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스크린 골프의 황제 '골프존' 회장
김영찬
남극에도 그린을 쫙… 혁신 앞에 벙커는 없었다
대전=김희섭 기자 /조선일보 : 2012.11.28.
5명이 만들어 5000만이 즐겨 세종기지에 스크린 골프 기증… 귀족 스포츠 3만원으로 대중화 회원 랭킹 매겼더니 인기 폭발 1872의 사나이 - 그의 꿈은 18홀 72타 그래서 휴대폰 끝자리도 1872 스크린 골프는 한국이 종주국 세계1위 넘어 골프 한류가 목표
요즘 남극 킹조지섬에 있는 세종과학기지가 붐빈다. 다. 바닥에 공을 놓고 골프채를 휘두르면 '딱' 소리와 함께 대형 화면에 시원스레 펼쳐진 골프장으로 공이 날아간다. 실제와 흡사하게 재현한 골프 시뮬레이터(simulator)다. 골프존(Golfzon) 김영찬(66) 회장이 2009년 세종기지에 기증했다.
"스크린 골프계 고수(高手)로 통하던 정부출연기관 연구원이 있었어요. 그가 세종기지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음과 펭귄밖에 없는 곳에서 얼마나 무료할까' 생각해서 우리 시스템을 지원해줬지요. 다른 나라 연구원에게도 인기라니 기분이 좋네요."
골프존은 2000년 대전광역시 대덕연구단지에서 직원 5명의 벤처기업으로 시작했다. 현재 전국 스크린 골프장은 약 5000개. 이 가운데 80% 이상이 골프존 시스템을 쓴다. 지난해 코스닥에 상장하고 매출 2098억원을 달성,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탑립동에 있는 골프존 본사에서 김영찬 회장을 만났다.
―스크린 골프가 새로운 여가활동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스크린 골프는 약 5000만명(중복 포함)이 즐겼어요. 실제 골프장 이용자의 2배, 스키장 내장객의 7배 수준입니다. 귀족 스포츠라고 불리던 골프를 시간·장소·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게 대중화한 게 인기 비결이죠."
―비용은 얼마나 드나.
"명문 골프장 식당은 짬뽕 한 그릇에 2만5000원을 받아요. 라운드 비용도 20만~30만원씩 들죠. 스크린골프는 18홀을 도는 데 2만~3만원이면 충분합니다."
―어떻게 사업을 시작했나.
"삼성전자에서 팩시밀리·통신장비 등을 담당하는 시스템사업부장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새로운 창업을 해야 하는 기로에서 '내가 알고,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죠. 그게 골프였어요. 골프 연습장과 실제 골프장 환경이 너무 달라서 그 중간에 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스크린 골프입니다."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나.
"처음엔 노후 소일거리나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전국에 있는 골프 연습장을 돌아다니며 한두 대씩 팔았죠. 그런데 사람들이 연습 타석은 제쳐두고 골프 시뮬레이터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하더군요. 그물망으로 뒤덮인 연습장이나 벽만 치는 연습장보다 훨씬 재미있다면서요. 아예 연습장을 스크린 골프장으로 전환하는 분들도 늘어났어요. 한 번에 10여대씩 기기를 주문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죠."
―대기업이 뛰어들면 어떡하나.
"보통 신규 사업이 1000억원대로 커지면 대기업이 바로 들어옵니다. 그들이 가진 자본·인프라·네트워크·노하우 등은 중소기업이 도저히 따라가기 힘듭니다. 우리는 탄탄한 네트워크로 극복했어요. 현재 전국 2만3000대의 스크린 골프 기기가 본사 서버에 연결돼 있습니다. 120만명의 회원이 그동안 플레이한 기록을 모두 저장해놓고, 분석 결과까지 제공하니 차원이 다르죠. 회원 간에 랭킹을 매겼더니 경쟁이 대단하더군요. 지역·직장·동창 등 각종 동호회도 많이 생겼어요. 한 대기업이 쉽게 보고 뛰어들었다가 이런 네트워크를 극복할 수 없어서 얼마 전 철수했어요."
―시장이 포화 상태 아닌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시장을 키울 여지는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소유한 해비치골프장을 선택하면 배경화면에 K9 자동차와 힐스테이트 아파트 분양 광고판이 나옵니다. 이런 광고 시장이 연간 100억원대입니다. 유료인 '사이버 캐디' 서비스는 '지난번에 3번 홀에서 슬라이스가 났으니 이번에는 약간 왼쪽을 공략하세요' 같은 안내가 나오고 퍼팅 라인도 봐줍니다. 캐디를 아바타처럼 꾸밀 수도 있고 특이한 골프공 선택도 가능합니다. 현재 이런 콘텐츠 매출이 골프 시뮬레이터 판매의 40%쯤 되는데 내년에는 이 비율이 역전될 걸로 봅니다."
―최근 골프 아카데미, 골프장 사업을 비롯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도전하는데.
"스크린 골프는 골프존이 세계 1위 업체입니다. 경쟁자가 거의 없어요. 온라인 게임처럼 우리나라가 종주국이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새로운 한류(韓流)를 만드는 것이 마지막 목표죠.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동 등 부호와 정·재계 고위 인사들에게 이미 납품이 많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대만에 생긴 스크린 골프장은 LPGA 스타 청야니가 방문해서 '정말 재미있다'고 말할 정도로 인기입니다."
―실제로 골프는 얼마나 치는지.
"베스트 스코어는 3오버파, 75타입니다. 휴대폰 끝자리도 '1872'로 18홀에서 72타, 즉 이븐파(even par)를 치는 게 목표지요. 스크린에서는 4언더파까지 쳐봤습니다. 홀인원도 실제 골프장에서 한 번, 스크린에서 5번 해봤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