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시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려는 구속(救贖)의 역사(歷史)를 써 내려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지만, 처음에는 매우 미약(微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이삭과 야곱에 이를 때까지 그 숫자는 아주 미미(微微)하였기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이 어떻게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의구심(疑懼心)이 들 정도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도 이삭도 기근(饑饉) 등으로 인해 때로는 블레셋에, 때로는 애굽에 가서 머물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12절과 13절에서는 나그네가 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가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목숨을 보전(保全)하기 위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바람에 아내를 블레셋이나 애굽의 왕에게 빼앗길 위기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을 건들지 못하도록 보호하셨습니다(14절, 15절). 아브라함이나 이삭을 15절에서는 기름 부은 자, 선지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歷史)를 이뤄가심을 보여주시는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때에도 기근(饑饉)으로 인해 굶주렸을 때 미리 애굽에 팔려 가서 종살이하다가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던 요셉을 통해 야곱의 식솔(食率)들이 애굽에 가서 살게 되었던 것도 16절부터 23절까지 서사적(敍事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도 하나님께서 섭리(攝理)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요셉을 시기하는 형제들로 인해 애굽에 팔려 간 것이나, 요셉이 감옥에 갇혔다가 바로(Pharaoh)의 꿈을 해석하여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것이나, 이로 인해 야곱의 모든 가족들이 애굽에 가서 거주하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렇게 애굽에 가서 살게 되었다가 다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 모든 과정도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애굽에서 거주한 것은 나그네였다고 고백합니다. 23절의 함의 땅은 애굽을 표현하는 것으로 애굽은 노아의 세 아들 중 하나인 함의 후손들이었기에 애굽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삶에 간섭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불순종하여 어그러지게 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뤄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각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받게 되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役事)하시고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구원의 하나님을 맘껏 노래하고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된 삶을 맘껏 누릴 수 있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