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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과 결산의 달☜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8) 전1:1-11절) 인생의 서바이벌(survivor)게임
美國 TV 프로그램 중에는 무인도(無人島)에서 여러 가지 난관(難關)을 극복하면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생방송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란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서바이벌 게임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몇 년 전에는 우리나라에 1MF 한파가 불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실업은 구조적 문제였습니다.
첫째, 우리나라 가정은 대개 가장(家長)한 사람만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외국은 식구들 모두 수입이 있어서 한 사람이 실직해도 큰 타격을 입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가장을 제외하고는 주부나, 학생 신분으로 돈을 쓰는 구조다 보니, 한 사람의 실직은 가정 전체의 수업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둘째, 한 직장에서 해고되면, 비슷한 직업을 쉽게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사나 공장들은 평소에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포화상태로 데리고 있다가 회사가 망하기 직전, 할 수 없이 한꺼번에 해고해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직장을 잃고, 다른 직장을 구하지도 못한 사람들 중에는 노숙자가 되는 예도 종종 있었습니다.
자꾸 집에 찾아오는 빚쟁이들이 싫어서, 혹 돈은 못 벌고 밥만 먹으려니까 식구들 눈치가 보여서 아예 집을 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노숙자들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이 가장 두렵고, 힘들지 않을까? 세상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니 말입니다.
희망이 없으니까 의욕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사람은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해 버리고, 나중에는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겨도 정신이 너무나 망가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생각이 있고, 앞서 간다*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의욕하나로 세상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나중에 이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생겨도 자신감을 상실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이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너무 급히 달려왔습니다. *무한 경쟁에서 이겨야한다*는 일념 하나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즉 도대체 인생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결혼하고, 무엇 때문에 아이를 키워야 하는가? 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돈을 한 푼 더 버는 것이 경쟁에서 살아남는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은 행복은 부실공사건물처럼,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드디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를 맞게 된 것입니다.
그럼 인간의 희망(希望)은 어디에 있을까? 철학자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의 사고 자체에 희망을 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자꾸만 생각하다 보면, 진실한 것이 나오니까 거기에 희망을 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의 생각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즉 순간순간의 감정을 느끼고, 즐기는 것만이 진실한 자기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정은 환경에 따라서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결국 허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허무(虛無)*란 이런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파고 들어가 보니까 그 안에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런 생각 없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든지, 인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다가 허무주의(虛無主義)에 빠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에는 질문은 많은데, 그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문제만 있고, 답이 없는 수학 문제집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답이 없어도 문제를 풀려고, 애쓸까? 아니면 집어치우고 다른 책을 공부하지 않을까? 하지만 희망이 없는 시대의 사람들을 향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인생에는 답이 있습니다.
그 답은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知識)*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이웃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세상의 다른 종교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곧 *하나님에 대한 지식(知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신앙을 가진 우리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인생의 의문에 대한 정확한 답(答)입니다.
솔로몬 때, 이스라엘은 이미 전 세계 나라들과 빈번한 교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스라엘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스라엘의 물질적 번영이나, 건축술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知識)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면서도 정기적으로 외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하나님의 지식(知識)을 전파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곧 오늘날 전도서로 알려진 내용입니다.
전도서는 히브리어로 *코헬렛*입니다. 코헬렛은 전도자라는 뜻도 있고, 설교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코헬렛은 일종의 직책(職責)이었던 것 같습니다. 즉 외국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하나님의 지식(知識)을 전하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계약(契約)신학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言約)을 세워서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다는 것이 구약 성경의 중심사상입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계약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의 허무함에서 출발해서 *왜 우리 삶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안 되는가?* 라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주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데는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깊은 진리보다는 병(病)낫는 체험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또 상식적으로 잘 설명해서 알아듣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허무(虛無)라는 병(病)에 걸려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Ⅰ.하나님 없는 허무함
1:1절)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솔로몬은 독특하게 소개합니다. 즉 다윗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왕이라고 말합니다. 즉 나라 이름이 이스라엘이고, 예루살렘은 수도 이름이므로 *이스라엘 왕*이라는 말은 성립해도 *예루살렘 왕*이라는 말은 쓸 수가 없습니다.
아마 여기서는 워싱턴 대통령, 서울 대통령 하는 식으로 다른 나라 수도와 비교하는 의미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즉 전도자는 다른 나라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온 순례자와 외교 사절단에게 *예루살렘을 대표해서 진리를 말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도서는 다분히 국제적인 관점에서 세계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와 외교관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루살렘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내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관광 지도나, 소개문을 보면, 놀랍게도 우리나라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불국사나, 석굴암, 해인사 같은 절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우리나라가 국보(國寶) 중의 국보로 생각하는 문화유산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왕 솔로몬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예루살렘의 가장 중요한 보물(寶物)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아들*이라고만 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최초의 코헬렛으로서, 다른 이스라엘 왕들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탁월함*을 설교하기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자신을 이어서 이스라엘 왕이 된 사람은 누구나 코헬렛으로서 이스라엘의 힘은 군사력이나, 인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知識)과 믿음에 있음을 나타내기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외교사절단이 공식 방문하면, 보통 그들을 어디로 모십니까? 아마 국립묘지(國立墓地)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나라가 잘 지켜지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전 앞 광장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知識)을 선포함으로써 그들의 왕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축복(祝福)으로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야*합니다.
입을 꼭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거기에다 늘 심각한 얼굴로 말끝마다.
*주여! 주여!*하면서 한숨을 쉰다면, 신앙 없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십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고, 증거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믿는 사람들처럼 인생의 통찰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에 대해 가장 정확히 진단하는 최고의 *심리학(心理學)교과서*입니다. 또 성경에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든, 실패했든,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의 예화(例話)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아는 사람은 인생의 문제에 정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입이 다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골프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몇 명이나 제대로 하겠습니까? 우리의 최고 무기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어렵고 힘들 때, 만난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아야 하고, 필요로 하는 지혜를 들려줍니다. 성도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 세상 이야기 대신에 *하나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귀신(鬼神)이야기가 나올 틈이 없습니다.
Ⅱ.헛되고 헛되다
1:2-3절)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자는 대단히 충격적으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세계에 던지는 도전장은 *인생이 허무하지 않은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실 한 평생 살면서 몸부림치는 것은 인생의 의미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말문을 열자마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예루살렘까지 왔는데, 솔로몬의 첫마디에 기가 죽지 않겠습니까? 전도자는 *도대체 너희들이 인생에 대해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느냐?* 라고 소리친 것입니다.
즉 먼 예루살렘까지 힘들게 찾아 왔지만, *인생이 얼마나 헛된 줄 제대로 알고 왔느냐?* 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것이 헛되지 않다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고 묻는 것입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히브리어로 *헤벨*이라는 단어인데, *실속이 없다.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것 같아도 실제로 그 안에 알맹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무수한 질문에 아무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인생은 세상에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것이나 똑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태어났고, 일단 태어난 이상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 어느 정도 자라면, 공부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장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농사를 짓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태어났으며, 왜 살아야 할까? 아무도 이런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곧 *인생의 허무(虛無)*입니다. 우리 인생은 질문만 잔뜩 있고 답(答)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 전도자의 지적이 무엇입니까? 인생에 답(答)이 없다고 그냥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만 열중한다면, 짐승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려면, 땅 끝까지 가서라도 답(答)을 찾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 끝이 어디입니까? 곧 예루살렘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인생에서 위기를 만나면, 심각하게 인생의 본질(本質)을 생각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서 가족 중 누군가 갑자기 죽기라도 한다면, 정말 심각해집니다. 도대체 사는 것이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허무해서 머리 깎고 절간에 들어가 중(스님)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민한다고 해결 되는 것도 아니라면서, 금방 잊어버리고,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로 돌아갑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부부가 퇴직금을 모두 털어서 아이들은 학교도 쉬고, 가족들 모두 세계 일주를 했다고 합니다. 여행 경험을 모두 글로 남기고, 인터넷에도 올렸는데,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월급을 더 받고, 아이들이 한 학년 올라가는 것보다 넓은 세상을 여행함으로써 삶의 문제를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사실 외국을 여행하면, 좁은 자아(自我)의 틀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기 삶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고,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답(答)이 있는 땅 끝이 어디일까? 그것은 곧 *하나님 생명의 말씀이 살아 있는 공동체*입니다. 즉 셀(cell)공동체가 땅 끝입니다.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 생명의 말씀이 있는 그곳이야말로 만사를 제치고, 찾아가야 할 땅 끝인 것입니다. 당시에는 예루살렘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Ⅲ.인생의 가치
1:4절)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도자는 반복되는 자연현상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 고 묻습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한번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가 죽고 나면, 그동안 *억!억!*하고 떠들던 대장동 강남 땅도, 다른 사람들이 다 차지합니다.
또 한 시대에 이름을 날리던 대통령(왕)도 회고록 하나 남겨놓고 죽으면, 화장해서 낙골당이나 작은 무덤 하나 만들어 놓고 사라집니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 활약하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연은 무표정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1:5절)해는 뜨고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전도자는 자연의 순환(循環)을 말합니다.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 특징입니다. 해는 떴다가 지고, 바람은 이리저리 불고, 강물은 쉼 없이 흐릅니다. 강물은 아무리 흘러도, 바다를 채우지 못한 채, 위에서 아래로만 흐릅니다.
그동안 한 시대의 사람들이 태어나, 활동하다가 죽고, 그러면, 다음 사람들이 자라서 바로 그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사라집니다.
전도자는 단지 무대위에 자연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무대이고,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인생을 연기하다가 사라지는 배우와 같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세종문화 회관을 가보면, 공연이 열립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가수들이 무대에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배우들이 등장했다가 무대를 내려갑니다.
그동안 무대의 막은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조명도 수 없이 켜졌다 꺼졌다합니다. 그동안 가수나, 배우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명(名)연기를 펼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후회 없이 최고로 멋진 인생을 사는 이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 연기가 시원치 않습니다. 즉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존재의 의미조차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기 배역(配役)이 무엇인지 모르는 배우가 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극중 인물에 자신을 완전히 동화시켜서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 세상 배역(配役)을 제대로 알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 수 없고,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돈 모으는 재미로 사는 그 사람입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 좋은 연기(演技)일 순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것은 시간만 허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동적인 연기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위대한 연기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도 멋지지만,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연기는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사랑하는* 이것입니다. 즉 *존재 의미를 잃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해 주는* 이것입니다.
얼마 전에 크리스천 의사들이 가난한 외국에 가서 언청이 수술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즉 입술이 갈라진 언청이들은 외모에 열등감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수술해서 예쁜 입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얼마나 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입니까?
Ⅳ.만물의 피곤함
1:8-9절)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는 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세상은 하나님 백성들의 공연장이요, 무대 장치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배역도 모르고 무대에 선 배우들처럼 지루하고 의미 없는 인생만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의 만물들도 인간의 연기를 보려고 고대했다가 사람들 연기가 형편없어서 지루해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은 모두 진부(陳腐)할 뿐입니다. 즉 여기 있던 재물이 저기로 가고, 이 사람에게 있던 권력이 저 사람에게로 갑니다. 그런데 하는 짓들을 보면,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의 생각 자체가 진부(陳腐)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똑같은데, 새로운 것이 나올 여지가 있을까? 그러니까 사람이나, 자연이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지루한 것뿐입니다. 할 일 없는 노인들을 보면, 특히 예수 믿지 않는 노인들은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세상 사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둑. 장기나 두고 지냅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새로운 것은 하나님께 모두 다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새 바람을 세상에 불어넣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는 진부한 것이 없습니다. 항상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똑바로 아는 사람들이 짧은 인생을 살아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연기(演技)로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세상에 성령의 바람을 불어넣는 사람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살아나게 하고, 죽음의 사해(死海)바다에 물고기를 헤엄치게* 만듭니다. 전도자가 언급하는 중요한 용어(用語)가 여기에 있습니다. *해 아래 있는 것*입니다. 즉 똑바로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무대를 만들어주어도 연기할 실력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세상에 하나님의 것을 가져와서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밑천으로 주신 것이지, 그 자체로는 축복이 아닙니다.
진정한 축복은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믿음*입니다. 삶이 의미 없다고 방탕하게 사는 사람은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긁어모으기만 하는 사람도 인생을 진부(陳腐)하게 할 따름입니다. 최고의 인생 연기(演技)는 *멋진 믿음의 삶을 사는*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으로 끌어와서* 다른 이들을 복(福)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site / Kakao 선교회 안내
주님의 선교 명령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가치와 아름다운 가정과 영생(永生)을 위하여
대상 : ▷불신자 ▷개종자 ▷코로나시대 바빠서 교회출석 못하는 자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 ▷영생(永生) 받고 사망 후 천국 가길 원하는 자.
▣허무에서 가치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권태에서 행복으로, 염려에서 기쁨으로,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저주에서 풍요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기 원하는자
□ 상담실 운영
◐신앙 상담 ☞ 갈등 상처 ◐가정 상담 ☞ 폭력. 이혼. 자살충동. 우울증 등
◐내방 장소 ☞ 동탄 종합문화센터 옆 펜케이 카페. 주소 반송동 117-5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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