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 열혈 판사 박차오름
서울중앙지법 44부로 발령받은 초임 판사 박차오름은 첫 출근길부터 한바탕 소동을 겪는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젊은 여성을 성추행하는 남자를 목격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남자를 거침없이 힐난한 뒤, 지하철 경찰대에 현행범으로 남자를 넘긴 것.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 정의파인 그녀의 이런 저돌적인 면은 함께 일하는 선배 판사 임바른을 늘 당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한편, 법원 앞에서 일인시위 하는 할머니의 억울한 사연을 옆에서 훌쩍이며 들어줄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지닌 박차오름을 미워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법정’이라는 신념을 실현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초임 박차오름 판사 앞엔 어떤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임바른 판사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박차오름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일이란 복잡하고 간혹 아름답기도 하지만 자주 추악하다. 그런 사람들의 일을 샅샅이 살펴보고 온전히 판결해내기란 초임 판사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판사 박차오름의 젊은 혈기는 부정부패와 집단주의, 권위주의, 무사안일주의가 가득한 속물들의 세상에 신선한 공기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젊은 여성 판사가 맞선 세상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튀는_판사 #남혐_판사 #초미니를_입은 판사
지하철에서 성추행하는 남자를 현행범으로 붙잡아 신고하고, 회색빛 근엄한 법원에 초미니에 스틸레토힐을 신고 출근하는 젊은 여자 판사, 박차오름. 그녀를 주시하는 눈들은 그녀의 일상을 몰래 촬영해 SNS에 동영상과 사진을 올리기에 이른다. 거기에 따라붙는 해시태그는 ‘#튀는_판사’, ‘#남혐_판사’ 등 각종 ‘여혐’ 언어들. 급기야 그녀는 SNS상에서 ‘미스 함무라비’로 불리기 시작한다.
“어디 보자. 잊힐 권리의 침해? 재미있는 사건이네요. 에휴, 저야말로 요즘 제발 좀 잊히고 싶다고요. 이상한 별명까지 붙어서 제 온갖 동영상과 사진이 떠돌고 있는 거 아세요? 미스 함무라비라니, 하필 내가 싫어하는 성차별적 호칭 ‘미스’까지. 근데 원고가 누군데 이런 최신 트렌드의 사건을 제기한 거죠?” _본문에서
젊은 여성 판사의 거침없는 정의로움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그녀가 속한 재판부를 궁지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법조계는 그녀를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감정적”이라고 평가하며 예의주시한다. 과연 박차오름은 이런 세간의 평가와 편견들을 뚫고 진실을 향해 굳건하게 나아가는 판사로서 우뚝 설 수 있을까.
법원엔 법봉이 없다?
실제 재판은 어떻게 진행될까. 법조 영화나 드라마와는 얼마나 같고 다를까. 판사들은 어떤 고민을 거쳐 판결문을 작성할까. 전관예우란 실제로 존재할까. 우리나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왜 이다지도 깊고 깊은 것일까. 우리는 사법부에 궁금한 것도 묻고 싶은 것도 많지만 사법부는 그 모습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법조 영화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판사의 법봉은 현재 대한민국 법정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법봉이 전형적인 상징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사법부에 관한 일반의 상상이 빈곤함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베일에 가려져 일반 시민에게 별로 알려진 바가 없기에 그렇다. 법전은 두껍고, 알아먹기 힘든 법률 용어로 가득차 있는데다 법원은 사회가 부여한 막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의 법원이라면, 이제 법원은 신전에서 내려와 광장으로 걸어나와야 하지 않을까. 시민들과 함께 좀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책 속 주인공들과 함께 저자가 이야기하는 바에 따른다면 말이다.
신비의 베일은 이제 더이상 사람들을 승복시킬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진처럼 비웃음을 살 뿐이다. 오히려 그 베일 안에 뭔가 악의로 가득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또다른 신화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베일 뒤에 숨어 침묵하니 신전과 광장 사이에 잘못된 신호가 오고가기도 한다. (...) 계속 높아져만 가는 오해와 불신의 장벽을 부수려면