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6. 송혜영
경주는 어렸을 적부터 종종 가던 곳이다. 창원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부모님이 데리고 다니셨고, 커서는 인솔 교사가 되어 체험학습으로 찾았다. 보문호수는 종류대로 누려본 것 같은데 산책은 기본, 마라톤대회에 나가 쉬지않고 뛰어보고, 적당히 허벅지가 당김을 느끼며 자전거로 돌아보고, 오리배를 타고 물길을 저어보기도 했다. 교사 워크샵과 데이트 장소로도 경주는 만만한 곳.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계림과 석빙고, 동궁과 월지(안압지), 포석정, 대릉원(천마총), 황남대총 터와 경주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는 양동마을과 바닷쪽으로는 감은사지 3층 석탑까지, 체험학습 장소로는 경주엑스포와 버드파크, 경주월드(어렸을 땐 도투락월드)도 다녀왔으니 왠만한 곳은 다녀본 것 같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즐거움과 휴식의 장소로 기억되는 이 곳 경주를 이번에는 아버지 칠순잔치 기념 여행으로 왔다. 국립경주박물관과 불국사를 다녀오며 간만의 경주나들이에 아버지는 너무 행복해 하셨고 동생네 가족까지 10명이 숙소에서 고기 굽고 물놀이하고 이야기꽃 피우고 시끌벅적 생기넘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경주 근처 사는 분들은 다 내려가시고 우리 가족만 남았다. 이왕 온 것 하루 더 놀고가자는 심산이다.
목적지를 확실하게 정하진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경주 전체가 커다란 공원. 어디를 가든 좋지 않을소냐. 일단 다보탑이 선명하게 찍힌 십원빵을 맛나게 먹고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 전해지는 계림 산책을 했다. 우리는 걸어가는데 비단벌레차라고 사방이 뚫린 초록색 미니버스를 타고 설명을 들으며 한가롭게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이 당연히 나도 타고 싶다 하는데 역시나 인기가 많은 차다. 온라인으로 이미 예약이 끝났고 간혹 나는 현장예매표도 다 팔려 오늘은 탈 수가 없다.
숲을 지나 석빙고로 연결되는 길을 걸어오르는데 눈 앞에 아주 넓게 발굴 중인 부지가 눈에 띈다. 무엇을 발굴하는 것일까 궁금해하던 차, 그 앞에 작은 사무실 건물이 눈에 띈다. 입구에는 해설프로그램이 있다는 공지가 있는데 문의를 해 보니 오늘은 순서가 다 끝났고 네이버에서 '월성이랑'을 검색해서 예약을 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냥 지나치기엔 궁금하다. 그래? 그럼 비단벌레차도 탈 겸 내일 다시 와 보자. 이렇게 우리의 일정이 정해졌다.
'월성이랑' 프로그램은 20분 정도밖에 안 걸리지만 이 곳의 발굴작업에 관하여 고고학자가 직접 설명을 해 주신다. 월성은 신라의 왕이 살았던 궁궐이자 성으로 위에서 보면 반달 모양이어서 반월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계림을 지나 오르막에 접어들었던 이 곳은 단순한 언덕이 아니라 원래 있던 자연지형에 흙벽을 보강해 만든 토성이라 한다. 월성의 내부에는 건물들이 있었을 거고 아래 남쪽에는 남천이 흐른다. 그리고 북쪽인 토성 바로 아랫쪽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도랑을 파고 물을 채워두는 '해자'를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설명을 첨성대와 해자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토성 위 의자에 앉아서 듣고 앉았노라면, 이게 참 마법이다. 이 곳의 지형적 가치를 알고 처음 왕궁을 지은 5대 파사왕의 마음이 되어본달까. 평화롭고 여유로운 초록의 들판이 아래 펼쳐져 있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세운 첨성대를 바라보며 달과 별의 움직임을 살피며 우주의 지혜를 구했을 것이고, 또 어떤 왕은 오른편으로 조금 건너 보이는 동궁에 거하는 세자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이 있듯, 신라시대에는 월성이 있다. 한양의 성벽은 돌로 쌓아 올렸지만 신라시대에는 흙담을 쌓았다. 서울에서 문화재를 계속 발굴하듯 이 곳도 월성 발굴 조사지를 구분하여 계속 연구를 하고 있다. 조선은 600년 역사라 하지만 신라는 천년의 역사라 한다. 이 곳 월성은 101년부터 935년까지 신라의 중심 궁성이라니 서울보다 더 수도이자 중심지였던 기간이 길다. 조선보다 더 이전에 있었던 국가라 어찌 보면 관심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조용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월성의 발굴작업은 이뤄지고 있었다.
서울의 광화문처럼 월성의 주 출입구로 여겨지는 곳에도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작업이 끝나고 복원이 되어 사람들이 드나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10년이면 될까요?' 물었더니 어림없다고 한다. 일년에 몇 cm 파 내려가는 것이 최선이라나. 이 곳에 그만큼 긴 세월 수도였던 만큼 팔 때마다 무언가가 계속 나온다 했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것은 보존이 잘 되었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전시된 것이지만 이외 이렇게 파헤져진 유물들은 셀 수 없이 많으며 대부분 번호가 매겨져 출토유물보관소에 보관이 된다고 한다.
고고학자는 참 매력적인 직업이다. 느리지만 가치있는 작업, 보물찾기 하듯 유물을 찾아내어 역사적 자료, 사료에 근거하며 어느 정도 상상력도 발휘해야 한다. 창조적이고 세심하고 가치가 있다. 요즘은 건축을 시작하기 전에도 부지에 문화재가 있는지 유무를 검사해야 한다니 직업으로 생각해도 할 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나서는데 친절하게 다음 장소를 추천해 주신다. 발굴현장 스탬프 투어를 하는데, 대릉원 아랫쪽 쪽샘유적발굴관에도 가셔서 스탬프를 찍으시면 기념품을 드리니 시간 되면 한 번 가 보시라고. 기념품에 아이들 눈이 반짝거리니 어찌 안 갈 수가 있는가.
대릉원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면 입구를 바라보고 오른편 길로 가는 것이 더 빨리 도착한다. 반댓길로 접어든 우리는 한참을 걸어 가은이 입에서 다리아파 소리가 몇 번 나올 때쯤에야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하얀 돔으로 된 건물에 무엇이 있나 들어서는데 우와! 이건 탄성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문화재를 발굴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마치 고고학자들에게만 허락되었거나 TV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곳인데 민간인이 들어와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기분.
쪽샘은 '쪽박으로 떠서 마신 샘'에서 비롯된 지명인데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의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이라 한다. 이미 일제시대에 경주의 고분들을 파악하여 번호를 매겨 놓았고, 이 중에서 주택가가 들어서지 않았고 규모가 큰 곳들을 먼저 발굴해서 지금 알려진 곳들이 있는 것이지만 사실 경주에는 대릉원 주위만 해도 발굴이 안 된 고분들이 많이 있다. 이 발굴관 안에서는 2014년부터 44호분의 발굴 조사를 하고 있는데 작업은 내년 정도에는 마무리된다. 지금껏 발굴 작업을 너무 급하게 실적 위주로 한 경향도 없지 않아서 현재 우리 나라의 유적 보존과 정비 작업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하는지 자료로도 남기고, 신라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인 적석목곽묘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샘플 형식으로 이렇게 발굴관을 만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