을 보았기에 얼른 말을 계속하지 않었다.
조금 후 두 남매는 산기슭에 미끄러지듯 째레렁一하고, 멀어지는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물가에서 절로 들어오려면, 도토리 나무가 성히 서 있는 적은 길로 걷고 있었다.
"이제 막 네가 옳치는 않으나, 있을 수는 있단 말을 했는데, 가령 그렇게 된다면 그 마음의 곤욕을 어떻게 격나? 그러고 또 몹시 골란하다는 것은 몹시 괴롭다는 말도 될 수 있어서, 이 괴로움이란 정도를 넘으면 되돌처 반항으로 변하기도 쉬운데,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반항이란 항시 밝은 사람의 것은 아닐 거다ㅡ"
그는 여전히―네가 무엇이고 실수할까 무섭다―쓴 말을 이렇게 장황한 말로다 조심 조심 건너는데도 누이는 그의 말이 떠러지자, 거반 신경질적으로,
"밝음으로 해서 사람의 어려운 경우를 완전히 피할 수가 있다면, 세상엔 “불행”이나 “고통”이란 말들이 소용없게…?"
하고 역정을 내였다. 그는 속으로ㅡ앗차! 하였다. 분명히 이 말은 어떤 반항의 태세임에 틀림이 없었다.
"네 말대로 한다면, 돌뿌리를 밟은 사람은 다 넘어저야 한다는 격인데, 이렇구서야 어데 세상에 장한 것이나, 귀한 것이 있겠니? 그리고 “인생”이란 네 말과는 반대되는 의미에서 좀 더 엄숙한 것일지도 모른다一"
오라버니도 여기엔 잠깐 어성을 높였다.
다음 순간 잠잫고 있는 누이를 발견하자 그는 이상하게 언짢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그 천진하든 원이는 어데를 가고, 극히 침울한, 어데까지 무표정한 얼골 전체가 무슨 크다란 질곡을 격는 것처럼 차웠다.
(역시 원이는 현대(現小란에 살고 있는 거다!)
그는 드듸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거진 길이 암자와 큰절로 난호일 무렵해서, 원이 말을 건넜다.
"내가 말한 것은 단지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는 것뿐이고, 또 나보구 요즘 이상해졌다지만, 난 어쩐지 그분이 좋지가 않어서, 그렇게 뵛는지도 모른다우一" 하면서,
"퍽 좋은 분이래도 사람에 따러선 흔히 싫어하는 수도 있잖우, 웨 ―一"
하고는 우정 우서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는 누이가 지금 자기 앞에서 조금도 정직하지 못한 것을 알었으나 잠잫고 누이를 따라 그저 우서 주었다.
더위의 한 고비를 넘어들면서부터 산간에는 비가 잦었다.
석히는 근자에 들어 비교적 혼자인 시간을 갖고 싶어하였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갑잭이 철재에게 대한 성의가 줄어진 것도, 또 뭘 태식이에게 떠비한 정을 느낀 것도 아니었으나, 말하자면 철재가 점점 나어감을 따라, “남"을 위해 열중해 보려는 마음의 긴장이 푸러진 소치인지도, 혹은 철재의 병으로 하여 이루워졌든 어떤 공동한 생활 분위기로부터 이젠 각기 자기 처소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두 사람의 “자기 처소”란 햇빛 하나 드리우지 않는 몹시 어둡고 서글푼 곳이었든지, 이렇게 혼자인 시간을 갖고 싶어 한 이후부터, 두 사람의 얼골은 날로 우울해 갔다.
단지 태식이만은, 좀 더 보람있는 인생사리를 해 보려는 심산이었으나, 어쩐지 그의 눈엔 다 하나같이 너절하게만 보였다.
석히는 종일 책에 몰두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할 때마다, 그는 무엇이고 “산 문제”에 한번 부딪처 보구 싶은一이렇게 하기 위해선 살인이라도 감당할 것 같은――고약한, 그러나 이상한 저력으로 육박해 오는 야릇한 "의욕‘ 때문에 머리ㅅ속은 다시금 설레기 시작하였다.
이날 밤도 그는 혼자이고 싶었다. 옆에 태식이가 귀치 않다기보다도 무어라고 말이 있을 것이 주체스러워서 눈을 감고 돌아누은 채, 아츰나절 철재와의 얘기를 들쳐 보고 있었다. ―별루 마음이 내키지도 않는 것을, 어제ㅅ저녘 들르지 않은 것이 껴름직 해서, 그는 일직암치 암자로 갔었다. 식전까지도 보슬비가 나리는 날시라 여전 골작엔 뽀얀 구름이 아득히 서려 있었지만, 오랫동안 비에 가쳤든 마음이 울적하다는 것처럼, 철재는 혼자 뜰에 나와 축대에 심어진 초화들을 무심히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소?"
철재는 대답 대신 우섯다.
자리를 나란히 한 후 한참만에,
"가을엔 우리 막우 돌아단입시다―"
석히가 건넨 말이다.
철재는 그저 시무룩이 우슬 뿐 잠갛고 있드니
"밖앝엔 다녀 뭘하겠오"
하고, 여전 시무룩이 우스며 건너다봤다.
"하긴 그래ㅡ"
그도 우정 농쪼로 따라 우섰으나 결코 농이 아닌 것은 두 사람의 맥없이 어두어지는 마음이었다.
이야기는 단지 이것 뿐이었으나 돌아올 때 그는 철재도 자기처럼 가슴 속 어느 한 곳에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는 크다란 구멍이 하나 뚜려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얼마를 이렇구 있는데, 건너편에 앉어서 제법 머리를 동이고 뭘 쓰고 있던 태식이가
"자나?"
하고, 별안간 말을 건넜다.
석히는 대답 대신 이편으로 몸을 돌렸다.
"자네 언제까지 여게 있으려나?"
"글세 가을까지나 있어 볼까―"
석히는 웨 뭇느냐는 듯이 건너다보며,
"웬만하면 한 십 년 있어도 좋고……"
이러한 실없은 대답을 하며 옆에 있는 담배를 집어 불을 뎅겼다.
"자네 몸이 약해진 까닭도 있겠지만 아무튼 전보다는 많이 달러졌서―一"
"뭘 보니까?"
"아무렇기로 자네가 산 속에서 십 년을 살어서야 어데 쓰겠나―"
"쓰다니 어데다 써?"
"그럼 못쓰야 허나?"
그도 태식이를 따라 웃고 말었으나, 태식이는 곧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나는 곧 서울로 가기 작정했네. 그래서 한번 세상과 싸흠을 해 볼 작정일세―"
"돈을 한번 뭏아 보겠단 말이지?"
"마졌네. 위선 내가 먼저 살어야 한다고 생각했네."
"타락할걸세. 관두게나―"
?아니야, 자신이 있어―"
"자네 어리석어이,"
"내가 우물이 란 말이지P-"
태식이는 담배를 집어 불을 뎅구면서,
"그럼 자네는 뭐겠는가?"
하고, 건너다보았다.
"나? 난 “악한”이구……"
태식이는 거진 폭발적으로 우슴을 터티렸다.
조금 후 석히는, 결국 자유를 위한 용기가 아니거던 치우치지 말 것을 역설하였으나, 태식 이는 좀체 숙으러지지 않었다. 심해서는 석히의 이야기를 허영이요” 도피요, 자기 못난 것에 대한 합리화라고까지 말을 했다.
야심한 후에도 석히는 쉽사리 잠을 일우지 못하였다. 자기의 이러한 마음의 상태가 태식이 말대로 단순한 건강의 소치라면 또 모르겠는데, 만일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두 사람의 생각은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가령 옳든 글르든, 한 사람은 정열과 히망을 갖이려는 대신, 같은 시간과 겉은 하늘 아래 살면서 오히려 따로 절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은 어찌할 수 없는 하나의 두려운 사실이었다.
지루하든 장마도 끝이고, 어느듯 칠석도 지나갔다.
석히는 태식이 생일날 및 잔 마신 술의 여독으로 이튼날 왼종일 누어 있었다 허긴 및 잔이라고 하지만 기실 톡톡히 취했든 것이, 처음 생일 턱을 시작기는 암자에서였는데 또 이 날 따라 맥주가 웨그리 독했든지, 채 서너 병도 못 가서 그는 부산을 피었다. 결국 자기 손으로 철재를 늪게 한 후,
"당신은 자야지. 자야 허니까……"
하고는, 자라고 주지박질을 한 후 술병을 처안고 큰절로 와, 자정이 넘도록 남은 술을 다 치운 폭이 되고 보니, 및 잔이란 도무지 당치않은 말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물론 철재도 석히의 주정을 즐겨 받었을 뿐 아니라, 취한 사람들을 염녀하여 원이를 보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석히는 웬일인지 종일 암자가 궁금했다. 공연히―철재가 뮐 불쾌하지나 않었나一하는, 이러한 생각으로 해서
(저녁엔 가 보리라―) 했든 것인데, 막상 저녁을 먹고 보니 다시 몸이 푸러지고 작구 눈이 감기려구 해서, 그는 끝내 자리에 눕고 말었다.
얼마 후에 그는 심한 갈증으로 해 눈을 떴다. 마츰 태식이가 있지 않음으로 아이 중을 불러 냉수를 떠오라고, 마신 후 멍뚱이 천장을 향한 채, 조금 전 잠결엔지 꿈결엔지 원이 온 것도 같어서, 그것을 더듬고 있는데, 문듯 어제 술을 먹든 장면이 기억났다. ―정말 눈앞이 아리송송할 무렵, 원이 드러오든 일, 무슨 생각으로인지 원이 보고 가라고 별미적게 소리를 질렀을 때 태식이가 원이를 잠어 앉히든 일, 태식이가 원에게 술을 권하든 일, 원이 노하든 일, 두서없이 낱아났다. 그런데 이제 석히로서 두 사람의 말의 내용을 가려낼 수는 없다 치드라도 아무튼 태식이의 그 한껏 순조롭지 못한, 무레한 거동만은 역녁히 알
수가 있었다―.
석히는 다시 눈을 감었으나, 잠이 올 것 같지도 또 그냥 누어 있기도 거반 실증이 나서 끝내 이러나 밖으로 나왔다.
아직 초저녁인지 밖앝엔 두련두련 사람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그는 대밭을 끼고 올러가면서 핏득
(태식이가 암자에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상한 불안을 느끼며, 거름을 빨리했다.
그러나 역시 태식이는 암자에 있지 않었다.
석히가 방으로 들어가니 죄꼬만한 가위로다 뭘 젬이고 있든 철재가 아주 반가워하였다.
"그양 누어 있이우―"
했드니,
"난 괜찮오. 당신 누우―-"
해서, 둘이는 우섯다.
조금 후 철재가, ―원이는 뭘 하느냐고 물어서 ――큰절에 있노라―대답한 후,
"그런데 태식이 여기 오지 않었오?“
하고, 도로 물으면서 다음 순간 그는 이 히한한 거짓말에 스스로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꽤 오래 전에 혼자 나간 모양인데 어델 갔을까? 또 전 모주가 되어 넘어지지나 않었나?"
―이리되면, 거짓말은 여반장이었다.
"나 저 아래 주막에 가 보고 오리다―"
석히는 곳 밖으로 나왔다
초여드래 달이 제법 달밤의 모습을 가추고 근엌을 빛이었다.
그는 가르마ㅅ살 같은 도토리밭 길로 무턱대고 두 사람을 찾어 나온 셈이나, 문듯 자기의 이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一 단지 어릿광대 같은 모양을 누가 옆에서 본다면 얼마나 우수울가 하는 생각과 함께, 가사 이제 두 사람이 자기의 예감한바 그대로라 한대도
(대체 뭘 하려 누구를 찾어 가느냐?)
는, 생각에 부딪자, 그는 끝내 가든 거름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바로 이 때였다―일전 자기와 누이가 앉어 있든 반석 우에 역시 두 사람이 앉어 있었다.
비교적 가까이 앉어 있었으나, 볕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었다.
그는 도토리 나무에 기대어 선 채, 종시 자기태도를 망사리고 있었다. 하긴 그냥 털고 들어서서 ―무슨 이야기들이냐?―고 한다면, 또 그것으로 그뿐일지도 모르고, 혹은 두 사람의 자유로운 의사로서의 처결을 꼭 바라고 싶은 욕심이라면, 그대로 버려 두고 돌아와도 좋을 것을 그가 여전 뭘 결단하지 못하고 주저했을 때, 잠갛고 앉어 있든 태식이가 말을 건넜다.
"그건 결국 내가 정원씨 앞에서 무레하게 구렀다는 말인데, 글세 올시다 어떻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인지, 나는 잘 알 수가 없었든 모양입니다―"
다분이 조소적인 말이었으나, 극히 얕은 침착한 음성이었다.
"아무튼 나로서도 말을 헐라면 할 말이 있는 게, 정원씨는 처음부터 나를 싫어했을 뿐 아니라, 나도 아여 좋게 생각하리라고 믿지 않었기에, 가령 내게 대한 당신의 친절한 태도에서도 나는 우릉을 느껴왔든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태식이는 정면으로 원이를 보았다. 그러나 이 말엔 원이도 가만있지 않었다.
"우롱을 당한 사람은 나예요―"
역시 낮은 음성이었으나 싸늘했다.
"혹 내 성격에 약점이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난 꿈에도 정원씨를 농락했다고는 생각지 않읍니다"
두 사람은 잠깐 말이 없었으나, 원이는 끝내,
“……제가 태식씨 앞에 겁을 먹고 도망을 가든지, 혹은 전연 분별을 않게 되었드라면 통쾌하실 것을, 결국 그렇지 않은 것이 팻심하단 말슴이겠는데, 허지만 저는 조금도 무섭지가 않었읍니다―"
하고, 꽤 차근차근 말하면서 이러났다.
청년은 뭘 더 말하려구 들지는 않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극히 맹열한 형세로 원의 어깨를 안었다. 결코 애정의 표시가 아닌 더 많이 미움에 가까운 심히 조폭한 그 고집을 원이 페밭듯 뿌리쳤을 때, 석히는 방금 청년이 녀자에게 따귀를 맞인 것이라고 착각하며 망연히 서 있었다.
곧 원이는 이편으로 오고, 조금 후엔 청년도 웃길로 해서 큰절을 향하고 천천히 거러갔다.
석히는 원이 암자로 가자면 자기가 서 있는 길목을 지나갈 것을 알었으나, 여전 도토리나무에 기대선 채 움직이지 않었다. 또한 원이 역시 그가 서 있는 것을 모를 리 없을 것인데 구지 옆을 도라볼 배도 거름을 멈출 배도 없었다.
석히는 누이의 뒤를 따라 서서히 발길을 옮겼다.
문듯 눈앞에 원의 얼골이 떠올랐다 역시 간얇흐고 맑은, 서먹서먹 사람을 대하는 눈을 갖인 얼골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얼마나 고약한 또 하나의 모습인가? ―인색하다기보다는 훨신 탐욕적인 그 용모는 아모리 보아도 숭없었다.
그는 끝내 얼골을 찡기고 돌아섰다.
그는 사오 일 동안 석히는 누이와 별루 말이 없이 지났다.
뭐라고 구지 건늴 말도 없었거니와, 또 원이, 방에만 꼭 들어 있어 잘 나오지 않었기에, 더욱 말이 있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밖에 철재는 철재대로 통이 이런데는 둔해 보였고, 태식이도 뭘 내색하지 않었음으晁 네 사람의 절간 생활은 겉으로 보기엔 전과 그리 다를 게 없었다.
어느 날 오후였다. 태식이도 낮잠을 자고, 또 별로 암자엘 가고싶은 생각도 없어서, 그는 혼자 샘 가엘 나와 세수를 한 후, 뭘 질정한 것도 없이 아래를 향하고 걷고 있었다. 이때 문듯 바른편으로 잡초를 갈르고 빤―히 뚜러진 적은 길이 보였다.
길이 뚜러저 딴 곳으로 연한 데가 없는 것을 보아서토 이 으젓한 반석이 놓여 있는 늙은 홰나무 밑이 이 절에서는 꽤 한 목을 보는 모양이었으나, 석히는 이 절로 오던 첫날 아츰 우연이 이 곳을 드러와 보았을 뿐, 그 후 한번도 이 길을 걸어 보지는 않었다.
그는 홰나무 밑까지 와서 거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좌우에 밀집한 나무들과 무성한 잡초들을 언제까지나 보고 있었다. 얼마를 이러구 있었든지, 뒤에서 누군지 이리로 오는 기척에, 그는 비로소 머리를 돌렸다. ―오든 사람은 원이었다. 언제 그의 옆으로 왔든지 바로 뒤에서 서먹서먹 오라버니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오빠!"
석히는 반석 우에 걸터앉으며 여전 잠쌓고 있었으나, 그가 대단히 좋아할 누이의 이러한 눈을 이제 그로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딱이 엄두가 나지 않었다기보다도 한편 이상하게 페로운 남어지 그는 얄궂은 역정이 나기도 해서,
"왜? 웨 그래?"
하고, 약간 거치런 대답을 했다.
"나 집에 갈래요=ㅡ"
"왜?"
“……"
"안 가겠다드니 웨?"
그는 다소 어성을 높였다.
"이젠 갈래요―"
"……이젠?"
그는 누이를 한순간 정면으로 바라보았으나 그러나 드듸어 잠잫고 말었다. 원이 수일 래로 드러나게 파리해진 얼골이라든가, 더 상글하니 까풀이진 눈이라든가, 까시시 마른 입술이 이상하게 언잖은 마음을 가저왔다기보다도 그는 갑작이, 뭐가 몹시 귀찮어저서, 끝내 더 말 할 흥미를 잃고 이러났다.
―바로 이 때였다― 별안간 건너 숲에서 요란한 쟁투가 이러났다.
수풀 속이라 잘 분간할 수는 없었으나, 무었인지 쫏고 쫓기우는 기세만은 분명했음으로 두 사람은 모르는 사이에 그 곳을 향하고 긴장했다.
이윽고 한 놈이 오색 빛깔로 찰란히 긷을 치며 쫏기든 놈을 박차고 호기 있게 날렀다― 장끼었다.
그러나 남은 한 놈은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수풀에서 나오지는 않었다. ―정말 어데가 그대로 죽은 것처럼 영 기척이 없었다…….
"언제 가니?"
"……."
"내일 가거라―"
조금 후에 두 남매는 각각 헤어졌다.
석히가 우물 앞까지 왔을 때, 문듯 절 종이 울려왔다. 늘 들어오든 종소리에서 그는 새삼스럽게 싫은 음향을 가려내며 잠장고 걸었으나 그러나 점점 멀어질스록 그것은 기맥히게 싫은 소리였다.
웅얼 웅얼, 허공에서 몸부립치다가, 어느 먼 산기슭에 머처지는 육중한 음향은 마치 대맹(大瓾)이 신음하듯, 어둡고 초조한 그런 것이었다.
순간 그는 마음속으로 당황히 손을 저어 철재를, 혹은 태식이를, 그외 누구누구 황망히 찾어보았으나, 그러나 아무도 ―내로라! 대답하는 힘찬 손길은 있지 않었다.
점점 눈앞엔 어둠이 몰리고, 산이 첩첩하여 오로지 절벽이 천지를 닫은 것만 같었다.
(創作集, 『도정』 1948, 白揚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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