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兒到處是故鄕(남아도처시고향)
사나이 가는 곳마다 바로 고향인 것을
幾人長在客愁中(기인장재객수중)
나그네 시름에 겨운 사람 그 몇이던가
一聲喝破三千界(일성갈파삼천계)
한 소리 크게 질러 삼천세계 깨트리니
雪裏桃花片片飛(설리도화편편비)
눈 속에 복사꽃 붉게 흩날리네
만해가 1917년 백담사의 부속암자인 오세암에 올라 좌선을 하던 중 바람이 불어 무엇인가를 깨트리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읊은 오도송이죠.
역사인물열전, 오늘은 조선 불교를 개혁한 위대한 승려이자 저항시인, 독립투사인 만해 한용운 선생에 대해 살펴볼까요.
1.불교에 귀의하기까지
그는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는데,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萬海)죠.
"선친은 서책을 읽다가 가끔 어린 나를 불러놓고 역사상 빛나는 의인들과 훌륭한 사람들의 언행을 가르쳐주시며 세상형편, 국내외 정세를 알아듣도록 타일러 주었다. 이런 말씀을 한 번 두 번 듣는 사이에 내 가슴에는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고, 나도 그런 의인 걸사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그는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던 중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동학 농민 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홀연히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 결국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가죠.
이후 노령, 시베리아, 일본 등지를 여행한 그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기도 하죠.
만 섬의 끓는 피여! 열 말의 담력이여!
벼르고 벼른 기상 서릿발이 시퍼렇다
별안간 벼락 치듯 천지를 뒤흔드니
총탄이 쏟아지는데
늠름한 그대 모습이여!
이후 그는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연곡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죠.
2.조선불교유신론
"유신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요,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 세상에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다는 것은 대개 말들을 할 줄 알지만, 파괴 없는 유신이 없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
1910년 그는 모순과 부패가 만연한 당시 불교 상황을 개탄하며, 개혁방안을 제시한 실천적 지침서인 '조선불교유신론'을 발간하죠.
“불교의 대상은 일체중생이다. 연(蓮)이 진흙에 물들지 않듯이 불교는 염세적으로 고립독행(孤立獨行)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진흙탕에도 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원효와 같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다시 거리로 돌아가 중생을 제도하는 ‘입전수수(入廛垂手)’를 강조하며, 대중속에서 무애행을 행하죠.
또한 그는 이회광이 한국 원종(圓宗)과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합병을 발표하자, 이를 친일매불(親日賣佛) 행위로 단정하여 그를 '종문난적'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는 '임제종(臨濟宗)'을 창립하죠.
"종이라고 하는 것은 치면 소리가 난다. 쳐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버린 종이다. 또 거울이란 비추면 그림자가 나타난다. 비추어도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내다버린 거울이다."
결국 그는 세상의 모든 모순과 부조리에 경종을 울리고 어둠을 밝게 비추는 거울이 되고자 하지 않았는지··
3.3·1운동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요구를 쾌히 발표하라.'
1919년 3·1운동에 백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참가한 그는 최남선이 선언서를 기초할 때 '독립간청서' 또는 '독립청원서'로 명명하려 했으나, '독립선언서'로 표제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여기에 '공약삼장'을 추가하여 더욱 그 결의와 의미를 강하게 하죠.
또한 그는 일경에 체포된 후 옥중에서 검사의 심문에 ‘조선 독립의 서’라는 논설을 집필하여 명쾌한 논리로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는데··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시작한 그의 변론은 "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라는 문장으로 끝나는데 변호사인 제가 봐도 정말 역대 최고의 명변론인 듯··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내 나라에 비친 달아
쇠창을 넘고 넘어 나의 마음 비친 달아
계수나무 베어내고 무궁화 심으고저
그가 옥중의 극심한 고통속에서 남긴 애끓는 시가 참으로 가슴 아프네요.
4.저항시인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알 수 없어요’라는 그의 시 구절처럼 이 겨레 전체를 수호하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던 만해,
그는 윤동주, 이육사 등과 함께 일제 시대 최고의 저항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죠.
님은 갔습니다.
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그가 1926년에 발표한 '님의 침묵'인데, 그는 시조와 한시를 포함하여 모두 300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기고, '흑풍(黑風)' 등의 소설을 쓰기도 하죠.
평생을 불교에 귀의하여 독립을 위해 싸워온 만해,
흔히 그의 작품에 나타난 '님'을 '조국'이나 '부처'로 해석하지만 승려라고 사랑을 모를 수 없는 것,
그 또한 수많은 작품에서 안타깝고 희생적인 사랑과 이별을 노래할 정도로 온몸 바쳐 사랑한 사람이 있지 않았을지··
님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독립운동가로서, 승려로서 대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사랑의 아픔을 되씹으며 이별의 슬픔을 억누른 채 떠나보내야 하지 않았을지··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붓지 않았을지··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나에게도 님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그림자일 것이라. 밟아도 밟아도 내 발끝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일 것이라. 끝없는 나에 대한 애착이리라."
결국 그에게 '님'이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한 복종, 그러나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도저히 복종할 수 없는 그러한 존재가 아닐지··
5.마치며
시인, 승려, 독립투사로 일제 강점기 겨레의 가슴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민족혼을 불어넣었던 만해,
그는 말년에 성북동 터에 소를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의미의 '심우장(尋牛莊)'이라는 택호의 집을 짓고 여생을 보내는데,
집을 지을 때 지인들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지을 것을 권했으나, 그는 총독부 청사가 보기 싫다고 끝내 동북방향으로 틀어 버리죠.
한편 심우장에는 그가 죽은 뒤 외동딸 한영숙 여사가 살았는데, 일본대사관저가 건너편에 자리 잡자 그녀 역시 떠났으니 '부전여전(父傳女傳)'인 듯··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도 차디찬 티끌이 되어 한숨의 미풍에 날아가던 암흑의 시대에 끝까지 독립의 한길을 걸어간 민족 정기의 화신 만해,
1944년 6월 그는 그토록 그리던 조국 광복과 민족 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하는데,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된 그의 유해는 망우리 묘지에 안장되죠.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결국 그는 갔지만은 그의 '사랑의 노래'는 아직도 우리 곁을 휩싸고 도는 것은 아닌지··
함께 영원히 할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함께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애처롭기만 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그 사람의 기쁨으로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렵니다.
그가 지은 '인연설'인데, 항상 더 먼저, 더 많이, 더 오래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 아닐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인 것,
항상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하는 회원님들 되시길··
님이여 오셔요
오시지 아니하려면 차라리 가셔요
가려다 오고 오려다 가는 것은
나에게 목숨을 빼앗고 죽음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책망하려거든
차라리 큰소리로 말씀하여 주셔요
침묵으로 책망하지 말고
침묵으로 책망하는 것은
아픈 마음을 얼음바늘로 찌르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아니 보려거든
차라리 눈을 돌려서 감으셔요
흐르는 곁눈으로 흘겨보지 마셔요
곁눈으로 흘겨보는 것은
사랑의 보(褓)에
가시의 선물을 싸서 주는 것입니다.
'차라리'라는 그의 시인데, 사랑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가벼운 사랑은 아예 사랑이 아닌 것,
항상 오면 오고 가면 가는 맺고 끊음이 분명한 사랑, 곁눈으로 흘겨보는 미지근한 사랑이 아니라 뜨거운 열정의 사랑을 하는 회원님들 되시길··
ㅡ 서정욱 변호사님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