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처럼/정호승
쓰레기통처럼 쭈그리고 앉아 울어본 적이 있다
종로 뒷골목의 쓰레기통처럼 쭈그리고 앉아
하루종일 겨울비에 젖어본 적이 있다
겨울비에 젖어 그대로 쓰레기통이 되고 만 적이 있다
더러 별도 뜨지 않는 밤이면
사람들은 침을 뱉거나 때로 발길로 나를 차고 지나갔다
어떤 여자는 내 곁에 쪼그리고 앉아 몰래 오줌을 누고 지나갔다
그래도 길 잃은 개들이 다가와 코를 박고 자는 밤은 좋았다
세상의 모든 뿌리를 적시는 눈물이 되고 싶은 나에게
개들이 흘리는 눈물은 큰 위안이 되었다
더러 바람 몹시 부는 밤이면
또다른 고향의 쓰레기통들이 자꾸 내 곁으로 굴러왔다
배고픈 쓰레기통들이 늘어나면 날수록
나는 쓰레기통끼리 서로 체온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쓰레기통끼리 외로움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제주에 비가 옵니다.
일요일 모처럼 한가한 시간.
커피는 역시 변함없는 나의 친구입니다.
어떤 날은 시원하게
어떤 날은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는 집집마다 콘크리트로
만든 쓰레기통이 문 앞에 있었습니다.
넝마주이가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긴 집게로 돈이 될만한 물건들 종이,
빈병, 옷, 천 등을 주워가곤 했습니다.
오늘 쓰레기통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을
새삼스레 알게 됩니다.
쓰레기통이 없다면?
생각을 아니하렵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