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도 소중히 하면 평생 도움이 되죠”-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사장
“사람의 인연이란 참 소중한 것입니다. 우연 같은 인연도 평생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왔어요. 이런 생각이 사람을 대하는 저의 자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손복조(58) 토러스투자증권 사장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불교의 사상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인 손 사장의 입에서 인연이란 말이 튀어나온 것은 뜻밖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은 인(因)과 연(緣)을 아우른 것으로, 여기서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 연은 이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연이란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다. 이런 우연의 만남까지도 그는 소중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인연이란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일까? 그는 권지홍 동국불교연수원장과의 인연을 털어놨다. 2004년 친정과도 같은 대우증권에 사장으로 복귀한 후 그는 15년간 열심히 친 골프를 끊었다. 회사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그 대신 산행을 다녔다. 산행 약속이 없는 주말엔 등산을 좋아하던 기사와 둘이서 산에 올랐다. 그와 함께 관악산 연주대를 찾은 어느 날이었다. 낮 12시30분쯤 연주암 마당에 도착했다. 가톨릭 신자라 보통 법당을 스치듯 지나는데 그날따라 스피커에서 법회를 소개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법당 안에 계신 분들, 불교가 무엇인지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그 말에 붙잡혀 그 자리에 선 채 법당 안에서 새어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5분쯤 듣다가 아예 불교신자인 기사와 함께 나란히 댓돌에 앉았다. 설법은 1시간가량 계속됐다. 법회가 끝나자 설법을 마친 권지홍(동국불교연수원장) 법사가 법당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책자를 나눠줬다.
“돈도 없는 늙은이가 마음공부에 필요한 책을 만들었습니다. 마음공부 안 하실 분은 받아가지 마세요.” 법당 밖 손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섰다. 그러자 법당 안 권 원장이 등산복 차림의 그를 불러세웠다. 법당 안으로 들어서자 “마음공부 하실 분 같으니 읽고 나서 독후감을 보내 달라”면서 책을 내밀었다.
그 후 손 사장이 독후감을 보냈고 권 원장에게서 편지가 왔다. 손 사장이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수많은 중생 중에 사람의 몸을 받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그만큼 존엄한 존재입니다. 십여 년 무보수로 설법을 했지만 독후감 받고서 이렇게 답장을 보내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권 원장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몇 사람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데 그 가운데 손 사장이 끼여 있다고 한다. 권 원장은 불경을 한글로 번역했다. 한국 최초의 주교였던 고(故) 노기남 대주교가 생전에 그에게 던진 한마디가 계기가 됐다.
노 대주교는 그를 만날 때마다 “불교의 경전은 왜 알기 힘든 한문으로만 되어 있느냐”고 핀잔을 줬다. 그가 불경 번역을 마친 것은 노 대주교가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는 노 대주교가 오랫동안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했던 명동성당을 찾았다. 촛불을 켜고 그 아래 막 번역한 불경을 내려놓고 기도를 드렸다.
손 사장이 한 법사의 설법을 통해 불교의 세계를 알게 됐다면 불교 경전을 한글로 옮기는 대역사는 가톨릭 신부의 한마디 말에서 비롯된 셈이다. 토러스투자증권 딜링룸에 근무하는 박준범 팀장은 손 사장이 LG증권 법인영업 담당 상무로 근무할 때 운용부 대리로 있었다.
그때 박 대리는 손 사장에게 ‘똑똑한 친구’로 입력이 됐다. 그 후 대우증권 사장으로 있을 때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난다.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다가 그 맞은편 상가에 온 박 대리와 마주친 것이다. 박 대리가 쭈뼛거리면서 “어느 증권의 아무개를 잘 아느냐”고 물었다.
그 후 회사로 자신을 찾아온 그를 손 사장이 채용했다. 지난해 손 사장이 토러스증권을 설립하자 그는 십여 명의 직원과 함께 합류했다. 손 사장은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윤은기 총장에게서 들었다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기자에게 옮겼다.
“함께 골프를 친 분이 한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답니다.
하루 종일 그린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세 사람은 절대자가 맺어준 인연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은 최선을 다해 동반 플레이어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하지도, 접대 골프라고 해서 적당히 치지도 않는다는 거죠. 그분의 이런 자세가 말하자면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죠.”
손 사장은 증권가에서 ‘전설의 승부사’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대우증권 사장으로 있을 땐 1조원이던 자기자본을 3년 만에 2조원 규모로 키웠다. 대우증권의 1대주주는 산업은행이다. 대우증권 사장은 산업은행 총재가 임명한다. 그는 유지창(현 유진투자증권 회장) 총재가 발탁했다.
손 사장은 대우증권 사장이 되기 전 유 총재를 만나본 적이 없다. 유 총재는 그러나 여러 사람에게 물어 그에 대해 나름대로 검증을 했다. 그 후 면접도 하지 않고 임명한 이유를 묻는 그에게 유 총재는 “적격자인지는 손 사장이 살아온 과정이 말해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평판 좌우하는 건 신뢰
“평판이 중요합니다. 평판을 좌우하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신뢰죠. 사람들은 언행과 옷차림을 보고서 다른 사람을 파악하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합니다. 그래서 시간 약속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죠.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은 약속 장소에 10분 미리 도착하신다는데, 저는 정시에 도착하고 5분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합니다. 특히 시간 엄수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출근 시각 지키는 건 기본이죠.”
손 사장은 모름지기 인사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사를 잘하라는 것은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가 남긴 교훈이었다. 그는 인사를 할 때 상대방에 대한 호칭을 곁들이는 게 좋다고 했다.
“가령 집에 삼촌이 왔는데 아이가 ‘삼촌, 오셨습니까’하는 것과 고개만 까딱하고 마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상대방의 기분이 달라지죠. 좋은 인사란 상황에 맞는 인사입니다. 잘한 직원에겐 ‘이번에 참 잘했다’는 인사가 최고죠. 방송에 나온 비즈니스 파트너에겐 ‘지난 번에 나오신 걸 봤는데 목소리가 참 좋더라’고 인사를 건넬 수 있겠죠. 저처럼 회사를 창업한 사람에겐 ‘회사 잘된다면서요?’가 제격이에요. 결국 상대방에 대한 관심입니다. 상대방이 고객이라면 조인스 인물정보 같은 데서 미리 정보를 입수할 수도 있죠. 직원에게 할 말이 없으면 그냥 툭 치고 지나가며 씩 웃어줍니다.”
스킨십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평소 맺은 관계다. 툭 치는 행위가 때로는 고마운 마음이 들게도, 때로는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다. 손 사장은 “아무리 좋은 상사나 좋은 시어머니라도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낫다”고 말했다. ‘나는 부담스럽지 않은 상사’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라는 것이다.
명강 중의 명강은 휴강이라고 했던가? 상사로서의 처신, 가정에서 손윗사람으로서의 행동거지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회사에서 구성원들을 질책할 일이 생기면 불같이 화를 낸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봐도 야단맞은 경험은 약이 될 때가 많다고 주장했다. 뒤끝은 길지 않다.
토러스투자증권의 모토는 ‘무엇인가 다른 내일(different tomorrow)’이다. 구성원들 회식 때면 “토러스는 다르다”고 구호를 외친다. 토러스(Taurus)의 뜻은 황소자리로, 이 이름엔 증권시장의 불 마켓을 주도하겠다는 손 사장의 의지가 담겼다. “조직은 물론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도 무엇인가 남달라야 합니다.
만일 오전 8시인 회사 출근시간으로 차별화하겠다면 6시엔 나와야죠. 7시가 아니라 6시에 나온다면 다르다고 인정해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10년 하면 안 한 사람과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토러스 직원은 160명이다. 3000명에 이르는 거함 대우증권과는 비교가 안 된다.
1년 남짓 된 신생 회사지만 근무 강도가 높다. 이들은 왜 토러스로 옮겼을까? “조건보다 같이 한번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거죠. 손 사장이 하니까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었을 거예요. 토러스는 재벌그룹 계열사도 아니고 특정 대주주가 있는 회사도 아닙니다. 주요 주주들이 있지만 구성원들의 회사죠. 금융업은 잘하는 사람이 오래 CEO를 맡아 변화를 일으켜야 돼요. 직원들에게 나는 기초만 놓는다, 그 후의 일은 여러분 몫이라고 합니다.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조직은 장이 운명을 좌우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 사람 때문에 조직 전체가 망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잘되게 만들려고 합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손 사장은 비즈니스에 중요한 정보와 시간이라는 자원을 인맥이 확보해 준다고 말했다. 인맥이 넓고 좋으면 양질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정보 수집에 걸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인간적인 세계에서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이심전심만 한 게 없다.
손 사장은 얼마 전 세 개의 모임이 겹쳤는데 한 곳도 못 갔다. 두 곳은 중요한 공식 모임이었다. 나머지 한 곳은 대우증권 역대 도쿄사무소장들 모임이었다. 멤버들은 그를 제외하면 거의가 은퇴했다. 이 모임에서 참석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고서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결국 그는 가야 하지만 자기가 없어도 지장이 없는 공식 모임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고 불참 통보를 했다. 반기마다 모이는 은퇴한 도쿄사무소장 모임에 가기로 한 것이다. 막상 이 모임에 가려고 하자 문자로 모임이 취소됐다는 연락이 왔다. 참석자가 서너 명에 불과해 정족수 미달로 불발한 것이다.
“초등학교 동창회는 젊었을 때는 중학교 졸업하고 상경해 군대생활, 도쿄사무소장 7년 하느라 못 갔고, 그 후엔 대우증권 주총과 겹쳐 빠졌습니다. 서울 가서 출세하더니 한 번도 안 온다 소리 듣기 십상이죠. 저는 사정이 있어 못 갈 때마다 적극적으로 설명합니다. 최근엔 2년에 한 번씩은 꼭 가려고 애쓰고요. 결국 진정성에 달렸습니다. 막말로 별 볼일 없어 동창회에 안 가는 게 아니라는 마음만 친구들에게 전해지면 별 문제 없더라고요.”
손복조 사장의 인맥관리 노하우
▶ 누구를 만나든 진정성을 갖고 대하라
가식적인 태도, 이해관계가 들여다보이는 행동으로는 절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위선적인 언행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라
무엇보다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사소한 언행과 자세에도 신경써라. 사람들은 말투와 옷차림을 보고서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 상대방에게 상황에 맞는 인사말을 건네라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인물정보를 활용할 수도 있다. 상황에 맞는 인사말이 꼭 듣기 좋은 것일 필요는 없다. 잘못한 부하 직원에게는 “요즘 무슨 일 있느냐”고 말을 건넬 수도 있다.
▶ 상대방이 하는 말을 무조건 경청하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인지상정이다. 잘나가는 사람이 잘 들어주면 더 좋아한다. 최악은 한 시간 동안 만나서 59분 동안 자기 얘기만 하는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