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세우는 나라
이향아
어제는 들을 데려왔으니 오늘은 산을 심을까 봐. 냇물이 흐르는 캔버스에 나무들이 무성해, 나무처럼 크는 나라 하나 세우는 일이네.
그린다는 것은 사무친다는 것, 그린다는 것은 빠져서 잠긴다는 것, 혼을 뽑아 그것으로 바꾼다는 것, 날마다 지나는 거리, 좁은 골목을 향해 절을 하면서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을 새기네.
남아 있는 목숨의 소중한 하루하루, 그윽하게 가라앉힌 작은 텃밭에, 지갑을 열어 비상금을 세듯, 일곱 가지 햇살을 붓에 적시네.
그린다는 것은 살고 싶은 나라 하나 세우는 일, 죽어서 묻힐 나라 세우는 일, 반역으로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 숨어서 몰래 모반하지도 망명도 하지 않고, 원하던 나라 하나 비밀처럼 세우는 일.
그린다는 것은 바람에 스치는 향기를 모아 영토를 돋우는 일, 빛과 그늘 사이 퍼지는 색깔, 그 색깔을 모아 궁전을 짓는 일. 서툰 목수처럼 지었다 헐고 헐었다가 다시 짓네.
ㅡ 이향아 시집, 『캔버스에 세우는 나라』 (지혜, 2020)
_이향아 시인 1966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황제여』 『물새에게』 『강물 연가』 『환상일기』 필집 『혼자 사랑하기』 『아직도 기다리는 불빛 하나』 평론집 『문학의 이론』 『현대시와 삶의 인식』 『시의 이론과 실제』 등 다수 경희문학상, 시문학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