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 다시 모으고 02 일어나서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03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04 저희가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행하고 0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더라 06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0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08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0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2 혹이 다윗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쌔)
* 지난 주 말씀 -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2)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두로 왕 히람의 도움을 받아 강력한 제국을 건설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1. 다윗의 많은 자녀들 - 선교 : 믿음의 자녀를 낳아라!! (삼하 5:13-16)
삼하 3:2-5에 보면,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되었을 때 6명의 부인으로부터 6명의 자녀를 낳았다.
삼하 5:13-15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고, 11명의 자녀가 더 생김으로 17명의 자녀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화합을 위한 정략적인 결혼이면서, 왕권의 강화를 내외적으로 보여주는 그 당시 보편적인 관습으로 보여지는데.....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다.
1) 부정적인 면
(1) 일부일처제에서 어긋남(창 2:24) - 하나님의 창조법칙에 어긋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2) 모세의 신명기 말씀(율법)에서 어긋남 - 아내를 많이 두지 말며
(3) 많은 분란과 문제 발생 - 자녀들끼리의 좋지 않은 문제가 생긴다.
- 이런 부정적인 면을 성경은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이것은 많은 처첩들을 두었던 사람들의 약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구속의 역사를 진행해 가셨고, 이런 사실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게 한다.
2) 긍정적인 면
아브라함과 야곱, 다윗과 솔로몬에게 나타나는 여러 명의 처첩 문제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 많은 이방인을 포함시키려는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많은 자녀는 가정과 가문, 나라의 발전에 큰 힘이 되며, 아브라함의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창 13:16), 하늘의 별들처럼(창 15:5) 많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축복을 떠오르게 한다.
→ 여하튼 오늘 우리는 긍정적인 면으로 말씀을 보고, 믿음으로 많은 자녀를 낳도록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후원하는 일들을 해야한다.
2. 블레셋을 이긴 다윗 (삼하 5:17-25)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은 곧 다윗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블레셋은 다윗의 왕권에 가장 큰 위협이었고, 이 위협을 넘어야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완성하게 되는 고비였다.
하나님의 재미있는 응답을 통해 그 동안 사울 왕도 제대로 못했던 블레셋의 영향력을 이스라엘 영토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그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1) 지혜롭게 싸워라!!
전쟁은 전면전이 있고, 기습전이 있다. 보통 전면전은 힘이 강할 때 하고, 기습전은 힘이 약할 때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혜롭게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2) 기도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일일수록 하나님께 여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하면 전략과 승리를 주신다!
→ 기도로써 지혜롭게 싸워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오늘 말씀 -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3)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두로 왕 히람이 보낸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통해 예루살렘 성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하나님의 은혜로 블레셋과의 두 번의 전투를 승리함으로 블레셋의 세력을 완전히 이스라엘에서 몰아낸 후에, 이제 정치와 경제, 사회와 종교의 중심지로서 예루살렘을 강화하고자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려는 일을 수행한다.
이 일로서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으려는 다윗의 꿈은 이루어진다.
1. 법궤 운반
1) 법궤의 의미와 제작
① 법궤의 명칭은 여호와의 궤(수 3:13, 4:11), 여호와의 언약궤(신 10:8), 하나님의 궤(삼상 3:3, 4:11), 증거궤(출 25:22, 민4:5) 등으로 불렸다.
② 법궤의 상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한다는 임재와 영광의 상징물이었다.
③ 법궤 크기는 122×76×76cm (직육면체)였고,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인 조각목으로 만들었고(볼품없고 거무튀튀하나 단단함있다./ 출 25:10 / 그리스도의 인성 상징) 그 위에 안팎으로 정금으로 싸서 만들었다(정금은 신성 상징). 맨 위에 뚜껑은 순금으로 된 접시 형태로서 두 천사와 천사들의 날개로 가리워져 있으며, 이 곳을 속죄소(=시은좌)라하며, 우리의 죄를 속하며,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계시하시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④ 법궤를 만든 사람은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한 그 시대 최고의 장인(匠人)인 브살렐이었다(출 36:1).
⑤ 법궤 안에는 세 가지가 들어갔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아론의 제사장역 /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상징), 맛나 항아리(하늘 만나 /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 상징), 십계명 돌판(하나님과의 계약의 상징 / 그리스도 상징).
⑥ 법궤에는 네 발이 있어 그곳에 각각 금고리가 부착되어 있었고, 이 고리들을 통해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싼 두 개의 채가 끼워졌고, 궤는 가마처럼 멜 수 있었다(출 25:12-15). 이 채들은 궤가 운반되지 않을 때에도 고리에 끼워진 상태로 보관되었다.
⑦ 법궤가 지성소에 놓여 있을 때에는 레위인들, 특히 고핫 자손들이 궤를 돌보았다(민 3:29-31).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마다 그것을 메어서 운반하였다(민 4:11-15). 이동시에는 법궤 위를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막는 휘장을 덮고 마지막으로 청색 보자기 덮은 후에야 이동할 수 있었다(민 4:5,6). 또한 아무나 직접적으로 만지거나 들여다봐서도 안됐다(민 4:15, 18:32).
그러나 요단강을 건너는 동안(수 3:3), 여리고성의 정복(6:6), 아이성의 멸망 후 백성들의 재헌신(8:3), 솔로몬의 성전 봉헌(왕상 8:3)과 같은 중요한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메었다.
2) 법궤의 이동경로
법궤는 ① 시내산에서 성막과 함께 만들어진 후에,
② 이스라엘의 광야 방랑기간 동안 진의 맨 앞에서 진행되었고, (멈출 땐진 가운데 있고)
③ 가나안 입주 후 길갈에 처음 안치되었다가, 여리고성의 함락을 위해 여리고로 옮겨져 함께 돌다가, 다시 여리고 함락 후 다시 길갈로 돌아왔다.
그후 벧엘에 있다가(삿 20:26-28 베냐민 지파와 다른 지파와의 싸움 때문에 잠시 이동) ④ 실로로 옮겨졌다. (땅분배로 이동)
실로에 있던 법궤는 블레셋과의 싸움을 위해 에벤에셀로 옮겨지나(일명 '아벡 전투') 이스라엘의 패배로 블레셋 지방의 아스돗과 가드로 옮겨진다. 법궤가 가드로 옮겨진 후 그곳 성읍에 독종이 발하여, 법궤는 성읍 사람들에 의해 에그론으로 옮겨지고, 에그론 사람들은 복술자들의 말에 따라 젖 나는 소 둘을 택하여 유다 지역의 ⑤ 벧세메스로 옮긴다. 이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봄으로 5만명 (70인)이 죽자, 법궤는 다시 ⑥ 기럇여아림(삼하 6:2엔 바알레유다 / 바알레유다는 '숲의 성읍'이란 뜻의 기럇여아림의 옛 명칭이다. 예루살렘 서쪽 15km 지점에 위치했었다.)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져 (그의 아들 엘리아살이 책임짐) 다윗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빼앗긴 아벡 전투 때부터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때까지의 기간은 약 70년 이상이다(B.C. 1075년-B.C. 1003년 / 삼상 7:1,2).
솔로몬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하다가(왕상 8:1이하) B.C.586년 예루살렘 함락 때 잃어버린 듯 하다.
3) 다윗의 법궤 이동
다윗은 기럇여아림(= 바알레유다)로 병력 3만(참고 ; 70인역(LXX)은 본절의 3만이란 수를 7만으로 기록함)을 동원하여 내려갔다. 왜냐하면 법궤가 안치되어 있었던 바알레유다(2절)는 블레셋 지경(地境)에서 가까웠으므로 그들의 기습 공격에 대비해야만 했고, 각 지파가 함께 참여하는 거국적 행사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문제는 첫 번째 법궤 운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왜 법궤 운반이 잘못되었는가?
①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나왔다.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돌아올 때 새 수레에 실려서 왔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
② 아비나답의 아들(정확하게 말하면 아비나답의 손자들이요, 엘리아살의 아들들) 웃사와 아효가 새 수레를 몰았다.
- 법궤는 고핫 자손이나 제사장들이 직접 들어서 옮겨야 한다. 그런데 제사장도 아니고, 레위 자손도 아닌 이들이 그 동안 관리했다는 이유만으로 운반하려 하였다.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족속이 악기를 주악하며(참고 ; 본절의 평행 구절인 대상 13:8에는 '뛰놀며 노래하며...주악하더라'고 되어 있다) 즐겁게 이동하였다.
수금 - 히브리어로는 '킨노르'라고 하는데 6줄로 이루어진 현악기이다. 대개 노래를 부를 때 반주(伴奏)를 넣는 악기로 사용되었다.
비파 - 하아프의 일종이다. 역사서(삼상 10:5;왕상 10:12;대하 9:11)와 시편(시33:2 ; 57:8 ; 92:1-3) 등에 자주 언급되는 악기로 그 용도는 수금과 같다.
양금 - 히브리어로 '므나아느임'이라고 하는 이 악기는 탬버린의 일종이다.
제금 - 히브리어로 '첼츨림' 또는 '므칠타임'상 13:8;대하 5:12)이라고도 하는 이 악기는 심벌즈(cymbals)dml 일종이다.
- 하지만, 이방인들이 만든 잘못된 이동방법과 하나님이 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부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하나님과의 언약된 관계안에서 그 말씀대로, 언약대로 법궤를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평지에 있는 나곤의 타작마당(대상 13:9에서는 '기돈의 타작 마당' / 기돈의 예비된 타작마당)에 이르를 때 소들이 뛰었다.
'뛴다'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트'는 본래 '미끄러지다', '걸려 넘어질 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소들이 돌뿌리에 걸리거나 미끄러져 비틀거리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말이다(Keil & Delitzsch, Pulpit Com -mentary).
이런 모습은 앞서 블레셋 백성들이 암소 두 마리에 법궤를 실어 벧세메스로 운반했을 때에는 없었던 불길한 흉조(凶兆)였다(삼상 6:12). 그러므로 이 일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지 아니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일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소가 뛰는 바람에 웃사는 놀라서 법궤를 잡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깬 이유로 즉사하였다.
이 사건 앞에 모든 사람이 놀랐고, 악기 연주와 축제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공포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 교훈 ;
이 잘못은 제사장들의 잘못일 수도 있고, 다윗의 참모들의 실수일수도 있고, 아비나답의 집의 잘못일 수도 있고, 다윗의 실수일 수도 있었다.
① 제사장들의 실수라면, 사무엘이 죽은 이후에 혼란기가 있었고, 사울 왕으로 인해 놉의 제사장들이 몰살당한 사건도 있었기 때문에 율법적인 것을 제대로 가르칠 제사장들이 부족해서였을 가능성이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부족해서는 안된다. /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을 죽이지 말라. 잘못된 시대는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을 죽이는 경향이 있다. (공산주의의 문제 - 부자, 지식인, 종교인을 죽임) / 말씀을 가르치는 제사장들이 어려움없이 주의 일을 하도록 하라(느헤미야의 꾸중)
사무엘 선지자같은 큰 지도자들이 나지 않는 시대는 가슴아픈 시대이다. (예)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과 그분에 대한 존경을 보면서도 그런 맘이 생긴다.
- 인물이 나도록 기르고, 후원하고, 밀어주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인물을 기르는 교육의 투자효과가 당장 나타나는 것이 아니지만, 소중하다.
지도자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방향감각, 즉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서를 유지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② 다윗의 참모들의 실수 - 다윗과 함께 다윗의 참모들은 외국에서 신전과 그들의 종교적 행위에 대해 보거나 들은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제 다윗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강력한 제국으로 커가길 원할 때, 힘과 권세 지향적으로, 사울 왕과 비교하여 더 대단하게, 외국에 비하여 부족하지 않게 종교적 행사로 준비했을 수 있다.
→ 외형적 종교행사에 치중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일부러 형상을 만들지 말라 하셨으며, 성막이든 성전이든 그렇게 많이 꾸미는 것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성전 안에 언약궤와 등, 떡상, 향단이면 되었다. 솔로몬이 크게 짓고, 금으로 도배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순종이었다.
성경의 왕들 중에는 외국의 우상섬기는 제단을 본따서 크게 하여 복을 받으려는 왕도 있었다. 외형적 큰 행사가 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며, 크게 만들어놓은 우상 앞에 절한다고 해서 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외형적 신앙의 문제 - 내면적 신앙의 중요성.
③ 웃사와 아효의 실수 - 블레셋에서 법궤가 돌아올 때처럼 그대로 해야된다고 주장했을 수 있다.
- 자기네 가정이 70여 년을 관리해왔고, 이번의 큰 행사에도 당연히 가장 주도적으로 법궤를 운반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받아야 하고, 영광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 누구의 주장이 강하다고 해서 따라가서도 안된다. 다른데서 한다고 잘못된 지식과 방법을 너무 주장해서는 안된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방법(기도, 말씀, 순종, 돈이든 인간관계든 무슨 문제이든 하나님을 바라보라)을 찾아야 한다.
(예) 심수봉씨 간증 - 아프리카 찾아 선교하는 엄지민 선교사 ; 언니 누나 하다가 엄마라고 하는데, 이 아이들을 사랑하여 가면 손에 든 것만을 보고 없으며 그냥 가버리는 아이들.....옆 산에 가서 울면서 기도하니, 하나님도 내 맘을 알아주지 않고 손에 든 것만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주지 못한다고 하시더라..
④ 다윗의 실수 - 이 모든 것을 세밀하게 점검하지 않은 다윗의 실수였다.
→ 다윗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왕이 되었고, 그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다.
그도 사람이기에 세밀하게 점검하지 못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일을 진행한 것도 문제일 수 있다.
열심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그건 니 생각이고...' - 개그콘서트)
2. 법궤로 인하여 갑작스런 복을 받은 오벧에돔의 집
여하튼 다윗은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재앙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모시는 일을 중단하고, 황급히 법궤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도 있는데, 어떤 일인지는 모르나 갑작스럽게 법궤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대상 26:1-4에 의하면, 오벧에돔(Obededom)은 고핫의 자손이며 후에 예루살렘 성문의 문지기로 활약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를 가리켜 가드 사람(the Gittite)이라고 한 것은 그가 단 지파 지경 내에 있는 레위인의 성읍 가드림몬(Gathrimmon)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Keil, Clericus, Wycliffe, Pulpit Commentary).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가 3개월 있는 동안에 그 집이 복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가족, 가축, 밭의 소산 등이 풍성해졌음을 의미한다.
→ 갑작스런 주의 일이 맡겨질 때도 기쁨으로 하라! 복이 온다!!
(예) 십자가 함께 지고간 구레네 사람 시몬
다메섹의 아나니아 (사울에게 안수하여 눈뜨게)
예루살렘 입성을 위한 나귀가 필요할 때 (나귀주인의 헌신)
삭개오의 예수님 초청에 순종
* 다윗은 이러한 현상을 보고서 이제 하나님의 진노(7절)가 깨끗이 풀린 줄 깨달았으며(Hertzberg, Matthew Henry), 율법을 살펴보고 회개한 후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여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운반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