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최병근
풍경소리 들으러 갔다 거기
한바탕 싸움이 있었다
와중에 누군가 대장간에라도 다녀왔는지
사천왕 작두 창칼이 춤추고
목이 잘린 말들
말들이 히힝 울었다
경마장이 아니었는데
재갈을 물리고
오도 가도 못하는
첩첩산중
결가부좌로 포박당한 부처가
유리안치 되었다
일곱 걸음만 걸을 수 있게 해다오
연꽃 위에서 이슬과 노는
개구리나 되게
누구의 명이던가
붉은 장삼을 두른 나무들이
대웅전 지붕 위에
단지한 손가락을 불쏘시개로 던져
불을 질렀다
발치 사하촌에서
방아 찧는 소리가 났다
----애지문학회 사화집,{멸치, 고래를 꿈꾸다}(근간, 2024년)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기만적인 대사기극은 종교라고 할 수가 있으며, 모든 종교인들은 이 대사기극을 은폐하기 위해서 그 모든 교리가 진리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진리란 참된 이치이며, 그 어느 누구의 비판이나 반박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부처와 예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 천국(극락)에 가고, 부처와 예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천당은 당근이 되고, 지옥은 채찍이 된다. 이 당근과 채찍이라는 양날의 칼을 들고 끊임없이 어리석고 나약한 대중들을 협박하며, 그들의 정신과 육체를 유린하고, 그 재산들을 다 약탈해간다. 어느 누구도 부처와 예수를 본 적도 없고, 부처와 예수의 저서는 커녕, 그들의 글귀마저도 발견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러나 부처의 진신사리는 히말라야의 설산보다도 더 높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전인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불경과 경전은 수많은 사람들이 조작해낸 대사기극의 진수이며, 이 종교적인 잔혹극보다 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있을 수가 없다.
최병근 시인의 [모처럼]은 불교의 ‘법란’을 희화화시키고 있는 시이며, 이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할 리도 없는 부처가 우리 사제들, 즉, 그 대사기꾼들에 의해 “결가부좌”로 “유리안치”된 존재라는 사실을 고발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진리는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경전들은 진리가 되고, 부처(예수)는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불상이 부처가 된다. 우리 사제들, 즉, 이 대사기꾼들은 이 존재하지 않는 진리를 움켜쥐고 그 모든 종단과 사찰의 경영권을 두고 싸우며,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우리 인간들의 삶의 터전을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로 만든다. 자기 자신만이 진리를 움켜쥐고 있으니까 모두가 바보천치이고, 타인의 말과 사유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 어떤 양보와 타협도 할 수가 없다. 진리가 아니면 허위이고, 적이 아니면 동지이다. 이 진리 싸움의 피비린내는 돈과 명예와 권력을 위한 싸움으로 모든 종교의 역사를 잔혹극으로 만들어 버린다.
조용한 산사의 그윽하고 맑은 풍경 소리도 없었고, 이 세상의 삶에 지치고 병든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를 어루만져주는 사제도 없었다. 종단과 종파의 싸움이 있었고, 주지와 스님들의 싸움이 있었고, 사찰과 신도들의 “한바탕 싸움”이 있었다. “누군가 대장간에라도 다녀왔는지/ 사천왕 작두 창칼이 춤추고/ 목이 잘린 말들”과 “말들이 히힝 울었다.” 산사는 복마전이고 경마장이며, 전지전능한 부처는 “오도 가도 못하는/ 첩첩산중”에 “결가부좌로 포박당한” 포로에 지나지 않았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산사에 유리안치된 부처를 구원하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구원할 수가 있단 말인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부처와 예수,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는 부처와 예수----. 이 세상에 비록, 하나의 가상이자 허구의 존재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제들의 이권利權의 희생양이 된 부처와 예수처럼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도 없고, 그 불쌍하고 가련한 신음 소리는 마침내, 하늘을, 대자연을 감동시켰는지도 모른다. “일곱 걸음만 걸을 수 있게 해다오/ 연꽃 위에서 이슬과 노는/ 개구리나 되게”가 그토록 불쌍하고 가련한 부처의 하소연과 신음 소리라면, “누구의 명이던가/ 붉은 장삼을 두른 나무들이/ 대웅전 지붕 위에/ 단지한 손가락을 불쏘시개로 던져/ 불을 질렀다”는 것은 부처와 예수를 구원하는 하늘의, 대자연의 구원의 손길이었던 것이다.
최병근 시인의 [모처럼]은 최후의 심판과도 같은 판결문이며, 한 마리의 포로와도 같은 부처와 예수를 구원하는 복음의 말씀과도 같다.
붉디붉은 대자연의 단풍으로 모든 사찰과 경전들을 다 불태우고, 부처와 예수의 해방을 위하여 사하촌의 마을에서 떡방아를 찧게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인다. 중을 만나면 중을 죽이고, 목사를 만나면 목사를 죽인다.
시는 언어의 경전이고, 시인은 영원한 혁명가이자 구원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